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90)
40.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인다.(2)
백리웅이 억지로 눈을 크게 뜨고 장원의 대문을 바라보니 황사바람과 함께 일
단의 승려들이 서서히 걸어 들어왔다.
“헉… 혈마사!”
백리웅이 재빨리 안으로 뛰어들어가 검을 들고 다시 나왔다. 이제 보니 대문은
바람에 날아간 것이 아니라 이들이 부수고 들어온 것이 분명 했다.
마당에 나와있던 총관 초우(草虞)가 뒤로 주춤 주춤 물러나며 소리쳤다.
“너는 속히 뛰어가 경종을 울려라.”
초우와 함께 서있던 장한이 한곳으로 뛰어가는가 싶더니 장원으로 요란한 종소
리가 울려 퍼졌다. 바람소리와 종소리가 섞이자 점점 장내는 기괴한 공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장원으로 들어온 오십 여명의 라마승들은 장내에 종소리가 나든 말든 조용히
서있을 뿐이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무장을 갖춘 백 오십 여명의 만검산장 문하생들이 몰려 나
왔다.
“제자들은 만검철벽진(卍劍鐵壁陳)을 펼치도록 하라!”
백리웅이 소리지른 뒤 제자들의 앞으로 달려나가 자리를 잡았다. 백리웅의 뒤
로 만자(卍字)모양의 철벽검진이 형성 되었다.
“본 산장이 혈마사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찾아온 것이오!”
백리웅의 음성이 장내에 퍼지자 라마승중 한사람이 유창한 한어(漢語)로 소리
쳤다.
“우리는 다만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니 너무 원망하지 말라! 아미타혈…”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라마승들의 신형이 사방으로 쏘아갔다. 라마승들이 한
번씩 선장을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이 한 사람의 만검산장 제자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 요사한 혈승들아!”
백리웅이 검을 뽑아들고 전면으로 달려가며 유성검 칠십 이식을 펼쳤다. 마치
유성이 지나가듯 그의 검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마다 지독한 황사바람마저 갈라져
나갔다. 그의 검이 날아들자 정면에 서있던 라마승이 선장을 들어 막았으나 선장
은 황사바람과 함께 이등분 되고 말았다. 선장과 사람이 두 쪽으로 갈라진 순간
백리웅은 어처구니없게도 허리에 박혀있는 다른 라마승의 선장을 보아야 했다.
“커헉…어찌 이럴 수가…”
무림고수 백리웅이 라마승 하나를 죽이고 땅바닥에 쓰러지자 다른 제자들은 공
포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몇몇 제자들이 악에 받힌 듯 비명을 지르며 검을 휘
둘렀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라마승들에 의한 인간 사냥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시간이 흐
르자 장내에는 백여 구의 시체가 쌓이게 되었다. 잠시의 시간동안 절반은 죽고
절반은 달아난 것이다.
눈도 뜨지 못할 정도의 바람 속에서 라마승들이 나타날 때처럼 서서히 대문을
통해 빠져 나갔다.
한편 의혈단의 도둑과 색마는 강풍(强風)이 불어와 지붕이 들썩거리자 불안했
는지 하나 둘 또다시 장염의 방으로 몰려들었다.
“아니 무슨 바람이 이렇게 무섭게 부는 건지 원…”
유달산이 장염의 방으로 들어오며 투덜거렸다. 장염의 방에는 이미 박달재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달산이 장염과 박달재 사이에 맥빠진 사람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형님, 오늘 의혈단 사람들이 허둥대는 것을 보았습니까?”
“봤지. 무슨 급박한 일이 생긴 것 같더구먼.”
“이제 몇 일 후면 나가게 될 텐데 그때까지라도 좀 별탈 없이 지냈으면 좋으련
만…”
박달재가 중얼거리자 유달산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사람아, 자네야 나가면 그만이겠지만 남아있는 장소협과 나는 어쩌라구 그
런 망발을 하는 건가?”
“어이쿠… 죄송합니다. 형님, 제 말은 꼭 그런 뜻이 아니라…”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지켜보던 장염은 나름대로 점점 다가오는 불안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마음이 왜 이렇게 진정이 되지 않는 것일까… 경재학이 오기 전에 나갈 수
있어야 할텐데…’
건물 전체를 들썩이던 강풍은 하루만에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강풍이 멎자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일상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러
나 의혈단의 사람들은 점점 더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장염이 그런 의
혈단의 내막을 알아 차린 것은 삼일 만에 찻상을 들고 다시 찾아온 향이를 통해
서였다.
