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35)
20. 운명이 갈리다.(1)
장염이 대륙 남서쪽의 서장에서 유랑을 하고 있을 때 장가촌 사람들은 엉뚱하
게도 북서쪽에 있는 신강에 도착해 있었다. 장염은 아미산 밑에서 황보장성이 이
끄는 상단을 만나 당고랍산맥(唐古拉山脈)까지 함께 여행을 했고, 헤어질 때는
황보장성이 직접 길을 일러주어 헤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장가촌 일행은 달랐다. 그들도 강호 초출이었지만 짧은 강호생활로 자
신감이 붙어 있었다. 게다가 한겨울이라 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장가촌 일행은 급한 마음에 가끔씩 산도 넘고 확실하지 않은 길도 씩씩하게 가다
가 청해성(靑海省)을 지나 그만 신강(新疆)까지 가고 말았다. 신강에 도착해서야
엉뚱한 곳으로 왔음을 알게된 그들은 땅을치고 후회를 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장가촌 일행은 우루무치(烏魯木齊,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목장)라
불리는 도시의 외곽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돈과 식량이 다 떨어져 더 이
상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강은 중원인들(漢民族)이 옛부터 서역이라고 부른 지역의 일부였다. 신강말
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사막’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사막을 중심으로
오아시스와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신강은 오래 전부터 동서교통의 요충지
였고, 타클라마칸사막 주변에는 도시 국가들과 유목 민족들이 세운 작은 나라들
도 많이 있었다. 이 십 년 전 중원에 무명(武名)을 떨친 교하국도 바로 이곳에
자리하고 있던 나라 중 하나였다.
장가촌 일행은 일단 장염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진 돈을 다 써가며 길을
재촉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발이 묶이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마지막 돈으로 눈에 보이는 객점으로 들어가 소면과 만두를 사먹고 앞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강의 우루무치에 많은 한인(漢人)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디에 가서 아홉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쉽게 음식을 사먹을 수 있었겠는가?
“이보슈, 혹시 지금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게요?”
장가촌 일행들이 어디서 돈을 마련해야 하는 가의 문제를 놓고 떠들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렇소만, 댁은 뉘시오?”
장소룡이 말을 받아주자 그 사람은 의자를 끌어다가 슬며시 앉더니 남산목장에
서 인부들을 구한다는 얘기를 침을 튀겨가며 늘어놓았다.
“내가 이런 말로 형제들에게 남산목장의 얘기를 한다고 해서 내가 따로 그 사
람들에게 구전(口錢)이라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시우. 커억… 찍!”
사내가 벌어진 앞 이빨 사이로 침을 찍 내뱉었다.
‘더러운 놈…’
장소룡도 예의없는 행동으로 치자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는데 이 사내는 침
한 방울로 장소룡을 간단히 제압했다. 장소룡은 사내의 얼굴에서 고개를 돌려 버
렸다. 또 입이 우물 우물거리는 폼이 침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가촌 사람은 그제서야 이 사람이 구전을 받고 인부들을 대주는 사람임을 알
아챘다.
장소룡이 이무심을 바라보았다. 이무심의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었다.
‘목장이라.’
장소룡이 혼자서 목장일이란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는데 이무심이 고개를 선선
히 끄덕였다.
“아우, 괜찮겠지? 그곳에서 여비를 마련할 때까지 잠시 견뎌 보세.”
장소룡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지금은 시간과 돈이 급한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에도 장사부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니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좋습니다. 형님.”
낮선 사내는 침을 찍찍 뱉으면서 일행에게 ‘자기는 지금 일이 있어 목장의 안
내를 못하니 볼일을 본 후 밤에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객점에
말해 놓을 테니 그때까지 어디들 다니지 말고 방에서 푹 쉬고 있으라고 했다. 장
가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고 주인에게 방을 빌린 뒤 들어가 그 동안의 여행으
로 피곤하고 지친 몸을 뉘었다.
“형님, 저자가 침을 몇 번 뱉은 줄 아우?”
“모른다…”
“허 참… 더러운 놈일세…”
이무심은 궁시렁 거리며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 장소룡을 향해 ‘그걸 세 보는
너도 참 더러운 놈이다’라고 중얼거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장가촌 사람들은 낮에 만났던 사내가 문을 두드리며 깨우
는 통에 잠에서 일어났다.
“일어들 나게… 이제 목장으로 안내를 하겠네. 커험…찍!”
장가촌 일행이 한밤중에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사내를 따라 객점을 나갔
다. 밖에는 거대한 마차가 두 대 서 있었다. 사내는 일행을 다섯 명씩 나누어 마
차에 타게 하고 자기는 마부석 옆자리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마부에게 소리쳤다.
