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79)
36. 스스로 옳다하는 자는 빛나지 않는다.(3)
의혈단 정무부장 두 사람은 철검대 대주와 함께 늦게까지 장내에 남아 있었다.
철검대 대주 이검한이 마당을 바라보며 뜻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마당에는 제
갈가의 식솔들 사십 여명의 시체가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의혈단의 정보부장은 이검한을 힐끗 바라보다가 손을 털어 내며 생각에 잠겼
다.
‘왜 나는 저들의 죽음을 모른척하고 보고만 있었을까… 무엇이 옳고 그른 것
인가…’
폐허가 되어버린 고월산장을 돌아보니 문득 제갈위기나 자신들이 별반 다를 바
가 없지 않은가 하는 자책이 들었다.
‘내 마음에도 이와 같은 폭력이 있었다니…’
정보부장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미 폐허가 된 제갈가를 다시 바라보았다. 고
월산장은 군데군데 타들어간 흉칙한 모습으로 가을 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만 돌아가서 대책을 의논해 봅시다.”
철혈대 대주의 말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불현듯 정신을 차린 두 명의 정무 부장
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자리를 벗어났다.
의혈단의 사람들이 모두 철수하자 더 이상 장내에는 남은 사람이 없었다.
제갈가의 멸문은 사천성 곳곳에 순식간에 퍼졌다. 사람들은 폐허가 된 고월산
장의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시체를 그대로 방치해 두어서 낮에도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고월산장에 감히 밤에 다가갈 정도로 담력이 강한 사람은 없었다.
사실 무림인들이 그날 밤 제갈위기와 조우하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제갈위기가 아미산에서 빠져 나온 날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청성산
으로 갔기 때문이다. 찢어지고 피에 절은 옷차림도 문제였지만, 완전히 고갈된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정체가 드러난 이상 마력을 일정수위 유지해야 한
다는 본능이 청성산으로 우회해서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제갈위기는 청성산에서 한사람의 피를 흡혈한 뒤 잠시 눈을 붙였는데 일어나
보니 어느덧 새벽이었다. 그 반나절의 차이가 제갈위기의 가슴에 한으로 남게 될
줄이야! 다음날 아침 고월산장으로 돌아온 제갈위기는 타다 남은 잔해 속에 웅
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버지… 그때 아버지의 말을 들을 것을… 제 죄가 큽니다. 뜬구름 같은 공
명(功名)에 연연해 부모를 죽이고 가문을 몰살시켰으니, 수 백 번 죽어도 이 죄
값을 다 치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불효자식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어머
니… 그리고 누님… 저는 죽어도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다시 뵙지 못할 것입니
다…’
제갈위기는 본채의 무너진 벽과 벽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사흘 밤낮을 울었다.
눈물이 마른 제갈위기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제갈위기는 마당에 쌓인
식솔들의 찢기고 터진 시체를 보며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하나씩 지우고 있었다.
“이것이… 너희들이 말하는 무림의 정의란 말이냐…”
제갈위기가 혈안(血眼)으로 처참한 가족들의 시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
렸다. 무공을 모르는 가족들 전부가 무참히 살해된 것이다.
“오냐… 너희가 바라는 진정한 무림의 정의를 가르쳐 주마… 크하하핫…”
제갈가의 폐허 위로 광기와 공허로 가득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한편 사공 남매는 복호사에 보름 가까이 머무는 동안 나름대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남매는 각각 어깨와 허리에 부상을 입었지만 겨우 거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몸을 움직여 하루라도 빨리 건강을 되찾고자 했다.
사공화는 허리에 천을 몇 겹으로 칭칭 두르고 검식을 연마했고, 사공철도 어깨를
천으로 동여매고 한 손으로 검식을 연습했다. 그런데 바로 그 연무의 과정에서
장염과 두 남매 사이에 묘한 갈등이 생긴 것이다.
“화야, 너는 대체 왜 그렇게 장소협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거냐? 아
무리 그래도 그는 우리 사부에게 무공을 가르친 사람이 아니냐?”
복호사의 연무장 구석에서 사공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사공화를 바라보
았다. 첫날밤과 그 다음 날, 그리고 그 이후에도 사공화는 장염을 볼 때마다 옆
에서 보고있는 사공철이 무안해 질 정도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건 그와 나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그는 우유부단하고 무엇이든
불분명한 사람이죠. 나는 그런 사람들의 옆에 있으면 심리적으로 고통을 느껴요.
자신이 우리의 조사가 분명한데도 그는 자기를 내세울 줄을 몰라요. 그 결과 오
라버니와 제가 사백님께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잖아요. 자기가 조금 어색하더
라도 후배들을 위해 어려운 자리에 처할 줄 알아야 어른스러운 것 아니겠어요?
그는 그런 점에서 많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식의 생활 태도는
제가 받아들일 수 없으니 차라리 마주치지 않는 게 낫죠.”
사공화가 분하다는 듯이 씩씩거리며 사공철을 바라보았다.
“너야 원래 성격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럴지 몰라도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매사에 확실한 태도로 사는 건 아니지 않냐? 나는 장소협의 그런 두루뭉실한 점
이 좋아 보이기도 하는데 너는 어째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려고 하냐?”
