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45)
23. 천리(天理)는 지켜지는가?(3)
라마승의 말이 끝나자 곧 일룡이봉삼절사검의 순서로 배를 잡아갔다. 그리고
조금 후에 전의기가 배를 움켜쥐었다. 라마승이 그들을 보다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말했다.
“흐음… 너는 어찌하여 배가 아프지 않단 말이냐?”
라마승이 장염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본래 구걸을 오래한지라 더러운 것이 뱃속에 많다오.”
“허허헛… 나는 믿을 수가 없다. 그대의 뱃속에 든 삼분요충이 왜 발작을 하
지 않는지 직접 보아야 하겠다. ”
라마승이 말을 마치자 마자 장염에게 손을 뻗어 장염의 목을 움켜잡았다.
“컥…”
“으음… 오라버니…”
장염이 신음을 터뜨리자 영화가 고통 중에도 장염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라마승은 장염을 한 손으로 들어올리더니 다른 손을 장염의 배에 푹 박아 넣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다시 손을 빼내는데 그의 손에는 피가 흥건했다.
“으윽…”
장염이 고통을 참지 못하여 마침내 입을 열자 라마승이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라마승의 손은 전체적으로 장염의 피에 젖어 붉었는데 드문드문 녹색빛
깔이 보였다.
“이 손에 피와 함께 녹색 빛깔이 나는 덩어리들이 바로 삼분요충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미 너의 뱃속에 이처럼 많이 퍼져 있는데 어찌 너는 배가 아프
지 않단 말이냐?”
오기가 치밀어 오른 장염은 이미 거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음에도 웃음을 잃
지 않고 말했다.
“벌레가 내 뱃속에 있으면 내가 잡아먹은 것인데 어째 내가 아파야 한단 말이
오. 벌레가 아파해야 당연한 게 아니겠소? 하하하…”
그러자 라마승은 웃고 있는 장염을 바닥에 던져두고 품안에 손을 넣어 작은
옥병을 꺼낸 뒤 일행에게 말했다.
“이것은 구충(驅蟲)약이다. 누구든지 그대들 중에 저자의 웃음을 멈추게 하는
자가 있으면 배에서 벌레가 나오도록 해주겠다.”
그러자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친 요승아 우리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이냐
? 소리치며 다시 배를 움켜쥐었다.
라마승은 그들이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바라보며 그저
‘허허…’하고 웃기만 했다.
그때였다. 장소가 아랫배를 움켜잡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드디어 삼분요충이
장으로 내려간 것이다. 장소가 쓰러지자 노호가 벌떡 일어나 라마승 앞으로 갔
다.
“이제라도 저자의 입에서 웃음을 멈추게 하면 벌레를 나오게 해 주겠소?”
노호가 짜내듯이 말하자 라마승은 더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호는 쓰러져서도 빙그레 웃고있는 장염의 얼굴을 한번 보더니 아무말없이 장
염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노호가 장염을 걷어차도 장염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
질 않았다. 장염은 자기를 걷어차는 노호를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장염의 웃
는 얼굴을 본 노호는 갑자기 이성을 잃고 더욱 난폭하게 그를 걷어차기 시작했
다.
“사형, 그만둬요. 윽…”
“사제… 그만둬! 정신차리게… 음…”
영화와 이청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극심한 고통
으로 노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노호는 몇 번을 걷어차도 장염이 웃고만 있자 ‘이 미친 자식아 그만 웃으란 말
이다’ 소리치며 얼굴을 발로 밟아버렸다. 그제서야 장염이 정신을 잃었고 마침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노호가 몸을 돌려 라마승을 바라보자 라마승이 노호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
라보았다.
“저자는 그대들을 구하러 온 자가 아니었단 말이냐?”
노호가 일순 할말을 잃고 허둥지둥대자 라마승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어허허헛… 오늘 그대가 중원인의 면모를 보여 줬으니 본승의 마음에 쌓인
이 십 년 원한이 눈 녹듯이 사라져 가는 듯하다.”
