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6)
4. 비몽사몽(非夢死夢)
장염이 와룡산에서 진원청을 만난지 어느덧 십 오 년이 지났다. 그동안 장가촌
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천주교가 삼십 여번 무너졌고, 장삼의 외아들 장염이
갑자기 미쳤으며, 가뭄이 다섯 번들었고 그 가뭄에 생긴 도적떼가 다섯 번이나
마을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중 가장 충격적인 일은 무당파 사람들이 방문했던 사건이다. 무당산
자락에 장가촌이 형성된지 수백 년이 되었지만 대무당파 장문인과 원로들이 지나
가던 일 외에 정식으로 마을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무당
파에서 일수진천 장진원이 세운 도장을 둘러보러 왔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
야 그들이 한꺼번에 마을에 내려올 일이 없었던 것이다. 무당파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와 갑자기 미처 버린 장삼의 아들 장염을 만났고, 돌아가는 길에 일수진천
장진원의 인사를 받았다.
그 덕분에 장가촌의 유명인사가 된 사람은 일수진천 장진원이었다. 그는 무당
파 장문인 춘양진인의 제자인 천(天), 지(地), 일(一), 원(元)의 네 도사(道士)
중 도천(道天)도사의 속가제자였다. 젊은 시절 우연한 인연으로 도천도사를 만난
장진원은 삼 년간 무당파 기초 심법과 태극권을 배울 수 있었다. 강호인이라면
꿈에라도 만나보고 싶어하는 것이 구대문파 장문인이다. 일반 백성들은 장문인을
만난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백성들은 그들을 신선으로 생각하기
도 했을 정도다. 그런데 그중 소림사와 더불어 위세가 대단한 무당파의 장문인에
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으니, 원무도장의 장주인 장진원의 위치는 자
연히 대단해진 것이다. 무당파 사람이 돌아간 후 원무도장의 수련생들이 두 배로
늘어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으아아악!”
깊은 밤 천주교 근처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비명이 난지 얼마 안되어
장삼의 방에 등불이 밝혀졌다.
“엄마… 무서워.”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놀란 얼굴로 이씨의 품에 안겨왔다. 이씨는 뒤늦게 얻은
딸 소영(素英)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소영은 장염이 열 세살 되던 해 가을에 태
어난 늦둥이었다. 이제 열살 먹은 소영에게 오빠 장염의 비명은 공포 그 자체였
다.
“괜찮아.. 소영아. 오빠가 좀 아파서 그러는 거야.”
“부인, 또 염(炎)이가 악몽을 꾸었나 보오.”
“어쩌면 좋습니까. 밤마다 저러니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말씀 마시오. 염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잠에서 깨면 멀쩡한걸 보고도
모르시오. 염이는 단지 악몽을 계속해서 꾸고 있을 뿐이라오. 십 년 전에 무당파
의 장문인께서 오셔서 하신 말씀을 못들었소?”
“듣기야 들었지요. 염이가 상승무공을 익힐 체질이 아닌데 억지로 무공을 익히
려다가 화병에 걸렸다면서요…”
“화병이 아니라 주화입마라는 것이오…”
“그런데 정녕 그 병에는 치료약이 없다고 합니까?”
“그렇소. 이미 신선이 되신 스승만이 그를 고쳐줄 수 있다고 하니 이승에서 사
람 구실 하기는 틀린 것 같소.”
“휴우, 제 친구들은 거의 다 성혼을 하였는데… 불쌍한 녀석… 가슴의 병이
나아서 복이다 싶더니 갑자기 저렇게 될 줄이야… 흑…”
이씨가 울먹이자 장삼이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게요…?”
“잠시 염이를 보고 오리다…”
장삼이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고개를 드니 손톱같이 생긴 달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였다. 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악!”
