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22)
5장. 무위(無爲)에 들려면 화동(和同)하라
헌원일광과 민소백의 약혼이 있던 날 밤이다.
장염이 방에서 쉬며 차(茶)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문밖에서 인기척을 냈다.
이미 찾아온 손님이 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장염은 즉시 밖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이 시간에 향 누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네에… 장 동생과 상의할 일이 있어요.”
장염이 향이를 자리로 안내한 뒤 찻잔을 내밀었다.
“아미파의 제자들이 어렵게 구했다면 가져다 준 것입니다.”
“뭔지 모르지만 향기가 좋군요.”
“그렇지요?”
향이는 말없이 오래도록 차를 마셨다.
마치 이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느긋하게 즐기는 듯했다.
“장 동생, 민 소저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향이가 다시 한 모금의 차를 입 안에 머금었다.
첫 맛은 씁쓰름 했지만 목구멍을 넘어간 뒤에도 향긋한 향기가 입 안에
오래 남았다.
향이는 그것이 마치 장염과의 만남과 같다고 생각했다.
의혈단에서 다소 초라하게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그 뒤로는 정말 꿈속 같이
행복했다.
“후우, 민 소저가 부럽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사는 법이
있답니다.”
“누님도 머지않아 좋은 배필을 만나실 겁니다.”
“그래요…”
향이는 다시 찻잔을 손에 들어 올렸다.
이미 거의 다 마시고 바닥에 조금 고인 찻물과 찻잔은 차가웠다.
향이는 자기 마음도 빨리 찻잔처럼 서늘하게 식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장염을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향이는 더욱 뜸을 들이고 있었다.
“전에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탄식했어요. 의혈단의 주방에서 잔 일을 거들
때 많은 젊은 무사들이 제게 다가왔었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내
신분이 천함을 알고는 곁에서 떠나갔지요. 한 사람이 떠나갈 때마다 내
마음은 한 차례씩 죽어갔답니다.”
마침내 잔을 비운 향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서늘한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러다가 장 동생을 만났어요. 나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장 동생에게
매달렸는지도 몰라요. 그때는 정말… 무공을 배우면 모두 보상받게 될
줄 알았어요.”
“누님은 잘 해내실 겁니다.”
“그래요, 그런데… 해도해도 안 되는 게 있어요.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
인가 봐요. 장 동생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는데 아직도
바라는 게 너무 많아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향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천히 대답했다.
“장 동생은 아마… 나를 돕지 못할 거예요.”
“왜요?”
“내가 장 동생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 참 나쁜 여자죠? 화매(花妹)
도 없는데 장 동생에게 찾아와 이런 말이나 하고 있다니…”
“…”
장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향이 누이의 마음을 전혀 몰랐다면 거짓일 게다.
그러나 언젠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히 극복될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피를 나눈 친누이처럼 모시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동안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있었다
장염이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여린 향이 누이가 대범하게 행동하고 있다.
향이 누이의 성격이라면 이미 떠날 준비를 끝냈을 것이다.
그 고통스러운 노력들이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날이 밝는 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겠어요. 저승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들을
위해 사당도 짓고… 열심히 살아갈 생각이에요.”
“…”
“나중에 장 동생보다 더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게 되면… 그때 화매와
장 동생을 초대하겠어요.”
“…”
아무리 궁금해도 수계현으로 찾아오지 말라는 소리다.
장염이 향이의 뒷모습을 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안타깝지만 그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일지도 모른다.
줄곧 창밖만 바라보던 향이가 마침내 장염을 향해 돌아섰다.
어느새 향이의 볼 위로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장 동생의 호의를… 평생 잊지 않겠어요. 부디 보중(保重)하세요.”
“…”
말을 마친 향이는 아주 천천히 장염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간의 돌봐줌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그러나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가 없다.
향이의 어깨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장염은 자상한 스승이자 마음 편한 동생,
그리고 이해심 많은 연인이었다.
투두둑. 툭. 툭.
방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 소리가 장염의 귀에 천둥처럼 울렸다.
향이 누이가 얼굴을 숙이고 소리없이 울고 있는 것이리라.
장염은 떨고 있는 향이의 가녀린 어깨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뿐, 장염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님,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향이는 얼굴을 들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그대로 걸어나갔다.
