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1)
7. 가다보면 알게된다(去去去中知). (2)
영화는 장염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처음 만나 얘기하던 때를 떠올렸다. 인사를
나누고 별로 할 말도 없는 상태에서 영화는 어린 시절 자신이 제사용 엿을 훔쳐
먹다가 크게 혼이 난 얘기를 했었다.
“대체 겨우 엿을 가지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귀신도 엿을 좋아하나요?”
그러자 장염이 웃으며 부뚜막 신과 엿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었다.
“부뚜막에는 남신(男神) 조왕야( 王爺)와 여신(女神) 조내내( )가 살고
있어요. 둘은 부뚜막 위에서 그 집안 사람들의 행실을 지켜보다가 착한 일을 하
면 선의 두레박에, 나쁜 일을 하면 악의 두레박에 그 숫자를 세어 넣어요. 그러
다가 음력 섣달 스무 사흗날(십이월 이십 사일) 밤에 이 두 개의 두레박을 가지
고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그 집안의 일을 보고하는 거예요. 옥황상제는 그
얘기를 듣고 선악의 행동이 같으면 그냥 두지만 선행이 많으면 그 다음해에 복을
내려요. 반대로 악행의 수가 더 많을 경우에는 그 집안에 화를 내리죠. 그래서
사람들은 부뚜막 신이 하늘에 올라가는 날 미리 제례를 지내는데… 그때 엿을
꼭 드린답니다. 엿을 먹다가… 조왕야와 조내내의 입이 붙어서 고자질을 못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움믐움믐…”
말을 하던 장염이 우물 거리며 입이 붙은 흉내를 내자 영화가 낄낄거렸다.
“크크 …”
“하하핫… 그러니 엿이 얼마나 중요하겠어요.”
영화가 머리를 끄덕이며 즐거워하자 장염이 신이 나는지 계속 얘기했다.
“그날은 붉은 등을 켜고 그 집안의 남자들이 순서대로 절을 올리죠.”
“저는 멀리서 구경만 했어요.”
“하하핫… 구경만 하는게 나아요. 안그러면 사람들의 뻔뻔한 말들을 듣게 되
거든요.”
“뭐라고 하는데요?”
“하늘에 가셔서 나쁜 일은 이르지 마옵시고 착한 일만 말씀하여 주옵소서.”
“어머 정말요?”
“그리고 다른 말도 있어요.”
“…?”
“착한 일은 많이 말씀하시고 나쁜 일은 조금만 말씀하여 주옵소서.”
“후훗…”
영화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좋은 일이 있었나 보군요?”
“네, 좋은 일이 있었죠… 장 오라버니, 오늘은 고향 얘기를 해주세요.”
“고향…, 내 고향은 장가촌이랍니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한번도 그곳을 벗
어난 일이 없지요. 장가촌에는 개울이 하나 흘러요. 개울에는 이름이 없는데 개
울에 놓인 다리에는 이름이 있어요. 천주교라고 하는데, 저의 아버지가 놓은 거
랍니다. 아버지는 개울물이 불어 다리가 끊어지면 몇 번이고 다시 다리를 세우셨
어요.”
“아버님 혼자 다리를 만드세요?”
영화는 아버님이라고 말한 뒤 얼굴을 붉히며 슬쩍 장염의 표정을 보았다. 그러
나 둔한 장염은 별 생각 없이 말을 계속할 뿐이었다.
“그럼요.”
“왜…?”
“그냥 아버지는 그러고 싶으셨다고 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몸이 약한 저를
위해서 다리를 놓아 주셨죠. 공덕을 쌓기 위해서라고 하시더군요. 그 덕분에 저
는 몸이 건강해졌답니다.”
장염은 진원청을 만나 몸이 건강해 졌다는 얘기를 아버지가 공덕을 쌓아 건강
해 졌다고 돌려서 말했다. 그러나 진원청을 떠올리는 순간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
만 잊혀지지 않는 스승에 대한 그리움으로 숙연해 졌다. 영화는 그런 장염을 바
라보며 뭔가 사연이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제게는 형제 같은 친구 둘이 있어요. 저기 나무 밑에서 잠든 척 하고 우릴 엿
보고 있는 장소와 이삼인이죠.”
