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46)
25. 모두 내 것이 아니다.(1)
“으으음…”
고통스런 신음을 터뜨리며 장염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장염의 눈에 흐릿한 사
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몇 번 눈을 깜빡거리자 그제서야 얼굴이 선명해 졌다. 이
무심이었다. 장염은 ‘내가 죽었군요’ 라고 중얼거렸다. 장염은 자기가 죽어서 장
가촌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장사부, 드디어 깨어났구려… 죽었다니 무슨 말씀이시오.”
장염은 이무심의 말에 다시 몇 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제서야 온몸에 고통
이 밀려들었다.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죽었다던 장가촌
사람들이었다.
“으음… 어찌된 일입니까?”
장염이 힘들게 묻자 이무심은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사부를 찾아 처음에 사천제일루에 갔었소.”
이 말을 하자마자 이무심은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죄했다.
“우리는 그 뒤 장사부를 찾아 서장으로 가다가 길을 잃고 신강의 마교까지 가
게 되었소. 거기서 느닷없이 장소가 교주로 추대되었소. 다시 우리는 서장으로
출발했는데…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복면의 무림인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소.”
이무심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터인가 마교를 생각하면 버릇처럼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 죽어가던 우리는 마침 지나가던 대상에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다오. 그 뒤
교하국에서 다시 서장으로 오게된 게요.”
이무심은 교하국의 얘기를 하고 나서 지나가는 말로 교하국보물의 겁탈 사건
을 들여 주었다.
“얼마전 한 상인이 장사부 비슷한 사람을 전에 당고랍산맥에서 본적이 있다고
하길래 무턱대고 와봤는데… 하늘의 도움으로 만나게 되었구려…”
이무심은 서장에서 몇 달 동안 사천성 포두들과 생활하며 장염을 찾았지만 찾
지 못했노라고 말한 뒤 포두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장염의 표정이 복잡했다. 포두들의 말이야말로 노라마가
했던 말을 확인 시켜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신비의 복면인이 오행혈마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천혈사는 그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그 복면인
은 오행혈마인의 진실을 모르고 일을 벌인게 틀림없었다.
“장사부야 말로 어떻게 물에 들어가 계셨소? 배의 상처는 어찌된 게요?”
장염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서장을 떠돌아다니다가 영화를 구하고, 다시 장소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다는 얘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장소가 그럴 수가…”
이무심이 어이가 없어 중얼거리는데 장소룡이 펄쩍 뒤며 ‘죽일놈!’이라고 소리
를 질렀다. 이삼인은 입을 쩍 벌리고 장염을 바라볼 뿐이었다. 함께 뒹굴며 자란
장소가, 장가촌 사람들과 장염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장소 이놈…’
장염의 몸은 거동이 가능할 만큼 조금씩 좋아졌지만, 장염은 오히려 멍하게 하
늘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정하
고 싶지 않은 현실이 장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염이 장가촌 사람들에게 무공을 전수할 때 스스로 하늘을 대신해서라도 바른
길을 지키게 하겠다고 맹세했는데, 이제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장소는
마교 교주가 되어 장가촌 사람들을 죽이려 했고 자신은 여전히 무기력했다. 하늘
의 뜻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노라마는 자신에게 ‘천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 물
었지만 천리는커녕 자기 몸 하나 지키지 못한 것이다.
믿었던 장소가 자기를 배신해 죽이려 했고, 죽은 줄 알았던 장가촌 사람들이
나타났다. 도대체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란 무엇이란 말인가?
문득 끝내 깨달아지지 않던 경천일기공의 마지막 법문이 떠올랐다.