“그게 어디 두루뭉실한 거예요? 우유부단에 무능한 거지… 아까도 제가 완전
히 익히지 못한 뇌화풍비의 초식을 펼치고 나서 ‘잘못된 점을 가르쳐 주세요’ 라
고 했더니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나도 들었다. ‘보기 좋다’라고 하지 않았냐.”
“흥, 나는 아직 뇌화풍비의 서른 여섯 가지 변화 중 열 아홉의 변화밖에 터득
하지 못한 상태라구요. 그런 사람에게 보기 좋다는 말 한마디로 가르침을 끝내다
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사공철은 머리를 긁적여 보았지만 뭐라고 더 이상 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동
생은 본래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에 대한 태도가 분명해서 한번 마음을 정하면
좀처럼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무공을 머리로만 터득한 사람인지도 몰라요. 그의 몸을 보세요.
어디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사람 같아요? 운이 좋아 어디서 태극양의검법의 검보
를 얻은 뒤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는지도 모르죠.”
사공철이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였다. 과연 그러고 보니
장염이라는 사람은 무공을 익히기에 마땅치 않은 사람이고, 가르침을 내리는 데
도 매우 납득이 가지 않았다.
두 남매는 복호사의 무승들이 장염에게 무공을 배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도 역시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외부인이 어떻게 한 문파의 무공
사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어차피 외부인이라 아미파의 무공을 볼 수 없
었기 때문에 무승들이 무엇을 어떻게 수련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러니 자기들
에게 대하는 장염의 모습만 보고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두 남매는 장염이 비급을 외워서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묘하게도 두 사람의 마음이 매우 편안해 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너도 이제 장소협에게 좀 잘 대해 주거라. 어쨌든 그가 아니면 우리가
어디서 이런 상승의 절학을 배울 수 있었겠느냐?”
“그건 오라버니의 말이 맞아요. 적어도 그는 그런 점에서 큰공을 세웠죠. 그러
나 그의 얼굴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니 저는 잘 대해 드리긴 틀린 것 같아요.”
‘휴우…’
사공철이 다시 한번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저었다. 사부는 일찍이 ‘조
사를 만나면 너희에게 무한한 복이다’ 라고까지 말했는데, 막상 만나고 난 지금
그들은 큰 실망과 함께 말못할 마음속의 부담만 잔뜩 떠 안고 만 것이다.
이무심은 두 남매가 장염에게 대하는 태도가 아주 못마땅했다. 일찍이 장가촌
젊은이들도 장염에게 친구나 형처럼 대해서 얼마나 야단을 쳤었던가. 그나마 그
들은 장사부라고 부르며 장염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은 했다. 그러나 저 두 젊은
이들은 장염과 아무런 교분도 없었으면서 일방적으로 장염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다.
‘고얀 것들…’
한편으로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데 조사라고 대우하
려니 얼마나 어색할 것인가. 그것은 일찍이 장가촌 젊은이들이 장사부라고 부르
면서도 호형호제(呼兄呼弟)하던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염의 무공경지와 삶의 깊이를 아는 이무심으로서는 철없
는 두 젊은이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스로 자기 복을 걷어 차 버리는 것이지… 젊다는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
군… 쯧쯧…’
이무심은 하루에도 서너 차례 찾아오는 두 남매를 볼 때마다 괘씸함과 측은함
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어색하지만 비교적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장염 일행에게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의혈단의 정무부장 두 사람이 철검대 삼 개조를 이끌고
아미파를 찾아온 것이다.
“장문인, 일전에 보내주신 서신에 대해 단주께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
니다. 아미파가 아니었으면 사천의 혈사는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덕분에
범인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찾아서 잡을 일만 남았습니다. 관부에도 제갈위기에
대해 알려 줬으니 사천성에서 그가 발붙일 곳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의혈단과 사천성의 무림인들이 한 일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신속하
고도 끔찍하게 일 처리를 하셨더군요.”
차분한 파진사태의 말에 정보부장의 안색이 붉게 물들었다.
“워낙 살인마가 무림의 공분을 사고 있던 터라 막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험…
이번에 아미파를 찾아 온 것은 몇 가지 확인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무엇이 알고 싶으시오?”
“혈마사에 관계된 일을 그토록 소상히 알고 있다면 일전에 서장에서 살아 돌아
온 사람들이 아미파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요?”
“저희가 아미산 일대의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본 결과 아미파에 새로운 분들이
몇 계시다던데… 그분들을 잠시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파진사태가 잠시 생각하다가 옆에 앉은 파경사태를 바라보았다.
“사매의 생각은 어떠시오?”
“장문인 그렇게 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대협은 누워 계시니 어렵겠고,
장사부는 거동이 가능하시니 모셔오라고 할까요?”
“우리가 어려울게 뭐가 있겠소. 장사부가 어렵다면 모를까… 무림맹의 요구가
저처럼 분명하니 우리가 거절할 수는 없겠구려. 제자를 시켜 장사부를 모셔 오도
록 하시오.”
파경사태가 밖에 있던 제자를 불러들였다.
“정현아, 네가 가서 장사부를 모시고 와야 겠구나.”
“네, 사부님.”
정현이 생각해보니 지금이 점심나절이니 그렇지 않아도 장사부가 금정사에 들
릴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부의 명령이 떨어지니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
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37.하늘의그물은놓치는것이없다.(1) 관련자료:없음 [12825]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18 00:50 조회:4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