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84)
38. 의혈단의 세 손님.(2)
장염은 그전까지 여승들에게 각별한 느낌이 없었지만 지난 몇 달간 아미파에
머물면서 여승들을 볼 때마나 남 같지 않게 여겨왔다. 그러던 중 유달산이 여승
들을 대상으로 색욕을 채우겠다고 하자 바짝 긴장이 되는 것이었다.
“사람은 언제라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응당 심판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두 분께서 마음을 돌려 바른길을 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장염이 말을 마치자 두 사람은 갑자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하고 장염을 바
라보았다.
“이 사람아, 우리는 자네를 그리 보지 않았는데… 어째 그리 답답한가. 우리
는 자네가 그래도 도량이 넓은 사람인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자기의 전문 이
외에는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소인배였나 보구먼!”
유달산이 화가 난 듯 언성을 높이자 박달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유형님, 고정하십시오. 아직 장소협이 우리를 믿지 못해 경계를 하는 것 같습
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흑도(黑道)의 외길을 추구하는 고독한 사람이란 걸 믿게
되면 어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제야 유달산이 태도를 바꾸고 은근한 음성으로 말했다.
“장형제 믿어주게… 우리는 의혈단의 끄나불이 아닐세. 우리는 근본적으로 자
네와 같은 길을 추구하는 사람일세.”
장염이 깊이 생각할수록 어지러워져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자 두 사
람은 더욱 답답하다는 듯이 서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참지 못한 박달재
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내 나이가 지금 스물 여덟이니 내가 이 길에 들어선지도 어언 십 년일세. 내
가 순금이 아닌 황금을 처음 본 것은 바로 아버지의 비밀금고 속에서 였다네. 아
버지는 언제나 비밀 금고를 열어 타인의 손때가 한번도 뭍지 않은 황금을 가까이
하시고 그 향기를 음미하시곤 했네. 자네 황금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황금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네. 자네가 바로 알고 있는 것일세.”
‘나는 아직 황금을 본적이 없으니 냄새를 맡아본 적도 없소.’
장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경지에 이르면… 마침내 황금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네.
자네는 그 이치를 알 수 있겠나?”
그 말은 장염의 무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 장염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
달재가 탄성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점점 나를 놀라게 하는구먼… 나는 아버지의 황금을 몰래 몰래 가까
이 하다가 드디어 경지에 이르게 되자 나만의 황금을 수집하기로 했다네. 생각해
보게 아버지의 황금은 이미 나에게는 그저 순금에 불과할 뿐이지 않겠는가?”
장염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달재가 신이 난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했다.
“그 뒤로 나는 귀주일보(貴州日堡), 귀주전당(貴州全黨), 귀주파이난수(貴州巴
利亂數)의 황금을 수집하고 귀주신투(貴州神偸)라는 광명(光名)을 얻게 되었다
네. 그러니 자네는 나를 완전히 믿어도 된다는 것을 알아두게.”
“나도 한마디하지. 나는 내세울 건 없지만, 우리 가문을 보게. 내가 누구 밑에
서 염탐이나 하고 다닐 위인이 아닐세. 나의 고상한 보살행이 아니라면 나는 내
일이라도 당장 사천성 수군(隨軍) 총독이라도 될 수 있다네. 비록 병부(兵符)에
이름을 한번도 올려 본적은 없지만, 부친의 이름 석자면 나도 한 두개 성(省)의
병권은 관리 할 수 있다네. 그런 내가 왜 의혈단 같은 곳을 위해 일하겠나.”
장염이 복잡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는 두 분을 의혈단의 정보원이라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
장염이 말을 하려는데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면서 한 소녀가 들어왔다.
“세 분 모두 식사를 하셔야 지요? 대전으로 나오시겠습니까? 가져다
드릴까요?”
유달산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먹기로 했으니 이리 가져다주시면 고맙겠소.”
“알겠습니다.”
소녀가 나가자 두 사람이 다시 장염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 있으면 더 해보
라는 표정이었다.
“저는…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장염이 마땅히 할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자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 사람들은 왜 안나가고 여기서 나를 번거롭게 하는 것인가… 나는 경재학
을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거려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든데…’
장염이 은근히 머리가 아파 오자 펄떡거리는 관자놀이(귀와 눈 사이의 태양혈
이 있는 곳)를 두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았다.
소월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다가 근처로 다가오는 향이를 보고 소리쳤다.
“언니!”
“응,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냐?”
“언니가 내기에 지게 생겼네요. 그 세 사람이 지금 죽이 맞아서 신이 났는지
함께 식사를 하겠답니다. 호호홋…”
“아니 이제 하루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들이 친해졌다는 말이냐?”
“내가 문밖에서 조금 들어보니 이미 형님 동생하며 소란스럽던걸요?”
“휴우… 알았다. 어디 나도 한번 그를 보아야만 내기에 졌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 않겠니? 너는 조금 더 기다려 보도록 해라.”
