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58)
29. 드디어 때가 찼다.(3)
영화가 장소에게 끌려 다닌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그 동안 장소는 몇 번
이나 그녀에게 난폭하게 수작을 걸었다. 그러나 영화가 자기 목에 날이 선 단검
을 들이대고 한번 더 몸에 손을 대면 자결하겠다고 위협한 뒤로는 더이상 추근대
지 않았다.
장소는 이제 마성의 발작을 자기가 조절 할 수 있게끔 되었는지 더 이상 주변
의 수하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정신을 차리고 영화를 풀어준 것도 아니
었다.
“크크 … 알겠느냐? 너는 장염을 대신해서 본좌가 거둔 것이다.”
언젠가 영화가 왜 이렇게 자기를 괴롭히느냐고 발악을 했을 때 장소가 한 말이
었다.
영화는 오늘도 난주의 천마방(天魔房)에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의 주
변에는 마교 고수들의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어 누가 들어오거나 나갈 수도 없게
되어있었다.
‘후… 장소 교주는 점점 마성에 깊이 물들어 이제는 말로 설득 할 수도 없으
니…’
영화는 처음에 장소를 설득하여 새사람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
다. 그러나 완전히 생각 자체가 뒤바뀐 장소에게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
행스러운 것은 장소가 영화에게 살수를 쓰지도, 그렇다고 폭력으로 정복하려 하
지도 않는 다는 점이었다.
‘그 미친 녀석이 왜 나에게는 그렇게 잘 대해 주는 것일까?’
영화가 몇 번을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소저, 교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시중을 드는 이매(夷昧)라는 여자가 문밖에서 조용히 말했다. 이매는 장소가
영화의 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서 천산의 마교 총단에서 데리고 온 북방 여자였
다.
‘또 시작되었군…’
영화는 작게 탄식을 터뜨리고 탁자 앞으로 가서 앉았다.
“크크… 그대는 볼수록 아름답구나.”
장소가 비릿한 웃음을 터뜨리며 영화의 앞으로 다가왔다.
“앉든지 나가 주세요.”
영화가 차갑게 말하자 장소는 히죽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대를 보면 왠지 기분이 좋거든… 아마 이런걸 천생연분이라고 말하지 않나
?”
“천생연분은 서로가 기분이 좋아야지요, 제게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딱 하나
뿐이랍니다.”
“크크 … 그가 세상에 없다면 그 다음은 본좌인가? 그렇다면 곧 본좌가 그의
소식을 전해주지…”
“그분이 세상에 없어지면 그날은 저도 없어지는 날이니 교주께서 더욱 즐거워
지시겠군요.”
‘대체 이 계집의 어디가 좋다고 나는 이 계집을 죽이지도, 마음대로 하지도 못
하는 것이냐?’
장소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강제로 정복 하려할
때마다 죽기를 각오한 눈빛이 섬뜩해서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뿐
이었다.
“본좌의 신공이 이제 무르익었으니 머지않아 무림은 본좌의 것이 된다. 그대는
천하인들의 위에 오르고 싶지 않은가?”
“저는 오직 장오라버니와 더불어 있는 것 외에는 다른 즐거움이 없습니다.”
장소의 눈에 혈광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죽이고 싶다. 저 여자의 사지를 찢
어서 하나씩 수하들에게 던져 주고 싶다. 그러나 그 생각도 영화의 눈과 마주치
면 다시 사그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장소는 오히려 그것이 기분 나빴다.
“으드드득… 본좌가 마교를 일통하고, 무림맹을 강호에서 제명시키는 날…
반드시 너를 취할 것이다. 그때도 네가 발악을 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수
하들에게 던져 줘 시간(屍姦)을 시키고 사지(四肢)를 토막내 개들에게 먹이로 줄
것이다.”
영화는 장소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신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죽어도 이 한 몸 지킬 수 없겠구나…’
“흥, 너는 이 일이 가능한가를 생각하겠지만… 본좌가 마교를 일통하는 데는
일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며, 무림맹을 제명시키는 데도 역시 일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바라건데 그 이년 동안이라도 제 앞에 나타나 주지 않는다면 감사하겠어요.”
“크크 … 너의 그 앙탈이 본좌를 즐겁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도 그러는 걸 보
니 너도 본좌가 아주 싫지는 않는가 보구나. 크크크…”
‘뭐든지 네 마음대로 생각하는 구나…’
영화가 어이가 없어 대꾸하지 않자 장소가 크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큰 깨달음이 있어 이만 연공에 들어가련다. 다음에도 앙탈을 부려다
오. 크크 …”
장소가 방에서 나가자 영화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장소가 나가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 것이다. 하루에 한 차례씩 반복되는 이 지겹고도 끔찍스런
대화가 언제까지 계속 되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암담하기만 했다. 그나마 다행스
러운 것은 저 광인의 대화 중에 장염이 살아있다는 실마리를 발견한 것뿐이다.
‘장오라버니… 속히 저를 데리러 와주세요.’
이번에는 장염에게 미안해하지 않았다. 장염은 어떻게 하든 반드시 그녀를 구
하러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영화에게 있어 장염은 그가 무공이 있든 없든 가장
든든한 배경이었다.
영화의 방에서 나온 장소는 연공실로 들어갔다.