향이가 떠나간 자리 위로 소슬한 바람이 불어왔다.
장염은 향이가 서 있던 자리에 고여 있는 눈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
떠나간 향이 누이를 생각하니 한없는 슬픔으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퍼하라!’
지금까지는 무엇이든 애써 누르거나 가두지 않은 것으로 내공을 수련해
왔다.
그러나 향이 누이가 떠나간 자리는 예상외로 커서 좀처럼 수습되지 않았다.
깊고 어두운 허탈감에 사로잡힌 장염은 거듭 탄식했다.
떨쳐 내려 할수록 향이 누이를 향한 연민의 정이 가슴 밑바닥에서 계속
해서 치고 올라왔다.
‘아아! 대체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험난한 강호에서 지켜주려 애썼지만 장가촌 사람들은 비참하게 이승을
떠났다.
어디 그뿐인가!
오행혈마인을 막으려 동분서주(東奔西走) 했지만 단 한 사람도 저지하지
못했다.
‘망자(亡者)의 산(山)’ 에서 보낸 삼 년 동안에도 세상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여전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자신이 있든 없든 여일(如一)한 모습으로 세상은 존재했던 것이다.
‘나의 분주함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 나는 그토록 추구하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알고는 있는 것인가!’
지금도 자신은 향이 누이의 등을 떠밀듯이 보내고 있다.
대체 무엇이 자연의 이치이며 무위자연이란 말인가!
한동안 번민하던 장염은 문득 허탈함 속에 도사리고 있는 자신의 정염(情炎)
을 발견하게 되었다.
‘헛! 이것이야말로 심마(心魔)인가…’
망자의 산에서 잃어버린 것은 삼 년 간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스승 진원청이 심어준 무위자연에 대한 믿음도 역사 앞에서 느끼게 되는
허허로움 속에 퇴색해 버리고 만 것이다.
무위자연이 병들면 무위도식(無爲徒食)이 된다.
그것은 마치 허허로움과 허탈감으 차이처럼 비슷하지만 끝이 전혀 다르다.
무위자연으로는 역사를 초월할 수 있지만,
무위도식으로는 병든 인간의 역사 속에 휩쓸려 정염을 탐미하게 될 뿐이다.
‘무위를 위해서는 화동(和同)해야 한다. 경천일기공은 빛을 부드럽게 하고
먼지와 하나가 되라(화기광 동기진, 和其光 同其塵)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라는 말이 아니라 무위(無爲, 하지 않음)
함으로 자연 속으로는 녹아들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장염에게는 화(和)와 동(同)으로 무위하려는 것을 가로막는
정해(情海)가 있다.
그 정(情)의 바다는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미친 영향이 없다’ 는 허무를
기반으로 장염의 자아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날이 밝아왔지만 장염은 객실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밤새 번민했지만 정해 때문에 자연과 화동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향이 누이를 곁에 둔다는 것은 지금까지 지켜왔던
자연의 이치와 무위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다.
새벽 무렵에 장염은 생각을 비우고 앉아 있다가 깜박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장염은 수계현의 겨울 강변에 서 있었다.
폐가(廢家)가 보이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려는 향이 누이가 보였다.
안타까움에 손을 내밀어 보았지만 닿지를 않았다.
그 순간 자기 대신에 내밀어지는 낯익은 손을 보았다.
“향이 누님…”
선잠에서 깬 장염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손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지금까지는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꿈속에서 향이는 그 손을 잡아주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장염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리석구나… 내가 없는 동안에도 세상이 여일하게 돌아갔다고 허탈해
하면서, 어찌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불안해했더란 말인가!’
정해(情海)이든 정염(情炎)이든 모두가 눈속임에 불과했다.
무위자연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시시때때로 장염의 의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장염은 이미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 순간 즉시 허물어지고 마는 나약한
자기를 발견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하하! 정녕 무위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완성하겠다고 버둥
거렸으니 그것이야말로 무위를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욕심없이
죽는 그날까지 무위자연을 꿈꾸며 살아가겠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떠나간 향이 누이에게도 새로운 만남과 또 다른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어느덧 해가 머리 위까지 떠올라
있다.
장염이 밝은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기지개를 켜는데 뒤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오래전부터 객실에 묵고 있는 화산파의 장문인 상유천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덕분에 잘 지내고 있소. 그런데 장 소협 소식은 들으셨소?”