“가자.. 찍!”
마차가 밤새도록 달려 도착한 곳은 목장이 아니었다. 신강에는 수많은 목장이
있었지만, 한 겨울에 십 여명의 인부를 고용할 목장은 없었다. 원래 장가촌 일행
이 들어간 객점은 마부 옆에 앉은 사내가 속한 방파의 인신매매 장소였다. 사내
는 객점의 주인에게 연락을 받고 와서 그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장가촌 사람들을
넘겨받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사내가 장가촌 사람들을 데리고 밤새도록 말을 달
려 도착한 곳은 천산(天山)에 있는 노예시장이었다.
장가촌 일행은 새벽이 되어 마차가 멈추자 의아한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도착
한 곳은 목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쉬어가나 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한참만에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모두 내리거라… 찍!”
지금가지 존칭을 써가며 친절하게 마차에 태워주었던 사내가 문을 열고 냉랭하
게 말했다. 장가촌 일행은 모두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장가촌 일행이 내리자 사내는 마차에 올라타더니 다시 사라져 버렸다.
장가촌 사람들이 둘러보니 일단의 남자들이 손에 각종 병장기를 들고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나무로 만든 목책이 있었고, 그 안에 수십 명의
남녀가 앉거나 서서 장가촌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놀랍게도 목책 안
의 사람들 중에는 검은 피부의 남자와 황금빛 나는 머리칼을 가진 여자도 몇 명
보였다. 장가촌 일행은 갑자기 자기들에게 닥친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
라 두 눈만 크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 있소?”
이무심이 가까이에 있는 남자에게 정중히 질문을 던졌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이무심은 그때까지도 그들이 일행을 다른 무리로 착각한 것이
라고 생각했다.
“여기는 인력도매시장이다. 네놈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짐을 그 자리에
두고 저기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라.”
사내가 가리키는 곳은 목책 안이었다. 이무심은 여태까지 사람이 사람을 잡아
서 가둔다는 의미를 오직 죄지은 사람들과 관부의 관계나, 혹은 문파 내부의 일
로만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모인 남자들이 노예상이며 자기들
이 어느새 팔려 온 것이라는 사실도 알 리가 없었다.
“우리는 지은 죄가 없소, 무슨 오해가…”
“닥치고 들어 가래두!”
상대는 이무심의 말을 끊고 자기 일행에게 눈짓을 했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일단 팔려온 무리들은 몇 대 맞아서 기가 꺽이기 전까지 대체로 자기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다른 남자들도 손에 든 몽둥이와 각종 병장기
를 가지고 서서히 좁혀들었다.
“이런 미친놈들이 있나!”
장소룡이 대뜸 호통을 치며 이무심에게 닥치라고 말한 사내에게 몸을 날렸다.
사내는 장소룡이 자기에게 달려들자 흥 하는 비웃음과 함께 곧 마주 달려갔다.
장소룡에게 마주달려간 사내는 흑살마왕(黑殺魔王) 권불해(權不解)라고 불리웠
는데 흑살장(黑殺掌)이라는 장법의 달인이었다. 권불해는 천산의 원조마교에 있
는 외삼당(外三堂) 당주였다. 원래 마교는 노예매매와는 전혀 무관했는데, 원조
마교가 마교 본산(本山)인 천산으로 이주해 오면서 근처의 모든 방문좌파들을 다
시 흡수하다보니 그 중에는 노예매매를 전문적으로 하던 조직마저 포함되고 말았
던 것이다. 처음에는 마교에서도 이들을 꺼려했지만 이들이 가장 큰 수입원으로
자리잡게 되자 나중에는 노예매매를 지원할 경지까지 이르렀다. 노예매매를 지원
하는 일은 외삼당중 하나인 삼풍당(三風黨)이 맡고 있었고, 삼풍당의 당주가 바
로 흑살마왕 권불해였다. 그는 오늘 젊은 남자 아홉 명이 온다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직접 나왔다가 장소룡과 주먹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치고 받기 시작했는데 싸움이 좀처럼 끝나
지 않았다. 장소룡은 상대의 손바닥이 주먹에 부딪칠 때마다 따끔거리고 쓰라려
서 매우 곤혹스러웠다. 겨우 손바닥과 부딪쳤을 뿐인데도 무슨 바늘뭉치를 건드
리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장소룡의 주먹은 얼마 못 가 벌겋게 부어 오
르기 시작했다. 권불해는 히죽히죽 웃으며 장소룡을 몰아 붙였는데 그 모습이 마
치 쥐가 고양이를 가지고 노는 듯 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19.운명이갈리다.(2) 관련자료:없음 [12646]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1-30 01:02 조회:4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