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09)
3장 미쳐야 대성하는 검법(1)
그날 오후 장염은 수레를 집안에 들여놓고 여느 때처럼 강변으로 걸어나갔다.
이미 일월 중순이라 차가운 바람이 살을 에이는 듯 했지만 장염은 신경쓰지 않았
다. 아니 숨이 턱턱 막혀오도록 모진 바람이 불자 오히려 고개를 들고 옷깃마저
풀어 해쳤다. 그건 어찌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학인지
도 몰랐다.
향이에게서 떨어져 나오면 영화소저에 대한 그리움과 절망은 더욱 깊어져 갔
다. 혼자 있는 시간이 그처럼 고통스러운데도 장염은 매일같이 강변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고통스런 느낌이 바로 영화소저라도 되는 양, 장염은 홀로 떨어져 나
와 자신의 고통에 마주섰다. 가슴의 뼈들이 주저앉는 듯한 아픔 속에 믿음과 의
혹 사이를 오가다가 보면 세상사(世上事)가 구름처럼 덧없어 지곤 했다.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도 장염이 애써 마음을 누르려고 노력하는 가장 큰 이유
는 장소 때문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영화에게 달려가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물었겠지만, 지금 장염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소에게 받아내야 할 빚은 많았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장가촌 사람들의 죽음
이다. 장염은 자신과의 개인적인 원한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장염은 무공이
회복되면 반드시 장소를 찾아가 봐야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 끝이 어떠하리
란 걸 예견하고 있기에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장염이 장소를 만난다는 것은 그날로 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
한다. 장염은 장소보다 영화소저를 먼저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만에
하나라도 영화소저의 입에서 그가 원하지 않던 대답이 쏟아져 나온다면, 영화소
저의 행복과 복수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장염은, 장소는 둘째치고 사실상 영화소저의 곁에도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장염의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장소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교에서
는 장가촌 사람들의 씨를 말리고 싶어했고, 무림맹의 경재학도 어디서 불쑥 나타
나 장염의 목줄기를 움켜쥘지 알 수 없었다. 굳이 장소가 아니더라도 마교와 무
림맹의 근처에 가는 날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될 것이다.
무공을 회복하지 못한 장염이 지금 정사(正邪) 양도(兩道)의 눈을 피해 영화소
저를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가 결
정하지 못한 장염의 마음을 이중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따지고 보면 두 사람 사이에 언약을 주고 받은 일이 없으므로 영화소저가 장소
의 부인이 된다고 해서 자신을 배신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언제나
가까이 있는 듯 멀리 있었고, 눈빛과 작은 몸짓 하나 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
었다.
‘그것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문득 장염은 육바라밀이라고 자처하던 색마(色魔) 유달산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달산처럼은 아니라 할지라도 좀더 확실하게 애정공세를 펼쳤다면, 오늘날 영화
소저가 장소를 받아들였을까? 장염은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고 해도, 장소와 영화소저의 갑작스런 결합만큼은 도무지 납득이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지 장소가 영화소저를 죽이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래서 늘 광마(狂
魔)가 된 장소가 영화소저마저 죽인다면, 반드시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왔다.
그런데 뜻밖에 듣게된 소식은 영화소저가 장소의 부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게다.”
혼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걷다보니 어느덧 강변에 닿아 있었다.
얼굴은 이미 세찬 바람에 얼어 감각이 없었지만, 왠지 마음은 조금 가벼워 졌다.
강가로 내려서는 순간 얼어붙은 듯 딱딱한 강바람이 휘몰아쳐 왔다.
“야아아아! 나는, 나는, 그녀를 만나볼 것이다!”
장염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근처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하핫! 사내대장부가 세상에 나와서 하는 말 치고는 수준 이하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여자 때문에 저런 짓거리를 하고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
습니까?”
장염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세 사람의 청년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
었다. 그다지 악해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었지만,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강호에서 그럴듯하게 생긴 사람들로부터 뜻밖의 흉한 대접을 많이
받아본 장염은 내심 긴장했다. 더구나 그들의 태도로 볼 때, 결코 호의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중 덩치가 큰 사내가 장염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자네는 수계현의 운수 좋은 떡장사가 아닌가?”
“떡은 팔아 본 적이 없고, 다만 만두와 찐빵을 만들어 왔습니다만.”
장염이 조심스럽게 허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장사를 하는 이상 오가며 만나
는 모든 사람들은 고객이다. 몇 사람들의 입에 성질 더러운 사람으로 오르내리
면, 수계현에서 음식으로 입에 풀칠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허, 이 사람아, 떡장사라면 그저 그러려니 할 일이지, 떡이나 찐빵이나 다를
게 무언가? 자네가 지금 내게 시비를 걸고 있는겐가?”