초승달 밑에서 장삼은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장염이 발작을 일으킨 것이 벌써 십 오 년쯤 전의 일이었다. 그때 자다
가 뛰어나온 장삼과 이씨가 장염의 방에 들어가서 본 것은 진땀을 흠뻑 흘리고
선잠에서 깬 아들의 놀란 얼굴이었다. 가위에 눌렸나 보다 싶어서 토닥거려 주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또 비명이 들렸다. 다시 가보니 장염이 악몽을 꾸었다고 했
다. 악몽의 내용인즉 이미 신선이 되신 스승께서 나타나 주먹과 손바닥과 온갖
종류의 흉악한 무기들로 자기를 찔렀다는 것이다. 장삼이 신선께 무례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야단을 치고 간신히 다시 재웠지만 그날 이후부터 장염은 매일밤 비
명과 함께 깨어났다. 그간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수없이 굿도 해봤지만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간 잠을 못 이루니 장염의 몰골은 시체와 다름이 없었다. 밤새 악
몽에 시달린 장염은 날이 밝으면 몽혼약을 먹은 사람처럼 흐느적거렸다. 십 년
전 무당산에서 내려온 무당파 장문인도 그런 장염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했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떠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 년 전부터 이틀에 한번 꼴로만
발작을 일으키더니, 금년 들어와서는 삼 사일에 한번 꼴로 악몽을 꾸는 것 같았
다.
“염아(炎兒), 잠에서 깨었느냐?”
장삼이 아들의 방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끄응…, 네에… 저는, 일어났습니다. 죄송합니다.”
“됐다. 쉬도록 해라. 그래도 이번에는 좀 오래 가는 것 같구나. 벌써 사흘이나
지났지 않느냐… 허허”
장염은 방문 앞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허허로운 음성에 몸둘 바를 몰랐다.
“아버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걱정 마시고 주무십시오.”
장삼이 돌아가는 기척이 나자 장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만
히 방문을 열어 젖혔다. 시원한 밤 공기가 폐부 깊숙히 밀려왔다. 여자의 손톱
같은 달을 보니 왠지 눈이 시려왔다.
“휴우, 사부님이 신선이 되시기 전에 전수하신 무공을 아직도 터득하지 못했으
니 어느 세월에 이 경천일기공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 지난
십 오 년간의 고련으로 일원무극심법의 법문을 깨우치고 무량검과 무당파 무공을
터득했으나…, 도원으로 드시기 직전에 보여주신 이름 모를 검무 때문에, 사부
님이 심어 놓으신 경천일기공의 공력이 풀어지질 않아서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
구나…”
사실 장염은 일찍이 무림에 유래가 없던 괴사를 겪고 있었다. 지난 십 오 년
동안 악몽에 시달리며 무공을 익혀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장염도 단순한 악몽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진원청의 음성이 또렷하게 머리 속에 기억되었
고, 몸 동작 하나 하나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급기야 진원청이 경천일기공에 관
해 언급한 말이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그가 악몽에 시달린지 한 달만의 일이었
다. 그때부터 장염은 불철주야 무공을 익혀 꿈에서 반복되는 목숨을 건 대련에
대비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편히 잠을 자고 싶어하던 그의 바램은 마침내 십
년만에 이루어져 진원청이 전수한 대부분의 무공을 소화하고 극복하게 되었다.
십 년만에 좀 편히 잘까 싶었는데 그건 장염만의 생각이었다.
그 뒤로 오 년간 진원청이 선정에 들기 직전에 보여준 그 이름 모를 검무가 그
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염이 그 검무를 극복하지 못하자 백회혈에 틀어
박힌 경천일기공의 공력은 녹지 않았다. 하루나 이틀은 그런대로 진원청의 다른
무공을 상대하며 잠을 편히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사흘이 멀다하고 나타나는 진
원청의 검무는 어떻게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악몽의 끝은 언제나 같다. 검무를
추던 진원청의 손이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순간 검이 둥실 떠오른다. 그리고 천
천히 허공을 날아온 검은 일순간 백색 광채로 변하여 장염의 몸을 관통하고 마는
것이다. 장가촌에 울리는 심야의 비명은 장염이 그때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터뜨
리는 것이었다.