“그렇군요.”
영화는 장소와 이삼인이라는 이름을 몇 번 되뇌었다. 장염과 관계가 있는 사람
들이라면 기억해 두고 싶었다. 그때 장염이 불쑥 말했다.
“영화 소저, 이렇게 발을 물에 담그고 있으면 아주 시원해서 피로가 싹 가신답
니다.”
영화는 장염의 발이 담긴 개울물을 보았다. 맑고 깨끗했다. 영화가 머뭇거리자
장염이 말했다.
“발 담궈봐요. 굉장히 차가와요.”
중원에서 여자의 발을 본다는 것은 금기중의 하나였다. 사람들은 여자가 멀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전족을 시키는가 하면, 남편의 눈에 보기 좋으라고 전족을 시
키기도 했다. 이렇게 발이 크지 말라고 묶어놓는 전족은 일반 백성들에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리고 남편과 부모 이외에 남자가 여자의 발을 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여자의 발을 본다는 것은 알몸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가촌에 사는 사람들은 전족을 몰랐기 때문에 장염이 속 편하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무림인들은 대부분 전족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화는 발을 보인다는 것에 대해 조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곧 그녀
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가죽신을 벗고 개울에 발을 담궜다. 시원한 물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두 사람이 웃고 떠들며 발을 가지고 장난을 칠 때 멀리서 그들을 곱지 않은 눈
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은의를 입은 남자가 부르르 떨며 말했다.
“사형, 저기 장가놈이 감히 넷째 사매와…”
“어머, 신까지 벗고 함께 앉아 있다니… 망측해라.”
금의를 입고 다니는 청년은 무당 사검사 가운데 첫째로 분광검(分光劍)
이청(李淸)이었다. 그는 눈앞에서 둘째 사제 환영검(幻影劍) 노호(盧號)와 셋째
사매 설상검(雪上劍) 소소(素素)가 자신에게 하는 말을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둘째 사제 노호가 막내인 영화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러나 남녀의 일이란 게 어디 무공이나, 함께 보낸 시간만으로 해결되는 것이랴!
대제자 이청은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이청이 말이 없자 노호가 쉬고 있던 나무
그늘에서 벌떡 일어나 개울가로 다가갔다.
“호호…, 큰 오라버니, 둘째 오라버니가 저 장씨 청년을 어떻게 하려는 걸까
요?”
“글세…, 설마 노호가 무공을 모르는 그를 건드리기야 하겠느냐?”
노호가 개울가로 다가오자 영화는 큰소리로 노호를 향해 소리쳤다.
“호호홋, 사형. 이리 와 보세요. 물이 아주 시원해요.”
“시끄럽다! 영화야, 너는 얼른 물에서 발을 빼지 못하겠느냐?”
노호가 버럭 화를 내며 말하자 영화는 놀란 얼굴로 사형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다정하고 친절하던 사형이 왜 화를 내는 것일까? 노호는 이어서 장염에게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장소협, 그대가 어디에서 무공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얼 믿고 우리 무당
사검사를 희롱하는 것이오?”
“네? 그.. 무슨 말씀이신지…”
장염이 깜짝 놀라 노호를 바라보았다.
‘내가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무슨 실례를 저질렀다는 말인가?’
“사형, 갑자기 왜 그러세요?”
노호는 영화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장염에게 소리를 쳤다.
“네 이놈. 나는 지금 네놈이 감히 무얼 믿고 무당파 사검사 중 하나인 영매에
게 수작을 걸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장염은 처음에는 놀랐지만 그 다음은 화가 났다. ‘네놈’과 ‘감히’라는 말이 비
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장염이 분노하여 얼굴이 달아오르자 영화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장염이 모욕을 당하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사형이 화내는 것을 본 일
이 없는데 지금 무섭게 화를 내자 그만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사형, 어쩌면 그렇게 심한 말을…”
“사매. 너는 그만 큰 사형에게 가보거라.”
영화는 큰 사형이 자기를 부른 줄 알고 장염과 노호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자리
를 떠났다.
노호가 장염에게 바싹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속삭였다.
“차후에 다시 이와 같은 일이 있을시 네놈의 팔 다리 중 하나를 부러뜨릴 것이
다.”
