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20)
10. 주방에 요리광인(料理狂人)이 있다.(2)
천하무림대회가 막을 내린 그날이었다. 장염은 아침 일찍 사천제일루의 인기요
리인 궁보계정(宮保鷄丁)과 궁보하인(宮保蝦仁)에 쓰일 닭고기 손질을 막 끝내고
(장염은 어렵게 가슴의 힘줄을 제거했다) 땅콩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둘 다 사
천에서 반찬이나 술안주로 자주 애용되는 것들이었다. 장염이 흥얼거리며 재료와
조리법마저 비슷한 이 두 요리의 차이는 뭘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낙산(樂山)에서 온 헌원일광(軒院日光) 이라고 하네.”
주방에서 일하는 선배 하나가 장염의 옆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대뜸 자기
고향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천성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 바로 낙산 아닌가. 자네도 물론 알고
있겠지만…”
장염은 강호초출이라 사천성은 처음와 본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등을 떠밀어
도 어딘지 길을 몰라 찾아가지 못할 정도로 세상 경험이 없는 사람인데, 헌원일
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사내는 말 끝에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이라고
했다.
“이전에는 가주(嘉州)라고 불렸었다지,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장염은 속으로 ‘난 모르오, 당신 고향의 속사정을 내가 어찌 일일이 알 수 있
겠소’라고 대답했다. 그런 장염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헌원일광은 계속 주절거
렸다.
“고향을 떠나올 때 낙산대불(樂山大佛) 아래서 그녀에게 다짐했었지…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장염은 또다시 속으로 ‘낙산대불도 모르고 그녀도 모르오’ 라고 대답했다.
“반드시 삼 년 안에 일류 숙수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그래서 난 성도로 올라
왔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처음 만난 내가 그 사정을 어찌 알았겠소 금시 초문이오’
그렇게 한참 뜸을 들이며 망설이던 헌원일광은 자신이 사천제일루에 온지 칠
년 째이며,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저질들을 경험했는지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 뒤 광천수(廣天手) 숙수께서는 사천제일루를 떠나야 했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이대추가 광천수 숙수의 요리에 상한 숙주를 남몰래 집어넣
었거든… 물론 광숙수도 이대추의 어향가화(魚香茄花, 가지로 만든 요리)에 시
들시들한 가지를 집어 넣었지만 말일세… 자네도 알겠지만… 시들은 것과 상한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이대추가 자네에게도 요리계의 희망인 손을 가
졌다고 얘기했겠지…”
장염은 계속되는 수, 숙수, 숙주의 얘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자네도 알겠지만’ 이라는 얘기만 듣기로 했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올때마다 무심
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대추가 아무나 부려먹으려 할 때
‘요리계의 신성이 될 손을 가지고 있다’고 추켜세웠다는 사실이었다. 헌원일광도
그 말에 속아 한때 그를 위해 중노동을 했다고 말했다.
헌원일광은 한참 후에 머슥해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만 끄덕이는
상대와 얘기 나누자니 피곤하기만 했던 것이다. 헌원일광의 경험에 의하면 이쯤
이면 함께 이대추의 험담이 나와야 하는데, 장염이라는 젊은이는 그렇게 혹사당
하고도 보살의 현신인지 그저 웃고만 있었다. 헌원일광은 그런 장염의 모습이
어쩐지 고향의 옥불좌상(玉佛坐像)인 낙산대불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
상은 마냥 좋은 얼굴로 살수는 없었다. 그가 지켜본 이대추와 광천수가 그랬다.
결국 광천수는 이대추보다 모질지 못해 사천제일루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게
헌원일광이 깨달은 인간사였다. 낙산대불이 진짜 부처가 아니라 옥으로 조각한
앉아 있는 부처상에 불과 하듯이, 인간 세상은 기대와 달리 더러움의 연속이라는
것이 헌원일광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한쪽 발을 시궁창에 처박은 기분
으로 살아왔다.
“그럼, 나중에 또 보세… 자네도 알겠지만… 오늘은 예약 손님이 좀 많은 날
이라…”
장염은 헌원일광이 씁쓰름한 얼굴로 떠나가자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헌원일광도 나름대로 사연이 많은 사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이대
추와 광천수의 암투를 알고 있을까? 장염이 복잡한 생각을 떨쳐 내려고 땅콩 껍
질 까기에 매달렸다.
옆에 수북히 쌓인 땅콩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염은 하나씩 땅콩을
잡아가다가 장난치듯 좌우로 손을 털었다. 순간 손 그림자가 땅콩을 가득 덮었
다. 눈 깜짝 할 새에 장염은 수북하게 쌓인 땅콩의 껍질을 모두 벗겨 낼 수 있었
다.
‘땅콩에는 무영신나수가 제일 어울리는구나…’
장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방금 그의 손이 보여준 놀라운 기술은 바로 사부가
전수해준 절정 금나술 중의 하나였다. 본래는 수백 개의 손 그림자로(掌影) 사람
의 팔다리 혈도를 잡아 제압하는 수법이었는데 장염은 그것으로 산더미 같은 땅
콩을 집어들어 껍질을 벗겨 냈던 것이다.
“아니, 언제 그 많던 땅콩을 다 깐 거유?”
그동안 얼굴을 익힌 청소담당 허(虛) 아주머니였다.
“정말 일 하나는 귀신같이 한다니까… 그러다간 요리두 금방 배우겠수…”
“정말요? 제가 요리를 빨리 배우게 되면 허 아주머니에게도 한번 대접해 드리
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일년이상 허드렛일을 해야 요리를 배울 처지가 된다는 걸 장
염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우선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였다. 주방에
왔다갔다하는 모든 사람이 따지고 보면 그의 앞길을 막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누
구도 장염에게 재료 다듬는 법 이외에 다른 것을 가르쳐 주려 하질 않았다. 심지
어 어패류 전문 요리사 곡(曲)노인은 장염의 진도가 너무 빠르다고 숙수 이대추
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자기가 육개월 걸려 이른 재료 다듬기에 장염이 육일만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의 불만이었다. 물론 이대추는 장염의 청소 재질이 너무 탁월
하여 그렇게 되었다며 그의 주장을 일축했다.
장염은 그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분주하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장염이 두려워하고 염소수염 민주려가 상상도 못하고 있던 공포의 밤이 시작되었
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10.주방에요리광인이있다(3). 관련자료:없음 [12578]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1-24 01:05 조회:4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