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96)
43. 이십 년 만의 무림첩.(2)
장소의 발작이 시작 될 무렵 검귀 일행은 난주의 천마방을 떠났다.
마교 장로들과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나선 오마왕은 조금도 쉬지 않고 말
을 달려 다음날 새벽, 드디어 음산산맥(陰山山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순찰영주가 검귀의 옆으로 다가와 말문을 열었다.
“수호사령께서는 음산파가 끝내 하나되기를 거부하면 어쩌실 것입니까?”
“그때는, 본좌가 왜 검귀라고 불리우는지 알게 될 것이오.”
순찰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사령 검귀는 매사에 분명한 사람이었다. 특
히 마교와 관계되어서는 피아(彼我)의 인식이 분명했고, 적이라고 인정되면 반드
시 죽였다. 지금까지 교주 앞에서 피를 보면서까지 음산파를 살리려고 했던 것도
마교를 위해서였지 음산파의 장로들을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열 명의 고수들은 비교적 마음이 편하게 음산파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들 열
명의 무공이면 음산파 정도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완전히 밝아왔을 때 열 명의 마인들은 음산파가 자리한 음산령(陰山嶺)에
도착했다.
음산산맥을 중심으로 볼 때 남동쪽 아래로는 황하강이 길게 뻗어 있었다. 산맥
의 북쪽으로는 사막과 초원이 펼쳐져 있었지만 남쪽으로는 황하강의 북안을 따라
비옥하고 수리가 좋은 하투(河套)평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음산파가 자리한 음산령은 음산산맥 남쪽의 고원지대였다. 그곳에는 대다수의
한족들과 소수의 몽골족과 회족, 위구르족, 티베트 족이 어울려 살고 있었다.
풍소곡이 번화한 마을에 당도하자 마인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이미 음산파가 지척이니 배를 좀 든든히 하고 방문을 해야 하지 않겠
소?”
장로들이 “그럽시다”라고 응답하자 오마왕이 앞서 달려가 객점을 찾기 시작했
다. 제법 큰 마을에는 몇 개의 객점이 보였지만 아직 문을 열기에는 이른 시간이
었다. 그러나 이들은 거칠게 없는 천산의 마인 들이다.
오마왕이 그중 가장 규모가 커 보이는 객점의 문을 발로 걷어차자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눈치 빠른 주인은 흉악한 인상의 오마왕을 보자 재빨리 허리를 수그리고 정중
하게 손님을 맞아 들였다. 이곳은 음산의 마교가 자리한 곳이라 주변에 방문좌파
가 널려 있어서 제시간에 문을 열거나 닫아본 일이 별로 없었다.
아직 문을 열 준비도 되지 않았는지 객점 안의 탁자 위에는 조악하게 만든 의
자들이 올려져있었다.
열 명의 마인들이 태산같은 기도로 들어서자 주인과 점소이는 부랴부랴 의자를
내리고 탁자를 훔쳤다.
“저희는 아침이 정해져 있습니다만…”
주인이 손을 비비며 열 명의 마인들 앞에서 말끝을 흐렸다. 비록 아침 식단은
정해져 있었지만, 이들의 모양새를 보니 한 지역의 패주들이 분명했다. 식단이야
다시 짜면 되지만 이들의 눈 밖으로 났다가는 제삿밥을 먹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
었다.
오마왕 중의 하나인 패력마왕(敗力魔王)이 질그릇 깨지듯 귀에 거슬리는 음성
으로 소리쳤다.
“살찐 돼지를 잡고, 오리 스무 마리를 내와라. 그리고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미
주 열통을 돌리거라.”
말을 마친 패력마왕은 검귀쪽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더 시킬 것이 있으시냐는
얼굴이었다.
검귀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패력마왕이 소리쳤다.
“어서 가서 빠짐없이 내오너라. 지체할 시에는 생인육(生人肉)을 먹던 옛날 버
릇이 도질지도 모른다. 크크크!”
“어헉! 네! 네!”
부들부들 떨던 주인이 점소이를 데리고 객점의 뒤뜰로 뛰어갔다.
잠시 후 객점 뒤뜰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와 오리 모가지 비트는 소리가 요란하
게 들렸다.
이른 아침부터 단천혈마는 두 명의 장로들과 함께 천산파에 대해 논의하고 있
었다.
단천혈마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아침에 천산파의 검귀일행이 음산파의 경계로 접어들었다고 하오.”
두 명의 장로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단천혈마를 바라보았다. 검귀라면 교주
를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가 움직였으니 이제 음산파가
우려하던 일이 시작된 것이다.
맞은편에 앉은 귀령신마(鬼靈神魔)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중얼거렸다.