“무슨 소식 말씀입니까?”
“낙양의 천하제일가가 멸문의 화를 입었다오.”
장염이 깜짝 놀란 얼구로 상유천을 바라보았다.
대체 누가 감히 경재학의 본가를 괴멸시킬 수 있단 말인가!
“언제 그런 일이…”
“나도 오늘에야 들었는데 벌써 며칠 되었다고 하오. 맹주는 다음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합디다.”
“다음이라뇨?”
“흉수가 노리는 것이 맹주인지 정주의 천하제일가인지 알지 못하니 하는
말이오. 만약 둘 다라고 하더라도 어디부터 찾아갈지 의문이고…”
대충 사정을 짐작한 장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남성 인근에서 장경선을 본 사람들이 있다고 했으니 십중팔구 그가
관련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왜 장경선이 경재학과 천하제일가를 노리고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장경선은 한때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다니기도 했다
‘대체 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다닐까?’
물론 과거에 제갈위기도 자기의 목숨을 노렸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사천혈사(四川血史)의 목격자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장경선의 행동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과거에 자기의 목숨을 노리던 것이니 지금 천하제일가를 몰락시키려고
하는 일 모두 말이다.
“그는 아마도… 섬전수 장경선일 겁니다.”
“장경선이 대대로 천하제일가의 사람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오. 단지
알지 못하는 것은 그가 왜 경재학과 천하제일가를 노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오.”
“만약 그가 장경선이라면 조만간 장소도 하남성에 나타날 것입니다. 아무
래도 저는 사천에 오래 머무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무림맹의 사람들이 장경선과 장소의 행방을 쫓고 있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오.”
“그래야지요. 장경선의 다음 목표가 어디인지만 분명히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무림맹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경재학이 버티고
있으니 그것도 쉽지 않다.
뻔뻔하고 교활한 경재학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장염에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장염이 사천제일루를 떠나야 할 시기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며칠 후 무림맹에서 나왔다는 상비검(常備劍) 벽남천(壁南天)이 사천제일루
를 방문했던 것이다.
그는 장염에게 장경선이 하남성에 나타났으며 낙양의 천하제일가를 폐허로
만들었다고 했다.
“장경선은 정주로 가는 길에 또다시 사라졌다고 합니다. 밀정들의 보고에
의하면 마교 교주도 정주로 떠났다고 합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정주에는
천하제일가의 본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벽남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염이 조용히 되물었다.
“기다리던 소식임에는 틀림이 없군요. 그런데 장경선이 왜 천하제일가
전체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까?”
“선대(先代)의 은원(恩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고 있습니다. 천하제일가의 내부 문제인지라…”
마침내 장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이나 내일쯤은 하남으로 떠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목적지가 정해졌으니 즉시 떠나겠습니다.”
“맹주께서 장 대협에게 거시는 기대가 크십니다.”
“나는 그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냉정하게 말을 끊은 장염이 벽남천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볼일을 다 봤으면 이제 그만 나가달라는 의미다.
벽남천이 씁쓰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쪼록 장경선의 악행(惡行)이 정주에서 끝나기를 바랍니다.”
“…”
장염이 대답하지 않자 벽남천은 허리를 숙여 보인 후 객실에서 떠나갔다.
벽남천이 떠난 직후 장염은 사천제일루에 남아 있는 지인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오늘 무림맹에서 손님이 왔다가 갔습니다.”
무리 중에 앉아 있던 하후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디어 섬전수 장경선이 목표로 하는 것을 알아냈나 보군요.”
“…”
장염이 하후연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후연과 지염도는 아직도 향이 누이가 갑자기 떠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만약 향이 누이가 강호를 유랑하려 했다면 저들도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향이 누이는 이제 그만 귀향하려 한다고 했고,
그들에게 강호(江湖)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강호가 사람을 만나고 다시 이별하게 만든 셈이다.
잠시 다른 생각에 잠겨 있던 장염의 눈에서 신광이 번득였다.
떠난 사람에게는 떠난 이유가 있듯이 남은 자들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렇습니다. 그는 천하제일가와 원한이 있다고 합니다.”
화산파 장문인 상유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짐작하신 대로 정주의 천하제일가라고 합니다.”
