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37)
19. 운명이 갈리다.(3)
장가촌 일행이 떠나자마자 마교의 원로들은 장소를 상승천마(常勝天魔)라는 글
이 음각(陰刻)된 거대한 동굴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마교내에서 천마동이라 불
리우는 곳이었는데 천년(千年) 마교가 처음 뿌리를 내렸던 기념비적인 자리였고,
십 년 전 원조마교가 갈라져 나오며 들고 나온 무공비급을 비장해 놓은 곳이기도
했다.
장소는 그때부터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마교의 마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장
소가 마교의 무공을 익히기 시작할 때, 마교의 원로들은 장소에게 마교비전의 마
력이양대법(魔力移讓大法)으로 장소의 생사현관을 타통 시켜준 뒤 천마강령심공
(天魔降靈心空)을 전수해 주었다. 그리고 장소에게 마교의 최강 무공들이 실린
천마신공비급을 주어 익히게 했다. 그들의 마력과 비급을 전수 받은 장소는 그
동안 연마하던 무극일원심법을 포기하고, 그들의 천마신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장소가 천마신공을 익힌지 반년이 지났을 때, 원로 중의 한 사람인
혈수서생(血手書生) 이면수(李面授)가 찾아왔다. 그는 장소에게 찾아와 ‘교주님
의 무공이 일취월장하여 천마강림의 날이 멀지 않았으니 무림의 홍복이나이다’라
고 말하다가 드디어 천년마교의 비극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전대 교주이시던 천마무적(天魔無敵) 고성기(高成器) 교주께서는 말년에 천마
비고에서 한권의 절전무공을 발견하셨습니다. 그 무공은 오행혈마경(五行血魔經)
이라 하옵는데, 누구든 익히기만 하면 무림사상 전무후무한 고금제일인이 될 수
있을 정도로 패도적인 무공이었사옵니다. 당시 교주님은 나이가 어느덧 여든이
넘으셨는데…,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시고 억지로 신공을 익히시다가 그만 주
화입마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사옵나이다.”
장소가 혈수서생이라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귀가 솔깃해지는 소리였다. 이미
천마신공비급을 어느 정도 익혀 무공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생기기 시작한 터
였다. 게다가 장소가 익히는 천마강령심공은 마력을 바탕으로 익히는 신공이라
익힐수록 패도적인 기운이 심성에 들어차 저도 모르게 강함을 추구하게 되어 있
었다. 혈수서생의 말을 들어보니 익히면 고금제일인이 될 무공이 어딘가에 있었
는데, 전대교주는 늙어서 익히다가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알겠으니 결론만 속히 말하라. 그 오행혈마경 비급은 아직도 우리에게 있는
것이냐?”
장소가 묻자 혈수서생이 머리를 조아리며 마교 수신호위들과 원로들이 교를 천
산으로 옮길 때 무공비급들을 천마동으로 가져왔으니 천마동에 있을 것이라고 했
다.
“천마동은 교주님 만이 들어가실 수 있는 곳이라 있다 없다 말씀드리기가 곤란
하옵니다.”
장소는 그 말을 들은 후에 천마동에 들어가 수많은 무공 비급을 하나하나 확인
하기 시작했다.
‘왜 원로들은 이 절정마공은 권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전대 교주보다 자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장소는 열이 치밀어 올랐다.
‘두고 보자. 마공을 다 익힌 후에… 이것들을…’
마공으로 점점 심성이 사나워진 장소가 혼자 중얼거리며 이를 갈다가 손에 잡
히는 얇은 비급을 하나 꺼내어 펼쳐보니 피가 뚝뚝 흐르는 듯한 붉은 글씨로 오
행혈마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황급히 펼쳐 읽어보니 과연, 이전에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신묘한 글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장소는 그때부터 천마신공비급과 오행
혈마경의 비급만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날 밤 천산마교의 본산에서 한 마리 전서구가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한편 천산의 마교를 떠난 장가촌 일행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잇단 위기를 맞
이하고 있었다. 마교를 떠난 지 하루 뒤부터 정체를 숨긴 무림 고수들이 그들을
습격해왔던 것이다. 이무심과 장소룡의 목숨을 건 혈투로 몇 차례 위기를 넘기기
는 했지만, 장가촌 일행의 목숨은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았다. 길을 잃은 지도
이미 오래되었지만 상대는 한 달이 넘도록 귀신처럼 그들에게 따라 붙었다. 낮엔
뜨겁고 밤은 얼어붙는 듯한 추위 속에 장가촌 일행은 서서히 지쳐갔다.