라마승은 원래 이 십 년 전에 중원에 갔다가 보정산에서 큰 낭패를 당하고 간
신히 살아서 도망쳐온 혈마사의 원로였다. 그의 마음속에 늘 혈마사의 보물을 훔
쳐간, 그러면서도 대인대의(大仁大義) 한 척 하는, 중원인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
이 불타고 있었는데 오늘 노호가 그 모든 원한을 일시에 해소시켜 준 것이었다.
라마승이 웃고만 있자 노호가 벌레를 없애 달라고 간청했다.
“허허헛… 내가 분명히 벌레가 나오게 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조금 후면
너희들의 심장을 뚫고 밖으로 다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니 너무 조급히 서둘지
말라.”
그제서야 노호는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알고 노라마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몇 걸음 걷지 못해 배가 끊어지는 듯 아파 오자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 후 일룡이봉삼절사검의 순서로 다시 땅바닥에 몸을 굴리며 괴로워하기 시
작했다. 그리고 곧 전의기가 따라서 뒹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흡족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라마승들의 얼굴
이 굳어져 갔다. 제일 먼저 쓰러져 죽어가던 장소가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천
천히 일어서는 장소의 얼굴에는 고통이 아닌 악마의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의 몸
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사방으로 퍼지자 라마승들이 주춤 거리며 뒤로 물러
섰다. 라마승들의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 했다. 원래 지금쯤 심
장에 삼분요충이 도착해 죽었어야 하는 사람이 저토록 강한 기세를 뿜으며 사방
을 쏘아보는 것이다.
사실 삼분요충은 사람들에게 아주 위협적인 것이었지만 그 특이한 움직임때문
에 장소에게는 별반 해를 입히지 못했다. 삼분요충의 마지막 단계인 심장이 문제
였던 것이다. 삼분요충들은 장소의 심장에 도착하자마자 심장에 모여있던 오행
혈마기에 의해 모두 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삼분요충이 오행혈마기의 마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오히려 장소의 발작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발작 주기가 짧아
질수록 장소는 거의 완벽한 오행혈마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크크크 … 본좌에게 감히 벌레를 쓰다니… 죽지 못해 안달이난 놈들이로구
나.”
라마승들의 얼굴에서 긴장이 떠올랐다. 죽어가던 장소의 전신에서 풍겨나는 기
도가 전율스러웠던 것이다. 가히 인간의 기운이 아닌 마왕(魔王)의 기운이었다.
“크크크크…”
장소가 다가오자 라마승들은 동시에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가지고 있던 쇠 지팡
이를 휘둘렀다. 쇠지팡이는 장소의 몸에 모두 적중했지만 장소의 웃음은 오히려
더 커지기만 했다.
“크하하하핫…!”
장소가 광소를 터뜨리더니 라마승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라마승들은 빛살처럼
쏘아오는 장소의 신형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펑! 펑!…”
장소와 부딪친 라마승들의 몸에서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혈육(血肉)이 비처럼 바닥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피에 몸을 적신 장소는 더
욱 광분하여 라마승들을 몰아쳐 가기 시작했다. 라마승들은 장소가 다가오는 것
을 보다가 경악을 하고 말았다.
“어헉… 마안(魔眼)이다!”
장소의 눈알은 시뻘겋게 변해 있었고 은은한 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드디
어 저주의 오행혈마인이 나타나고 만 것이다.
장소의 눈빛을 받은 라마승들은 이미 그 마기에 질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장소의 육장에 하나둘 맞아죽고 있었다. 마치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듯 장소는 굳
어있는 라마승들의 몸을 부숴 나갔다. 마침내 모든 라마승들의 몸이 터지고 장내
에 아무도 없게 되자, 갑작스런 마성의 발작으로 힘을 과도하게 사용한 장소는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장소마저 쓰러지자 어둠속에서 다섯 명의 그림자가 장내에 떨어져 내렸다. 혈
마사에 남았다가 뒤늦게 마차를 따라온 수호사령 검귀 일행이었다. 마인들은 장
소와 장내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모두 마차에 실었다. 검귀는 죽은 라마승들의
몸을 뒤져 옥병을 챙겼다. 잠시 후 네 명의 마인은 마차와 말을 연결했던 가죽
끈과 나무틀을 제거한 뒤 마차를 허공에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검귀의 뒤를
따라 바람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사라진 뒤 얼마 안되어 라마승이 장내에 나타났다. 그는 검귀 일행이
마차를 떠 매고 사라진 방향을 무심히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하늘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구나… 나무아미타혈…”
마차는 쉬지 않고 달려서 납살을 벗어나서야 서서히 멈췄다. 어느덧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장소가 제일 먼저 깨어났다. 그는 깨어나자마자 제정신이 들었는
지 복잡한 눈빛으로 기절해 있는 장염을 바라보았다.
