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83)
38. 의혈단의 세 손님.(1)
향이(香二)가 집을 떠나 의혈단의 시녀로 들어온 지 십 년이 되던 날이었다.
십 년 전 대홍수로 장강의 물이 범람하고 그해에 기근마저 들어먹고 살기가 힘들
어 졌을 때 향이의 부모는 그녀를 의혈단의 하녀로 들여보내 연명하게 했다. 집
에 있어봤자 굶기를 밥먹듯이 했으니 차라리 딸이나 가족을 위해서도 그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그녀의 나이 열 여섯 살이었다. 사람들은 그
녀가 처음 의혈단에 왔을 때는 너무 마르고 작아 열 두 세살 정도로 밖에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의혈단에 자리를 잡고 먹을 것을 제때에 먹으면서 향이는 몰라보게 달
라져 마침내는 의혈단을 처음 방문하는 젊은 사람들은 그녀가 하녀인지도 모르고
슬쩍 다가와 사문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향이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의혈단의 하녀인 향이라고 하옵고 구태여 사문을 말하라시면 주방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쯤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말도 않고 자리를 황급히 떠나갔다. 무림의
전도가 양양한 젊은 공자가 미색이 고운 하녀와 노닥거리다가 누군가의 눈에라도
뜨이는 날이면 고약한 소문이 돌 것이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에 향이는 젊고 멋있는 공자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줄 때 가슴이 뛰
기도 하였으나 곧 그 뛴 가슴만큼의 자괴감을 맛봐야 하는지라 나중에는 스스로
젊은 사람들은 피해 다닐 지경이 되고 말았다.
“향이 언니, 소식 들으셨어요?”
향이가 의혈단의 대 회의실인 경천관(敬天館)을 청소하다가 자기에게 말을 거
는 소월(素月)이를 바라보았다. 소월이는 삼 년 전에 들어온 새내기 하녀였다.
“무슨 소식을 말하는 거니?”
“어제 밤에 객실에 젊은 손님이 하나 들었답니다.”
의혈단은 손님도 많고 객실도 많으니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향이가 의아하다
는 얼굴로 소월이를 바라보자 소월이가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그 사람이 바로 몇 달 전부터 현상금 붙어 있던 사내라지 뭡니까? 그런 사람
을 왜 객실에 묵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수옥(囚獄, 감옥)에도 빈자리가 많은데
말이예요. 어디 무서워서 객실에 심부름 다니겠어요?”
“사정을 모르면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원가 이유가 있으니 그리된 것이
아니겠니?”
“흥, 이유래야 뻔하겠죠. 뒤를 봐주는 든든한 사람이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어
요? 우리가 그런 사람을 어디 한두 번 보나요?”
향이가 소월이를 보면서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자 소월이가 신이 난 듯
늘어놓기 시작했다.
“원래 지체 높은 분들의 자제가 못된 짓을 하다가 걸려들면 객실에서 몇 일 머
물다가 슬그머니 사라지잖아요. 저도 눈과 귀가 있어서 다 안다구요. 그렇게 생
각하면 수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차라리 양심적인 사람들 같아요.”
의혈단에는 종종 사천성에서 못된 짓을 한다거나 각 문파에서 수배령이 내린
사람들을 잡아 포두들에게 넘기거나 자파에서 데리러 올 때까지 가둬두곤 했다.
그들은 대부분 도둑질이나 살인 또는 채화음적의 짓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문의 배경이 없는 사람들은 수옥으로 든든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은 객실로 보내졌다. 그리고 객실에 있던 사람들은 포두에게 넘겨지기 전이나 문
파의 고수들이 오기 전에 어디론가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꼼짝도 못하
고 잡혀 들어가는 사람들은 오직 수옥에 갖혀 있던 사람들 뿐이었으니 소월의 말
이 전혀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후훗… 그렇다면 그가 누구를 사귀는지 보고 나와 함께 내기를 하는 것이 어
떠냐? 지금 그가 묵고있는 방이 몇 호더냐?”
“십 칠 호라고 들었어요.”
“그래? 더 잘됐구나. 일찍이 그 사람의 주변을 보면 그 사람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마침 맞은편의 십 일호와 십 이 호에 각각 도둑과 채화음적이 머물고 있으
니 그가 도둑을 사귀면 도둑이고, 채화음적을 사귀면 색마일 것이다. 그러나 아
무도 사귀지 않는다면 그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 어떠냐?”
소월이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되물었다.
“언니는 어디에 거시겠어요?”
“나는 그가 죄가 없다는 데에 걸겠다.”
“그렇다면 저는 그가 죄인이라는데 걸 테니 그 두 방중 한사람과 사귀면 제가
이긴 걸로 하죠. 내기는 무엇으로 하실 건가요?”
향이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우리는 마땅히 걸만한 돈도 없으니 한 달 동안 대청을 혼자 청소하는 것으로
정하자.”
“좋아요. 언니는 오늘의 내기를 잊으시면 안되요.”
소월이 신이 나서 떠들다가 경천관의 청소가 끝나자 객실 쪽으로 걸어갔다. 청
소도 청소지만 이제 새로 들어온 현상 붙은 사나이가 누구와 친해지는가를 관찰
해야 하는 것이다.