장염이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노호의 손을 통해 내가 진력이 장염의 몸으로
쏟아졌다. 장염의 몸이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으음…”
장염의 입에서 신음이 터지자 노호가 얼른 손을 떼었다. 그리고 장염의 어깨를
두어 번 툭 툭 치더니 무당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노호가 사라지자 장염은 어깨가 끊어질 듯 한 통증을 느꼈다. 노호가 가볍게
어깨를 톡톡치는 시늉을 하며 내력으로 장염의 뼈를 상하게 한 것이었다. 내상을
입은 장염의 기혈이 무섭게 끓어올랐다.
“커헉…”
이윽고 장염이 입으로 한 사발의 피를 토하며 서서히 쓰러져갔다.
천지(天地)가 뒤바뀌었다고 느끼는 순간 장염은 진한 풀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꿈처럼 몽롱한 가운데 장소와 이삼인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진원청의 손이 다시 하늘과 땅을 가리켰다. 장염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소리
쳤다.
“스승님, 이제 더는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저를 그냥 죽여주십시오.”
진원청의 검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장염의 몸을 향해 하얀
빛 무리가 날아들었다.
“끄아아악…!”
장염이 눈을 뜨니 장소룡과 이무심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
다.
“끄응…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장염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장소룡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장염아, 나는 네 아버지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너를 무사히 장가촌으로 데리고
돌아가고 싶구나. 되도록 무당파 사람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행동은 하지
말거라.”
“…”
장염이 보니 장소룡이 묵던 천막 안에 자신이 누워 있었다. 장소룡과 이무심
은 특별히 더 할말이 없는지 묵묵히 장염의 상세를 만져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착잡한 표정으로 장삼을 바라보았다. 검은 피를 토하고, 맥이 고르지 못한 것이
내가중수법에 의해 내장이 상한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애써 밝은 표정으로
장삼의 등을 토닥여 주고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장소와 이삼인이 들어왔다.
“장소,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줘.”
“너는 이틀간 정신을 잃고 있었어. 무당파 사람들은 어제까지 함께 있다가 무
림대회를 준비해야 한다며 먼저 떠났고…”
장소의 말이 끝나자 이삼인이 이를 뿌드득 갈며 말했다.
“노호, 그 죽일 놈에 무공을 모르는 네게 상처를 입히다니. 무당파도 이제 한
물 갔구나. 그런 놈을 후기지수라고 내놓다니…”
“삼인아, 그래도 그중 두 사람은 장염을 돌보다가 가지 않았냐. 어쩌다가 그런
놈이 무당파에 기어 들어가서 물을 흐리는지…”
“장소… 나를 돌보다가 간 두 사람이 누군지 말해다오. 나중에라도 은혜를 갚
아야겠다.”
“너를 잘 따르던 영화소저와 금의를 입은 남자였어.”
“그렇군… 그녀와 첫째인 이청이 다녀갔군. 다른 사람은 정말 아무도 들리지
않았었냐?”
“사실… 도천 도사를 비롯해 무당파 사람들은 네가 노호에게 당한지도 몰라.
다들 쉬쉬했거든…”
장염은 일찌기 영화로부터 그들 무당 사검사의 이야기를 들은바가 있기에 단번
에 금의를 입은 남자가 첫째인 분광검 이청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은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다니…,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다.
‘나는 무당파에 무얼 기대 했던 것일까’
속으로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천 도사가 먼저 가게 되서 미안하다며… 앞으로 열흘 정도 더 가면 사천성
이라고 하더라. 사천에 가서 그 빌어먹을 놈의 면상을 한번 더 보고 기회가 닿는
다면 어떻게든 삼인과 내가… 꼭 빚을 갚아 주겠다.”
“…”
장염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친구들의 실력으로 복수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는 복수 같은 살벌한 말을 싫어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일주일이 꿈과 같았다. 대낮에 그처럼 정신이 맑아보기도 처음
이고, 누군가와 다정하게 자기 이야기를 해보기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제 행복
한 시간은 끝났고, 아마 다시 오기 힘들 것이다. 갑자기 삭신이 쑤셔 오며 정신
이 아득해져 갔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 7.가다보면알게된다(3) 관련자료:없음 [12561]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1-21 01:03 조회:4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