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69)
33.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2)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사공철과 사공화가 봉시진의 선두에 서있었다. 그리고 황
하수채의 수하들은 좌우로 나뉘어 선두를 받쳐주고, 그 밑으로 흡사 화살의 몸체
인양 청해수산 연합에서 온 고수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런 황하수채의 맞은편에 각자 자기 방파를 이끌고 온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
고 있었다.
“보시오. 저들의 서있는 것이 그 유명한 장소룡의 무적진법이오.”
흑사방의 방주 구지룡(九指龍) 자오림(字吳林)이 네 개의 손가락 밖에 없는 오
른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저 신비의 무적진을 깨느냐 못 깨느냐에 오늘의 승패가 달려 있소.”
자오림의 손가락은 본래 열 개였다. 흑도무림에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더 이
상 노름을 하지 않겠다고 잘랐다는 설과 밑바닥 생활을 할 때 노름판에서 빚을
지고 손가락을 잘렸다는 설이 있는데 본인은 스스로 잘랐다고 주장했다.
귀도방의 방주 삼살검(三殺劍) 이인명(李仁明)이 그 유명한 자오림의 손끝을
따라 눈을 돌리자 황하의 강변에 교묘하게 서있는 일단의 무림인들이 보였다. 바
로 황하수채의 수적들과 얼마 전 그 밑으로 기어 들어간 청해수산연합의 인물들
이었다.
“휴… 저 절진을 어떻게 깨뜨린단 말이오?”
“우리에게도 저 절진을 깨뜨릴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으니 심려들 놓으시오.”
자오림이 큰소리를 치며 뒤에 서있던 한 육순의 노인에게 손짓을 했다.
“두분 방주께 소개해 드리겠소. 이번에 특별히 초청한 공손선생(公孫先生)이외
다. 얼마 전에 오늘의 일전을 위하여 우리 흑사방의 고문으로 모셨소.”
“안녕들 하십니까?”
꾀죄죄한 몰골의 한 노인이 서있는 세 사람에게 허리를 굽실거리며 인사를 했
다. 이 세 사람들이야말로 청해성의 마지막 사파 거두들이었으니 그의 허리가 부
러지도록 휘어지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그의 인사를 받은 귀도방과 작살방 방주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이제 저 절진
을 상대할 군사(軍師)가 이편에도 있는 것이다.
작살방의 방주 한광우(漢狂愚)가 자우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주, 공손선생에 대해 소개를 좀…”
“이분은 군부(軍部) 출신의 병법가로 초야에 은거해 계신 것을 어렵게 찾아내
모셔온 것이오.”
공손선생은 자오림이 거창하게 소개를 하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라고 말하면
서 세 사람을 태연히 둘러보았다. 그의 초연한 모습에 세 사람은 다시 한번 깊은
감동과 함께 필승의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사실 담담하게 서있는 공손선생은 거창한 군부의 인사가 아니었다. 공
손선생이 오늘의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처절한 사연이 있다. 그는 농사를 짓다가
모집되어 장기간 부역을 하고 돌아온 운 좋은 노병(老兵)이다. 그는 부역을 나갔던
시절에 단 한번 싸움 비슷한 것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지휘관이
근처의 도적들을 토벌할 때였다. 지휘관은 그때 진법을 사용해서 도적들을 토벌
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공손선생의 가슴에 인상깊게 남아 있었다.
공손선생은 그후 귀향했으나 이미 땅이 남의 손으로 넘어간 뒤였다. 가족들도
오래 전에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 찾을 길이 막막했다. 결국 다시 집을 떠난 그
는 정처 없이 유랑하다가 청해성까지 오게 되었다. 청해성에 자리잡을 때 과거를
조금 미화시켰는데, 그게 그만 절박한 자오림의 귀에까지 흘러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 이력을 가진 공손선생이 이 자리에서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차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인생의 허무 때문이었다. 이미 칠십이 넘은 공손선생
은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공손선생은 문득 자오림을 보며 그가 처음 자신의 움막을 찾아 왔던 때를 기억
했다.
“공손선생, 이 추한 세상을 위해 한번 더 신기막측한 실력을 보여 주시기를 바
라오.”
“미안하외다. 이미 세상에의 미련을 버렸소이다.”
공손선생은 자오림의 청을 필사적으로 사양했지만 결국 그의 고집 앞에 뜻이
꺾이고 말았다.
‘그래… 이래 죽어도 죽을 날이 가깝고 저래 죽어도 죽을 날이 가깝다’
공손선생은 어차피 나이 칠십이 넘어 인생의 마지막까지 온 셈이라 여한이 없
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따라 나서면서도 내심 믿는 것이 하나 있었
으니, 그것은 그의 뇌리에 깊게 남아있는 학익진(鶴翼陣)이었다.
과거 지휘관은 이 학익진으로 삼십여명의 도적들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었다.
물론 동원된 군졸의 숫자는 무려 오 백 명이었지만 말이다.