“형님, 대체 어떤 놈들이 이처럼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히는 걸까요?”
천으로 한 쪽 주먹을 칭칭 감은 장소룡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무심이
고개를 흔들며 암담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별빛이 촘촘히 박혀있
었다. 대체 이들은 누굴까? 왜 자신들을 죽이려고 들까? 고향을 떠나 타지를 떠
돌며 이처럼 답답해 보기도 처음이었다. 이무심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
다’는 이름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자신들도 어쩌면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생
각했다. 많은 제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칼에 맞고, 창에 찔린 제자들이 어둠속에
서 상처를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었다.
‘장사부… ‘
이무심은 문득 장염이 그리워졌다. 장염이 아니었으면 이들은 죽어도 오래 전에
모두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익힌 태극양의검법과 천마파천권으로 지금
까지 도망 다닐 수 있었다. 살아서 다시 장염을 만나고, 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무심 최대의 관심사였다.
날이 밝아왔다. 다시 삶과 죽음의 추격전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아침에
이무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 것은 그들이 방향을 잃은 채 사막을 헤매고 있
다는 것이었다. 마교에서 준비해준 음식도 이미 바닥이 났고, 물을 먹지 못한지
이틀이 지났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정체불명의 복면인들이 아니더라도 장가촌 일
행은 사막에서 한줌 고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무심은 제자들
과 함께 모래 위를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만이 지금 그들
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무릎이 꺽여 몸을 휘청이던 이무심은 잠시 멈추고 허리를 폈다. 이미 제자들은
한사람씩 쓰러지고 서있는 사람은 장소룡과 자신뿐이었다. 그나마 장소룡도 비틀
거리다가 사막의 모래 위로 머리를 처박았다. 이무심은 가까이 다가가 장소룡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기의 몸도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쓰러
진 장가촌 사람들의 몸 위로 모래바람이 모질게 지나갔다.
“그들에게서 연락이 있느냐?”
“감사원(甘死院) 첩자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은 사막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파안대살 허극앞에 무릎을 꿇고 보고를 하는 사람은 감사원 원주였다.
허극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의 앞날을 위해서도 그들은 세상에 존재
해서는 않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소 하나만을 택했을 때부터 허극은 아무도 몰
래 마교의 살수집단인 감사원을 가동하여 장가촌 일행을 제거하라고 했던 것이
다.
감사원 원주가 그들의 사망 선고를 내렸으니 그들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비록
이유도 모르고 죽어갔을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디 세상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한 둘 이던가. 그에 비하면 그들은 죽어야
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파안대살 허극은 얼굴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장소 교주가
마교의 모든 마공을 터득하고 마교의 이름으로 군림천하 하는 것만 남은 것이다.
허극은 이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열 번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단주님…, 사람들이 사막에 쓰러져 있습니다.”
상단의 우두머리는 수하가 와서 전하는 말에 서둘러 달려가 보았다. 상단의 안
전을 위해 그들이 사막의 도적단에게 당한 사람들인지 우선 확인을 해야 하기 때
문이었다. 그가 달려가 발견한 것은 몸의 절반이 모래에 묻혀 있는 아홉 명의 중
원인들이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그들은 타클라마칸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서
서히 말라죽어 가고 있었다.
이무심이 눈을 떠서 처음 본 것은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위에
서 오가고 있었다. 꿈인가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어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 이무심에게 상단의 우두머리가 말을 걸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시오?”
“으음… 여기는…?”
이무심이 몸을 일으켰다. 서늘한 그늘이 느껴졌다. 머리 위에 천막이 길게 드
리워져 있었다.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니 장소룡과 제자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것
이 보였다.
“그들도 모두 살았소. 여기는 교하국이오. 당신들이 교하국 근처의 사막에 쓰
러져 있기에 우리가 이리 데리고 온 것이오.”
이무심은 그제서야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은인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허허허…, 내 이름은 황보장성이라 하오. 그대들은 어쩌다가 사막에서 그리
된 것이오?”
이무심이 자기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자 황보장성이 말했다.
“모든 일은 복잡한 것 같으나 실은 단순한 것이라오.”
이무심이 황보장성의 말을 듣고 그간 있었던 일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그제서
야 마음속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가장 확실한 원인이 떠올랐다. 그것은 원조
마교였다. 이무심은 본래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 동안 워낙 사태가 위급하
다보니 피하기에 급급해 미처 마교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는데, 이제 마음이
가라앉으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자신도 무가에서 자라나 무
가의 전통이 몸에 베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마교지존공
을 알고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마교지존공을 찾아 마
교를 일통 하려고 하는 때였으니 자신들이 장소처럼 반강제로 신마교에라도 영입
되는 날이면, 그야말로 마교는 영원히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림의 사정에 어두운 장염이 아무생각 없이 마교지존공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제 그 마교지존공 때문에 죽음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다.
