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2)
2. 그리고 인연(1)
장염은 칡 풀을 베러 나가면서부터 아버지가 일하는 천주교 근방이 아닌 마을
뒤에 있는 와룡산(臥龍山) 기슭에서 놀아야 했다. 와룡산은 산세가 완만했지만
계곡에는 차고 맑은 물이 흘렀다. 산 곳곳에는 작은 분지도 형성이 되어 있었고,
분지 주변에는 계곡 물이 흐르다 고인 늪지대도 많았다. 장염은 와룡산 도처에서
필요한 양의 칡 풀을 뜯었고, 남는 시간들은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뒹굴며 보냈
다.
장염에게는 절친한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둘 다 집이 가난하기로는 장염에
버금가는 아이들이었지만 그 부모가 품은 뜻이 남달랐다. 조금 통통한 장소(張
小)는 대장장이의 둘째 아들로 그 아버지의 바램에 따라 무당파 속가제자 일수진
천(一手震天) 장진원(張眞元)이 세운 원무도장(元武道場)에 다녔다. 장소의 아버
지는 그가 무당파의 무술을 익혀 재물이 있는 집의 사위가 되거나, 아니면 큰 마
을에 무술 도장이라도 열기를 바랬다.
또 다른 친구인 이삼인(李三忍)의 부모는 장가촌에 흘러 들어와 숯을 만들어
팔았는데 그에게는 형제가 다섯이나 되었다. 이삼인은 그중 막내로 형제 중 오직
그만이 부모의 뜻에 따라 천무도장(天武道場)에 다녔다. 무당파 속가제자가 세웠
다는 원무도장이 무당파의 전설에 나오는 원무신(元武神)의 이름을 따라 지은 것
이라면, 천무도장(天武道場)은 그냥 원무도장(元武道場)보다 더 강한 느낌의 이
름을 추구하던 팔비검(八飛劍) 이해룡(李海龍)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이해룡은
어촌에서 태어났는데 남해(南海)의 유명한 검가(劍家)에서 비검술을 터득했다고
전해졌다. 이삼인의 아버지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외지인이 세운 천무
도장에 아들을 다니게 했다. 그리고 자식의 이름도 적어도 세 번은 참으라고 삼
인(三忍)으로 바꾸어 주었다. 타지인으로서 장가촌에 정착하여 오랫동안 참고 살
아야 했던 그의 심정이 막내아들의 이름 두 자에 담겨 있는 건지도 몰랐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이삼인과 함께 와룡산으로 놀러 나온 장소가
목검을 비스듬히 어깨 위에 걸치고 장염에게 물었다.
“어이, 장염, 너는 별호를 무엇으로 할테냐?”
“별호가 뭔데?”
“우리 무림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자랑할 만한 이름을 가져야 하는 거야. 우
리 대사부님도 팔비검이라고 불리거든. 너도 앞으로 나를 무정검객(無情劍客) 장
대협(莊大俠)이라고 불러야해”
장염이 놀랍다는 얼굴로 장소 옆에 서있는 이삼인을 바라보았다.
“삼인아, 너도 별호가 있어?”
“당연하지, 무적비검(無敵飛劍) 이대협(李大俠)이야”
“오오…”
장염은 두 친구의 별호를 들으며 자기의 것도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마땅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친구들처럼 무공을 배우는 것도 아닌데 별호가
있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별호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장염이 말이 없자 장소가 목소리를 낮게 깔며 이삼인에게 장난을 걸었다.
“이 소졸(小卒), 자네는 이사부께 얼마나 배웠나?”
이삼인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장 소귀(小鬼), 자네보다는 많이 배웠네”
“소졸 네놈이 배워 봤자지. 떠돌이 이사부에게 무얼 배웠겠냐!”
“X놈아. 우리 이사부님 무공이 장사부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은 장가촌 사람이
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당연히 무공도 너보다는 내가 더 많이 배웠을 것이
다.”
“뭐라고? XX놈이 우리 장사부님을 모욕하느냐?”
“네놈이 먼저 우리 이사부님을 욕하지 않았느냐?”
두 사람이 싸늘한 눈초리로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장염은 이렇게 시작하
여 매일 반복되는 두 친구의 무공겨룸을 구경하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장소가 엉성하게 만든 목검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건방진 XX, 어디 검을 맞대보자. 누가 더 강한지”
“좋다. 장가놈아, 덤벼라”
두 사람은 목검을 움켜쥐고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두 사람이
도장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기마 자세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것 뿐 이었
다. 정식으로 목검을 잡아본 일조차 없는 장소와 이삼인은 이야기에 나오는 검사
들의 흉내만 내며 숨만 거칠게 내뿜었다. 한동안 서로 씩씩거리며 노려보던 두
사람 중 먼저 공격한 사람은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성질만 급한 이삼인 이었다.
