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5)
8. 하늘이 정한대로 간다.(3)
금거산 일행이 완전히 사라지자 장가촌 일행은 길에서 벗어나는지도 모르고 아
무대로나 걷기 시작했다.
“이형, 팔은 좀 어떠시오?”
장소룡이 이무심의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견딜만 하오. 장형.”
모진 일을 겪은 탓인지 두 사람은 더 친밀감을 느꼈다. 장가촌에서는 서로 거
들먹거리며 대협이라고 불렀지만 강호에 나오니 그간의 모든 일들이 덧없이 여겨
졌다. 그나마 서로의 처지가 비슷하니 그런대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
다.
“장형, 나는 지난 한달 간의 강호행을 통해 배운게 많다오.”
“…”
이무심이 침울한 표정으로 뒤따르는 아들 무쌍을 힐끔 바라보고 계속 말했다.
“우리는 어쩌면 강호에 맞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오. 장형은 아니라고 생각하
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소. 강호는 우리 장가촌과 달리 인정도 의리도 법도
없는 곳 같소. 장가촌에서야 그럭저럭 살수 있겠지만 강호는 정말 나에게는 어울
리지 않는 곳이오. 나는 무림대회를 끝으로 다시는 강호에 나오지 않겠소.”
“이형… ”
자신이라고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장소룡은 이무심의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원무도장과 천무도장이 장가촌 일대에서는 최고의 무가
였지만 강호에 나와보니 시정 잡배들과의 싸움에서나 유용할 수준이었다. 장소룡
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과 제자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강호행은 그들 뿐 아니라 장소와 이삼인에게도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들은 이
제 사부와 자신들의 무공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사부를 떠날
수는 없었다. 의리도 의리지만 천하에 누가 자기들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제자로 받아 주겠는가? 사람일은 모르니 어쩌면 그들은 운좋게 표사가 될 수 있
을지도 몰랐다. 설령 표사가 되지 못한다 해도 장가촌 주변의 이씨, 표씨, 초씨
마을에는 도장이 없으니 아직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장소룡과 이무심의
제자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지는가 싶더니 어느 한순간 완전히 멈춰 버리고 말았
다. 길이 끝난 것도 아니고 누가 서라고 해서도 아니다. 그냥 목적도 없고 맥도
없이 터덜터덜 걷던 발걸음이었으니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일행이 멈춰서
자 그제서야 장소룡이 몸을 돌려 한마디 던졌다.
“그래, 모두 잠시 쉬도록 하자. 이 사부의 몸도 불편하시니 말썽 일으킬 일은
아예 하지도 말고…”
장소룡이 너는 특별히 더 주의하라는 듯 장소를 쳐다보았다.
“예…”
제자들이 풀죽은 소리로 대답하고 나무 그늘로 찾아 들었다. 장염도 장소와 이
삼인과 함께 근처의 커다란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입이 아파도 말을 아끼지 않
는 장소가 입을 열었다.
“휴우… 강호란 정말 넓고 위험한 곳이구나… 삼인아 우리가 정말 강호에서
출세할 수 있을까?”
“글세, 조상님이 돌봐 주신다면…”
장염은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며 땅바닥에 누웠다. 청명한 하늘에는 양떼구
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구름은 만나서 뭉치는가 싶더니 다시
흩어졌다. 사람들은 왜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일까? 장염은 이무심과 장소룡
일행에게 무공을 가르쳐 자신의 권리를 지키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면 자신의 무공을 전수 받은 이들도 강호의 생리상 언젠가 타인을 억압하
게 될지 모른다. 장염은 왜 스승이 백 이십 세가 될 때까지 제자를 정하지 못하
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히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을 도와주기 위해서인데, 그가 지금
까지 본 무림인은 모두 남을 업신여기고 생명을 하찮케 여겼다. 마도인 뿐만 아
니라 정도를 걷는 사람들조차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장염은 결국 자기의 무공을 조금만 이들에게 전수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일행을 방치해 두기에는 장가촌 사람들이 당한 수치와 모멸
이 너무 컸다. 그러나 비단 체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가촌 사람들이 강호를 떠
돌아다니다가 죽임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들이 무
공을 익혀 올바른 길을 가준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국 하늘이 정한 이치대로 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행한 대로 그 보응을 받을 것이다. 하늘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라도 반
드시 바른 도리를 지키게 하겠다고 거듭 맹세한 후에야 장염은 자리에서 일어났
다.
장염은 이무심과 장소룡이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장염이 다가가자 이무
심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자신들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
것이냐? 는 듯한 얼굴이었다.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장염은 간략하게 자기가 무당파의 어느 기인에게 약간의 재간을 사사
받았었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몸이 허약해 자신은 익힐 수가 없어 무용지물이니
두 분이 제자들과 함께 이 재간을 익혀 보시는 것이 어떻겠는냐 라는 말을 끝으
로 입을 꾹 다물었다.