“모두에게 구충(驅蟲)약을 주었느냐?”
“한사람에게는 아직 주지 않았습니다.”
검귀가 장소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제천혈마 장소의 의중을 알아야 했
던 것이다. 일전에도 장가촌 일행을 죽였다고 보고한 수하를 때려죽인 제천혈마
였다. 장소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염을 두 손에 안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장염이 장소의 품에서 가느다란 신음을 흘리다가 드디어 눈을 떴다. 낮선 광경
이 두 눈에 가득 들어왔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자신은 살아난 것이다.
“장소야… 네가 나를 구해 주었구나…”
장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소는 장염을 안고 묵묵히 당고랍산맥의 산을 오르
고 있었다. 장염은 다시 장소의 품에서 정신을 잃었다. 배에 뚫린 상처는 적지
않은 것이었다. 장소가 뒤를 돌아보니 걸어온 자국마다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
다.
장소는 멈춰서서 피가 흐르는 장염의 배를 잠시 내려다보다니 다시 산 위로 걸
어 올라갔다. 장염은 계속해서 신음을 흘리면서도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
다. 한참만에 장소가 산꼭대기에 올라섰을 때 추위에 떨던 장염이 정신을 차렸
다. 당고랍산맥의 고산(高山)지대에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두 사람에게 몰아쳐
왔다.
“으드드드… 장소야… 여. 여. 여기는 어디냐…?”
많은 피를 흘린 장염이 턱을 덜덜덜 떨면서 말했다.
“여기는 바로 장가촌이다…”
장염은 주위를 둘러보고 장가촌이 아님을 알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장소의 눈
빛이 심상치 않았다. 몸 전체가 추위로 계속 떨려왔다. 장소도 장염의 몸이 부들
부들 떨리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장소는 ‘친구를 위해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한
다’고 생각했다.
“다른 장가촌 사람들도 곧 만나볼 수 있을 거다…”
“그그그,… 그게 무슨 말이냐… 서.서.서, 설마, 그.그.그, 그들이…”
“그래,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지… 나를 위해 먼저 좋은 곳으로 보냈다.”
장소가 장염을 바라보았다. 문득 장염과 함께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
랐다. 함께 나무에 오르고, 물고기를 잡고, 열매를 따먹던 그 시절에는 이런 날
이 올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독해지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 게다가
이미 장가촌 사람들의 피가 장염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들이 과거
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다. 마성에 물들어 옳고 그름의 개념을
상실한 장소의 표정은 담담했다.
장염의 마음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장가촌 사람들이 죽었을 줄이야. 그
리고 장소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장소… !”
장소는 흠칫 놀라 장염을 바라보았다. 장염이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자기
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염의 몸은 더 이상 떨리고 있지 않았다. 다만 장염의 손
이 장소의 어깨를 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장소!”
장소는 친구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장염의 몸을 자욱한 운무(雲霧) 아래
로 힘껏 내 던졌다. 가거라. 부디 멀리 가서 한 마리 새가 되거라. 그리고 검진
강호에는 다시 날아들지 말거라.
“장소오오오오…”
친구 장염의 마지막 절규를 뒤로한 채 장소는 산에서 내려왔다. 장소가 홀로
내려오자 마인들은 다시 마차를 어깨에 매고 앞으로 달렸다. 얼마 후 마차안의
사람들이 깨어나는 기미가 보이자 마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일룡이봉삼절사검과 전의기는 깨어나자 마자 구충약의 효능으로 분분히 자리를
떠나 숲으로 들어갔다가, 시원해진 모습으로 다시 모였다. 장소는 일행이 다시
모였을 때, 자신도 장염을 보지 못했으며 일행을 구한 것은 마교의 수호사령이라
고 말했다.