그의 얼굴은 매우 못마땅하다는 듯이 찌푸려져 있었다.
‘시비는 누가 걸고 있는 건지 모르겠구나.’
장염이 잠시 말을 잃고 서있자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의 말이 말같이 안들리나 보구먼, 왜 대답이 없나? 재수가 좋아서 이쁜
여자를 꿰어차고 다니니 우리 같은 사람은 눈에 차지도 않는가?”
“이쁜 여자를 꿰어차고 다닌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상대의 의도를 모르니 장염은 답답할 뿐이었다.
“그럼, 시장에서 장사하는 자네의 옆에 서있던 아가씨가 자네 모친(母親)이라
도 되나?”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분은 저의 누님이십니다.”
그러자 세 사람의 눈에 얼핏 놀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누님이라니, 그렇다면
이들은 남매지간이라는 말인가? 그런 줄 알았다면 이처럼 나서서 헛수고를 할 필
요가 없는 것인데, 서로가 이미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 잘되었구먼, 자네는 금마장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나?”
장염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주변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제가 아직 인간관계가 넓지 못해 그런 분을 사귀지 못했습니다.”
“하하핫, 자네가 그처럼 겸손하니 다행이구먼. 자네 두 남매의 고생도 이제는
끝이 났으니 이거 축하할 일이 아닌가?”
느닷없는 사내의 말에 장염이 눈을 크게 뜨자 사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오늘 우리와 술을 한잔 걸치고 느지막하게 집으로 들어가면 내일부터 자네와
누이는 떡장사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알만한 사람이 왜 이러나? 금마장은 총각에다가 수계현 제일의 갑부이니, 자
네의 누이가 오늘 그와 궁합이 제대로 맞기만 한다면 어찌 내일부터
금가(金家)에서 자네들을 외면하겠나? 금마장이 자네와 아가씨의 관계를 모르는
바람에 우리가 하마터면 괜한 일을 벌일 뻔 했지만 이제 모두 알게 되었으니 지
금부터라도 황학루에 가서 거나하게 마셔 보세나.”
장염이 가만히 하는 말을 들으니 이들은 자기를 손보려고 이곳까지 따라온 것
이 틀림 없었다. 두 사람이 남매가 아니였다면 오늘 자신은 큰 봉변을 당했을 것
이다. 그런데 지금 이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니, 지금쯤 금마장이 향이에게 무엇
인가 수작을 걸고있음이 틀림 없었다.
“헌데, 소협들은 모두 금소협과 어찌되는 관계이십니까?”
장염과 대화를 나누었던 덩치가 큰 사내가 두 사람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저기 좀 마른 사람은 서원우(西元宇)이고, 그 옆의 키가 작은 사람이
이소민(李小民)일세. 그리고 나는 황장군(黃將軍) 이라고들 부르지. 소형제는 이
름이 뭔가?”
“저는 장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는 금소협만 가신 겁니까?”
“혹시나 싶어서 금마장과 소복래(小福來)라는 친구가 함께 갔다네. 걱정말게,
금마장이 자네 누이에게 푹 빠져 있으니, 결코 나쁘게는 하지 않을 걸세.”
장염이 피식 웃으며 황장군이라는 사람에게 말했다.
“제가 걱정하는 바는 누님께서 워낙 청정한 것을 좋아하셔서, 두 분이 느닷없
이 찾아갔다가 큰 봉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하핫! 소형제의 농담이 하늘을 찌르는구먼. 금마장과 소복래는 벽운산장의
삼대고수에 속한다네. 우리 사부님께서는 공동파의 장문인과 거의 같은 분이라고
들었으니, 어찌 그분의 지도를 받은 벽운산장의 고수가 시장통의 아녀자에게 욕
을 당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와 함께 황학루에 가는 길에 슬쩍 들러서 확인이라도
하고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하핫, 자네가 그처럼 누이가 염려가 된다면 어찌 우리가 무작정 자네를 끌
고 가겠는가? 우리는 명문정파의 사람들이니, 지나가는 길에 살짝 금마장과 자네
누이가 사이좋게 있는 것을 보여 줌세.”
“…”
제 목:[연재] 천사지인2부 3.미쳐야대성하는검법(2) 관련자료:없음 [13279] 보낸이:조진행 (빈들 ) 2001-01-30 01:07 조회:2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