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14)
1장. 옹이가 많은 고목(古木)이 숲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사람들은 귀주성의 성도 귀양(歸陽)에서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검령산(黔靈山)을 꼽는다. 검령산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산의 입구에 자리한 무림삼장 중 하나인 비룡장 때문이다. 무림의
사람들은 검령산 하면 비룡장을 떠올렸고, 일반인들은 검령산의
수려한 풍광을 떠올렸다. 이래저래 검령산과 비룡장은 귀주성의
명물이었다.
명인(明因)은 검령산의 정상에서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비룡장
(飛龍莊)을 바라보았다. 비룡장의 전각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 흡
사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몸짓으로 건축되어 한눈에 보아도 비범했
다.
‘건물은 비룡금쇄진에 따라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언제 보아
도 진짜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모습이로구나.’
비룡금쇄진은 고금의 절진으로 기문진식(奇門陳式)에 밝은 비
룡장의 초대 장주가 창안한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 비룡금쇄진을
함부로 침입하려 든다면, 그는 온갖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원기를 상실하고 죽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강호의 사람들은 비
룡금쇄진을 두고 최고의 살인진법(殺人陳法)이라 칭하기를 주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문의 유명한 비룡금쇄진을 바라보는 명인의 얼굴은
결코 밝지 않았다.
‘흥! 사람들은 저 비룡장의 비룡금쇄진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
지만 나는 그 반대다. 얼마나 무공에 자신이 없었으면 자기 한 목
숨을 지키기 위해 저런 절진까지 설치해야 했단 말이냐!’
사실 저 비룡금쇄진을 드나드는 방법은 전통저긍로 가주에게만
비전(秘傳)되었다. 그러기에 비룡장의 사람들은 가주가 정한 날을
기다려 한차례씩 바깥 나들이를 해야 했다. 비룡금쇄진을 개방하
는 날이 지금에 와서는 귀주성의 명물이 되었지만, 매일 갇혀 지
내야 하는 비룡장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극에 이른 무공을 연마하여 천하를 굽어보고자 하는 명인에게
는 더욱 그랬다. 명인에게 저 비룡금쇄진은 나약함의 상징이며 비
룡장이 무림을 종횡하는 데 거치적거리는 것 중의 하나였다.
‘누군가가 쳐들어오면 맞아들여 죄를 물으면 될 일이지, 저렇게
까지 힘들게 집을 지킬 필요가 있나!’
비룡장의 소장주인 명인에게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그것은
바룡장을 무림에서 으뜸가는 장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야말
로 오늘날 자신을 지탱시켜 주는 단 하나의 힘이었다. 처음에는
귀주성이 목표였지만, 무공을 완성하면서 무림으로 바꾸었다. 게
다가 뒤늦게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자신이 터득한 무공이야말로
무림을 굽어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비룡장이 무림제일이 되면 동생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그 저주스러운 계약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이다. 무림제
일이라는 것은 명예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힘을 의미하기 때문이
다.
‘지금의 나에게 무림지존은 결코 허황된 망상이 아니다. 복마령
주, 네가 다시 나에게 찾아와 이러쿵저러쿵하는 그날, 너와 나의
질긴 악연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명인의 뇌리로 복면의 사내와 그가 장난처럼 흔들던 작은 깃발
이 하나 떠올랐다. 지난 십여 년 간 집요하게 자신의 인생에 어두
운 그림자를 드리우던 복마령주! 그는 자신에게 몇 가지 무공과
마경(魔莖)을 전해주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 한차례씩 요구 사항
을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가문의 어른이 정체를 숨기고 무공을 전수하는 것으
로 오해했다. 그러나 뛰어난 동생 탓에 생긴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에게 던져진 한 권의 마경으로 오해는 풀렸다.
가문에 저런 마경을 소유한 어른은 없었다. 또한 복면인이 가문의
어른이라면 차기 가주감인 자신에게 그처럼 극악한 마경을 전해
줄 리가 없다.
명인은 마경을 받고도 오랫동안 익히기를 주저했다.
그런 명인을 마공의 세계로 이끈 것은 전적으로 비룡장의 어른
들이었다. 비록 그들이 마공을 익히라고 직접 권유하지는 않았지
만, 그 당시 명인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들의 냉엄한 눈빛에
주눅이 든 명인은 스스로 마경을 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로 두 달이 지나지 않아 검 끝에 실린 괴이독랄한 공력으
로 동생을 꺽을 수 있었다. 동생은 자신의 살기 어린 검기에 놀라
승부를 포기하고 말았지만, 끝까지 싸웠어도 자신의 검을 당해내
진 못했을 것이다.
‘그 녀석, 점창파로 갔다고 했지, 잘 지내고 있는 걸까.’
