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07)
2장 추락하는 무당파(1)
무림맹의 객실에 묵고 있던 춘양진인이 애써 노기를 누르며 앞에 앉은 네 명의
제자를 둘러보았다. 천지일원의 네 사람은 장문인의 앞에서 송구하다는 듯 고개
를 들지 못했다.
“무림의 오대문파가 연일 무당파를 찾아와 시비를 일으키고 있다. 그들 때문에
이제 팔대문파의 회의는 열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자중하라고 누누이 당부했건만
또다시 곤륜파와 싸움을 일으키다니, 대체 너희는, 어떻게 가르친 것이냐?”
춘양진인은 ‘너희는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친 것이냐’ 말하려다가 앉아있는 이
원지 도인을 바라본 후 그 한마디를 목구멍으로 삼켜 버렸다.
도천도사가 더욱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장문인,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제자들을 엄히 다스려 다시 분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춘양진인이 도천도사를 바라보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무당파가 무림맹에
찾아온지 나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큰 소란이 세 번 있었다. 모두 무당
파의 제자들이 수군거리는 무림동도들의 이야기를 듣다못해 싸움을 일으킨 것이
었다. 두 번은 도천도사의 제자인 분광검 노호가 일으킨 것이었고, 한번은 이원
지 도인이 일으켰다.
자기의 제자들이나 사손들 모두가 철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무림맹의 분
위기가 무당파에 적대적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너희들은 당분간 제자들이 객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해라.”
장문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무당파의 고수들은 모두 괴로운 표정을 지었으나 감
히 반박하지 못했다. 그들도 무림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충분히 느꼈
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분광검 이청이 실종되었는데 마교와 무당파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
이냐며 무림인들의 반응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에 천마후의 남편이
혈겁을 일으켰는데 무당파가 너무 뻔뻔하다는 주장이 연일 제기되었다. 그때부터
소림사(少林寺), 화산파(華山派)와 함께 무림맹을 이끌어 오던 무당파(武當派)는
더 이상 무림동도들 앞에 나설 명분을 잃고 말았다.
무당파가 무림맹에서 조용히 자기 맡은바 할 일을 통해 과오를 청산하려고 해
도 다른 문파에서 그것을 용납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이 기회에 무당파의 위
치를 구대문파의 가장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려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한쪽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추풍검 심방과 만리검 양극이 장문인에게 다가왔다.
추풍검 심방이 춘양진인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장문인, 한 사람의 여제자로 인해 우리 무당파가 무림에서 이처럼 치욕을 당
하게 될줄 몰랐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문호를 정리해서 더 이상의 수
치를 당하지 않아야 할 것이오.”
춘양진인이 그 말을 듣고 도천도사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도천도사의 직계
제자들이니 그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도천도사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매화검은 풍림장 영호성의 여식으로 사리가 분명한 제자입니다. 비록 마교 교
주의 부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어떤 경로로 그렇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으니
당분간은 뭐라고 말씀을 드릴수가 없습니다.”
심방이 그 말을 듣고 물끄러미 도천도사를 바라보았다. 비록 답답한 마음에 그
처럼 운을 떼어는 보았지만, 자식같은 제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손을 보니
한편으로는 그 사람됨이 좋아도 보였다. 그러나 지금 사람됨이 좋아 보인다고 추
락한 문파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심방도 도천도사의 말을 듣고 차마
더 이상 문호정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없어 한숨을 내쉬는데, 춘양진
인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도천아, 이미 무당파는 너무도 많은 피해를 보았다. 제자를 잃어버린 너의 심
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적어도 혈마사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매화검의 문
제를 해결지어야 할 것이다.”
춘양진인의 지적은 옳았다. 아무리 심정적(心情的)으로 매화검에 대한 연민을
끊어버릴 수 없다고 해도, 혈마사의 일이 정리가 되면 무림맹의 주적(主敵)은 마
교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도 매화검의 일이 마무리가 되지 않으면 무당파는 점점
서있을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같은시간 곤륜파(崑崙派)와 점창파(點蒼派), 종남파(終南派), 개방의 삼파일방
을 이끄는 수뇌부들은 한곳에 모여 무당파의 일로 숙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무림의 구도는 재편성되어야 하오. 그간 너무도 오랫동안 삼파에
의해 무림맹이 좌우되어 왔소이다. 소림사와 화산파 그리고 무당파가 구대문파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일이오. 작금의 일들을 보시오. 이십
여 년 전부터 무림은 혈마사와 교하국의 침입으로 수많은 명문 정파들이 제자들
을 잃고 멸문까지 당하고 있소. 그런 와중에 무림맹의 고수들은 마교의 교주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는데, 무당파의 제자는 천마후가 되어 정사(正邪) 양쪽으로 권세
를 누리고 있소. 이 무슨 해괴망칙한 일이란 말이오!”