장염과 상유천을 바라보던 서검자가 미심쩍은 듯 말했다.
“너무 시기가 맞아떨어지니…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맹주가
관계된 일치고는 너무 단순한 게 흠이라면 흠이야.”
“허허헛! 사부님, 아무렴 맹주께서 자기와 집안이 관련된 일인데 손해 볼
일을 하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서검자가 동감이라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자기의 생명을 담보로 모험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기의 생명과 가문의 존망(存亡)이 달린 일이니 경재학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제가 하남으로 가야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으니 지금 즉시 떠나겠습니다.
장경선과 장소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들이니… 지금부터는 저
혼자서 처리하겠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칠대문파와 사파의 고수들이 무림공적인 장경선과 장소를
잡겠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모두가 정사연합(正邪聯合)의 무림공적 선포와 지나치게 높게 걸린 현상금
때문인데, 그 바람에 애매한 희생자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그러나 만약 진짜 장경선이나 장소를 만난 사람들이 있었다면 모두가 몰살
당했을 것이다.
그동안 ‘경재학이라면 오행혈마인의 공포를 알 터인데 왜 그랬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천만다행으로 지금까지는 그들의 은신처가 노촐되지 않아 대규모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장소는 마교가 뒤에 있으니 사람들이 알아서 피했다.
그에 비해 장경선은 홀몸으로 그에게는 아무런 배경이 없다.
또다시 많은 무림인이 그에게 따라붙을 것이다.
장염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장소와 장경선의 위험을 알아주기를
바랬다.
장염의 염려를 눈치 챈 사람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장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니 속히 서둘러야 했다.
“스승님, 저는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합니까?”
“네가 원한다면 함께 가자꾸나.”
의기소침해 있던 소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어이구, 가야지요! 스승님과 삼 년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또 혼자 가시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그렇다면 서둘러 채비를 하거라.”
“예!”
소걸이 기운차게 대답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 지긋지긋한 객점에서 해방되는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이제 스승이 돌아왔으니 무조건 따라 나가야 한다.
재수없이 몇 해 더 잡혀 있게 된다면 진짜 완벽한 최악의 점소이가 되고
말 것이다.
***
장염이 사천(四川)을 떠날 무렵,
난주(蘭州)의 천마방에 있던 장소도 낙양으로 출발했다.
무림맹에 파견한 수하가 ‘장경선은 무림맹의 경재학을 노리고 있다’ 는
소식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낙양에 도착한 장소는 가장 먼저 장경선이 쓸고 지나갔다는
천하제일가를 구경했다.
“크크크! 경재학이 섬전수 장경선에게 어지간히 밉보였던 모양이로군.”
주변을 둘러보고 온 이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기둥 하나 온전히 서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의 생존
자도 없었다고 하니… 장경선도 보통 잔인한 놈이 아닌 듯합니다.”
“푸훗! 그렇겠지… 너는 사람의 심장을 먹어본 적이 있느냐?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거든. 크크!”
“…”
이면수가 황송하다는 듯 허리를 조아렸다.
“그나저나 어찌 부상자도 하나 없었을까?”
“돌아다니며 일일이 머리통을 부순 듯 합니다.”
“대단한 놈이로군…”
뒤에서 듣고 있던 검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섬전수 장경선이 평소 잔인한 사람이라고는 알려져 있지 않았으니…
그만큼 경재학에 대한 원한이 깊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장소가 피식 웃으며 검귀를 바라보았다.
“원한이라… 웃기는 소리들이지. 그러나 세상에 원한은 없다. 그저 강자와
약자가 있을 뿐…”
이면수와 함께 서 있던 순찰영주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님 말씀이 옳습니다. 천하제일가가 강했으면 오늘과 같은 멸문도
없었을 겁니다.”
“크하하핫! 아직도 쥐새끼처럼 숨어 다니는 삼마(三魔)를 보아라. 놈들이
강했다면 내가 다시 마교의 주인이 되었겠느냐? 나는 그 쥐새끼들에게
원한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내 자리를 탐낸 놈들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그나저나 그놈들도 하남으로 기어 들어왔다지?”
순찰영주가 즉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놈들은 감히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노리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장경선을 만나는 날 쥐덫이라도 놓아야겠구나. 크하하핫!”