“야아아아! XX놈아… 쓰러져라”
이삼인의 마구잡이식 휘두름에 장소도 질세라 목검을 휘둘렀다.
“어림도 없다. 이 XX야!”
“부웅, 부웅, 부웅…”
“탁… 딱…”
“이 XXXX, 헉헉…”
“이 XXX, 헉…”
오래도록 휘둘렀지만 둘의 목검은 서로의 몸 근처에는 가지 못했다. 아주 가끔
그것도 우연히 서로의 검신이 허공에서 만날 때 목검은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
럴 때마다 두 사람은 찔끔 놀라며 나무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그렇게 두 사
람이 입으로만 거품을 물고 난투극을 벌일 때였다. 근처의 나무가 부르르 떨릴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어느 놈들이 감히 도사님의 단잠을 깨우는 게냐!”
“…”
열심히 싸우던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부르르 떨었고, 장염은 자리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멍한 얼굴로 잠시 꼼짝 않던 그들이 놀란 토끼처럼 주위를 둘러보
았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산새 몇 마리가 푸드득거리며 날
아올랐다.
“야. 뛰어!”
평소 눈치 빠른 장소의 소리를 신호 삼아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
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달아나는 데는 까닭이 있었다. 원래 장가촌
에는 외지인이 잘 찾아들지 않았다. 게다가 동네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지나가던
문둥이가 아이들을 잡아서 생간을 빼먹는 다거나, 곡마단이 아이들을 납치하여
노예처럼 부리니까 낮선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 해
왔다.
장소와 삼인은 메뚜기처럼 펄떡이며 와룡산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그러나 장염
은 몇 걸음 못 가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몸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물에 걸린 듯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장염의 얼굴은 과도하게 힘을 쓰느라 검붉게
달아올랐고 이마에도 땀이 송알송알 맺혔다.
“허어…, 공부(工夫)가 부족해 세 놈을 다 잡지 못하고 말았구나… 쯧쯧…”
“으악… 컥…”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갔던 장염은, 나이를 알 수 없는
늙은이가 무어라 중얼거리며 풀숲을 헤치고 다가오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장염이 쓰러지자 노도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쓰러지는 장염의 몸을 받아 안았다.
“쯧쯧…, 참새 새끼도 아닌데 붙들자 기절이라니… 정기(精氣)가 이렇게 허
약해서야…”
한참을 장염의 몸 구석구석을 주무르던 노도사가 양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
다.
“허어…, 이거 생각보다 더 허약하군. 무당파 장문인에게 잠깐 들른다는게 그
만 일을 만들고 말았구나…”
노도사의 이름은 진원청(眞元淸)으로 무림의 은거 기인이었다. 팔자가 사나왔
던지 그는 태어난 지 사십 일만에 부모에 의해 도관 뒤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그
러나 다행히 도관의 수도자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고, 그 인연으로 도관에 거
두어 졌다. 그는 자라면서 청소나 취사, 손님접대 등의 일을 했지만 워낙 영특했
고 도문(道門)과도 인연이 닿아 정식으로 도사 수업을 받게 되었다. 진원청은 열
두 살이 되기 전에 사서(四書)를 배웠고, 조만공과경(早晩功課經), 삼관경(三官
經), 옥황경(玉皇經), 염구경(焰口經), 두과경(斗科經) 등의 독송법을 일찌감치
익혔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도사로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이십대의 젊은 시절 수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무당파의 은거기인 무극진인(無極
眞人)의 눈에 들게된 것이다. 진원청은 무극진인에게서 무당파의 무공과 진인의
일신절기(一身絶技)인 무량검(無量劍)을 전수 받았다. 그 뒤 비록 도문에서 자랐
지만 천성이 자유분방하던 진원청은 호방한 성격과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운 무공
으로 삼십년간 강호를 주유 하다가 그역시 스승처럼 속세에 미련을 버리고 은거
했다. 그때까지 강호에서는 아무도 진원청의 십초를 받아내지 못했고, 무림의 인
사들은 그런 그를 경천동지(驚天動地) 도문일검(道門一劍) 이라 불렀다. 세월이
흘러 진원청이 무림에서 은거한지 어언 칠십 년이 지났고, 사람들은 그가 이미
신선이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종적이 묘연했던 그가 오늘 와룡산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진원청은 쓰러진 장염의 몸은 안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무심코 한 장난이
어린아이에게 살수를 쓴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그는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원래 진원청은 무당산으로 가는 도중 와룡산의 아기자기한 산
세에 취해 잠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장염과 친구들이 나타나 칼싸움을
하면서 시끄럽게 욕을 주고받는 통에 잠에서 깨고 만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다시
어려진다고 했던가. 어린아이들의 장난을 구경하다가 마음이 동한 진원청이 약간
의 내력을 실어 고함을 치자 아이들은 개울가의 송사리떼처럼 도망치기 시작했
다. 일단 장난끼가 발동된 진원청은 허공섭물(虛空攝物)이라는 전설상의 기공으
로 아이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 아이는 공교롭게도 한 줄로 달음질을
쳤고, 심장이 약해 잘 달리지 못하던 장염이 제일 뒤에 처져 있다가 진원청이 발
출한 기의 그물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장염은 놀라서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려고 했고, 그 바람에 가뜩이나 허약한 기혈이 역류하는 현상이 벌어
진 것이다.