장소의 우울한 표정을 보며 사람들은 장염이 어떻게 되었으리란 걸 쉽게 짐작
할 수 있었다. 배에 구멍이 뚫린 장염이 혈마사의 손아귀에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매화검 영화는 울며 장염을 찾으러 혼자서라도 돌아가겠다
고 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보내주지 않았다.
장소가 착잡한 표정으로 영화를 바라보다가 허공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십이 마인은 몇이나 돌아왔느냐?”
“여기에 있는 네 명이… 전부입니다.”
어디선가 검귀의 음성이 들리자 장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는 아니었
지만 혈마사에 뛰어들어 여덟이 죽었다면 그래도 만족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장염의 일까지 처리했으니 남은 것은 마교의 천하통일 뿐이었다.
전의기가 다시 일행의 길잡이가 되어 앞으로 나섰다. 분광검 이청은 장염을 찾
아야 한다고 몸부림치는 영화의 수혈을 짚었다. 그리고 영화를 안고 장소와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24.물에 미친 장소. 관련자료:없음 [12684]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04 01:01 조회:4388
24. 물에 미친 장소.
한편 장소가 산 아래로 던진 장염은 계곡 아래로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
다. 죽음이 확실한 그 순간 장염의 머릿속으로 지나온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아
기 때 아장거리며 아버지 장삼의 손에서 놀던 일, 언제나 감싸 주시던 어머니,
그리고 자라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던 일, 조금만 뛰고도 숨이 턱에까지
차서 헉헉거리던 일, 동굴 속에서 사부 진원청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일, 그리고
다시 아버지, 어머니, 동생, … 마침내 죽는 순간까지도 그리운 영화에 이르기
까지.
장염의 귓가로 가공할 만한 바람 소리가 ‘윙~’하고 울려왔다. 떨어져 내리던
장염의 몸이 계곡에 위태롭게 뿌리를 박고 있던 몇 그루의 나무와 충돌했다. 나
무는 곧 부러졌고, 정신을 잃은 장염은 부러진 나무의 잔해와 함께 아래로 계속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장염의 몸이 계곡 아래 형성된 작은 소호(沼湖)에 펑 소리와 함
께 처박혔다. 장염의 몸은 떨어져 내리던 속도 때문에 거의 소호의 바닥까지 닿
았다가 다시 떠올랐다. 순식간에 근처의 물은 장염의 피로 빨갛게 변해갔다.
그리고 장염은 다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진원청이 장염의 온몸을 사정없이 때려댔다. 장염은 몸을 비틀며 괴
로워했다. 그래도 진원청은 때리는걸 멈추지 않았다. 장염은 꿈속에서도 알 수
있었다. 진원청이 때리기를 멈추면 자기는 죽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장염의 미약한 생명력은 진원청의 계속되는 구타로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
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원래 서장은 계곡과 산에 수많은 함수호(鹹水湖)가 있다. 이것은 빙하의 침식
과 퇴적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지금 장염이 기적적으로 떨어진 곳도 그런 함수호
였다. 함수호는 보통 물보다 염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염의 몸을 물위에 띄워놓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한동
안 장염의 몸은 계곡 사이에 형성된 함수호 위에 떠있었다.
“형님, 아기자기한 산이 참 좋습니다. 공기도 시원하고…”
“그러게 말이다… 물만 좀 맘껏 마실 수 있으면 더 좋을 터인데…”
이무심과 장소룡이 제자들을 이끌고 당고랍산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벌써 한
달 이상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다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금도 당고랍산맥의 이
름 모를 협곡을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이 협곡을 지나면 청해성과 맞닿는 광야
가 나온다. 거기서도 장염을 못찾으면 다시 납살이나 사천성으로 가볼 생각이었
다.
협곡을 지난 그들이 산 밑에 형성된 몇 개의 소호(沼湖, 늪과 호수)에 도착했
을 때였다.
“형님, 아이들이 힘들어하는데 좀 쉬어 갑시다.”
이무심이 뒤를 돌아보니 제자들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잠시 목이나 축이고 다시 가도록 하자.”
