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36)
20. 운명이 갈리다.(2)
장소룡은 가슴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자 즉시 내력을 끌어올려 두 손에 모
으고 드디어 장염이 전수해준 천마파천권의 일초를 펼치기 시작했다.
장소룡의 주먹이 갑자기 두 개에서 네 개로, 네 개에서 여덟 개로 불어나기 시
작하더니 일순간에 열 여섯 개로 늘어나 권불해를 때려갔다. 권불해는 눈앞을 가
득 채운 권영(拳影)에 놀라 뒤로 물러서며 흑살진력을 담은 손바닥으로 권영을
하나하나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처 열 개도 없애지 못하고 그만 주먹에
얻어맞고 말았다.
“퍼퍼퍼퍽….!”
“커헉!”
방심하고 있던 권불해는 순간적으로 몸에 떨어진 주먹열대 이상을 맞고서 정신
을 잃고 말았다. 권불해가 쓰러지자 마자 주변에 있던 노예상들이 ‘죽여라!’ 소
리치며 이무심과 장소룡 일행을 덮쳤다. 외삼당에 속해있던 노예상들이 달려들자
마차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장소룡 일행은 각자 자신들이 집중적으로
수련하던 검 혹은 주먹으로 마교의 노예상인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
다.
“미친놈들, 하필 무림인들을 잡아와서 이게 무슨 지랄들이란 말인가…
쯧쯧…”
아까부터 멀리서 사태를 바라보고 있던 한 남자가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뒤에
시립하고 있던 수하에게 한마디 던졌다. 아무래도 노예매매만 하는 잡배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 같았기 때문이다.
“총단으로 가서 무림인들이 습격해왔다고 알려라.”
“존명!”
한 사내가 대답과 동시에 바람처럼 마교의 총단으로 달려갔다. 노예매매가 이
뤄지고 있는 벌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협곡 안에는 천험(天險)의 요지
가 형성되어 있었고, 원조마교의 총단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명령을 내린 사내는 멀리서 마교와 싸우고 있는 사내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원래 그는 마교의 순찰영주였는데 이번 노예매매장에서의 드잡이질에 대
해서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자신이 나서서 손을 쓸 수가 있
었으나 그는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그냥 수하를 총단으로 올려 보낸 것이었
다. 마교 내에서는 아직도 노예매매를 찬성하는 무리들과 반대하는 무리들로 가
끔 논쟁이 벌어졌는데 그는 반대하는 쪽이었다. 그는 마교 내에 흔치 않은 순수
한 무력(武力)의 신봉자(信奉者)였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단에서 수십 명의 마교 고수들이 달려나왔다. 그들이 달려
가자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순찰영주가 보니 새로 달려가는 사람
들 중에는 마교의 수호사령이라는 검귀(劍鬼)가 있었다. 그의 나이는 벌써 일흔
이 넘었는데, 그가 마교의 비전 무공을 몇 개나 익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검귀는 언제나 전력을 다해야할 상대를 만났을 때만 한 차례씩 비장의 수법을 드
러냈는데 그때마다 무공이 달라 마교의 사람들은 그를 마교 무공의 총본산 이라
고까지 불렀다.
‘검귀까지 나올 일은 아닌데… 어지간히 무료했나 보군 쯧…’
검귀까지 나왔으니 더 이상 자기가 신경 쓸 일은 없겠다고 생각한 순찰영주가
몸을 막 돌렸을 때였다. 돌연 시끄럽게 싸움질을 하고 있던 벌판이 쥐죽은듯이
잠잠해 졌다. 순찰영주는 아무리 검귀라도 이렇게 빨리 수습할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호사령 검귀가 벌판에 넙죽 엎드려 이마를 얼어붙은 땅에 대고 있었던 것이
다.
처음 수호사령 검귀가 장가촌 일행에게 다가 갔을 때 처음 그와 마주한 사람은
장소였다. 수호사령은 새파란 젊은놈이 자기에게 덤벼들자 한심하기도 하고 무안
하기도 해서 몸을 뒤로 빼려 했다.
“이 늙은이야 어디로 내빼느냐!”