‘만들었으면서 자기 것으로 아니하고, 되게 해주면서도 거기에 기대지 아니하
며, 자라게 하면서도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을 가리켜 경천일기공이라 한
다.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驚天一氣功. (생이불유 위이부시 장이부재
시위경천일기공)’
어쩌면 자신이 사람들에게 바랬던 것들이, 그리고 자기 자신이 무공을 터
득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모든 것들이 경천일기공의 마지막 깨달음을 방해했던 것
은 아닐까? 무공을 터득하겠다는 집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경천일기공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져 간 것은 아닐까? 마침내 장염은 죽어가면서 까지도 자기의 모든 것
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진원청 사부처럼, 완전한 무소유 속에 경천일기공
의 마지막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장염은 진원청을 만났다. 비록 꿈속이지만 근래 들어 스승의 얼굴을
대하면 반갑고 눈물부터 났다. 진원청은 장염 앞에 언제나처럼 허허롭게 서 있었
다.
“스승님, 저도 모든 것을 제것으로 여기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
을 비우겠습니다. 원한도, 미움도… 모두…”
장염은 장소에 대한 원한과 노호에 대한 분노마저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억울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버려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버리리라. 그
리고 다시 그들을 기억하지 않으리라.
진원청은 울고 있는 장염 앞에서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장염은 스승의 검무를
바라보았다. 진원청의 몸이 점점 현란해 질 때마다 부드럽고 끈질긴 검기가 사방
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진원청이 춤추기를 마치고 하늘과 땅을 가리켰을 때
장염은 깨달았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장염의 마음에 있었다. 삶도 죽음도 고통도 진원청의 검기
도 그리고 그 빛나는 검광도 장염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것이었다. 노사부 진
원청은 애초부터 아무 곳에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장염이 다시 바라보았을 때 진원청은 드디어 안개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저
모습은 이제 꿈에서조차 만날 수 없는 스승의 마지막 모습이리라. 여덟 살 때 보
았던 진원청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제서야 장염은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 손은
땅에 다른 한 손은 하늘을 향해 벌리고 서 계신 스승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
다. 도(道)와 하나된 사람의 모습이 저런 것이로구나!
장염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꿈에서 깬 장염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자 곧
장염의 몸은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오늘에야 장염의 백회혈
에 박혀 있던 경천일기공의 공력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막았던 둑이 터진
듯 공력이 철철 넘쳐흐르자 머리위로 뜨거운 물을 부은 듯 했다. 장염이 일원무
극심법의 구결과 경천일기공의 심법을 암송하자 진원청의 평생 공력이던 그 힘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장염의 온몸 십 이 개의 경락과 기경팔맥을 관통했다. 그러자
그 동안 장염의 몸 구석구석에 녹아있던 태청단의 약효가 갑자기 발동했다. 그
두 개의 힘은 서로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임독양맥을 뚫고 장염의 전신혈
도를 누비기 시작했다. 장염의 몸에서 으득으득 하며 뼈가 마주치는 소리가 쉴새
없이 들려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장염은 드디어 무아지경에서 깨어났다. 세상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새소리. 그리고 물 흐르는 소리. 새벽의 서늘한 바람이 장염의
몸에 부딪쳐 왔다. 장염이 몸을 일으켰다. 내공이 없는 장염의 몸에 기생하던 삼
분요충도 다 타버린 듯 심신이 날아갈 듯 상쾌했다.
이무심은 새벽에 선잠에서 깨었다. 누워서 눈만 슬쩍 떠보니 희미한 여명 아래
누군가 폭포 밑에 서 있었다. 이무심은 장소룡이리라 생각했다.
‘부지런한 녀석… ‘
그러나 폭포 밑에서 물을 맞던 사내가 한 마리 용처럼 점점 폭포의 물위로 거
슬러 올라갈 때는 꿈 인줄 알았다.
‘아직 잠이 덜 깼군…’
그리고 그 사내가 폭포의 중간에서 몸을 틀어 자기 앞에 날아 내려섰을 때 몽
롱한 소리로 말했다.
“장사부요? 춥겠소…”
‘헉! 장사부?’
다시 눈을 치뜨니 장염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무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장사부! 방금… 저기서?”
이무심이 손으로 십 장 밖의 폭포를 가리키자 장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장사부, 요리는 언제 배운 겁니까?”
“이대협과 장대협이 제자들을 데리고 떠난 날부터죠.”