“스승님, 제자가 어리석어 십 오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스승님의 무공을 익히
질 못하고 있습니다.”
달빛아래 장염의 처연한 음성이 나지막히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건 따지고 보
면 장염의 잘못이 아니었다. 진원청의 무공이 어떤 것인가? 경천동지 도문일검
이라는 외호는 거저 생긴 것이 아니다. 진원청은 백 이십 세에 신선이 되기까지
무적 고수였다. 그런 진원청도 말년에 가서야 완전히 터득하게된 일원무극심법을
겨우 이십 삼 세인 장염이 터득을 했으니 이건 기적에 가까운 일로 오직 경천일
기공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장염이 힘을 쓰지 못하고 아직도 경천일기공의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은 진원청
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반선(半仙)의 경지에 있던 진원청 최후의
심득(心得)이 무아의 경지에서 춘 검무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걸 몇 년 내에
터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장염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진원청은
자신도 모르게 추게된 검무로 인해 하나뿐인 제자가 경천일기공의 사슬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원통해서 신선이 될래야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장염, 안에 있나?”
이른 아침에 들려온 음성에 장염이 밖을 내다보니 장소와 이삼인이 싱글싱글
웃으며 마당에 서 있다. 장염은 건강해 보이는 두 친구가 마치 해바라기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두 사람 다 어쩐 일이야?”
장소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재빨리 말을 받았다.
“우리 이번에 사천(四川)으로 가게 되었어. 그곳에서 천하무림대회가 열린다
구.”
“천하무림대회?”
“아니 이 친구 완전히 촌닭행세를 하기는… 삼 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천하 무
림대회를 모른단 말야?”
나이 스물 세 살의 피만 부글부글 끓는 청년 장염이 천하 무림대회를 모를 리
가 없다. 천하무림대회는 하남에 자리잡고 있는 무림맹에서 주최하는 가장 큰 행
사였다. 무림맹은 소림, 무당, 아미, 곤륜, 화산, 청성, 점창, 공동, 개방의 구
대문파가 이십년 전에 하남에 세운 최초의 무력단체였다. 그동안 무림첩은 많이
돌았지만 실제로 한 지역에 무림맹이 세워지긴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기적같은
이 일은 이십 년 전 이패(二覇)의 대륙행(大陸行)을 저지하기 위해 구대문파가
모였을때 이루어졌다. 이패란 중원 남서쪽에 자리한 서장의 혈마사(血魔寺)와 북
서쪽 끝에 자리한 신장의 교하국(交河國)을 일컫는 말이다. 혈마사는 서장 제일
을 자처하는 포달랍궁(布達拉宮)에서도 사실상 어려워하는 사교 집단이었고, 교
하국은 비교적 내실 있는 작은 무역국가여서 두 집단이 어떻게 연합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성격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가장 먼 이 두 집단이 연합하여 대륙을 종횡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십 년 전에
혈마사와 교하국의 고수 오 백 여명이 점창파, 화산파, 곤륜파, 청성파를 파죽지
세로 몰아 붙이며 대륙을 누볐던 것이다. 그 때 무림맹을 결성한 구대문파가 그
들을 사천(四川)의 보정산(寶頂山)에서 저지할 수 있었고, 구대문파는 사천에서
번화한 낙산(落山)에 제 이의 무림맹이라고 할 수 있는 의혈단(義血團)을 세우고
각 파의 고수들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사천에 의혈단을 세운지 삼 년 뒤부터 구대문파는 사천의 의혈단을 운
영하기 위한 고수들을 강호 전역에서 초빙하기 시작했다. 자파의 고수들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강호에서 금싸라기 같은 고수를
기약 없이 문외(門外)에 둘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강호
의 고수들을 초청하여 무공 서열을 논하고, 더불어 신진 고수를 의혈단에 등용시
켜 세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파의 고수를 아끼려는 구대문파의 마음
에도 드는 것이었고, 하루아침에 명성을 얻거나 정착을 원하던 강호인들의 구미
에도 들어맞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천하무림대회는 삼 년을 주기로 하남과 사
천에서 번갈아 가며 열렸는데, 금년에는 사천에서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 삼인이와 내가 무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강호로 나가게 되었어.”
