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93)
41장. 기(氣)는 만검(萬劍)의 이치이다(氣爲萬劍之理).(2)
그런 장염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그가 웃으며 말했다.
“허허헛! 노부는 구십이 넘은 뒤로 무림의 일에 도통 관심이 없으니 소형제는
너무 심려치 마시오.”
노인이 이렇게 말한 것은 두 남녀의 긴장한 모습 때문이었다. 일견(一見)하기
에도 남자는 내상을 입었고, 여자는 어깨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부상 입은 남
녀가 외진 곳에서 이방인을 만났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염이 황급히 허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노기인(老奇人)께서 헤아려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노인이 장염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그런데 저것은 무엇이기에 이처럼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이오?”
장염이 보니 향로 안에 담은 재료가 뜨거운 열에 끓어 조금씩 넘치고 있었다.
“저것은 신선로(神仙爐)라는 것으로 제가 오늘 개발한 음식입니다.”
“오호!”
노인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신선로라! 도가(道家)에서 쓰는 향로(香爐)의 이름으로 요리이름을 지은 것은
구십 평생에 처음이었다.
“이 진귀한 음식을 노부가 조금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겠소?”
“노기인께서 드신다면 오히려 저의 영광입니다.”
노인이 크게 기뻐하며 군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장염은 노기인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저런 성품의 사람
들은 대체로 주변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장염이 막대기 두 개를 가지고 향로를 조금씩 움직였다.
마침내 향로가 모닥불에서 빠져 나오자 노인이 지고 있던 나무상자를 풀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조심스럽게 열기 시작했다.
장염이 ‘저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슬쩍 들여다보려는데
상자는 어느새 굳게 닫혔다.
“이것은 노부가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젓가락이라오.”
장염의 눈앞에 검은빛이 도는 한 쌍의 젓가락이 나타났다. 노인이 상자 안에서
꺼낸 것이었다.
‘과연 저 작은 나무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걸까?’
장염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즐거운 표정으로 향로를 바라보았다.
향로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장염은 향이를 가까이 데리고 왔다. 그리고
나무를 꺽어 만든 젓가락을 건네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향로 속에는 굼뱅이와 거미와 벌집이 완전히 퍼져서 적당
히 엉겨 있었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향로 안에 든 음식을 요령껏 떠서 먹기 시작
했다.
음식에 넣은 양념이라고는 염분성분의 돌 조각만 뿐이었음에도 벌집이 우러나
서 그런지 달콤하기까지 했다. 벌집덕분에 씹을수록 쫄깃해지는 뒷맛을 남기며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굼뱅이와 그 속에 형체를 알 수 없게 섞여버린 거미는
별미였다.
향이는 먹으면서 계속 ‘이게 뭐지요?’ 라고 물었으나 장염은 웃을 뿐이었다.
음식을 함께 나누면 사람들은 쉽게 친해지게 되는 것일까? 어느 틈에 노인은
장염과 향이에게 조금씩 말을 놓고 있었다.
노인이 한참 쩝쩝거리며 음식을 먹다가 몸을 돌려 다시 나무상자를 열었다.
어느새 노인의 손에는 작은 호로병이 들려 있었다.
“오늘 자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특별히 백로주(白露酒)를 대접하겠네.”
노인이 호로병을 장염에게 건네주었다.
장염이 뚜껑을 열고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장염의 두 눈이 크게 떠
졌다. 냄새를 맡는 순간 가슴속으로 청량한 기운이 가득 차 올랐다.
‘맙소사!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장염이 문득 손에 들고 있던 호로병을 향이에게 건네주었다.
향이가 호로병을 건네 받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감사히 마시겠어요.”
향이가 호로병에 입을 대로 조심스럽게 기울여 몇 모금 마셨다.
“꿀꺽, 꿀꺽, 크으! 좋군요…”
그 말을 끝으로 향이의 몸이 ‘스르륵’ 무너졌다.