이무심과 장소룡이 제자들에게 근처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겠다고 말
하자 몇몇 청년들이 소호로 뛰어갔다. 목이 말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침
을 퇘, 퇘, 뱉으며 되돌아오고 말았다. 소호는 담수(淡水)가 아닌 함수호(鹹水
湖, 빙하의 침식과 퇴적으로 생긴 염분이 많은 물)였던 것이다.
장가촌 일행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방향을 잡아 발걸음을 옮겼다.
목이 마르다며 물을 찾아 앞서 뛰어갔던 장이와 장명 두 청년이 또 다른 소호
를 발견했다. 허겁지겁 뛰어갔던 그들은 물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형, 핏물이야…”
“으… 저길 봐, 사람이 죽어 있어.”
장이는 사촌형 장명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작은 호수 한가운데 시체가 하나
둥둥 떠있었다.
장이와 장명이 장가촌 일행에게 시체가 물위에 떠있다고 소리쳤다. 이윽고 호
기심 많은 청년들 몇 명이 뛰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후 산발을 하고 온 몸
이 너덜너덜한 사람 하나를 건져냈다.
“헉… 장염이다.”
가까이 갔던 이삼인이 기겁을 하고 소리쳤다.
“장사부!”
마침내 이무심과 장소룡이 소리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장가촌 청년들도 그제서
야 배가 갈라지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사람이 장염임을 알고 크게 놀라고 말았
다. 얼굴이 뭉개져서 누군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무심이 뛰어들어 심장에 귀를 대어 본 뒤 아직 살았다고 하자, 장소룡이 장
염의 갈라진 배를 힘껏 오무린 뒤 가지고 다니던 천으로 배를 칭칭 동여맸다. 그
때부터 장가촌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장염의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계속해서
천을 갈아주고, 장염의 온 몸을 조심스럽게 문질러 주었다. 그러나 장염은 몸은
얼음덩이처럼 차갑게 식어가기만 했다.
장염은 계속해서 온몸을 두드려 대던 진원청이 손길을 멈추자 진원청을 바라보
았다. 진원청이 슬픈 눈으로 장염을 보고 있었다.
“스승님… 저는 실패했습니다… 흑흑…”
장염이 육체의 고통과 배신의 절망으로 통곡을 했다.
한참을 울고 나서 보니 진원청이 보이지 않았다.
“스승님… ”
장염이 다시 진원청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는데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렸
다.
“자네가 천리(天理)를 지킬 수 있겠나…”
장염이 고개를 들었다. 장염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죽어간 장가
촌 사람들이 보이는 듯했다. 장염이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나는 결코 죽지 않
겠다. 나는 죽지 않겠다. 장소…! 장소…!
“으음…장…소…”
장가촌 사람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 졌다. 삼 일 만에 장염의 입에서 신음소리
가 흘러나온 것이다.
장염은 다시 기절했다. 장염의 몸이 그때부터 달아올랐다. 찢기고 터진 상처들
때문에 고열이 찾아온 것이다.
그 뒤로도 장염은 몇 번이나 기절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헉헉…”
가쁜 숨이 목구멍까지 차 오르도록 달리고 있는 사람은 창절 조운이었다. 그는
지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부들부들 떨면서 정신없이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조
금전의 일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잔혹한 것이었다. 그 처참한 현장에서 누가 살
아 남았는지 모르지만 조운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니까 일행이 전의기를 따라 다시 출발한지 이 틀이 지났을 때였다. 조운은
혈마사가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지만 그토록 빨리 따라 붙을지
는 몰랐다. 일행은 숨돌릴 틈도 없이 어디선가 나타난 수 십 명의 혈승들에 의해
일행이 발목이 잡혔다. 비극은 거기서 시작된 것이다. 일행 중 싸울 수 있는 사
람이라고 해봐야 장소와 다섯 명의 마두들 뿐이었다. 포로로 잡혀있던 사람들은
내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고, 전의기는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력이었기
때문이다.
피가 튀는 격전 속에서 장소는 순식간에 마인으로 변해 버렸다. 마인으로 변한
장소는 혈승들을 모두 찢어 죽이고, 심지어는 동행하던 일행들에게도 살수를 쓰
기 시작했다. 마교의 고수들은 언제 사라졌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리둥
절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둘러보던 당효가 제일 먼저 몸이 찢
겨 죽었고, 그 다음은 달아나던 장절 위지천평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달아났던 것이다. 조운도 두 사람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
는 것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마침내 장소가 광마인(狂魔人)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
자 달아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는지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밤이 찾아온 것이다. 조운이 잠시 숨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했다. 지치기도 했지만 어둠의 장막이 자신을 숨겨줄 것이라
고 믿었기 때문이다.