장소의 말에 따르면 이삼인과 장소는 각자 원무도장과 천무도장에서 파견하는
고수 다섯 명 속에 선발되어 무림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들유들한
장소가 은근히 장염에게 물었다.
“장염, 어때 너도 이 기회에 우리와 함께 강호를 구경해 보는 것이?”
“글세…”
“우리가 사부님께 네 얘기를 해뒀어. 먹을 음식과 경비만 조금 가지고 오면 함
께 움직여도 괜찮다고 승낙을 얻어냈단 말이야.”
장염이 머뭇거리자 여전히 성질급한 이삼인이 큰소리를 쳤다.
“야, 생각하고 말고 할게 어디 있냐. 너의 안전은 걱정 마. 우리가 누구냐. 무
정검객 장소와 무적비검 이삼인이 아니냐.”
“알았어. 함께 가자. 나도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짐을 꾸릴 테니까.”
장소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우하하핫. 잘 생각한 거야. 우리 삼 형제가 강호를 진동시켜 보자구. 그럼 함
께 가는 것으로 알고 날이 정해지면 다시 알리러 올께.”
“좋아.”
장염도 더 이상의 진전이 없던터라 차라리 이 기회에 강호에 나가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경험을 넓히다 보다 보면 혹시 어떤 깨달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날 아침 장염이 강호로 나가겠다고 하자 이씨는 울며 만류했지만 장삼은 선
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삼은 여행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기 때
문이었다. 장염은 어머니를 위로하며 반드시 병을 고쳐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
다. 병을 고쳐서 돌아오겠다고 하자 이씨도 더 이상 반대하지는 않았다. 강호에
는 신선들이 많다고 하니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사실 장가촌에서는
아무도 아들의 병을 고칠 수 없었고, 희망이 없는 이곳에 아들을 마냥 붙잡아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혼인이라도 시키면 나을까 싶었지만 장염의 미친병은 이
미 마을에 소문이 나서 매파의 발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가정을 꾸릴 희망도 없
는 이곳보다는 나가서 참한 여자라도 데려 올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이씨의 속마
음이기도 했다. 마침내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기로 한 이씨와 장삼 그리고 철 모
르는 막내 소영은 그날부터 장도(長途)에 오를 장염을 위해 집안에서 모시고 있
던 모든 신들에게 아침 저녁으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원무도장과 천무도장은 촌장이 정해준 길일을 출발 날짜로 잡았다. 그리고 그
날이 되자 장가촌 사람들 모두가 마을 앞 공터에 모여 합동으로 제사를 지냈다.
장가촌 사람들은 원무도장과 천무도장의 위용이 사해팔방에 떨쳐지고 또 모든 사
람들이 무사귀환 하게 도와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제사가 끝나자 두 도장 사람
들은 각자 부모 형제들과의 아쉬운 이별을 끝으로 길을 떠났다.
등에 봇짐을 지고 일행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장염의 귀로 아침나절 내내 신신
당부하던 아버지의 음성이 맴돌았다.
“염아, 네가 이 약속을 지킨다면 나는 죽어서도 너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남들과 절대로 싸우지 말아라. 싸우더라도 말로 싸워라. 말로 안되면 도망을 가
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지 말아라. 무공이 없으면 생명까지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의 공부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참아라.”
제 목:[연재] 천사지인 5.강호초행 관련자료:없음 [12554]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1-20 01:02 조회:4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