동생이 떠난 뒤로 더 이상 마공을 익히려 하지 않았지만, 복마
령주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명인이 이제는 마공을 익히지 않겠다고 했을 때, 복마령주는 뱀
처럼 번들거리는 눈알로 쏘아보며 말했다.
“감히 나의 명령을 거역하려 드는 게냐? 네가 극성으로 익히지
않으면 나는 반드시 너의 집안을 멸문시키고 말 것이다.”
명인은 그의 소름 끼치는 눈빛을 외면하며 나직이 대답했다.
“당신이 나 하나를 죽일 수는 있겠지만, 집안을 멸문시키기는
힘들 것이오.”
“흥!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가 비룡금쇄진을 믿는 모양인데, 만
약 내가 너의 집안에 절세마경이 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녀도 비
룡금쇄진 이 깨어지지 않을 성싶으냐?”
“흥!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가 비룡금쇄진을 믿는 모양인데, 만
약 내가 너의 집안에 절세마경이 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녀도 비
룡금쇄진이 깨어지지 않을 성싶으냐?”
“당신이, 당신이 어찌…….이 마공은 누구도 익혀서는 안 된다
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
“명심해라. 나는 단지 마공의 끝을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다. 네
가 익히지 않는다 해도 나는 아쉬울 게 없다. 다른 사람에게 그것
을 주어서 다시 익히게 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대신 비룡장
은 이미 멸문을 당해 무림에서 맥이 끊어진 뒷일 것이다.”
결국 명인은 당해 복마령주라 자칭하는 복면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꿈틀거리던 본능
이 명인을 어둠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이미 마공은 꿈속
에서도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로 깊이 각인된 상태였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나자 명인도 흡혈을 시작했다. 비룡금쇄진은
한달에 한 차례씩 개방되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귀주성 곳곳에서
혈기(血氣)를 충당했다. 일 년 전 순양지체(純陽之體)인 소년을
만나지 않았다면, 귀주성은 여전히 한 달에 한 명씩 실종자를 내
야 했을 것이다. 백 년에 한 명 꼴로 태어난다는 소년의 피가 많
은 사람을 대신해 그의 화기(火氣)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려 주
었고, 그 덕에 명인은 흡혈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단계까
지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 조금 더 지나면 더 이상 흡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오행혈마신체(五行血魔神體)를 완성할수 있다.
명인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던
고사목(枯死木)이 부드럽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곧 불길에 휩싸여
갔다.
화르르륵!
‘오행혈마신체에 가까이 이를수록 다른 오행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누구이며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햇살이 제법 따갑게 내리쬐이고 있었지만, 명인은 결코 근처의
나무 그늘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에 드리워지는 그늘
이 싫었다. 어두운 그늘을 볼 때마다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자신
을 바라보는 장원 내의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눈은 아
직도 비룡장의 후계자는 마땅히 동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
했다. 명인은 ‘그들의 마음속에 남은 동생의 잔상을 모두 걷어내
기 전까지 결코 그늘 따위로 기어 들어가지 않으리라’고 거듭 다
짐했다. 나무 그늘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만은, 어차피 그들과 자신
의 삶 사이에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햇살 아래 우뚝 서 있는 것이 좋았다. 그
래서 명인은 아주 잠깐, ‘햇빛이 너무 좋아서 그늘이 싫어진 것인
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다. 어차피 어느 쪽 때문이든 이제는 관계
가 없지만 말이다.
명인은 그림자가 제법 길게 늘어지자 건조한 음성으로 중얼거
렸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로군.”
명인의 몸이 부드럽게 산 아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발은
풀잎 위를 스치듯 움직이고 있었는데, 흡사 체중이 없는 사람처럼
풀잎은 아주 조금만 허리를 숙였다.
저 멀리에 장을 보러 나갔던 사람들의 바쁜 몸놀림이 보였다.
물건을 잔뜩 이고 진 사람들의 얼굴은 조금씩 상기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한 달 만의 외출이라 흥에 겨웠던 모양이다.
무리를 인솔하여 다가오던 비룡장의 총관 천외비룡(天外飛龍)
마령(馬鈴)이 큰 소리로 외쳤다.
“소장주! 이번에도 무사히 볼일을 끝마쳤습니다.”
“알겠소. 입진(入陣)하도록 하겠으니, 조심해서 따라붙으라고
하시오.”
이미 일 년 전부터 비룡장의 장주(莊主)인 명오를 대신해 명인
이 진을 안내하고 있었다. 비룡장에서 비룡금쇄진을 안내한다는
것은 이미 실질적인 가주(家主)가 되었다는 뜻이다. 비록 정식으
로 후계자의 의식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에
게 명인은 장주와 같았다. 그러하기에 총관의 음성은 더욱 정중한
지도 몰랐다.
명인은 날짜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비룡금쇄진의 생문(生門)
을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천외비룡 마령은 듬직해 보이는 명인의 등에서 눈을 데지 않았
다.