장소는 요즘 들어 자신이 마성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행
혈마공이 깊어갈수록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던 것이다. 이미 장소는 주변의 수
기(水氣)를 끌어 모아 전대미문의 강력한 마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제 경재학
과 다시 싸움이 벌어져도 쉽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과거에는 본좌가 마기를 다스리기 위해 신경을 분산시켰기 때문에 네놈에게
어이없이 당했지만… 크크 … 이제 마성은 본좌의 성품이 되고 말았다. 더 이
상 마기를 누를 필요도 없으니 어디 이번에도 네놈이 본좌를 희롱할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장소가 중얼거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대접을 들고 순식간에 들이마셨다.
“꿀꺽 꿀꺽… 커허…”
장소의 입술을 타고 내려온 몇 방울의 피가 턱밑에 모였다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마기 때문에 이제는 연공을 쉬면 몸이 근질근
질 한 게 견딜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마공을 완벽하게 터득해 갈수록 장염에
게 한가지 절실해 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피에 대한 갈증이었다. 그 갈증을
채우기 위해 장소는 수하들에게 주변의 여자들을 잡아오도록 했다. 그리고 피를
마실 때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크크크… 나는 수기(水氣)를 모으고 있지… 그런데 어딘가에 나머지 오행의
기운을 모으는 놈들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거든… 그들의 오행혈마기가 나의 심
장을 뛰게 한다. 그렇다면 그놈들도 나의 오행혈마기를 느끼고 있을까? 왜 그럴
까? 그놈들을 만나보면 알 수 있겠지… 왜 나의 심장이 그토록 뛰는 것인지…
크크 …’
의혈단 정보부의 제갈위기(諸葛位記)는 제갈가(諸葛家)의 지하석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크하하핫… 이제 구성의 성취를 이루었다. 지난 십 년 간 인혈(人血)을 취하
지 않았으나 지난해부터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무림의 지존이 되리라 마음먹
은 이상 뭐가 양심이고 도덕이냐… 흐흐… 약자는 결국 강자에게 복종하는 법,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라지만 천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지 않던가… 인혈을 마신
뒤로 점점 오행지기가 상승하니 이제야 신공 성취가 눈앞에 보이는 구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고난과 좌절로 점철되었던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이었
다. 제갈가는 대대로 수많은 석학들을 배출했다. 관이나 무림의 변란이 생기면
중용 되었으나, 새로운 권력을 얻은 자들이 치세(治世)와 수성(守成)에 힘쓰는
동안 제갈가의 사람들은 잔혹하게 버려졌다. 더러는 죽고 더러는 좌천당해 스스
로 목숨을 끊었다.
제갈위기가 스스로의 격정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흥, 나는 반드시 무림의 지존이 되고 말 것이다!”
이십 년 전 제갈위기의 부친도 무림맹의 군사였다. 그러나 보정산에서의 결전
이후 무림맹에서 한직으로 밀려나다가 마침내 십 년 전에는 권고사직을 받았다.
“맹주로부터 이제 집무실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뭐라구요? 그들이 어찌… 우리에게 이처럼 모욕을 준단 말입니까?”
부친의 맥빠진 음성을 듣는 순간 제갈위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림맹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권력의 편에선 사람들은 아무도 제갈위기를 만나주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세상, 모두 망해버려라…’
분을 삭이지 못하고 무림맹을 돌아다니던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바로 부친
이 일하던 군사 집무실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곳을 둘러보던 제갈위기는 문득 혈
마사 무공총요라는 제목의 서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무림맹에서 이패의 무공 특
징을 연구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오행혈마신공비급을 발견했다. 물론 그 신공이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갈위기는 알지 못했다. 무공에
대해 박식하던 제갈위기는 단번에 그것이 지고무상한 신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
고 품속에 갈무리했다.
“무림을 제패하고, 우리 부자를 내친 사람들에게 쓴맛을 보여주겠다.”
그 뒤 제갈위기는 부친과 함께 사천으로 내려왔고, 사천의 의혈단에서 그를 청
하여 정보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너희가 오행혈마경의 무서움을 아느냐? 크하하핫…”
제갈위기가 스스로 묻고는 허공을 향해 광소를 날렸다.
“천하제일 석학이라는 내가 십 년에 걸쳐 터득한 이 신공의 위력을 곧 보여주
마. 감히 제갈가의 사람을 무림의 분란으로 끌어들이려는 놈이 누군지는 모르겠
으나, 네놈은 곧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제갈위기는 사천의 제갈가로 내려온 뒤 부친과의 대화를 통해 그런 무공서적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것을 알아낸 뒤 자신이 누군가의 음모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네놈이 제갈가의 자존심과 고집을 몰라서 감히 수작을 걸어온 모양인데… 오
냐… 바라던대로 천하제일의 마왕이 되어주마. 그 다음 목표는 네놈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다.”
제갈위기가 씩씩거리며 말을 하다가 지하석실에 마련된 피를 한바가지 퍼서 마
셨다. 좁은 석실은 순식간에 혈향으로 가득 찼다.
“크하하핫… 나의 인간성을 버리고 얻은 치욕스런 힘이지만, 후회하지 않는
다. 제갈가는 반드시, 반드시… 천하를 향해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제갈가의 지하석실에서 제갈위기는 입가로 흐르는 핏물을 닦아내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사천성 일대에서 지난 일년 전부터 행해온 살육
에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30.집착을 버려라.(1) 관련자료:없음 [12748]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10 00:57 조회:4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