‘으으으… 끔찍하다…’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이 조운이 치를 떨 때 누군가 그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
다.
“크크크큭…”
광마인 장소였다. 조운의 몸이 굳어졌다. 장소의 두 눈에서 어둠을 뚫고 혈광
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크크… 너는 아느냐? 만물은 물에서 태어났다는 걸… 두려워 말라… 크
크큭… 너의 몸 안에 있는 물이 땅에 스며들었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게 윤회요, 극락이지… 크크크 …”
“미친소리 말아라!”
조운이 소리치며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장소를 찔러갔다. 미약한 힘이었
지만 그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조가창법을 시전 한 것이었다. 장소는 움
직이지도 않고 혈광이 뚝뚝 덜어지는 눈으로 나무 끝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무는
장소의 몸을 찔렀지만 장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크크큭… 너는 자신이 물임을 모른단 말이냐… 보여주랴?”
“끄아아악…”
장소의 손이 조운의 머리를 잡고 오행혈마신공을 운용하자 조운의 몸이 오그라
들며 사방으로 피와 물이 튀었다. 잠시 후 장소의 손에 잡혀있던 뼈와 가죽이 땅
에 툭 떨어졌다.
“어리석은 것들… 만물의 생성소멸의 이치를 모르고 세상사를 논하다니… 크
크크크크…”
장소의 비웃음이 이전에는 조운이라고 불리던 한 무더기 뼈 위를 맴돌다가 사
라졌다.
새벽이 되자 후다닥 몸을 일으킨 분광검 이청은 경공이 약한 막내 사매의 손을
잡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밤 쉬지 않고 달리다가 새벽녘에 잠시 눈을 붙
였었다. 그러나 계속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광마인이 된 장소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으니 몇 사람
이라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몇 사람 중에 포함되기를 빌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영화의 손을 놓고 도망갔다면 혹시 살수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결국 그의 의협심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결과가 되고 말았다. 장소는 그 시간에
영화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청은 정신없이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직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더 달
릴 수 없었다. 앞에 장소가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서 있었던 것
이다.
“헉헉… 이 미친 녀석아, 너는 어찌 고생해서 구해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죽
인단 말이냐?”
“크크크… 고생해서 구해내려고 한 사람은 장염이고, 나는 본래부터 찾아다니
며 죽이려 했던 사람이다… 크크크큭…”
장소의 말은 사실이었다. 장염이 고생하며 그들을 찾아다니고 구해내려 애쓴
반면 장소는 단지 장염을 찾아 죽이려고 하다가 여기까지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청이 사매의 손을 놓았다. 검이 없으니, 이제 무당파 권법으로라도 광인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사형…”
초췌한 막내 사매의 얼굴이 이청의 눈에 잠시 머물렀다. 영화가 이청과 함께
장소를 대적하려 했지만 이청이 영화를 밀쳐냈다.
“가라, 사매… 달아나라. 네게 옆에 있으면 방해가 된다.”
“사형!”
“어서 가래두 그러는구나.”
광인이 된 장소는 왠일인지 영화의 앞에서 살기를 누르고 있었다. 장소는 이때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오행혈마공은 발작의 주기가 짧아지며 그 화후가 깊
어질수록 오히려 미치는 증상이 사라져 갔다. 마공은 다만 사람의 인간성을 완전
히 개조했던 것이다. 더 강하게, 더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마치 한 마리 야생의 사자가 오직 자기 자신만을 돌보듯이 장소는 점점 자기 자
신 외에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저 영화 앞에서는
어쩐지 살기가 누그러들고 있었다. 장소는 친인들에게서도 느껴지지 않던 감정이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종족번성의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다.
영화가 머뭇머뭇거리자 이청이 영화의 등을 떠밀었다. 영화가 다시 달리기 시
작했다.