장염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밤새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르지
만 몸이 매우 무겁고 피곤했다.
장염이 일어나 정신을 겨우 차리는데 삼십대의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문을 몇
번 두드리더니 실내로 들어왔다.
“아 이거 아침부터 불쑥 찾아와 미안하오. 어제 밤에 새 식구가 들어 왔다고
하길래 누군가 궁금해 하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이렇게 찾아 온 것이오. 나는
유달산(柳達山)이라 하오.”
유달산이란 사내는 자기 이름을 말하고는 장염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저는 장염이라고 합니다.”
장염이 이름을 말하자 유달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과연 소협이 그 유명한 장염이라는 사람이었구려.”
“제가 유명하다니요?”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모른단 말이오? 의혈단에서 몇 달 동안 백 여
명의 고수를 사천성 곳곳에 보내고도 찾지 못한 사람이 바로 소협이오. 나는 소
협의 그 유능함을 존경하는 사람 중에 하나라오.”
장염이 일순 상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멍한 얼굴로 바라보자 유달산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핫… 나는 겨우 칠 주야를 숨어 다니다가 잡혀 이리로 왔소. 그러니 소
협이 어찌 대단해 보이지 않겠소.”
그의 웃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문이 열리며 한사람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장염이 그를 바라보니 이십대 후반의 남자였는데 얼굴이 여자처럼 곱고 단정했
다. 그는 생긴 것과 달리 유달산을 발견하자 즉시 낮 간지러운 웃음을 흘리며 실
내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으흐흣, 유형님이 들어와 계신 줄 알았으면 진작에 저도 들어올걸 그랬습니
다.”
“하하… 박아우, 어서 이리 앉게.”
잘생긴 사내는 유달산을 보며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더니 장염의 옆으로 다가왔
다.
“안녕하시오? 나는 박달재(朴達才)라고 하오. 부모가 재주에 통달하라고 이름
은 지어 주셨으나 아직 많이 미흡하여 소협과 만나게 되었구려. 하하핫…”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장염이라 합니다.”
“이미 알고 있소이다. 이름과 달리 미천한 재주 덕분에 오늘에야 흠모하던 장
형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지요.”
장염이 자기를 흠모했다는 박달재의 말을 들으며 이 사람은 왜 나를 흠모했다
는 것일까 생각하는데 박달재가 그 묻지도 않은 이유를 소상히 털어놓았다.
“이 계통에서는 삼다(三多)가 있지 않겠소.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처절
하게, 또 얼마나 요란하게… 일을 저질렀는가가 그의 위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소협은 비록 나이는 젊으나 많은 고수들을 처절하게 해치우는데
일조(一助) 했소. 그뿐 아니라 그토록 오랜 기간동안 사천성 곳곳에 숨어 지내며
이름마저 드날렸으니 장형을 만난 것이 어찌 나의 자랑이 아니겠소.”
장염이 할말을 잃고 물끄러미 박달재를 바라보니 박달재가 헛기침을 하며 유달
산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은 나를 경재학이 떠벌린 대로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장염이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앉아있자 유달산이 입을 열었다.
“박아우, 자네의 집에서 언제 사람을 보낸다던가?”
“아마 이 삼일 안으로 당도할 것입니다.”
“허… 귀주성이라면 멀지 않은 곳인데 어찌 그리 늦는 건가? 나야 집안이 워
낙 멀어 지체된다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유형님은 언제쯤 나가시는 겁니까?”
“나야 하북성이니 아직 나갈 날이 멀었네. 집안에서 사람이 온다고 기별 온지
가 한 달이 넘어 가네 만… 총관이 오다가 급사(急死)를 했는지… 영 소식이
없구먼.”
장염이 문득 두 사람의 말을 듣다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유달산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두 분의 말씀을 듣자하니 집안 사람을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왜 스스로 찾
아가지는 않으십니까?”
“하하핫… 알고 보니 아주 재미있는 소협 이었구먼…”
유달산이 웃자 박달재가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소협, 이미 의혈단의 객실은 사방에 지키는 무리가 많아 소피를 보려고 해도
두 세 명은 달고 다니는 마당인데 어찌 마음대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이오.”
“왜 두 분을 지키는 것입니까?”
“하하핫… 장소협. 모르고 묻는 건지 알면서 다시 묻는 건지 모르겠으나 내
설명을 하도록 하지요. 본래 유형님은 유명한 험… 험… 몸이 간지로와 괴로워
하는 여보살들을 위로해 주는 것을 취미로 삼고 계신 다오. 유형님의 외호가, 그
러니까… 형님? 뭐라고 하셨었소?”
미끈하게 생긴 박달재라는 사내가 묻자 삼십대의 장한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아 이 사람 그걸 못 외우나… 육바라밀(肉波羅密) 이라네. 다음에 다시 물으
면 다시는 달착지근한 지난 얘기를 들려주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게.”
“아, 맞다. 육바라밀 유달산! 제가 본래 우둔해서 그런걸 어찌합니까. 형님이
하량(下諒)해 주셔야지요.”
