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53)
28. 얻은 것은 비우라.(1)
장소룡이 황하소면을 만나 목숨을 구하고 황하수채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 장
염과 이무심은 사천성의 아미산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원래는 용마표국에 몸을
의탁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장소가 혹시라도 용마표국으로 마두들을 보낼까봐 아
미산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이무심이 장염을 업고 아미산을 오르며 말했다.
“장사부, 그들은 우리가 설마 의혈단이 있는 사천성으로 다시 돌아올 줄은 생
각지도 못할게요. 경재학은 우리가 사천으로 숨을지 상상도 못할테고, 장소는 기
껏해야 용마표국 밖에 아는 곳이 없으니 이 아미산이야 말로 우리에게는 제일 좋
은 자리인 것 같소.”
장염을 업고 아미산을 헤매던 이무심은 마침내 외딴 초막을 발견했다. 오랫동
안 사람이 살지 않았는지 초막은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했다. 이무심은 일단 초
막을 치우고 장염을 방에 눕힌 뒤 자신이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이무심은 그때부터 장염의 상세를 돌보며 나무를 해다가 아미산 아래의 마을에
팔았다. 그리고 돈이 생기면 약재를 사다가 장염에게 약을 지어 먹였다. 일단 장
염이 거동할 정도가 되야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저녁
으로 자신이 깨달은 검법을 더 깊이 연마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아들과 제자들의 원한은 내 손으로 갚는다.’
이무심은 장염이 전수해준 검법속에서 그 가능성을 찾고 있었다. 검법에의 심
득이 있은 후로 자신감이 붙은 이무심은 더욱 수련에 박차를 가하였다.
“사부님, 아미산에 있다는 이상한 사람들의 소문을 들으셨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파경(破鏡)사태는 제자 정현(正現)이 와서 하는 말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미파의 구역에서 이상한 사람들의 소문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아미산에 외팔이와 괴물이… ”
정현은 차마 끔찍해서 말을 못하겠다는 듯이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외팔이와 괴물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아미파 장문인 파진(破珍)사태의 사제이며 계율원주인 파경사태는 아끼는 제
자 정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얘가 또 심심해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온 게로구먼… ‘
파경사태는 어려서부터 아미파에서 자란 정현을 궁금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
다. 사제간에 별것도 아닌 일로 이런 식으로 얼굴을 맞댄 지 어언 이십 년이 넘
었다. 그 동안 파경사태는 어린것이 얼마나 산중생활이 지겨웠으면 저럴까 싶어
모른 척 하고 다 받아 주었던 것이다.
“사부님, 우리 아미산 아래에요… 외팔이가 방안에 괴물을 가두고 먹여 살리
고 있답니다. 두 사람이 부자지간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무서워서 혼자서는 마
을에 내려가지 않는 제자들도 제법 생겼답니다.”
“그것이 정말이냐? 괴물을 키우는 외팔이라… 만약 진짜 그런 자들이 본 산에
있다면 이는 아미파의 정기를 흐릴 수도 있는 것이야…”
그제서야 지어낸 얘기가 아닌 듯 하자 파경사태가 진지한 얼굴로 정현을 바라
보았다.
“그들은 언제부터 아미산에 있었더냐?”
“제자는 모르옵고, 소문에는 벌써 여섯 달도 더 됐다고 합니다.”
파경사태의 안색이 조금 찌푸려졌다. 몰랐다면 모를까, 이왕 알게 된 것 한번
가서 확인을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이었다.
다음날 파경사태는 마을로 다니던 평소의 길에서 조금 돌아 제자들과 함께 이
상한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다는 초막으로 향했다. 파경사태의 뒤로 세 명의 제자
정현, 정원, 정경이 조용히 따라갔다.
초막은 한눈에 보기에도 쓰러져 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파경사태는 초막
앞에서 나무를 쪼개고 있는 한 중년의 사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부님 정말 이상한 사람이죠?”
옆에서 정현이 소곤거렸다. 정현의 뒤에서 따라오던 제자 두 사람도 떠들어댔
다.
“정원(正援)아, 정말 이상하지 않느냐? 검으로 나무를 쪼개고 있지 않니…?”
