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19)
10. 주방에 요리광인(料理狂人)이 있다.(1)
처음 장염이 주방에서 일을 배울 때만 해도 비교적 사람들의 대접은 양호한 편
이었다. 일행이 돈을 벌어 그를 데리러 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
방 제일 숙수 이대추도 장염을 심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염이 사천제일루에 몸을 담은지 나흘째 되던 밤이었다. 사천제일루는
객잔이 생긴 뒤 처음으로 어마어마한 손해를 봐야했다. 그것은 장염의 심야비명
때문이었다. 어찌나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던지 투숙객의 절반이 그날 밤 당장 나
가 버렸다.
염소수염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장염을 ?아내지 않았다. 이왕 손님이 나간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염이 그 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달아 날까봐 찾아와 다독거려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놀라서 뛰어나온 이대추에
게도 장염에게 너무 고된 일은 가급적 시키지 말라고 부탁했다. 병약한 사람에
게 일이 벅차 잠자리가 편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장(少壯,씩씩함이 적다)아, 본좌가 첫날 너의 손끝을 왜 보았는지 아느냐?”
심야비명 사건 다음날 아침 이대추가 장염을 불러 넌지시 물었다. 이대추는 장
염이 비실비실하고 기운이 없다고 처음부터 소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아직
본격적인 영업 시작 전이라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방을 드나들며 재료를
나르고 있었다.
“이 대가(大家), 모르겠습니다.”
장염은 이 초로의 숙수에게 대가라고 부르기가 차마 어색했지만, 모두들 주방
에서는 그를 대가라고 부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본좌의 손끝을 보라.”
장염이 이대추의 손끝을 보니 마디 마디가 고된 노동으로 뭉그러져 있었고, 손
목에는 기름이 튄 자국으로 크고 작은 화상이 가득했다. 장염이 이대추의 손끝에
서 보여지는 인생고(人生苦)에 잠시 머뭇거리자 이대추가 다시 물었다.
“본좌의 손끝에 무엇이 보이는가?”
장염은 차마 ‘고난이 엿보입니다’ 라고 말할 수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본좌에게 요리를 가르친 스승께서는…”
이대추는 스승이라는 단어에 이르러 잠시 말을 멈추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이십 여 년 전, 처음 본좌의 손을 보시고 미식계(美食係)의 큰 별이 될 것이
라고 예견하셨다. 본좌 같이 손가락이 길면서도 뼈대가 굵고, 불필요한 살이 붙
지 않은 손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요리계(料理係)의 기보(奇寶)인 것이다.”
장염은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대추의 대사를 하나도 빼지 않고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 이런 인생고의 상흔을 지닌 사람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었다.
“본좌는 그 뒤로 수상(手相)을 연구하며, 과연 본좌의 손이 요리계의 큰 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본좌의 나이 어언 일 갑자(육십 세), 이제
살 만큼 살았지만, 애석하게도 본좌의 일신절기를 전할 재목을 미처 찾지 못하였
다.”
다른 주방의 요리사들이 올 때까지 이대추가 늘어놓은 말을 요약하면, 한 마디
로 장염의 손이 이대추의 손을 닮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장염은 요리계의 신
성(新星)이니 자신의 처지를 잘 깨달아 요리를 열심히 배우라고 했다. 요리를 열
심히 배우라는 말까지는 좋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대추의 훈련 방법에 따라
적어도 삼 년간 완벽한 허드렛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간 해온 바닥
청소와 무쇠 솥을 닦는 일은 그 첫 번째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이대추는 물끄러미 장염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본좌의 질문에 대답이 없느냐?”
‘헉…’
너무 지루해서 잠시 장염이 다른 상념에 빠졌을 때 이대추가 질문을 던졌던 모
양이다. 이대추가 장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다.
“이 대가, 이 대가의 말씀을 들으니 어두웠던 눈이 밝아지고, 하늘이 새로이
열리는 듯 합니다. 이제라도 이대가 같은 분을 만났으니 삼생(三生)의 영광입니
다. 이 대가의 가르침을 따르겠으니 분부만 내려 주십시오.”
일단 상대를 추켜세운 뒤 장염이 이대추의 얼굴을 살피니 과연 흡족해 하는 것
이 보였다.
이대추는 자기가 무얼 물어보았는지도 잊어버리고 장염의 대답에 아주 만족해
했다.
“소장(少壯)은 앞으로 본좌의 수발을 들며, 요리를 배우도록 하여라.”
장염은 이대추에게 크게 절을 올리고 나물과 고기가 쌓인 탁자로 걸어갔다. 나
물을 손질하고, 고기의 피를 빼는 일이 오늘 아침 그가 해야 할 일들 중 하나였
던 것이다.
그리고 몇 일 동안 장염은 이대추의 지시에 따라 미친 듯이 일했다. 이대추는
처음에는 염소수염의 말에 따라 일을 조금 시키다가, 다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장염을 고되게 부려먹기 시작했다. 장염은 아침이면 나물과 야채를 다듬거나 고
기를 물에 담궜고, 하루 세 때 식사시간이 되면 산더미처럼 쌓이는 그릇을 닦았
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쓰레기장 같이 변한 주방의 넓은 바닥을 윤이 나게 닦았
다.
주방의 바닥은 장염이 일을 시작하던 날 검은빛이 돌며 반질거렸다. 그래서 장
염은 귀한 흑단목으로 바닥을 깔아 놓은 줄 알았다. 그러나 삼일동안 아침 저녁
으로 갈고 닦으니 연한 갈색의 평범한 나무바닥이 드러났다.
장염은 이대추가 자신에게 요리를 가르치려 한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가
요리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모든 일을 하니 이대추가 따로 잔소리할 필요도 없었
다.
장염이 부지런히 파와 마늘을 다듬고, 장가촌 일행이 표물을 등에 지고 북경으
로 향하고 있는 동안에도 사천 일대는 삼 년만에 열린 천하무림대회로 떠들썩 했
다. 무림대회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고, 그럴 때마다 무수히 많은 신진고수
들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칠일만에 무림대회가 막을 내렸을 때 사천무림에는 일룡(一龍),
이봉(二鳳), 삼절(三絶), 사검(四劍)이라는 신진고수 열 명이 탄생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10.주방에요리광인이있다(2). 관련자료:없음 [12577]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1-24 01:04 조회:4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