장염이 재빨리 한 손으로는 향이의 몸을 부축하고 다른 손으로 호로병을 잡았
다. 조심스럽게 향이를 뒤로 눕힌 장염은, 향이의 손에 쥐어진 호로병을 빼내 뚜
껑을 닫고 노인에게 돌려주었다.
“노기인께서 이처럼 귀한 것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노인의 눈빛이 찰라 지간에 번쩍였다.
“소형제는 왜 마시지 않는가?”
장염이 웃으며 말했다.
“천지(天地)간의 영기가 깃든 신선주(神仙酒)를 어찌 한자리에서 다 소모 할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헛! 오늘날까지 살아오며 소형제처럼 욕심 없는 사람은 처음 보았네!”
노인은 더 말하지 않고 호로병을 거두어 갔다. 그리고 즉시 나무상자 속에 집
어넣었다.
음식을 먹던 노인이 문득 장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는 누구며 두 사람은 어쩌다가 몸까지 상하게 되었는가?”
장염이 가만 보니 상대는 이미 영약까지 제공해준 기인이라, 두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았다.
“저는 장염이라 하옵고, 저분은 제 누님인 향이라 합니다. 저는 악적에게 맞아
내상을 입은지 이미 오래 되었고, 누님은 이틀 전… 저를 돕다가 검상을 입은
것입니다.”
장염은 차마 의혈단에서 도망치다가 검상을 입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노인은 장염을 다시 한번 이리 저리 살폈다.
‘흠, 장염이라면 맹주가 사천성 일대에서 찾던 사람이 아닌가! 이틀전이라면
틀림없이 의혈단이 괴멸하던 날이니 저 소녀의 검상은 그때 생긴 것이겠구나.’
노인이 여러 번 살펴봐도 장염의 전신에서 풍겨나는 것은 대자연의 기도였다.
‘필시 경재학에게 무언가 꿍꿍이 속이 있는 게로군. 고연놈!’
노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검은 젓가락을 놀려 마지막 남은 건더기를 건져 올렸
다.
“쩝쩝, 고생이 많겠구먼.”
장염은 노인이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노인은 향로의 바닥이 보이자 젓가락을 거두고 말했다.
“맛있게 먹었네……”
“잘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문득 노인이 장염을 보며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모두 믿지는 말게.”
“무슨 말씀 이신지?”
노인이 슬쩍 웃더니 곁에 있던 상자를 가리켰다.
“많은 사람들이 노부가 들고 다니는 이 작은 상자에 대해 궁금해한다네. 그들
은 이 속에 무엇이 든지도 모르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지.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
가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 것 같은가?”
장염이 웃으며 고개를 젓자 노인이 말했다.
“이 속에는 그저 노부의 옷 한 벌과 한 쌍의 검은 나무 젓가락 그리고 백로주
가 담긴 호로병이 있을 뿐이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뭔가 대단한 걸 가지고 다
닌다고 믿고 있지. 허허헛!”
장염이 노인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자기도 조금 전까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노인은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나무상자를 베고 누웠다.
장염은 꺼져 가는 모닥불 속으로 나무토막을 몇 개 던져 넣었다. 세찬 바람이
방안으로 밀려들자 불길이 다시 살아났다.
탁… 탁…
조용한 가운데 불똥 튀는 소리만 가끔씩 들렸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무릎을 모으고 불 앞에 앉아 졸고있는 장염의
귀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맑고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탁하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내려
가 땅이 되며, 조화로운 기운은 사람이 된다… (淸輕者上爲天, 濁重者下爲地,
和氣者爲人…)”
잠결에 무심코 듣다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니 노인이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
다.
노인은 끊임없이 천(天), 지(地), 인(人), 기(氣)에 대해 말했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장염의 얼굴에서 기쁨과 곤혹스러움이 교차되었다.
노인의 음성은 ‘그러므로 기(氣)는 만검(萬劍)의 이치이다(氣爲萬劍之理)’를
끝으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장염은 허공으로 ‘탁탁’ 튀어 오르는 불꽃을 보며 노인의 말을 음미했다. 처음
에는 노인의 말뜻이 어려워 막막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그가 지금까지 수
련한 조화로운 도(道)와 노인이 말하는 만검의 이치인 기(氣)는 결국 같은 이야
기였다.
