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54)
28. 얻은 것은 비우라.(2)
파경사태는 이 기묘한 두 사람에 대해 이제 추측하기를 포기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세 명의 제자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젊은 시주는 몸이 불편하신 것 같소만…”
“예. 악적을 만나 그만 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런… 쯧쯧…”
파경사태가 가까이서 유심히 다시 보니 내상과 외상 때문에 몸이 뒤틀려 있었
다.
‘이 정도의 상처를 입히려면 대체 어떤 공력이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이런 상
세를 입고도 멀쩡히 살아있는 저 젊은이의 내력은 참으로 상상도 못할 경지로구
나…’
“아미파에 골절에 좋은 속단흑명고(續端黑名膏)가 있는데… 시주께서 괜찮으
시다면 제자를 시켜 보내 드리리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장염이 고개를 숙이며 크게 기뻐하자 도리어 파경사태가 당황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아왔던 사내대장부는 함부로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더구나
자기는 이미 중년의 사내를 통해 이 젊은이의 내력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정작 자신에게 은근한 경외감마저 느끼게 했던 젊은이는 별 것 아닌 일에
저토록 머리를 조아리며 기뻐하는 것이다.
“풋…”
장염의 머리가 계속 숙여지며 황송해하자 마침내 정현이 참고있던 웃음을 터뜨
렸다. 정현이 웃자 옆에 서있던 두 사람도 함께 키득키득 대며 웃기 시작했다.
“어허…”
파경사태가 근엄한 소리를 내자 그제서야 세 사람은 조용해졌다. 그 덕분에 아
까의 살벌함은 어느덧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소협의 사문은 어찌 되시오?”
장염이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도가(道家)의 일맥(一脈)입니다.”
“아! 어쩐지… 소협의 말씀이나 저 분의 기세에서 현기가 느껴지더라니… 우
리 아미파가 비록 불가의 제자들이지만 무공의 내력으로 보자면 도문(道門)의 영
향도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
파경사태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도 쉽게 떠나지 않을 작정인
것 같은데 그나마 한결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얼마후 이무심이 가져온 차를 나눠 마시며 세 사람은 잠시 말을 잊었다.
파경사태는 차를 마시면서 내내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산사(山寺)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다도(茶道)에 대해 정통했던 파경사태였다. 그녀의
주변에서 차 마시는 사람들도 다도에 밝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차를 마시자고
청해놓고 그저 찻잎을 넣고 끓인 물을 가져와 그릇에 붓고 홀짝거리고 있었다.
중년의 사내는 훌훌 불어가며 마치 숭늉을 마시듯이 마시기까지 했다.
“후… 후… 후루룩… 꿀꺽…”
“…”
본래 차라고 하는 것은 차나무의 어린 순(荀)이나 잎(葉)을 재료로 해서 만드
는 것이다. 파경사태처럼 오래 차를 마시다보면 마침내 찻잎과 물과 불에 대한
안목이 뜨이게 된다. 다신전(茶神傳)에 보면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체(體)이나 진수(眞水)가 아니면 그 신이 나타나지 않으며 정다(精茶:眞茶)가 아
니면 그 체를 볼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 진수와 정다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차를 마시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인 탕관이나, 다관, 찻잔, 찻 상 등도 없었다.
이들은 그저 작은 소발에다가 찻물을 따라 후루룩 마시고 있는 것이다.
‘헉… 게다가 이 뜨거움이란…’
차를 맛있게 끓이기 위해서는 불의 조절이 중요하다. 흔히 문무화후(文武火候)
라고 말하는데 불의 세기에 따라 물맛과 차의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너무 쎈
불에 끓여 내오면 뜨거워서 입이 데일 뿐 아니라 맛도 느끼지 못한다. 이를 무
(武)에 가깝다고 한다. 반대로 너무 미지근하면 밍밍해서 괴롭다. 이것을
문(文)에 가깝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중년의 사내가 내온 소발의 차는 너무 뜨
거워 정말 입으로 후후 불지 않으면 마실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대협, 차 끓이는 실력이 거의 입신지경입니다. 근래에 끓인 것 중에 제일
진하군요.”
‘대체 이 사람들은 …’
파경사태는 질려서 그저 두 사람이 후루룩 마시는 것을 지켜 볼뿐이었다.
‘이건… 마치… 식사중의 입가심 같구나…’
한동안 끓는 물을 들고 조금씩 마시던 파경사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사제지간 이신가요?”
“제가 장사부에게 검술을 배우고 있소이다.”
‘…’
파경사태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내자 중년인인 기다렸다는 듯 짧게 대답했다.
파경사태가 보니 젊은 사람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그저 두 손으로 뜨거운
소발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두 분을 처음 만나는 사람이 들으면 농담하는 줄 알겠습니다.”
파경사태가 말을 애매하게 하자 장염이 빙그레 웃었다. 사실 파경사태도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시 배움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함께 앞으로 나
가려고 애쓰는 처지이니 스승이라고 달리 내세울 것 도 없습니다.”
“소협이 애쓰는 것은 무엇이오?”
“우선은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
장염은 차마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많이 싸워 보는 것입니다.’
장염은 지난 서장에서의 혈투이후로 자신이 얼마나 대적경험이 적은가를 뼈저
리게 느끼고 있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그는 단지 깨달음을 추구하고 생활무예
를 터득해 왔던 것이다. 그 동안 날선 칼로 상대의 몸을 찔러 가는 참담함에 대
해 생각하지 않았다. 반대로 누군가 칼로 자기의 몸을 찔러오는 아찔함에 대해서
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오할의 승률이 사할로 떨어졌고, 몸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게다가 장가촌의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도 그들을 구
하러 갈 수도 없었다.