‘사매, 아무래도 내가 먼저 가야 할 것 같구나…’
언제부터인가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처음에는 노호 때문에 나중에는 장씨
청년 때문에 마음 한번 제대로 줘보지 못한 사매의 뒷모습이 이청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살아다오. 너라도 살아서 무당파 사검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가 갔는지 기
억해 다오.’
이청이 장소를 향해 몸을 돌려 세웠다.
“너는 우리 모두를 죽일 작정이냐…?”
느닷없이 성큼 한발 내딛은 장소가 이청의 목을 움켜잡아 왔다.
“물 끓는 소리가 요란하구나… 크크크…”
배운신권을 펼쳐 장소의 손을 떨쳐 내려던 분광검 이청이 장소의 손에 맥없이
목을 내주고 말았다. 장소를 쳤던 손목은 충격으로 이미 부러져 있었다. 장소의
혈안이 눈앞에 보이자 이청은 눈을 감았다. 감긴 이청의 눈에 그리운 무당산이
보였다.
“뚜둑…”
장소가 목이 부러진 이청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영화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장소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품에는 정
신을 잃은 영화가 안겨 있었다.
날이 밝자 일룡 소신룡 명원은 이봉과 함께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장소가 라마승들을 찢어 죽일 때 명원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그리고 당효의 한쪽 팔이 뽑혀 나가는 순간 옆에 있던 이봉에게 ‘달아나시오’라
고 말한 뒤 뛰기 시작했다. 그의 재빠른 눈치 덕분에 이봉은 재앙을 피할 수 있
었다.
지난밤 명원은 이봉을 데리고 울창한 숲으로 깊이 숨어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밤새 숲에 숨어
공포의 밤을 보내고 이제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헉헉… 미쳤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흑흑…”
잠시 쉬려고 멈추었을 때 수도가 울며 말했다.
“맞소… 저자는 확실히 미쳤소… 게다가 더 무서운 건 그가 천하제일의 광마
라는 사실이오. 저자가 마교의 교주라 하였으니 앞으로 무림에 닥칠 혈겁을 누가
막을 수 있을지… 우선은 우리가 살아나가 이 끔찍한 소식을 전해야 하지 않겠
소.”
“일행 중에 과연 누가 살았을까요…?”
한려가 명원을 바라보았다.
명원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는 단지 당효가 찢
기는 장면만 보았을 뿐이다.
“갑시다… 이렇게 오래 쉬고 있을 틈이 없소. 그 광마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야 하오.”
명원이 두 자매를 데리고 다시 더 깊숙한 숲으로 뛰기 시작했다.
환영검 노호는 설상검 소소와 함께 달아나고 있었다. 노호는 쉬지 않고 속으로
‘저따위 미친놈에게 죽을 수 없다’고 중얼거렸다. 소소는 노호의 뒤만 줄기차게
따라갔다.
“헉헉… 사형… 좀 쉬었다가 가요…”
“살고 싶으면… 계속 뛰어…”
노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렸다. 일년만에 죽음에서 간신히 벗어
났는데 여기서 죽자니 너무 억울했다. 반드시 살겠다고 작정한 노호는 앞만 바라
보고 뛰었다. 소소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뛰어야 했다.
‘지독한 사람…’
노호는 혼자서라도 도망갈 것이 분명했다. 소소는 혼자서 사천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노호와 함께라면, 사천성 아니라 무당산까지라도 살아서 갈 수 있을 것
이라고 소소는 믿었다. 노호는 비열했지만 살고싶다는 욕망 앞에 누구보다 솔직
했던 것이다. 소소는 앞서 뛰는 노호의 뒷모습을 보며 어쩌면 자기도 노호와 같
은 부류의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형… 같이 가요… 헉헉…”
한편 모든 사람이 달아날 때 의혈단 감찰부 소속의 무영풍 전의기는 밤새도록
오히려 장소의 뒤를 밟고 있었다. 전의기는 달아나고 싶다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
며 마교 고수들과 함께 계속 장소의 근처를 맴돌았다. 처음 장소의 눈에서 혈광
이 쏟아져 나오자 전의기는 감찰부 소속의 오랜 경험으로 위험을 직감했다. 그리
고 마교 고수들을 따라 몸을 숨겼었다.