“젊은 사람이… 쯧쯧…”
본래 유달산은 육바라밀 유달산이 아니라 암중모색(暗中摸色) 유달산이라고 불
리는 색마였다. 그가 암중모색이라 불리는 것은 언제나 해가 진 뒤에만 여자들에
게 덥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반항을 하다가 날이 밝으면 그냥
손을 털고 자리를 떠나곤 했다. 암중모색 유달산은 여자에게 약을 쓰거나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그저 납치해다가 집요하게 달려들고 또 달려들어 마침내 상
대가 포기하고 나가떨어지면 그제서야 느긋하게 일을 처리하곤 했던 것이다. 그
러나 밤새 실랑이를 벌이던 몇몇 여자들은 몸을 지킬 수 있었고, 그 여자들의 고
발에 의해 사천성까지 도망 다니다가 마침내는 잡히게 된 것이다.
박달재가 유달산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형님은 외호 그대로 여보살들에게 몸으로 시주를 하시는 분이시오. 이번에 의
혈단으로 오시게 된 것도 두어 달 전 귀주성에서 황보가의 여식을 도와주시려다
가 잡혀오게 된 것이라오.”
사실 암중모색 유달산이 이번에 잡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황보가의 사람을 건
드리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귀주성의 황보가는 돈과 사람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유달산이 그만 황보가의 여식을 범하려고 납치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보
통 깐깐한 게 아니어서 밤새도록 실랑이를 벌렸지만 먼저 지친 건 오히려 유달산
이었다.
“네가 보약을 많이 먹어서 나보다 지구력이 뛰어나니 내가 어찌 너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참으로 나의 부모가 원망스럽구나.”
장탄식을 터뜨린 유달산은 결국 암중모색답게 날이 밝자 그대로 자리를 떠나고
말았는데 황보가에서 사람을 풀어 암중모색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유달산은 그
들을 피해 사천성 성도까지 왔다가 결국 의혈단의 사람에게 잡히고 말았다.
의혈단에서 잡아놓고 뒷조사를 해보니 유달산의 본가(本家)는 북경에 있었는데
부친이 황실의 종친으로 고관대작이었다. 결국 황보가에 넘기기 전에 슬쩍 북경
으로 인편을 통해 아들의 문제를 의논했고, 유달산의 부친은 아들을 데리러 총관
을 보내겠다고 했던 것이다.
‘결국 이 유달산이라는 삼십대의 장한은 채화음적이라는 것이 아닌가?’
장염이 한심한 눈으로 유달산을 바라보자 유달산이 ‘험험’ 하며 헛기침을 했
다.
장염은 이번에는 미끈하게 생긴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채화음적 이
라면 이런 사람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장염의 생각을 알았는
지 박달재가 히죽 웃으며 말을 했다.
“소협은 지금 내가 더 여자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소?”
“솔직히 그렇습니다.”
장염이 순순히 대답하자 박달재가 웃으며 자기는 오히려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
고 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직 빛을 보지 못한 금뿐이라오.”
“빛을 보지 못한 금도 있습니까?”
장염이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이번에는 유달산이 옆에서 거들고 나섰다.
“금에도 두 종류가 있는데 아직 그걸 모르나 보구려. 빛을 본 금은
순금(純金)이라고 합디다. 그리고 빛을 보지 않은 금은 황금(黃金)이라고 하는
데… 박아우가 수집하는 건 바로 황금이라고 하오. 나도 그런 얘기는 박아우에
게 처음으로 들었소. 박아우의 얘기를 듣고 역시 이런데 와봐야 많은 신지식을
배울 수가 있어서 살아가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소.”
“순금과 황금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 주십시오.”
장염이 이해를 못하고 되묻자 박달재가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순금은 여러 사람의 손에서 손을 거쳐 이미 금의 기운이 많이 쇠(衰)하여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나는 이미 탁한 기운이 도는 그런 금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만이 은밀히 깊숙한 곳에 숨겨 두어 아직 햇빛을 제대로 보지 못한 처녀금
을 수집하는걸 취미로 삼고 있다오.”
박달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달산이 끼어들었다.
“나는 박아우의 말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어 한가지 취미를 덧붙이기로 했다
네. 그게 뭔지 알겠나?”
장염은 그제서야 이 두 사람이 하나는 색마요 다른 하나는 도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협께서도 황금을 수집하려고 하시오?”
“어허… 어찌 사람이 이토록 꽉 막혀 하나를 가르치면 오직 하나만 알아듣는
단 말인가…”
유달산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를 쳤다. 유달산이 워낙 당당하게 소리를 치자 장
염은 마치 가르침을 잘 배우지 못한 후배처럼 주눅이 들고 말았다.
“유형님은… 육바라밀의 취미를 이제부터 여스님들로 바꾸겠다고 말씀하시는
게요.”
박달재가 거들고 나서자 장염의 입이 쩍 벌어졌다.
‘미쳤구나… 여승들을 대상으로 그 짓을 하려고 작정을 했다니…’
제 목:[연재] 천사지인38.의혈단의 세 손님.(2) 관련자료:없음 [12850]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19 01:06 조회:3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