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88)
39. 봄은 기다리는 자에게 찾아온다.(3)
장염은 갑자기 색마가 도사들도 방중술을 한다고 하자 긴장했다. 적어도 도사
는 장염에게 있어서 가족과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도사들이 하는 방중술과 대협의 방중술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허어, 내 오늘 소협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싶지만 다른 볼일이 있으
니 그만 두겠소.”
‘혹시 이 사람도 어디 감추어둔 여자를 부탁하려는 것일까’
장염이 박달재를 떠올리며 잠시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소협은 여자를 믿으시오?”
장염이 유달산을 바라보니 보통 심각한 표정이 아니었다.
“남자가 여자를 못 믿는다면 남자 또한 믿을 수 없으니 의심으로 가득 차서야
세상을 어찌 살아가겠습니까?”
“남자는 믿을 수가 있소. 남자는 함께 잠자리를 같이하면 의리가 돈독해져서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는 법이오.”
‘나는 함께 자고도 배신하는 남자를 보았으니 당신의 말은 맞지 않소.’
징염이 장소를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일찍이 북경에서 한 여자를 알고 지냈었소. 지금도 북경에는
귀공자회(貴公子會)라는 모임이 있다오. 지체 높은 가문의 남녀가 모여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오. 나의 부친은 황실의 종
친이라 배경이 제법 튼튼하다고 할 수 있소. 그녀와 나는 곧 친해졌고 그때 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했소.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귀공자회의 사람을 통해
그녀가 나 말고도 여러 명의 회원들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크
게 낙심한 나는 그 뒤로 북경을 떠나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오.”
장염이 안됐다는 표정으로 유달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왜 나를 떠나 다른 남자들 사이를 떠돌았는
지 깨달을 수 있었소. 그게 무엇인지 아시오?”
“저는 모르겠습니다.”
“바로 나의 일천한 방중술 때문이오.”
“…”
“집을 떠나올 때 나는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서고에서 한 권의 비급을 가지
고 나왔소.”
유달산이 품속을 뒤적이더니 얇은 책 한 권을 보여 주었다.
“음양도경진해본(陰陽道經眞解本)?”
장염이 표지의 글을 읽고 눈을 크게 떴다.
“그렇소. 내가 색마가 아니라 도사의 방중술을 연마하는 사람이라는 증거요.
다른 사람은 나를 색마라고 생각해도 좋으나 소협만은 나를 바르게 보아주시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강제로 부녀자를 납치하여 욕보이는 것은 도를 수행하는
사람이 할 짓이 못됩니다.”
“난 근본적으로 여자의 마음을 믿지 않기에 그것을 몸소 실천해 보인 것뿐이
오.”
“그렇게 수행했더니 정말 깨달음이 왔습니까?”
“그랬다면 내가 색마소리를 듣고 있겠소? 그래서 소협과 의논해 보는 것 아니
겠소. 듣자하니 소협이 아미산에서 여승들을 가르쳤다 길래 마침내 큰 마음 먹고
찾아온 것이오.”
장염이 유달산을 바라보니 그의 모습에서 언 듯 구도정신이 느껴졌다. 길을 잘
못 들었지 그는 근본적으로 뼛속까지 악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제가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은 대협의 방중술 때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여자를 만난다면 대협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게다가 근본적
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대협이 방중술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언젠
가 원한을 품은 이의 칼에 맞아 허망하게 세상을 뜰 수도 있는 것이니 그 도가
오히려 몸을 크게 해칠 것입니다.”
유달산이 자리에 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벌떡 일어났다.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다시 찾아오겠소.”
유달산이 탁자위에 음양도경을 그냥 두고 나가려 하자 장염이 불렀다.
“이것을 가져 가야하지 않습니까?”
“나는 이미 몇 번을 보았으나 소협의 말대로 별 효험을 보지 못했소. 보물에는
주인이 정해져 있다고 하니 그 비급의 주인은 이제 소협이오.”
‘이런 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장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비급을 들어 품안에 집어넣었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도 일단 얻으면 무조건 품안에 넣는 것은 오랜 기간 유랑하던 때에 생긴
버릇이었다.
한편 사공남매와 함께 청해성으로 떠난 이무심은 그때쯤 청해성과 사천성의 경
계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이 사백님, 오늘은 이만 쉴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날이 어두워 지려고 하자 사공철이 조심스럽게 이무심에게 말을 걸었다. 이무
심은 지난 몇 일 동안 사공남매와 전혀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공철은 더
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무심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발걸음을 늦춰 무언으로 동의하였다.
이무심의 발걸음이 느려지자 사공철이 사방을 둘러 객점을 찾기 시작했다. 사
공철은 멀리 청양객점(淸陽客店)이라는 간판이 보이자 앞서 걸어갔다. 객점은 일
단의 장사치들로 가득차 있었지만 다행히 탁자가 하나 비어 있었다.
“사백님 이리로 앉으십시오.”
사공철이 의자를 툭툭 털고 이무심이 앉을 수 있도록 내밀었다. 이무심은 여전
히 말이 없이 앉아서 주변으로 시선을 던질 분이었다.
“여기 먹을 만한 것 좀 내오시오.”
청해성이 다가오자 자연 사공철의 음성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점소이가 청양객점의 일반적인 저녁요리를 내오고 술 한병을 가져다주자 사공
철이 이무심의 잔에 조심스럽게 술을 따라 올렸다.
그후 그들이 말없이 밥과 볶은 돼지고기를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상인들
의 이야기가 크게 들려왔다.