“…”
“…”
이무심과 장소룡은 처음에는 이게 왠 헛수작이냐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무당파
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리고 어떤 떠돌이 약장사의 차력 같은 잡기술이
아니라 무당파의 노기인이 전수해준 재간이라는 말에 거부할 수 없는 강한 유혹
을 느꼈다. 잠시 후 그들은 장염은 믿을 수 없지만 무당파는 믿을 수 있다고 결
론 내리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변변치 않은 헛수작으
로 어른을 놀린 것이라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장염은 두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서 무극일원심법의 삼백육십오개 법문중 전반
백 이십글자의 법문을 알려 주었다. 무극일원심법은 원래 내공요결인 전반부 백
이십 자와 치상요결인 중반부 백 이십자 그리고 선천지공을 위한 후반부 백 이십
오자의 법문으로 되어 있었다. 장염은 그중 내공요결을 모두 가르쳐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간 무당파의 태극검과 양의검을 수련하다가 결합시킨 태극양의
검과 마교의 천마파천권을 가르쳐 주었다. 아무래도 무당파의 무공은 가르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무심과 장소룡은 장염의 가르침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장염의 가르침이 너무 자세하고 완벽해서 무학의 일대 종
사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장염은 그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내력이
없는 비실비실한 몸으로 무공을 일일이 시연해 보이고 그들이 어느 정도 이해했
다고 생각하자 가르침을 끝냈다.
“후… 이제 두 분이 수련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전수해 주시면 훗날 큰 어려움
은 없을 것입니다.”
장염이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무심과 장소룡은 경악과 감동으로 장염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도 비록
변변치 않은 실력이지만 어려서부터 무가에서 자라나 지금 장염이 가르쳐준 내
용이 얼마나 극상승의 무공인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무공은 배우기도 어렵지만
누군가에게 전수해 주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이 하찮케
여기던 장염에게서 그것을 배운 것이다.
“장소협… 감사하오…”
이무심이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장염에게 인사를 했다. 아까 손목이 잘린 것
이 이런 큰 복을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 옆에서 장
소룡도 포권한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장염에게 인사를 했다.
“장소협… 이 은혜 잊지 않겠소. 훗날 나더러 죽으라고 한다면 언제든 죽어
드리겠소.”
“괜찮습니다. 두 분은 시간 나는대로 익히시다가 막히면 언제든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장염은 고맙다고 계속해서 허리를 숙이는 두 명의 장가촌 사부에게 마주 인사
하고 슬며시 자리를 떠났다. 장염이 자리를 비켜 주자 이무심과 장소룡은 머리를
맞대고 그들이 외운 법문과 구결, 그리고 동작 하나 하나를 서로 확인하며 익히
기 시작했다.
그시간 이후로 장가촌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정신없이 무공을 수련했다. 이
무심과 장소룡은 처음에는 각자 자기 제자들에게만 가르쳤는데 나중에는 자연스
럽게 함께 모여 익히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법문과 무공구결 그리고 동작이 맞
는지 서로 간에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법문을 외우고 구결
과 동작을 잊지 않게 되자 장가촌 일행은 다시 사천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어쨌
든 고향을 떠난 이유는 무림맹의 행사를 구경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동안 동안 장가촌의 두 사부는 크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두
사람이 서로간에 호형호제(呼兄呼弟)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가 세 살 많은 이
무심을 장소룡은 형님이라고 깍듯이 모셨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무심과 장소룡
은 장염에게 존대를 하며 극히 어려워하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
들이 익히는 무공을 장염이 전수해준 것이라는 걸 알게된 청년들은 조금 달랐다.
처음에는 장염을 어려워했지만 젊은 혈기와 치기로 다시 격의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장염도 그게 편해서 이무심과 장소룡에게도 말씀을 놓으라고 간
곡히 부탁했지만 두 사람은 막무가내였다. 청년들은 느끼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장염의 일신 기도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
람은 장염을 대할 때면 늘 무학의 종사를 대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고, 언제부터
인지 호칭도 아예 장사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이토록 장염을 높이 인정하는 것은 어쩌면 무가에서 자란 그들의 환
경 탓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몇 번 장가촌 젊은이들에게 장사부에게 예의를 다하
라고 타일렀지만 사실 그것은 소귀에 경 읽기였다. 다른 젊은이들이야 장염에게
직접 배운적도 없고, 무가의 분위기에서 자라지도 않은 탓에 격의 없이 지내는
것이 더 좋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장가촌 사람들의 무공은 그때부터 일취월장 향
상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들이 모두 낮은 자세로 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 사 일에 한 번씩 들리는 심야의 비명소리는
부동심(不動心)과 극기(克己)의 훈련에 매우 도움이 되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 9.한사람이남아라(1) 관련자료:없음 [12571]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1-23 00:59 조회: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