‘대견한 노릇이다.’
십여 년 전가지만 해도 명인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하
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두 명의 소장주 중에 둘째의 자질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동생의 재
능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무섭게 돌변했다.
‘아마 귀주성에서 무림맹 행사가 열렸을 때부터인 것 같은데…
무림맹의 위용에 잠들어 있던 소가주의 웅심(雄心)을 일깨운 것
일까?’
앞서 가던 명인의 신형이 급격하게 좌측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
미 진에 들어선 지 이각(30분)이나 지났다. 여느 때 같으면 이미
생문에서 벗어나 비룡장의 안뜰이 보여지고 있어야 해다. 불안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장주를 믿고 있었다. 마령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중얼거렸다.
‘알아서 잘 인도해 주시겠지.’
마령이 기억하기로 십 년쯤 전에 귀주성에서 큰행사가 한 번
열렸다. 무더위와 가뭄이 사천성 전역을 쓸고 지나간 뒤였다. 설상
가상으로 때맞춰 창궐한 전염병으로 보정산의 무림 대회가 무산
되기 직전이었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장강(長江) 이남의 무
림인들이 강력하게 요구하여,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귀주성에서
무림 대회가 개최된 적이 있었다.
마령은 아직도 그날의 감동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귀주성 무
림인 중의 하나이다. 무림인으로 살아도 구대문파 제자들을 모두
구경할 수 있는 기회란 흔한 것이 아니다. 천하 무림 대회나 열려
야 산중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그희귀한 고수들을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천하 무림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 하남과 사천을 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행 경비도 만만치 않았을 뿐 아니라, 만사
를 제쳐 두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 일에 쫓아다닐 만큼 여유있
는 사람도 드물었다. 십여 년 전에 창궐한 사천성의 전염병이 아
니었다면, 자신도 한자리에 모여 있는 구대문파 고수들을 구경하
지 못했을 것이다.
끝없이 돌기만 할 것 같던 명인의 신형이 드디어 멈추어 섰다.
명인이 완전히 멈추자 그 뒤로 비룡자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걸
어나왔다. 이각이 지나서야 겨우 비룡금쇄진을 뚫고 장원으로 들
어온 것이다.
비룡장의 장주인 명오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조금 늦었구나. 하마터면 진식이 다시 변화를 일으킬
뻔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명인은 부친의 음성을 들으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간 진식에
진입(進入)해서 빠져나갈 때까지 이각 이상의 시간을 소요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들어왔다. 입진(入陣)한 뒤로 이각이 넘어가면
진식은 스스로 생문의 위치를 바꾸기 때문이다. 생문의 위치가 바
뀐다는 것은 큰 위험 앞에 식솔들을 방치하게 되는 것과 같았다.
구궁의 원리에 따라 변화하는 비룡금쇄진이라 다른 지점에 열린
생문의 방위까지 모두가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짧지 않은 시
간 동안 진식 안에서는 누구도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입진했을 때 약간의 시차가 생겨서 그만 생문의 위치가 진궁
(震宮:동쪽 방위)에서 손궁(巽宮:동남쪽방위)으로 변하고 말았습니
다. 다행히 대살(代殺)이 닥치기 전에 사람들을 이끌고 손궁으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숙여진 명인의 얼굴은 말과는 달리 그다지 급박해 보이지 않았
다.
그러나 장주인 명오의 가슴은 일순 멎는 듯했다. 분명히 시간에
따라 생문이 변화하는 비룡금쇄진을 수백 번이나 가르쳐 주었다.
시간에 맞춰 생문을 찾는 일이 중요한 것은, 그 때를 놓쳤을 경우
곧바로 생명을 앗아갈 만큼 진식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오늘 다행히 진궁과 손궁의 위치가 그다지 멀지 않아 대흉을
피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적에 가까운 일
이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도 생문이 그처럼 가까운 방위
에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휴우, 알겠다. 이만 들어가 쉬도록 해라.”
고개 숙여 인사를 여전히 어두웠다. 언제부터인가 명인이 무슨 생각
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명인이 저렇게 변
한 거은 둘째가 집을 나간 이후부터다.
‘명원이 가출을 한 것이…그처럼 상처가 되었단 말인가!’
동생의 가출 이후부터 왠지 어두운 분위기로 살아가는 명인이
다. 세월이 어느덧 십 년이나 흘렀건만 아직도 마음의 상처가 치
유되지 않은 것일까?
생사지경(生死之境)을 빠져나온 식솔들이 명오에게 허리를 숙
인 뒤 멀어져 갔다. 명오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행해 고개
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보니 어느 누구도 자신이 죽
음 지전까지 갔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듯했다.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자 명오의 얼굴에 떠오른 어색한 웃음도 사라졌다.
천사지인 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