요즘은 장경선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는 천하를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장경선만 손에 넣게 된다면… 장염도 두렵지 않다.’
지난 삼 년 간 있지도 않은 장염의 눈치를 살피며 장경선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드넓은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장경선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웃고 있던 장소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괜히 들떠서 돌아다니다가 장경선이 자신을 먼저 알아본다면 모든 일은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장원으로 돌아간다.”
“존명!”
사방 가득 들어차 있던 마교 고수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인적이 끊긴 폐허 위로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
사천제일루를 떠나면서부터 소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소걸의 침묵을 본 적이 없던 장염은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먼저 묻지
않았다.
사람은 결국 본성을 따라 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흘째 되던 날 마침내 소걸의 입에서 침이 튀기 시작했다.
“도저히 못 참겠다! 스승님! 제자는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이 있네요.”
“말해 보거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소걸은 몇 번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평생 쉬지 않고 무공을 익혀온 제가 점소이의 주먹에 맞았습니다.”
평생 쉬지 않고 무공을 익혔다고 말할 때는 마음에 걸리는 바도 적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소걸이 장염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스승님, 그런데라뇨? 제자가 피하지도 못하고 맞았다니까요!”
“그래, 아프더냐?”
“아픈 게 문제가 아니지요. 만약 그게 주먹이 아니라 칼이나 도끼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끔찍했겠어요? 그런데 그걸 제가 피하지 못한
거예요.”
“네 말을 듣고 보니 주먹이라 참 다행이로구나.”
소걸이 장염을 노려보았다.
원하는 대답은 ‘주먹이라 다행이다’ 가 아니라 그 주먹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다.
“무공을 익히면 하늘을 훨훨 날고, 손에서 바람이 나가며, 눈을 감고도
바늘 같은 암기를 피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저는 왜 무공도 익히지 못한 홍칠의 주먹을 피하지 못했을까요?”
“맞아서 아픈 거냐? 피하지 못해 마음이 상한 거냐?”
“마음이 상한 거죠.”
“언제 맞았더냐?”
“스승님이 돌아오시던 날이요.”
“그렇다면 너는 지금까지 무공을 아주 잘못 익힌 것이로구나.”
“…”
소걸이 실망과 기대가 섞인 눈으로 장염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스승이 쓸만한 무공을 하나쯤 전수해 줄짖도 모른다.
꿀꺽.
소걸은 마른침을 목울대로 넘기며 스승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앞으로는 몸이 조금 아프고 마음은 개운한 그런 무공을 익혀야겠다.
맞아 봐야 하루면 나을 것인데, 너는 자그마치 한 달 보름이나 앓고
있지 않느냐?”
“헉!”
소걸이 놀라거나 말거나 장염의 말은 계속됐다.
“하루를 앓는 것이 나으냐, 한 달을 앓는 것이 나으냐?”
“하루요…”
“그렇다면 앞으로는 무조건 몸이 아픈 쪽을 택하거라.”
“저기… 스승님, 마음과 더불어 몸도 아프지 않게 하는 무공은 없나요?”
“세상의 이치란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잃게 되어 있다.”
말을 하는 장염의 얼굴이 너무 슬퍼 보여서 소걸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맞아도 아프지 않을 상대에게는 그냥 맞아주겠다고 작정을 해라. 그러면
몸도 아프지 않고 마음도 편할 게다.”
“아플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요?”
“당연히…”
소걸이 장염의 옆얼굴을 힐끔 바라보았다.
“달아나야지.”
“키킥, 스승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다니까요.”
“이번에는 네 마음에 드는 말이었나 보구나.”
“우헤헤, 제자가 처음으로 익힌 수법이 바로 달음박질입니다.”
“장하구나.”
스승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농담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후우, 그래도 피하지 못하고 맞는 건 정말 싫어요.”
“그렇게 조바심을 내니 오늘 네가 모르고 있는 것을 가르쳐 주마. 네가
홍칠에게 맞은 이유는 너보다 네 몸이 더 정직하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자기는 두들겨 맞기 싫다는데 몸이 더 정직해서 그렇다니!
“스승님, 조금 더 자세히 가르쳐 주세요.”
“하하하! 너의 몸은 상대가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피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게으른 네 몸이 피하지 않은 게지.”
“에이… 설마…”
“이 녀석! 몇 년 간 곁에 두지 않았다고 벌써 스승의 말을 의심하는 거냐?”