“그러니 이제 서장 쪽으로는 당분간 도검(刀劍)을 들고 다녀서는 안된다는 거
야?”
“아, 이 사람아. 그렇대두… 도검을 소지하고 다니다가 라마승들을 만나면 바
로 육포가 되고 만다네…”
“그렇다면 우리 같은 장사치들이 오가다가 강도라도 만나면 어쩌라는 게야?”
“그건 걱정할 것 없네. 이미 서장과 사천을 잇는 지역에 강도는커녕 건달도 없
다네. 소식이 재빠른 것들은 벌써 도검을 깊숙히 숨겨 놓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런 점에서는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
이무심이 그들의 말을 듣다가 서장에서 무슨 변고가 생긴 건가 싶어 몸을 틀었
다. 바라보니 입에 침을 튀기며 말하는 사람은 온통 잿빛 일색의 옷에 머리를 흰
띠로 질끈 묶고있었다. 그의 일행인 듯 보이는 사내도 역시 잿빛 옷을 입은 것으
로 보아 같은 지역에서 출발한 상인들 같았다.
“이보시오, 지금 무슨 소리를 한거요? 서장에서 난리라도 났다는 게요?”
서장은 이무심에게 남다른 추억이 있는 장소이니 그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 당
연했다.
머리를 흰 띠로 질끈 묶은 사람이 이무심 일행을 살펴보고는 재빨리 대답했다.
“보아하니 무림인들 같으신데 당분간 도검을 비롯한 병장기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게 좋을 겝니다.”
“왜 그렇소?”
“우리가 들으니 서장의 라마승들이 무림인들을 잡아죽이며 중원으로 오고 있다
고 합디다.”
“그럼 무림인만 아니면 괜찮다는 거요?”
“만나보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소 만, 그들이 무림인들만 죽이며 오고 있다고
하니 거의 틀림없을 게요.”
상인의 말이 끝나자 사공철이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검을 탁자 위에 보란
듯이 올려 놓았다. 그러자 큰 소리로 떠들던 상인들이 일순 긴장 한 듯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이무심이 사공철이 올려놓은 검을 잠시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저들의 말이 옳다. 검을 치워라.”
“이 사백님… 어찌 변방의 라마승들 때문에 검을 치운단 말입니까?”
“네가 이제는 나의 말까지도 우습게 알고 거역하는 게냐?”
이무심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언성을 높이자 사공철이 재빨리 검을 헝겊으로
감싸서 짐 속에 쑤셔 넣었다. 그래도 삐죽 튀어나온 검을 보며 사공화가 눈을 내
리깔았다. 사공화의 검은 아직도 그녀의 허리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무심은 더 이상 두 남매의 검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기만 했
다.
‘이 사백이 이처럼 괴팍하신 분일 줄이야…’
사공철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공화를 바라보자 사공화가 말없이 머리를 저었
다. 아무소리도 말고 먹으라는 신호였다.
가을 바람에 사각거리는 낙엽보다 더 서걱거리는 세 사람이 청해성의 황하수채
롤 들어간 것은 그로부터 사 일이나 지난 뒤였다.
그들이 황하수채에 도착하자 사공철의 수하 몇이 달려가 사공남매와 손님이 왔
다고 알려 주었다. 그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왔던 장소룡이 깜짝
놀라 부들부들 떨고 말았다.
“형님!”
이무심을 발견한 장소룡이 나무지팡이를 의지해서 뛰어왔다.
“장아우…”
이무심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달려가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 얼싸안고 재회
의 기쁨을 나누기 사작했다.
“장사부는 어찌 되셨소?”
“의혈단으로 잡혀 갔다네. 경재학이 술수를 부려서…”
장소룡이 깜짝 놀라 나무지팡이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헉… 어찌 그런 일이… 이제 우리는 모두 어쩐단 말이오.”
“장사부가 내게 하늘의 도를 믿으라고 했네. 나는 그 말 외에는 달리 해줄 말
이 없구먼.”
장소룡의 큰 눈에서 굵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죽다가 다시 살아나
이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는가 싶었는데, 다시 경재학의 손아귀로 장염이 넘어
가 생사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사파의 흉악한 방파라면 모를까 정파의 기둥인 의혈단에 정중히 모셔져 갔는
데 대체 왜 저렇게들 슬퍼하는 것일까?’
사공철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사부가 눈물을 흘리자 가슴이 아파 오기 시작
했다. 그때까지도 그는 장염이라는 사람의 안위에 대해서 크게 염려하지 않았었
다. 그러나 비록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두 사람의 절망감이 얼마나 큰지 더불어
가슴이 저려왔던 것이다.
장소룡은 이무심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황하수채의 서문당에게 인사를 시켜
주었다. 서문당은 장소룡 같은 일대 괴걸의 형님이라는 말에 머리를 조아리며 황
하수채에 오래도록 머물러 주십사 간청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래에 들어 전 무
림에 산재한 사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장소룡과 이무심은 밤늦도록 대작하며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두 사람이 서로
그간 겪은 일들을 털어놓자 상대방의 고생과 경험에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형님, 나는 형님을 다시 만나니… 지난 일들이 마치 꿈만 같소.”
“나도 그렇다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장가촌이라! 문밖에서 제자들의 떠
드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가을바람이 지붕을 스치고 멀리 숲으로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잎새
가 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은 묵묵히 술잔을 나누기 시작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40.바람이불면물결이인다.(1) 관련자료:없음 [12879]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21 00:50 조회:4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