어느덧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노인의 말을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하룻밤을
꼬박 새고 만 것이다.
노인은 새벽이 되자 자리에서 부시시 일어났다. 그리고 장염이 불씨만 남은 모
닥불 앞에 그때까지 웅크리고 앉은 것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헛! 밤새 무슨 고민이 그리 많았는가?”
깜짝 놀란 장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깊이 허리를 숙였다.
노인은 일찌감치 떠날 작정인 듯 다시 나무상자를 등에 매고 있었다.
“노부는 화산파의 서검자(書劍者)라고 하네. 언제 다시 신선로를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장염이 공손히 대답했다.
“노기인께서 전해 주신 것은 신선로 백 개로도 모자람이 있으니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검자가 장염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자네가 기천검(氣天劍)을 얻게 된다면 그 성취를 노부에게도 꼭 보여 주시게.
기천검은 본파에서도 오래 전에 절전(絶傳)된지라 누구도 그 모양새를 본적이 없
다네. 무당파의 무량검과 화산파의 기천검만이 천하제일검이라고 일컬어 졌네만,
이제는 모두가 옛말이 되고 말았구먼…”
장염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서검자는 홀연히 떠나가 버렸다. 마치 꿈속
에서의 일처럼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만 것이다.
향이는 잠에서 깨자 어깨의 상처가 많이 아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제 밤
까지만 해도 화끈거리며 끊임없이 아팠는데, 지금은 조금 욱신거릴 뿐 아프지도
않았다.
“장동생! 내 어깨의 상처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장염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누님께서 어제 드신 술은 영약으로 만들어진 희귀한 것입니다. 훗날 화산파의
서검자 어른께 잊지 말고 인사를 하셔야 할겁니다.”
“화산파의 서검자 어른이라니? 설마 어제 그분이 서검자시라는 건가요?”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향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상에! 서검자라면 화산파 장문인의 스승으로 검선(劍仙)이라고 불리는 분이
신데…”
“그렇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장염과 달리 향이는 깜짝 놀랐다. 향이는 의혈단에서
십 년이 넘게 생활해서 정파 고인(高人)의 이름은 거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어
떤 이름도 당금 무림에서 서검자의 이름 앞에 놓이지 않았다.
서검자의 무공과 배분은 무림에서 최고의 위치였다. 그는 검선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고강한 무공을 지녔지만 무림의 일에 나서지 않았다. 이십 년 전 서검
자는 화산파에서 나와 세상을 떠돌아다녔고, 그 뒤로 더욱 그를 만나본 사람은
드물었다.
서검자가 무림에서 사라졌을 때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는 무림맹주와의 의
견차이 때문에 서검자가 무림을 떠났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화산파 비전의 검
술을 터득하기 위해 은거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 전설적인 검선과 하룻밤을 함께 보낸 것이다.
향이가 좁은 사당의 뜰을 왔다갔다하며 중얼거렸다.
“아깝다. 아까워.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장염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좀더 일찍 알았으면 무얼 하시게요?”
“그냥, 유명한 분이시니 얘기나 좀 나눠 보고 싶다는 거죠.”
“하하핫! 나중에 다시 보자고 하셨으니 인연이 닿을 겝니다. 그때는 잘 알아보
시고 많은 대화를 나누도록 하세요.”
“후훗!”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은 지니고 있는 짐도 없는 터라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바르게 하자마자
곧바로 사당을 떠났다.
장염은 기운을 차린 향이를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향이는 서검자를 만나
검상이 완화된 이후 더 이상 철검대원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가끔씩 멍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기는 했지만 전처럼 괴로워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그날 점심 무렵에 사천성 성도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41.기는만검의이치이다(3) 관련자료:없음 [13131]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1-01-16 00:55 조회:3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