문득 살아가는 것이 참 복잡하지만, 동시에 황보장성의 말대로 어이없을 만큼 단
순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지금은 그것 하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저희들은 이만 떠나야 겠습니다. 대인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아직 몸도 다 낫질 않았는데 무얼 그리 서두르시오?”
황보장성은 장가촌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이전 같으면 말도 안 걸어볼 내가 사
람이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저희들은 일행을 찾으러 서장으로 가던 중에 그만 사막으로 내몰리고 말았습
니다.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 서둘러 가봐야지요.”
이무심의 말을 들은 황보장성은 그들이 서장으로 간다고 하자 왠일인지 크게
웃으며 약간의 여비를 마련해 주었다.
장가촌 사람들은 그 돈으로 교하국을 돌아다니며 서장으로 갈 간단한 준비를
시작했다.
장가촌 사람들은 전부터 교하국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다. 중원에 알려진 그들
의 만행은 일반인에게까지 유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부분이 혈마사
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도, 그런 혈마사와 같이 행동하니 더불어 잔인하게 보였
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기들 눈으로 교하국에 와서보니 교하국은 상상하던 것
과 달리 작고 아름다운 무역국가였다. 사람들은 온순하고 정열적이었는데, 이들
을 보니 이 십 년 전의 일들이 거짓말 같기만 했다.
장가촌 일행이 육포와 건량을 사기 위해 시장을 지날 때였다. 길거리에 마른
음식을 펼쳐 놓고 호객행위를 하던 한 사내가 장가촌 일행을 보더니 갑자기 가래
침을 탁 뱉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뭐라고 궁시렁거리는데, 표정을 보니
욕하는 것이 분명했다. 장소룡이 어이가 없어 다가가자 그는 유창한
한어(漢語)로 당신들에게는 안판다며 비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보시오, 대체 우리를 언제 봤다고 그러는 게요? 물건은 둘째치고 이유나 알
고 갑시다.”
이무심이 씩씩거리는 장소룡을 뒤로 보내고 사내에게 물었을 때, 사내는 한참
만에야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교하국 사람들 모두가 공공연한 비밀로 알
고 있는 사실이라며 털어놓은 그의 이야기는 장가촌 일행의 얼굴을 뜨겁게 했다.
“이십 년 전 교하국 최대의 자랑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교하국의 공주님 이셨
수. 공주님은 얼굴이 고운데다가 마음씨 마저 착해 사람들은 교하국의 보물이라
고 불렀다우. 그런데 어느 날 중원에서 온 한 사내가 공주님의 침실에 뛰어들어
공주님을 겁탈하고 달아나지 않았겠수. 그 죽일 놈은 큰소리로 교하국 호위 무
사들을 비웃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디다. ‘교하국의 보물은 이미 내가 얻었으니
억울하면 하남으로 와서 나를 찾으라’나… 퇴! XXX 같으니…공주님은 그후 수
치심을 이기지 못하시고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사내의 말에 따르면, 그 일이 있은지 한달 후 교하국의 왕
은 복수하겠다고 자원한 교하국 고수 이 백 여명을 드디어 중원으로 내보내게 되
었다는 것이다. 이 백의 고수들은 하남으로 가던중 청해성에서 우연히 혈마사의
고수들과 만나 서로 뜻이 같음을 확인하고 함께 동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래
착한 교하국 고수들은 혈마사의 잔혹한 광신적인 종교행위에 염증을 느껴 그들과
결별했다. 그리고 단독으로 하남성으로 가려다가 포위하고 있던 무림맹 고수들에
게 몰살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처음 십 여 년 동안 교하국에서는
중원의 무림인들을 보면 이를 갈았다고 한다. 이제는 어느덧 사람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장가촌 일행이 주먹을 불끈 쥐고 ‘그런 죽일 놈이 있나’ 하며 욕을 해대자, 그
제서야 장사꾼은 마음이 좀 풀어져 물건을 내주었다. 장가촌 일행은 그에게서 물
건을 사고 몇 군데 더 들렀다가 드디어 서장으로 출발을 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20.정해진건없다.(1) 관련자료:없음 [12655]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01 00:57 조회:4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