“그렇게 빨리 요리명인이 될 수도 있는 겁니까?”
“요리명인은 없었습니다. 요리광인이 있었죠. 하하하…”
장염의 옆에 서서 계속 묻던 장소룡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장염을 바라보
자 장염이 요리광인의 내막에 얽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이무심이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하하핫…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처음에는 장사부
를 모시고 그 요리명인에게 찾아가려 했었습니다. 아하하핫…”
장소룡은 이무심이 배에 바람들어간 사람처럼 계속 웃고 떠들자 ‘형님이 왜 저
러실까? 별일 다 보겠군’ 생각하면서도 덩달아 신이 났다.
장염은 일행에게 일단 사천성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영화가 그리로 갔을 것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가촌 일행이 당고랍산맥을 거의 벗어날 무렵이었다.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
고 사방이 흐린 가운데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큰 비라도 내릴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제부터 장염은 숲 가득히 퍼져있는 은은한 살기에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었다.
다행이 그들 앞에 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들이 통과하고 있는 숲 전
체가 마기와 살기로 뒤 덮여 있었던 것이다. 장염이 속으로 아무 일도 없기를 빌
며 일행과 함께 협곡의 소로를 빠져 나왔을 때였다.
앞쪽에서 우지끈 소리와 함께 나무가 부러져 나가며 한 사람이 날아와 일행의
앞에 떨어졌다. 땅에 처박힌 그 사람은 일어나지 못하고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
다. 온몸에 피칠을 한 사내의 얼굴을 본 장염은 놀라고 말았다.
“헉, 전형…”
“커헉… 장형… 으으으…”
그리고 뒤이어 복면인이 원래부터 서있던 것처럼 장내에 나타났다. 복면인은
당고랍산맥의 외진 숲 속에 이렇듯 많은 무림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듯
잠시 머뭇거렸다.
“모두 피하시오… 컥…”
전의기가 다시 한모금의 피를 쏟아냈다. 장염이 전의기의 명문혈에 장심을 대
고 내력을 쏟아 붓자 일순 전의기의 얼굴에 회색이 돌았다. 그러나 장염의 눈빛
은 어두웠다. 그는 회생 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것이다. 전의기가 일순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장염을 바라보았다. 장염의 내력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고 정순했던 것이다.
“하하… 장형… 장형…”
전의기가 뭐라고 말할 듯이 장염을 바라보았다.
전의기의 눈에 청소를 하고 야크의 똥을 주무르던 장염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
득 죽음 앞에서도 웃음이 났다.
“장형… 저자가… 마교… 교주에게 … 오행혈마공이 깊지 않다고…
커헉… 했소… 하하…”
전의기는 최후의 순간에 할말을 다하고 문득 웃음이 났다. 자기가 장염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결국 모두 죽게 될 터인데… 괜한 말을 했다
고 생각했다.
장염이 보니 전의기가 웃는 듯 찡그린 듯 묘한 얼굴로 숨이 멎어 있었다. 장염
이 전의기의 시체를 조용히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자 복면인은 그제서야 장염을
다시 보았다.
“흐음… 누구의 문하더냐?”
“당신은 알 자격이 없소.”
복면인은 몹시 화가 난 듯 부르르 떨었지만 곧 안정을 찾고 말했다.
“어차피 너희들은 살아서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당신은 어떻게 장소의 마공을 아는 것이오?”
장염의 뚱딴지같은 질문에 복면인이 문득 좌중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오호라… 그러고 보니 너희가 바로 장소의 일행이라는 장가들이었군… 용케
도 죽지 않았구나…”
장염이 더욱 놀라 복면인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장가촌 일행이 마교에서 나
온 뒤로 죽은 줄 알았던 것이다. 무림에서 아무도 장가촌 일행의 생사문제에 관
심이 없는데 어떻게 이 사람이 그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제 목:[연재] 천사지인25.모두내것이아니다.(2) 관련자료:없음 [12686]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04 01:03 조회:4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