고함을 지르며 장소가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장소의 주먹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검귀로 하여금 쉽게 등을 보이도록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검귀
가 살심(殺心)을 일으켜 검을 뽑으면 장소는 반드시 죽을 것이었지만, 검귀는 왠
지 장소의 주먹질이 야릇하다 싶어서 몸을 피하기만 했다. 무공의 편집증세를 보
이던 검귀가 장소의 움직임에 담긴 심오함을 알아차리고 무공 내력을 알아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장소는 상대가 몸을 미꾸라지같이 피하기만 하자 약이 올라 내력을 끌어올리고
드디어 비장의 천마파천권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장소의 화후는 아직 장소룡보다
깊지 않아 주먹이 한꺼번에 열 두 개 정도밖에 형성되지 않았지만, 장소가 만들
어낸 권영 열 두개에는 무극진기가 담겨 있어 푸르스름한 광채가 언 듯 언 듯 내
비쳤다. 검귀는 폭풍처럼 몰아 닥치는 장소의 권영을 보고 그만 대경질색하여 검
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권불해가 흑살장으로 막았던 것처럼 검귀도 마교
의 비전절기이자 자신의 성명절학인 탈명검(奪命劍)으로 마주쳐 갔다. 그리고 마
침내 현란한 움직임으로 열 두 개의 권영을 다 막은 검귀는 돌연 움직임을 멈추
고 장소 앞에 넙죽 엎드린 것이다.
장소는 상대가 자신의 주먹을 검기로 다 쳐내자 이제 죽었구나 싶어 절망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니 더욱 황당했다. 그렇게 수호사령
과 장소가 움직임을 멈추자 다른 마교 고수들과 장가촌 일행은 덩달아 싸우지 못
하고 장소와 수호사령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얼어붙은 땅바닥에 오체투지(五體投地)한 수호사령
과 장가촌 일행을 쳐다보는데 바람처럼 순찰영주가 나타나 소리쳤다.
“수호사령께서는 왜 그러고 계시오?”
그제서야 수호사령 검귀가 큰소리로 ‘삼가 수호사령이 천마지존을 뵈옵나이다!’
라고 외치며 머리를 쿵쿵쿵 박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수호사령 검귀가 땅에 머리
를 박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순찰영주는 단번에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다. 드디
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 나타났던 것이다.
천마지존공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은 마교에 다섯 명 뿐 이었다. 그중 두 명
이 신마교를 따라가고 세 명이 원조마교에 남았다. 남은 사람 중에 다시 두 명이
천마지존공의 주인을 찾아 중원 무림을 뒤지고 있었고, 지금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수호사령이 나머지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수호사령은 아마도 싸움터에 끼
어들었다가 저들의 무공내력을 알아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제서야 순찰영주도 오
체투지를 하며 크게 외쳤다.
“삼가 마교지존을 뵈옵나이다!”
순찰영주마저 머리를 땅에 처박자 그제야 나머지 마교 고수들도 전부 차가운
땅에 오체투지하며 소리를 질렀다.
“교주님을 뵈옵나이다!”
원래 장염이 이들에게 전수해 주었던 마교의 무공은 과거에 일원도사가 마교교
주 고일기와 형제의 정을 나눌 때 고일기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었다. 그것이 훗
날 무극진인과 진원청을 통해 장염에게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무공의 내력을 알
지 못하는 장염은 장가촌 사람들에게 자신이 창안한 태극양의 검법과 파괴력이
강한 천마파천권을 전수해 주었던 것이다.
삽시간에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했던 장가촌 일행은 귀빈이 되어 마교의 총단
으로 모셔졌다. 순찰영주와 수호령주는 장가촌 일행을 지극한 정성으로 받들어
모셨다. 마교도 들은 본래 힘이 법이고, 가장 강한 힘은 마교지존공에서 나온다
고 믿고 있었다. 마교의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마교지존공은 천마파천권이었다.
지금은 장가촌 사람들이 익힌지 오래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마교비전의 심법을
바탕으로 펼치지 않아 그 위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었다. 천마파천권은 마교인들
을 부리는 권위의 상징인 동시에 실제적인 힘(力)이기도 했던 것이다.
마교 원로들은 장가촌 일행을 대전에 모셔 두고 별도로 작은 회의실에 모였다.
“문제요… 마교지존공을 익히신 분들이 너무 많소. 최소한 세 분이 익히신 것
같은데 어느분을 교주님으로 모셔야 할지 난감하오.”