진원청은 장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천천히 내공을 주입시켜 기운을 바르게 잡
아 주었다. 그러나 장염의 혈색은 조금 좋아졌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
다. 진원청은 계속 내공을 일으켜 장염의 몸을 안마하였다. 조그마한 뼈다귀에
약간 붙은 살점, 그리고 까무잡잡하게 탄 얼굴의 장염은 누가 보아도 가난한 집
의 볼품없는 아이였다. 더구나 심장과 내장이 너무 허약해 그대로 두면 몇 해 못
넘기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얼마동안 장염의 몸을 주무르던 진원청은 장염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자 즉시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어린아이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자
책감이 진원청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진원청은 물끄러미 장염을 내려보다가
품안에서 은으로 만든 작은 함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잠시 함 윗면에 양각(陽
刻)으로 새겨진 그림을 음미하듯 쓰다듬다가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엷은 향기와
함께 매추리알 만한 환단(丸丹) 두 개가 얼굴을 내밀었다. 진원청은 그중 하나를
꺼내었다.
“아이야, 이것은 무당파의 보물로 그 이름을 태청단(太淸丹)이라고 하는 것이
란다. 원래 나의 사부이신 무극진인께서 세 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천산에
서 죽을 뻔한 내게 먹여 살리셨고, 또 하나는 이번에 장문인의 병을 치료하기 위
해 쓰여질 것이지… 이제 네가 나머지 하나를 먹는다면 일찍이 진인이 내게 당
부하신 말씀처럼 하늘의 이치를 잘 따르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
다…”
세상에는 양생에 관계된 책이 천 여종에 달하고 여러 가지 장생 약들이 제시되
고 있었다. 그러한 약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병을 낫게 하는 하약(下
藥)과 인간의 본성을 기르는 중약(中藥), 그리고 신체를 가볍게 만들어 생명을
연장시키고 신체에 깃털이 나게 하여 하늘을 나르고 귀신을 부릴 수 있는
상약(上藥)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상약 중의 상약을 단(丹) 또는
금단(金丹)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먹으면 선인이 될 수 있다고 전해졌다. 지금 진
원청이 장염에게 주려는 것은 상약중의 상약인 태청단으로 도가의 보물이었다.
진원청은 손바닥에 푸른빛이 은은히 감도는 단환을 올려놓고 잠시동안 바라보
았다. 이것은 그가 평생을 지니고 다녔던 것으로 과거 강호에서 부상당하여 자신
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도 감히 먹지 못하던 것이었다.
“휴우…”
진원청은 짧은 한숨과 함께 태청단을 장염의 입에 밀어 넣어 주었다. 태청단은
장염의 입에 들어가자 곧 녹아 없어졌다. 진원청은 장염을 눕히고 태청단의 약효
가 온몸에 잘 퍼지도록 혈도를 짚어 나갔다.
장염은 꿈을 꾸었다. 처음 맛보는 자유로움 속에서 그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되
어 바다 속을 유유히 헤엄치기도 했고,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오르기도 했다. 한
동안 끝없이 날아오르던 장염은 자신의 몸이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 친다고 생각
했다. 땅이 점점 얼굴로 다가들었고, 마침내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 속에서
장염은 가느다란 신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 2.그리고 인연(2) 관련자료:없음 [12536]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1-18 01:19 조회:4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