소걸은 대답 대신 헤벌쭉 웃고 말았다.
장염 스승의 말이라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간 익힌 공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기쁨을 감출 수가 없다.
진작 알았다면 지난 한 달 간 속으로 끙끙 앓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헤헤헷!”
소걸의 맑은 웃음이 한낮의 관도 위로 울려 퍼졌다.
마주 오던 몇 사람이 미친 사람처럼 계속 웃어대는 소걸을 이상한 눈으로
힐끔거렸다.
그래도 소걸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소걸이 자그마치 한 달 보름이나 참아두었던 웃음이기 때문이다.
***
한편 무림맹은 또다시 시작된 살인 사건으로 발칵 뒤집혀 있었다.
몇 년 전에도 제갈위기에 의해 많은 무림인들이 죽임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무림인들에게 천만다행이랄까?
이번에는 단지 무림맹에 들어와 있던 천하제일가 출신의 사람들만 죽어
갔다는 것이다.
이미 경재학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총관 산전수전 목불인도 죽었다.
경재학의 재임 기간에 두 명의 총관이 살해된 셈이다.
더 이상 맹주는 새로운 총관을 선임하지 않았다.
하루에 한두 명씩 죽어 나가니 무림맹의 운영에 신경 쓸 틈이 없다.
요즘 경재학은 매일 아침마다 ‘지난 밤에는 누가 죽었을까?’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이른 아침부터 경재학의 숙소를 찾아온 철권(鐵拳) 우장한(宇壯漢)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맹주님, 어젯밤 내전 경비르 담당했던 무사 둘이 또 죽었습니다. 그들도…
본가 출신의 사람들입니다.”
경재학이 장탄식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무림맹에 들어와 있던 천하제일가의 사람들은 둘만 남기고 다 죽은
셈이다.
“그래, 너와 나만 남았구나. 이제 놈이 원하는 바를 알겠다. 나에게 피가
마르는 고통을 주고 싶은 모양인데… 그러기에는 시운(時運)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
우장한은 맹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사(生死)가 오락가락하는 이 급박한 시기에 무슨 놈의 시운이란 말인가?’
맹주는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앞에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수들의 말과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
“밖으로는 쉬쉬하고 있지만 흉수에 대해서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어떤 이는
장경선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제갈위기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고도
합니다.”
이 두 사람 모두 맹주가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자들이다.
우장한은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경재학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자기가 장소를 불러들여 오행혈마인을 완성하려 한다는 것은 비비재단의
수하들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아직도 제갈위기라니… 미련한 것들… 꼭 자기들의 눈으로 죽은
걸 봐야 믿는 놈들이 있다니까.”
물론 자신에게는 잘된 일이기도 하다.
헛소문이 무성할수록 자신의 의도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주로 가는 장염이 장경선의 소문을 듣게 된다면 일이 또 꼬이게 된다.
“그만 돌아가 보거라. 조심하고…”
말로는 조심하라고 했지만 경재학은 우장한이 오늘 밤에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장한의 죽음은 장경선이 언제 자기를 찾아올지 알려주는 지표(指標)
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원하던 대답을 듣지 못한 우장한이 울적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경재학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독하게 마음을 먹으려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쨌든 저들은 모두 자신과 한솥밥을 먹어온 식구들이었다.
“들었느냐? 제갈위기만으로는 안 된다. 선대와 원한을 맺은 몽고족이나
혈마사의 잔당이 천하제일가에 복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라.”
경재학의 머리 위쪽 천장 속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천산(天山)의 이매(夷昧)에게 마경을 회수하라 이르고, 모든 수단을 동원
하여 정주(鄭州)의 장염이 무림맹으로 오지 못하게 하라.”
“언제까지… 그를 막아야 합니까?”
오늘날 누가 감히 장천사 장염의 앞길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천장 속의 인물도 바로 그 점을 염려하고 있는 듯하다.
경재학은 주저하는 듯한 수하의 말을 듣고도 그다지 노여워하지 않았다.
장염은 자신이 덤벼들어도 어쩌지 못할 상대였다.
“장소와 장경선이 만날 때까지만이라도… 눈에 띄지 않게 그의 발걸음을
잡아두어라.”
장염의 직접적인 부딪침은 피해야 한다.