그 뒤 끔찍한 살인이 시작되었다. 장소가 혈승들 뿐만 아니라 일행들까지 눈에
닥치는 대로 잡아죽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교의 고수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다만 멀리서 장소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따라가고 있었다. 전의기도 그들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장소가 밤늦도록 사람들을 찾아내 찢어 죽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누가 보더라도 장소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 미친 장소가 지금은 정신을 조금
차린 것일까? 매화검 영화를 두 손에 안고 몸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마교 고수
들은 아직도 은밀히 뒤 따라 가기만 했다.
‘저 마두는 영화소저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
그런데 영화를 안고 뛰어가는 장소 앞에 검은 복면인이 불쑥 나타났다.
‘저건 또 누군가?’
전의기가 멀리 숨어서 보니 장소가 영화를 내려놓더니 복면인과 싸우기 시작했
다. 전의기는 장소의 마공이면 복면인이 맥을 못추고 달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는
데, 복면인의 공격에 오히려 쩔쩔 매는 것은 장소였다.
한참만에 장소를 제압한 복면인이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핫… 네놈은 아직 오행혈마공이 무르익지 않았으니 나의 대적이 되지
못한다.”
‘헉, 오행혈마공이 뭔가?’
전의기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데, 날카로운 경기가 느껴졌다.
‘커헉…’
어느새 왼쪽 어깨에 작은 나뭇잎이 박혀 있었다. 내력이 다른 마교 고수들에
비해 현격하게 차이가 난 전의기의 숨결이 그만 복면인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잠시 부르르 떨던 전의기가 황급히 신형을 날렸다.
“흥, 본좌의 행사를 구경한 놈은 살아남지 못한다.”
복면인이 중얼거리더니 전의기가 사라진 방향으로 경공을 펼치자 한걸음에 삼
사 장 씩 날아갔다. 잠시 눈을 이리 저리 굴리며 생각하던 장소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놈들아 어서 와서 본좌의 혈도를 풀지 않고 무얼 하느냐!”
그제서야 멀리서 다섯 명의 마교 고수들이 날아들었다.
“교주님, 그놈의 공력이 워낙 초절하여 감히 다가올 수 없었습니다.”
검귀가 조심스럽게 말하며 장소의 혈도를 풀기 시작했다. 의외로 복면인은 장
소를 괴롭힐 마음이 없는 듯 독문점혈법으로 점혈을 하지 않아 검귀는 수월하게
장소의 혈도를 풀 수 있었다. 장소는 전의기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보다가 말했
다.
“저자는 누구냐?”
“사천 무림맹의 전 모라는 사람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장소가 영화의 몸을 안고 다시 전의기 등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
을 날렸다.
“살아 돌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존명!”
장소는 전모라는 사람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결심했다. 어제 라마승과 싸우
다가 마기를 이기지 못해 의혈단 사람 몇 명을 죽였다. 이제 나머지를 찾아내 모
두 죽여야만 후환이 없게 생겼지만 다들 어디로 달아났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건
포기했다. 그러나 저자를 통해 자기가 영화를 데리고 갔다는 사실이 무림맹과 무
당파에 알려지게 되면 귀찮은 일이 계속 생길 것이다. 다행히 복면인은 자기를
해칠 생각이 없는 듯 하니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해서 인적이 드문 당고랍산맥에서 삽시간에 한사람을 잡기 위한 집요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전의기는 뒤따라오는 복면인을 떨쳐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공을 펼쳤다. 이미
방향을 잃은지 오래였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길이든 아니든 전의기는 상관하
지 않고 달렸다. 그러나 복면인과의 거리는 좀체로 벌어지지 않았다. 어깨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기혈의 흐름이 순탄치 않았다. 그래도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
었다. 멈추는 순간이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밤새 숲 속을 달리던 전의기는 마침내 새벽여명이 밝아 올 때 입으로 피를 토
하며 발을 멈추고 말았다. 드디어 내부가 진탕된 것이었다.
“컥…”
전의기가 다시 피를 토했다. 조금 속이 가라앉았다. 이미 경공을 펼칠 수도 없
었지만 전의기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
던 것이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25.모두내것이아니다.(1) 관련자료:없음 [12685]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04 01:02 조회:4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