“그러게요…”
정경(正敬)도 역시 이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얼굴의 중년
사내가 검으로 한 무더기 장작을 패고 있었던 것이다.
“아미타불…”
파경사태는 자기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얼굴을 돌리지 않는 사내를 향해 나직이
염불을 외웠다. 그제서야 중년의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 파경사태는 중년의 사내
를 향해 짧게 목례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처음 보는 초라한 중년의 사내에
게 먼저 인사를 했다는 사실에 약간의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사내는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마주 인사를 했다. 그의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파
경사태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일순 당황했다. 외팔이와 괴물에 대해 알아보러
왔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찌그러진 초막의 문이 덜컹하고 열리며 한사람의 상체가 내밀어졌
다.
“어멋!”
정현과 두 명의 제자들이 호들갑을 떨며 짧게 비명을 질렀다.
“어허… 너희는 이 무슨 소란이냐…”
“장사부, 왜 나오셨소? 바람이라도 쐬시려오?”
파경사태가 제자들을 행해 눈을 매섭게 뜨고 나무라자 세 명의 어린 제자들은
찔끔해서 고개를 숙였다.
‘장사부라니… 그럼 저 젊은이는 중년인의 아들이 아니라 사부란 말인가? 괴
이하다…’
파경사태는 이해할 수 없는 중년의 태도에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방에서
나온 남자는 이제 이십대를 넘긴 것 같았는데 팔다리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
다. 그가 어깨를 빼고 밖에 있는 여승들을 향해 억지로 웃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
다.
“저는 장부득(張不得, 얻지 못했다)이라고 하고, 저분은 이무심이라고 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어인 가르침이 계신지요?”
장염이 이름을 숨기며 한숨에 상대가 궁금해하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자 그제
서야 파경사태도 희미하게 웃으며 소개를 했다.
“저는 아미파의 파경이라 하고, 이 세 사람은 모두 제자들입니다. 아미산에 낮
선 손님들이 머물고 계시다는 말을 듣고 지나던 길에 인사나 나눌까 하고 들렀습
니다.”
장염이 생각해보니 손님이라는 말이 왠지 아미산에서 나가달라고 하는 것 같았
다. 낮설고 행동이 괴이한 두 사람이 아미파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 분명했다. 잠
시후 이무심도 그말이 아미산에서 나가라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파경사태를 쏘
아보았다.
‘헉…’
파경사태는 전신이 따가울 정도로 강한 살기가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몸이 굳
어지고 긴장하고 말았다. 대적 경험이 많고 무공으로 천하를 굽어보겠다던 여걸
이 이무심의 기운에 놀란 것이다. 그제서야 파경사태는 아까 왜 자신이 먼저 인
사를 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헉… 이자의 기세가 상상 이상이다.’
무형의 살기를 발출해 상대에게 위압을 줄 수 있는 경지는 심즉살(心卽殺)의
초입이다. 사람에 따라서 무형의 검기를 형상화시킬 수도 있는 지고한 검도의 경
지였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세 명의 제자들은 이 중년인의 검기를 느끼지 못한
것으로 봐서 가히 상상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 고수였다.
파경사태가 사문의 금정신공을 끌어올려 중년인이 쏘아보내는 살기에 대항하자
삽시간에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
“엇! 사부님…”
“무슨 짓이냐!”
그제서야 세 명의 제자가 이무심을 포위하는 형국으로 둘러선 뒤 검을 뽑아 들
었다. 평범하던 대화에서 순식간에 칼부림이 일어 날수도 있는 상황으로 변하고 말
았다.
파경사태는 제자들을 만류하고 싶었지만 입도 뻥끗 못하고 단지 이무심의 살기
에 저항하느라 등으로 한줄기 진땀만 흘리고 있었다.
“이대협, 나무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장염이 한마디 던지자 이무심의 전신에서 내뿜던 가공할 살기가 씻은 듯이 사
라졌다. 이무심은 그간 무림맹주 경재학의 일로 정파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
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아미파에서 핍박을 한다고 생각하자 거의 경재학에
게 느꼈던 살기가 그대로 파경사태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그제서야 파경사태도 한 걸음 물러나 다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의
고수라면 결코 무명지배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 이무심이라는 이름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너희들은 뒤로 물러나거라.”