수하들이 섣불리 설쳐댔다가는 괜한 의심만 받게 될 것이다.
경재학이 비비재단의 수하에게 지시를 내리는 동안 철권 우장한은 사신
(死神)과 대면하고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니 경재학의 추측보다 다소 빠른 시간이다.
“너, 너는… 섬전수가 아니냐?”
우장한은 장경선이 홀연히 나타나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나, 나는… 천하제일가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나도 그렇다.”
“왜… 나 같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건가?”
“주인을 잘못 만난 죄라고 생각해라.”
“…”
우장한이 번개처럼 오른손을 품 안으로 넣었다가 꺼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무림맹에서 제작한 오색비연무(五色飛煙茂)였다.
며칠 전 천하제일가의 사람들에게 하나씩 지급된 것인데,
지금은 이것만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손끝이라도 움직이면 죽는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없어서 터뜨리지 못한
줄 아느냐?”
우장한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죽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오색비연무를 움켜쥐고 있었다.
섬전수라는 장경선이 터뜨릴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외는 있지… 네가 마지막 손님이로구나… 오늘은 맹주를 불러야
겠으니 마음대로 해봐라.”
우장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색비연무를 허공으로 던졌다.
펑!
무림맹 창설 이후 내전 한복판에서 처음으로 오색비연무가 터졌다.
“…”
잠시 후 사방에서 요란한 종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무림맹의 고수들이
병장기를 말아 쥐고 몰려들었다.
“와아아!”
그러나 장경선은 무림고수들이 사방을 에워싸도 태연했다.
“대충 다 모인 게냐?”
“네가 아무리 오행혈마인이라 해도 오늘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 죽어가던 우장한의 목소리에도 어느덧 힘이 실렸다.
피식 웃으며 가만히 듣고 있던 장경선이 돌연 소리를 질렀다.
“경재학, 보아라! 이제는 네놈의 차례다.”
장경선의 손이 번개처럼 우장한에게 뻗어갔다.
섬전수라는 별호가 실감나는 한 수였다.
우장한이 즉시 주먹을 말아 쥐고 막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콰직!
우장한의 양쪽 손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크윽!”
장경선은 우장한의 목줄기를 움켜쥐고,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눈 깜빡할 순간, 우장한의 몸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우장한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백여 명이나 되는 무림고수들이 둘러서 있었지만 감히 장경선을 막지
못했다.
털썩!
가죽과 뼈만 남은 우장한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살고 싶은 자는 물러서라. 나는 경재학의 목숨에만 관심이 있다.”
다음 순간 장경선의 주변으로 기(氣)의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장경선의 기도에 눌린 무림인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장경선이 정면으로 몇 걸음 내딛는 순간이다.
무림인들의 뒤편에서 한 자루 검이 쾌속하게 날아왔다.
츠츠츳!
장경선은 검세가 보통이 아님을 직감하고 좌측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검은 눈이라도 달린 듯 방향을 틀어 장경선에게로 날아갔다.
“이기어검이다!”
지켜보던 무림인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무림에서 이기어검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불사신검 경재학 뿐이다.
물러서던 무림인들이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맹주가 나타났으니 어정쩡하게 몸을 사려서는 안 될 것이다.
장경선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간만의 차이로 검(劍)은 장경선의 발 밑을 스쳐 지나갔다.
츠츠츠츳!
장경선을 지나 오 장쯤 날아가던 검이 공중에서 반원을 그리며 돌아오기
시작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장경선이 돌연 고함을 버럭 질렀다.
“이 비겁한 놈아! 수하들의 뒤에 숨어서 장난질이나 치겠다는 거냐!”
장경선이 두 손으로 연거푸 장력을 날렸다.
펑! 펑!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검과 장풍이 마주치자 경력이 사방으로 휘몰아쳐
갔다.
“크으윽!”
내공이 약한 사람들은 머리를 짓누르는 힘에 밀려 그대로 주저앉거나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검 한 자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불사신검 경재학이 아직 땅에 떨어뜨려 본 적도 없다는 지존검(至尊劍)
이었다.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장경선이 한쪽 발로 지존검을 지그시 밟고
굉소(轟笑)를 터뜨렸다.
“푸하하핫! 이것은 그 유명한 지존검이 아니냐!”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