“히힛… 기다리나 마나 라니까요. 이미 그들이 찰떡처럼 궁합이 맞으니 언니
도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소월이 웃으며 음식을 받쳐들고 사라지자 향이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
다.
“이상하구나. 어제 밤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아미파에서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어서 데려오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고 했는데… 어찌 그런 사람이 하루만에 악
인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향이가 장염의 무죄를 확신하고 내기를 시작한대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
다. 향이는 어제 밤늦게 잠이 오지 않아 잠시 밖으로 나왔다가 젊은 남자를 데리
고 돌아온 철검대와 만났다. 철검대는 밤이 늦은 관계로 사내를 방으로 데려다
주고 곧 나왔는데, 향이는 그때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저자가 아미파에서 그처럼 잘 지내고 있을 줄 누가 알았
겠나…”
“그러게 말일세. 나는 저렇게 젊은 사람이 그토록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아직
까지 들어본 일도 없다네.”
두 명의 철검대원이 나가면서 나눈 대화를 들으며 대체 저 사람이 누구인가 하
는 궁금증을 가졌으나 곧 알게 되었다. 철검대 대주가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
고 뛰어나와 대원들을 모아놓은 뒤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던 것이다.
“자네들 정말 그 동안 고생 많이 했네. 우리가 사천성에서 저 장염이라는 사람
을 찾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가? 몇 일 푹 쉬고 철검대로 복귀하도록 하
게.”
그 소리를 듣고 향이는 지금 들어온 젊은 사내의 이름이 장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교 교주와 결탁했다는 사람이 어찌 아미파에서 잘 지낼 수가 있었겠는가?
아마도 저 사람은 지금 오해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향이는 그의 혐의들이 모두 풀려서 떳떳하게 의혈단에서 걸어나가기를 바랬었
다.
‘정말 그가 악인들과 호형호제하며 친해졌는지 나중에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
겠다.’
향이가 중얼거리며 의혈단의 아가씨들께 드릴 식사거리를 챙기기 시작했다.
장염이 사천의 의혈단에서 엉뚱한 사람들을 만나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하남
무림맹의 의사청에서는 경재학의 주도로 몇 시진 째 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니 구대문파에서는 더 이상 고수들을 맹에 보낼 수 없다는 말씀이시오?”
경재학이 지루하다는 듯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벌써 몇 시진 째 구대
문파의 장로들은 자파의 고수들을 맹으로 보낼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늘어놓
고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맹주. 무림이 이처럼 조용한데 어찌 고수들을 불러모으려고 하시
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경재학이 말을 하고 있는 소림사의 장로 고정선사(孤貞禪師)를 침울한 눈빛으
로 바라보았다.
‘이것들아… 나야 어차피 일이 다 벌어진 후에 나서면 그뿐이지만…’
경재학은 최근 들어 무림 곳곳에서 일어나는 살겁의 이유를 알기 때문에 고수
들을 불러모으려고 했으나 구대문파에서는 요지부동이었다. 경재학은 장소를 만
난 이후에 은근히 오행혈마인이 신경이 쓰여 하나라도 더 없애 두려고 했는데 구
대문파가 협조를 하지 않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그만 두자. 어차피 변고가 닥치면 너희들은 사람들을 끌고 나에게 몰려
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알겠소. 무림이 조용하다고 믿으니 그대들이 철썩 같이 믿는 장문인들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소. 허나 만일 무림에서 일대 혈란이 일어난다면 맹주가 늦장을 부
려 그리 되었다고는 말하지 않도록 하시오.”
“허허헛… 무림에서 혈겁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거니와 설사 일어난다고 해
도 이처럼 무림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맹주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고정선사가 말을 마치자 이곳 저곳에서 ‘그렇습니다. 염려 놓으시지요’ 하는
말들이 들렸다.
경재학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무림첩을 돌리는 것을 반대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맹주의 집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고정선사 말씀 잘하시었습니다. 나는 요즘 맹주께서 구대문파를 너무 좌우하
려고 하는 것이 염려가 되오.”
경재학이 나가자마자 공동파의 장로 태성일검(太星一劍) 운중학(雲衆鶴)이 한
마디 넌지시 던졌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느 한 문파에게 힘이 집중하는 것을 견제하다가 천하제
일가를 너무 크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정선사의 말에 좌중의 팔대문파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십 년 전 보정
산의 혈투 이후로 조금씩 틈새가 벌어진 구대문파와 천하제일가의 관계가 근래에
들어서 더 심해지고 있었다.
“무림이 천하제일가의 것이 아니라 우리 구대문파의 것임을 알게 해 주어야 합
니다.”
종남파의 장로 오뢰장인(五雷掌印) 구자봉(具自奉)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그
렇소’라고 말하면서 좌중은 금새 천하제일가를 성토하는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지난 이 십 년간 하나의 가문에 머리를 숙여야 하는 답답함이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38.의혈단의 세 손님.(3) 관련자료:없음 [12851]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19 01:07 조회: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