“장동생, 지금 단에는 일급비상이 내려져 있어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향이가 주저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자세한 내막은 신분이 낮아 알길이 없지만 사천성에서 협겁이 벌어지고 있다
는 말을 엇핏 들었습니다.”
“혈겁이라뇨?”
장염이 또다시 오행혈마인이 발작을 하고 있는가 싶어서 되묻자 향이가 설명을
했다.
“사천성 서쪽에서부터 무림인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 방향대로 보면 곧 보
정산도 지날 것이라고 하더군요.”
“헉… 그렇다면 혈마사입니다.”
장염이 소리치자 향이가 눈을 크게 뜨고 장염을 바라보았다.
“누님, 그들은 혈마사의 라마승들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혈마사의 무
리라면 조만간 보정산으로 들이닥칠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을 알고 의혈단이 비
상사태로 들어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혈마사라면… 이십 년 전의 그 혈마사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누님께서는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무조건 몸을 숨기셔야 합니
다. 그들은 여자들을 잡아 두었다가 인신공양을 하기 때문에…”
향이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혈마사의 인신공양은 중원무림에 너무도 유명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숨는다 치지만 동생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곳에서 달아날 수도 없지
않습니까?”
향이가 걱정스럽게 묻자 장염이 웃으며 대답했다.
“오히려 이번의 위기가 제게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어수선하고 자기 목숨 돌보기 바쁠 때가 아니라면 제가 어떻게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동생도 일이 생기면 몸을 잘 보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지요, 그건 그렇고 벌써 기운을 느끼신 겁니까?”
향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장염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누님에게 가르쳐 드릴 검법은 태극양의검법입니다. 이 검법은 무당파의
태극검과 양의검을 연구하다가 제가 창안한 것인데 사초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
다. 사부님이 도인이시니 저의 무공도 도(道)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누님께서
도의 경지가 깊을수록 무공의 깊이도 깊어질 것입니다.”
말을 마친 장염은 그 자리에서 사초의 태극양의검법을 전수해 주었다. 향이는
본래 그 뜻은 잘 몰라도 외우는 것은 무엇이든 금방인지라 어렵지 않게 외울 수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장염이 다시 향이에게 초식의 구결과 동작을 물어 보았
다. 향이가 구결을 말하며 초식을 펼치는데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 장염은 향
이가 마침내 다 외운 것을 확인하자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핫… 정말 누님은 기재입니다. 만약 스승님께서 누님을 먼저 만나셨더라
면 그토록 고민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같이 우둔한 사람을 만나셔서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죠.”
장염이 진원청을 생각하자 송구스런 마음과 그리운 마음에 갑자기 코끝이 찡해
졌다.
“꿈에서라도 다시 뵈었으면 전보다 더한 고통이 찾아와도 좋으련만…”
향이는 장염의 하는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스승을 그리워 하는 마음은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장동생은 내가 보아온 많은 무림의 협사들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장염이 눈을 들어 향이를 바라보자 향이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무공의 경지가 깊어 갈수록 감정이 매말라 목석(木石)같이 되어
가는데 장동생은 이미 경지가 깊은 데도 항상 마음속에 수분이 가득 찬 사람 같
아서 하는 말입니다.”
“하하하… 본시무공에는 그 익히는 종류에 따라 사람이 변화되기 나름이지요.
다행히 우리 일문(一門)은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
道 道法自然)’을 따르는 터라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수록 무공이 깊어지
니 누님이나 저에게는 알맞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향이가 장염의 얼굴을 보니 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달랐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고달픈 나그네 같았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세속의 때가 뭍지 않은 사람이었
고, 마침내 오늘 다시 보니 바다와 같은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그 속에 들어가면
다 받아 줄 것 같은 넉넉함이 느껴졌다.
“동생은 어찌 그렇게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잘하는지 궁금합니다.”
“하하핫… 누님이야 말로 그렇게 많은 책을 외우고 계시다면서 어찌 살아가며
내뱉지를 않으십니까? 저는 아는 게 별로 없으니 그저 입을 열면 천지인(天地人)
과 도(道)와 자연(自然)과 무공(武功)의 원리뿐이니 어디 나가면 오히려 부끄러
워 눈치를 살핀답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40.바람이불면물결이인다.(3) 관련자료:없음 [12881]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0-12-21 00:52 조회:6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