장염은 경재학의 칼이 자기에게 날아들 때 마음 한구석에서 공포를 느꼈었다.
그리고 자기의 칼로 상대의 몸을 벤다는 것에 대한 주저함도 있었다. 결국 마음
껏 공격한번 못해보고 방어만 하다가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이제 몸이 회복되면, 칼을 들리라. 칼을 들고 사람을 베는 고통을 맛보리라.
몸에 꽂히는 타인의 칼날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싸우고 또 싸우리라. 장
염은 수도 없이 다짐했다. 그러나 우선은 몸의 회복이 먼저였다.
파경사태가 생각에 잠긴 장부득이라는 남자를 지켜보니 문득 욕심이 드는 것이
었다.
“시주께서 아미산에 머무르시는 동안 종종 저 세 아이들에게도 가르침을 내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 제가 어찌 감히…”
세 명의 제자들은 멀뚱히 서 있다가 파경사태의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
다. 파경사태는 아미파 무학의 자존심으로 유명했다. 아미파의 무공이면 천하를
종횡해도 거칠게 없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제
자를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파경사태는 이때 장부득이라는 사람의 속을 짚어내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크
게 감사하고 즐거워 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흔치 않은 것이다. 더구나 그
무공이 이미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 불가능을
이 젊은이는 가능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 몸에 입은 상처
를 딛고 살아있는 것 이상이나 대단한 것이라고 파경사태는 생각했다.
‘암… 저런 모습은 가히… 도인(道人)의 경지지… 무공은 둘째치고 제자들
이 저 사람의 속이라도 배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놀라는 장염을 뒤로하고 파경사태는 제자들과 함께 아미파로 돌아갔다.
다시 이무심과 장염 두 사람만의 고적한 생활이 계속 되었다. 그뒤로 장염은
종종 이무심에게 아미산의 산정에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무심이 마을로 내려가거나 사냥을 하러 집을 나서기 전이면 의례히 장염을 아
미산의 산정에 데려다 주게 되었다.
“정원아 오늘도 그 사람이 나와 있든?”
“네, 아침부터 나와 앉아 있다고 하던데요”
정원은 큰 제자 정현이 누구를 물어 보는지 알고 재빨리 대답했다. 요 근래 아
미파 젊은 제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 사람은 장부득이라는 남자 외에는 없었
기 때문이다. 그는 한 달 전부터 아미산 정상 만불정(萬佛頂)에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좌정하고 있었다.
“정원아 오늘은 우리 둘이 그 사람에게 가서 매일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 보는 것이 어떠냐?”
정원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현의 왕성한 호기심을 잘 알기 때문이
기도 했지만 실상 아미파 제자 치고 그이유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
이다. 두 사람은 함께 웃고 떠들며 아미산의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염은 그날도 아미산 정상에 앉아 사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미산은 이름 그
대로 아름다운 여인의 눈썹처럼 절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금 장염이 틀고 앉은
자리는 만불정이며 주변 봉우리는 천불정(千佛頂)이라 불렸다. 만불정 정상에서
바라보면 동남쪽으론 민강과 청의강등 양자강의 지류가 보이고, 북으론 성도 평
원이, 서쪽으론 만년설을 머리에 인 대설산(大雪山)이 들어왔다.
‘아, 얼마나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이란 말인가… 내 언제 다시 두발로 일어나
저 드넓은 세상을 마음껏 활보하고 다닐 수 있을까?’
“휴…”
장염이 뒤틀린 팔다리를 가누지 못해 거대한 바위에 등을 기대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소협, 무슨 한숨을 그리 길게 내쉬어요?”
“아… 안녕하십니까?”
장염이 예기치 않은 방문자에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일전에 찾아왔던 파경사
태의 세 제자들 중 두 명이었다.
“네, 저희들을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호호…”
“그럼요, 제가… 두 분을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
장염이 속으로 ‘내가 특별히 이 두 사람을 기억할 만한 이유는 없지…’ 라고
생각했다. 입에 발린 말은 언제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장염의 마
음도 모른 채 두 사람은 얼굴에 희색을 띄고 장염의 앞에 튀어나온 돌 위에 턱
걸쳐 앉았다.
‘오늘은 사부님도 안 계시니 궁금하던 것을 실컷 물어보고 가야겠다.’
정현이 아주 작정을 하고 장염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특별나게 잘생
기지 않았고, 그저 이목구비가 반듯할 뿐이었다.
‘이런 사람은 아미산을 내려가면 하루에도 오십 명 이상이나 만날 수 있겠다.’
정현이 아무리 신비롭게 그를 꾸며주려 해도 오십 명 이상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온몸을 바라보면 그나마 신비로움이 더해졌다. 팔다리가 줄 끊어진 꼭두
각시 인형처럼 제멋대로 뒤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보았을 때보다는
많이 나은 것이었다. 벌써 한달 전에 파경사태가 막내를 시켜 장부득이라는 사람
에게 속단흑명고를 한 항아리나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근골
이 조금씩 치유가 되고 있는 지도 몰랐다.
“소협의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군요…”
“네, 모두가 노사태님 덕분입니다. 매일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약을 쓰고
있습니다.”
스승께 감사를 하자 정현의 마음이 덩달아 좋아졌다.
“그런데 소협은 매일 이곳에 나오신다면서요?”
“네… ”
제 목:[연재] 천사지인28.얻은것은비우라.(3) 관련자료:없음 [12722]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08 00:54 조회:4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