점창파의 장문인이 열변을 토하자 종남파와 곤륜파의 장문인들이 고개를 끄덕
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점창파 장문인의 말이 끝나자 개방의 방주가 자리에서 일
어나 입술에 침을 튀기며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여기 있는 우리 사대방파들도 결코 무당파만 못하여 그간 무림맹의 행사를 방
관한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하오. 나는 더 이상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
림맹을 맡길 수는 없다고 믿소이다. 내일 우리의 이같은 취지를 맹주에게 전하고
앞으로는 무당파가 전면에 나서는 일이 없도록 분명히 못을 박아둡시다.”
삼개문파의 장문인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앞으로는 무당파가 무림의 일에
나설 수 없도록 하자고 다짐을 하고 헤어졌다. 그들은 각기 무당파의 빈자리를
자파가 대신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누구도 그같은 바램을 입 밖으
로 꺼내지는 않았다. 결국 무당파의 빈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말로 될 문제가 아
니라 실력행사로 될 일이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무림의 팔대문파 사람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회의실로 모여
들었다. 오늘은 무당파 사람들이 회의실에 들어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앞으로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무당파에 대해 약간의 연민 마저 느끼고 있었다.
내막을 모르는 춘양진인은 하루만에 호의적으로 돌변한 사대문파의 사람들을
향해 친근하게 웃어 보임으로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미 멸문한 공동파를 제외한 팔대문파의 사람들이 다 모이자 경재학이 자리에
서 일어나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이제 또다시 무림에 혈마사의 혈풍이 몰아치고 있소이다. 이미 공
동파가 사라졌소. 여기서 그들의 행보를 막아내지 않는다면 중원의 각방파는 그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외다. 이제 팔대문파와 무림의 무가들이 모두 모여 들었
으니 그들을 하나로 묶어 통솔하려고 하오. 여러 장문인들께서는 좋은 의견을 제
시해 주시기 바라오.”
경재학의 말이 끝나자 소림사의 원정선사(元貞禪師)가 조용히 말했다.
“이미 이십여 년 전에 그들을 효과적으로 막은바가 있으니 그때처럼 무림맹을
나누어 지휘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오만,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이십 년 전 무림맹은 소림사와 무당파, 화산파 그리고 무림맹을 중심으로 사대
(四隊)로 나뉘었었다. 소림사는 개방과 공동파와 점청파를, 무당파는 곤륜파와
종남파를, 화산파는 아미파와 청성파를, 무림맹은 중원에서 몰려든 무림인사들을
이끌고 이패의 중원행을 저지했다. 원정대사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이번에도
그렇게 했으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말한 것이었다. 이십 년 전 같았으면 그 제안
이 별다른 이의없이 통과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이 자리를 벼르고 나온
사대문파의 장문인들은 원정선사의 말에 아미를 찌푸렸다.
곤륜파의 장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림 칠대문파의 장문인들을 둘러보며 말
했다.
“본파는 앞으로 계속 무당파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소이다. 그 이유는 다른 분들도 잘 아시리라 믿소. 만약 맹주께서 끝내 본파와
무당파가 함께 움직이기를 바라신다면, 마땅히 종남파와 본파에서 무당파를 이끌
어 주게 해야 할 것이외다.”
이 말은 한마디로 무당파는 이제 종남파와 곤륜파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것
이었다. 지금까지 무림을 이끌어 오던 무당파에 이처럼 치욕스런 말은 없을 것이
나 종남파의 장문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경재학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무당파 장문인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춘양진인은
애써 태연한척 하려 했지만, 붉게 물든 얼굴과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의 경련을
감추지는 못했다.
“우리 점창파도 무당파와는 행동을 함께 하기 곤란하며, 만일 함께 움직여야
한다면 역시 우리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개방도 그 말씀에 동의하는 바이오.”
팔대문파의 사람들이 춘양진인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이제 춘양진인의 한마디
말로 무당파가 팔대문파에서 떨어져 나가 독자적으로 혈마사와 맞서느냐, 곤륜파
와 종남파의 아래로 들어가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독자적으로 혈마사를
상대 한다는 것은 이시점에서 멸문을 자처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춘양진인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경재학을 바라보며 말했다.
“본파는 전적으로 맹주의 지시를 받들 것이오.”
이 말은 일시적으로 곤륜이나 종남파의 지시를 받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모두
무림맹의 권위에 복종하기 위해서라는 말과 같았다.
경재학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무당파가 무림맹에
남아있겠다고 말하는 것이니, 그동안 고민하던 전력의 차질에 아무런 이상에 없
게 된 것이다.
“무당파 장문인의 의기(義氣)는 무림사에 길이 남게될 것입니다.”
결국 무당파는 곤륜파와 종남파의 지도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그동
안 무림을 대표하던 무당파는 오늘 이후로 무대의 뒤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2부 2.추락하는무당파(2) 관련자료:없음 [13264] 보낸이:조진행 (빈들 ) 2001-01-29 01:14 조회:2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