“예.”
파경사태는 제자들을 뒤로 물리고 이무심의 앞에 섰다. 기세 싸움에서 졌다고
생각하자 파경사태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녀는 이 중년 사내의 검을
견식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년사내는 벌떡 일어나더니 말없이 나무 장작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옆에 놓아 두었던 검을 들어 무심한 표정으로 나무를 쪼개기 시작했다.
“팍… 팍… 팍…”
나무가 사내의 한번 손짓에 정확히 두 조각 나서 갈라졌다. 파경사태가 사내에
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청년이 문득 중얼거렸다.
“지니고서 그것을 채우는 것은 제때에 그침만 같지 않습니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갈아서 그것을 날카롭게 하는 것은 오래 보존할 수 없습니다.”
( 而稅之 不可長保)
파경사태가 이 말을 들으니 무슨 무학의 도리 같기도 하고 자기에게 주의를 주
는 것 같기도 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무심은 그 말을 듣는 순간 크게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다. 근래에 들어 지독
하게 고련한 자신의 검에 대해 장사부가 넌지시 지도해 주는 것이었다. 너무 날
카롭다. 자기도 근래에 들어 살기가 짙어지고 검기가 너무 날카로워 마음을 정하
지 못하고 있었는데, 장사부는 지금 길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이다. 태극양의검법
의 묘용은 결코 날카로움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음양의 조화
속에 있었다. 그제서야 이무심도 자기의 검에서 비워야 할게 무엇인지 눈에 보이
기 시작했다.
이무심이 검을 들고 멍하니 서서 허공을 응시하자 그제서야 파경사태도 젊은이
의 한마디에 지금 이 중년의 사내가 새로운 무학의 경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 저 정도의 검기를 지닌 사내가 다시 깨달아 얻을 수 있는게 남았단
말인가?’
파경사태는 자신도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왜 젊은이의 말이 자기에게는 경거망
동하지 말라는 주의로 들리고 저 중년의 사내에게는 검리(劍理)의 가르침으로 들
렸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젊은이는 중년인 보다 더 고수란 말인
가?
파경사태가 다시 장부득 이라는 젊은이를 보니 여전히 얼굴에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고, 사지조차 마음대로 놀리지 못하는 중환자였다.
“사부님, 저 사내는 왜 저렇게 멍한 얼굴로 서있죠?”
“조용히 하거라… 그는 지금 무학의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파경사태는 말을 하면서도 중년의 사내가 부러웠다. 자신도 검을 든지 어언 오
십 년이 지났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연습과 실전을 통해 이제 어느 정도 경지
에 이르렀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만 저 중년인의 기세에 눌리고 말았다. 그리
고 그 굴욕을 만회할 틈도 없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알 수 없는 경지로 저 검
사는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휴… 돌아가자.”
어색하게 서있던 파경사태가 몸을 돌리자 장염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스님, 잠시 올라와 차라도 한 잔하고 가시지요.”
“… 시주의 권고를 사양하지 않으리다.”
파경사태는 마침 두 사람에 대해 궁금하던 차라 성큼 초옥의 마루로 올라갔다.
“너희는 가까이 오되, 입도 뻥끗하지 말아라.”
“예…”
파경사태는 오늘 이 젊은이에게서 혹시라도 자기의 제자들이 어떤 배움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당부를 했던 것이다.
장염은 파경사태가 작은 마루로 올라오자 장염이 이무심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무심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몸을 장염에게로 돌렸다.
“이대협, 주인으로 손님대접이 소홀해야 쓰겠습니까? 차라도 대접했으면 합니
다만…”
장염이 자기는 몸이 불편해 움직이지 못하자 말끝을 흐렸다. 이무심에게 차마
차를 준비해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장염이 주인이라는 말에 은근히
힘을 주자 파경사태는 씁쓰름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젊은이는 보기보다 꼼꼼하군…’
“장사부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준비해 가겠소.”
“감사합니다.”
장염이 웃자 이무심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28.얻은것은비우라.(2) 관련자료:없음 [12721]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08 00:54 조회:4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