말을 꺼낸 사람은 마교의 장로인 혈천마도(血天魔刀) 풍소곡(風小谷)이었다.
마교대전에 모시고 온 장가촌 일행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드린 후 잠시 대화를
나눠보니 황당하게도 이들은 모두 천마파천권을 익혔거나 익히다가 포기한 상태
였다. 다행히 겨우 세 명만이 천마파천권의 묘리(妙理)를 알고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는데, 바로 장소룡과 장소, 그리고 이무심의 아들 무쌍이었다. 나머지 사
람들은 그저 신묘한 검법만 수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골과 관상(觀相)을 볼 때 그중 한 분이 적합하다고 보오만…”
원로인 파안대살(破顔大殺) 허극(許克)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로들이
궁금하다는 듯 그를 보았다. 파안대살 허극은 웃으면서 살인을 하기로 유명한 마
인이었다. 그는 본래 사람의 얼굴을 잘 알아 봤는데, 이번에 그가 말을 하자 다
들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난 십 년 간 찾지 못했던 진정한 마교지존의 후예가 오늘아침 갑자기 세 명
이상 나타난 것이다. 어차피 이들 중에 한사람을 교주로 추대하는 마당이니 무슨
말인들 오가지 못할 것인가! 한동안 파안대살과 원로들은 각자 지켜본 세 사람에
대해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중 한 사람을 교주로 추대하기
로 합의를 보고 대전으로 돌아갔다.
“네에? 저더러 교주가 되라구요?”
장소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기 앞에 머리를 조아린 원로들을 바라보았다.
장소의 머리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파의 맹주격인 마교라는
이름이 주는 공포와 위엄이 장소의 가슴에 부담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 장소가 옆에 앉아있는 사부 장소룡과 이무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난
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에 뭐라고 나서서 대신 말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
다. 게다가 대전 주위로는 마교의 핵심 인물들이 흉신악살같은 모습으로 빙 둘러
서 있었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마교 교주는 둘째치고 뼈도 못추리게 생겼던
것이다.
장소가 머뭇거리는데 머리를 조아렸던 파안대살 허극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부디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만약 저희를 거절하시면 저희가 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옵니다. 저희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파안대살은 택할 길이 ‘하나밖에 없다’고 말할 때 웃기까지 했는데 그 속에 살
기가 철철 넘쳐흘렀다. 이쯤 되면 바보라도 이 말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다. 사
악한 이들은 자기들이 모두 자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절한 상대를 죽여버리겠
다고 은연중에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거절하면 이들은 장가촌 일행을 몰
살시킬 것이다. 그런 뒤 다시 중원을 방황하며 마교의 후예를 찾을 것이 분명했
다.
장소가 긴장과 공포로 장소룡을 다시 바라보자 그제서야 장소룡도 이 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는 말만 왔다갔다하는 시장 바닥이 아니
라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마교 총단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장소의 입이 열렸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교지존 만세, 만세, 만만세!”
노인중 하나가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며 소리를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대전에 오체투지를 하며 뒤따라 소리쳤다.
“마교지존 만세, 만세, 만만세!”
장소는 대전 가득한 사람들이 모두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치자 왠지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슬그머니 뿌듯해지는 느낌마져 들었다. 이제
자기는 강호의 절반이 넘는 사도무리의 지존이 된 것이다. 장소는 ‘까짓것 아무
렴 어떠냐 나만 착하게 살면 되지’ 라고 생각하며 장가촌 일행을 향해 능청스러
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장소가 마교교주가 된 직후 장가촌 일행은 마교의 요청에 따라 보름이나 더 마
교에 머무르며 잔치에 참석을 해야 했다. 그런 뒤에야 간신히 장소에게 부탁해서
서장으로 떠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장소야, 우리가 먼저 가서 장사부를 찾으면 이리 모시고 오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부님… ”
남겨진 장소도 떠나가는 장가촌 일행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지금은 헤어지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소도 장가촌 일행과 함게 가고 싶었지만 마교원로들이 비전마공을 익히셔야
한다며 막았기 때문에 떠나가는 장가촌 일행을 바라만 보아야 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19.운명이갈리다.(3) 관련자료:없음 [12647]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1-30 01:03 조회:4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