느긋하게 인사를 마친 공손선생은 무리들을 좌우로 길게 벌렸다. 이미 서로간
의 간단한 접전이 벌어진 뒤라 남은 것은 전면전 밖에 없었다.
공손선생이 큰소리로 ‘전진’이라고 외치자 삼 개 방파의 무리 팔 백 여명이 학
이 날개를 펼친 형세로 황하수채 사람들에게 밀려들었다.
맞은편에서 장소룡도 큰소리로 ‘발진’이라고 외치자 무리들이 즉시 봉시진의
형세로 앞으로 쏘아갔다. 두 무리가 한쪽은 넓게 다른 쪽은 활 끝같이 쏘아오는
데, 그만 학익진이 뚫리고 말았다.
학익진이란게 원래 싸움이 벌어지면 적당히 안쪽으로 상대를 쓸어 담고 양쪽을
오무려서 포위 섬멸하는 것인데 공손선생은 그런 오묘한 이치를 알지 못했다. 선
두(先頭)와 일진(一陣), 이진(二陣), 삼진(三陣)이 시간과 형국에 따라 진세의
모양을 변화시켜 상대편을 차곡차곡 안으로 쓸어 담았어야 하는데, 공손선생이
펼친 학익진은 그저 밋밋하게 이중으로 밀고 올라가는 형세였던 것이다.
한편 장소룡도 멀리서 무너져 내리는 봉시진을 바라보며 기겁을 하고 있었다.
‘어어… 어찌 저리 움직인단 말인가… 진법이 깨진다.. 어… 어…’
한줄기 화살 같던 진이 끊어진지 오래지만 이미 전장은 손쓸 도리가 없는 상태
였다. 사공철과 그 수하들이 바람처럼 앞서 달리니 뒤에서 받쳐줄 틈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봉시진도 사공철의 수하들이 황하수채의 본진에서 떨어져 두 무리
가 정면을 향해 돌진할 뿐이었다.
한편 봉시진의 선두에선 사공철이 한 마리 야생마처럼 정면을 향해 달려드는데
감히 그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조자룡이 백만대군을 가르고 달려가듯
사공철이 본진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오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게다가 사공
철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틈에 그의 좌우와 뒤로 삼십여명의 고수들이 따
라붙어 있으니 자오림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이 병신들아… 팔 백이나 되는 것들이 저기 다가오는 저 놈들을 막지 못한단
말이냐?”
자오림의 호통에 근처에 남아있던 수하들이 찔끔했지만 이미 세 개 방파의 사
람들은 태풍을 만난 배처럼 사방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아홉 개인 지렁아. 이리 와서 목을 바쳐라!”
사공철이 특유의 야유로 구지룡 자오림에게 소리를 치자 자오림이 마침내 분노
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뛰어 나갔다.
“이 XXX 야, 어디 네놈의 그 칼이 얼마나 잘 드는지 오늘 봐야겠다.”
자오림이 마주 욕설을 퍼붓고 둘이 마주쳤다. 사공철은 자오림을 빨리 처리하
고 다른 두 개 방파의 수뇌를 잡아야 하기에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 부쳤다.
자오림의 대두도가 사공철의 허리를 쓸어오는 순간 사공철이 새처럼 훌쩍 몸을
띄웠다. 그리고 머리를 아래로 하여 빙글빙글 회전하며 자오림에게 검 끝을 들이
밀었다.
“어딜!”
자오림이 고함치며 분명히 대두도로 걷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사공철의
검끝이 자오림의 턱밑에서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사공철이 목을 베려다가 생각
을 바꿔 황급히 진기를 되돌리자 자오림의 검 끝이 떨리고 있는 것이었다. 단 일
초만의 승부였다.
“수하들을 이끌고 채주님께 머리를 숙이겠느냐? 아니면 무거운 머리를 내려주
랴?”
“내… 본시 한번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지키지 않은 것이 없는 사내
대장부요…”
“그래서…?”
사공철이 죽겠다는 건지 살려 달라는 건지 갈피를 못 잡고 되묻자 자오림이 말
했다.
“황하수채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말이오.”
“오냐, 그렇다면 네 수하들을 모두 불러모아라.”
사공철이 말하고 근처를 둘러보자 멀리 귀도방주 이인명과 사공화가 싸우고 있
었다. 사공철이 작살방의 한광우에게 크게 소리쳤다.
“네놈은 어쩔 테냐?”
한광우가 둘러보니 수하들은 저 멀리서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데, 근처에는 어
찌된 일인지 황하수채의 사람들만 바글거렸다.
“나도 흑사방 방주와 기본적으로 생각이 같은 사람이오.”
“그럼 너도 네 수하들을 불러모아라.”
사공철이 짧게 말을 끊고 사공화에게 달려가자 이미 전의를 상실한 이인명이
검을 바닥에다가 슬며시 내려놓았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33.이루는것은하늘이다.(3) 관련자료:없음 [12772]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13 00:53 조회:4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