“겨우 검귀 하나가 왔다고 이처럼 놀래서야, 살인마왕이라는 제천혈마가 온다
면 어떻게 될지…”
단천혈마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귀령신마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묵묵히 앉아 있던 음산비마(陰山飛魔)가 단천혈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십 년 전의 마교대전 이후 음산파의 고수들은 대부분 은거하고 말았소. 그에
비하면 저들은 꾸준히 세력을 키웠고, 이제는 지존마공을 익힌 자를 찾아내어 음
산파의 형제들을 술렁이게 만들고 있소. 그들에 비하면 음산파는 명분도 고수도
없소.”
사실 천산파와 음산파는 서로 구별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마교대전 이후 천산
파의 고수들은 서로가 패권을 잡으려고 치열한 경쟁속에 세력을 키워 나갔다. 그
러나 음산파의 고수들은 회의를 느끼고 하나둘 강호를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단순히 무력만 비교해도 이전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인데, 저들은 천지쌍
마의 지존마공마저 찾아냈으니 통합을 반대할 명분도 서질 않았다.
세 사람이 할말을 잃고 묵묵히 앉아 있는데 밖에서 음산파의 순찰총감이 소리
쳤다.
“삼로(三老)께 아룁니다. 천산의 검귀일행이 객청에 도착해 있습니다.”
세 사람은 전에는 그냥 마교의 장로였지만, 음산파로 돌아온 이후로는 음산삼
로라고 불리웠다.
음산삼로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천혈마가 중얼거렸다.
“가봅시다. 가서 검귀의 말을 들어보고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 보십시다.”
세 사람은 객청으로 들어서는 순간 천산파의 고수들이 내뿜는 기파에 압도당하
고 말았다. 검귀와 순찰영주, 삼마 그리고 오마왕이 무시무시한 형세로 객청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다.
음산삼로를 발견한 검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했다.
“세 분 장로님을 십 년 만에 뵈니 가슴이 뭉클하오.”
검귀가 마교 시절에 부르던 대로 세 분 장로라고 말하자, 지난 십 년 동안 음
산삼로로 지내온 세 사람은 일순 당황했다.
단천혈마가 검귀를 향해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마주 인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십 년 전 마교대전 이후로 처음 뵙는구려.”
단천혈마의 말은 묘한 구석이 있었다. 평범해 보여도 십 년 전에 무공비급을
놓고 한바탕 싸웠던 것을 강조한 말이니 그 속뜻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검귀가 크게 웃으며 단천혈마에게 말했다.
“양지형(陽地兄)의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구려.”
양지(陽地)는 단천혈마의 이름이다. 지난 세월 어느 누구도 그의 이름을 불러
준 적이 없는데 오늘 검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되자 가슴이 떨려왔다.
곁에 서 있던 음산이로는 단천혈마 양지의 표정을 보고 음산파가 다시 천산파
의 아래로 들어가게 될 것을 예감했다. 검귀의 무력(武力)과 인정(人情) 앞에 음
산파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때 순찰영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는 전적으로 수호사령께서 만드신 자리외다. 본래 교주님께서 오
늘 음산파를 방문하겠다고 하셨는데, 사령께서 간청하여 하루의 말미를 얻어내신
것이오. 그 때문에 교주님의 노여움을 사서 몸이 좀 상하기까지 하셨소이다.”
음산삼로의 얼굴에 당혹한 빛이 어렸다. 이제 본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단지 친선의 사절로 온 것이 아니다. 천산파와 음산파를 합치기 위해 찾
아온 것이니, 음산파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남의 밑으로 들어가 머리를 조아려야
하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한참만에 단천혈마가 입을 열었다.
“듣고 싶소. 제천혈마의 무공이 그토록 경세적이오?”
검귀가 단천혈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단천혈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교주의 무공이 천하제일이니 힘을
합쳐 무림을 지배하자는 것일까? 혹은 교주의 무공이 무적이니 음산파가 어느 세
월에 천산파의 그늘에서 벗어날지 아득하다는 것일까? 전자의 경우라면 다행이지
만, 후자의 경우라면 천산파의 그늘로 다시 들어올 이유가 없다.
그러나 어차피 이런 일에 얼버무림이란 있을 수 없다. 아군이 되든지 아니면
적으로 마주서 칼부림을 하든지 그건 차후의 문제였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림은 교주님의 발 아래에 놓이게 될 것이오.”
단천혈마가 묘한 얼굴로 검귀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라고 잘라 말하지 않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왠지 아직까지는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말로
들렸다.
단천혈마의 추측대로 검귀는 현재의 교주에 대해 뭐라고 단정하지 못한 형편이
었다. 이미 무공 하나만으로는 천하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장소교주에게
는 검귀가 미처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었다. 범인의 상상을 초월한 내공증진과
갑작스런 그의 발작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귀령신마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제천혈마의 무공을 전대 교주님과 비교하면 어떠하오?”
검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천혈마께서는 오래 전에 전대 교주님의 성취를 넘어 서셨소. 교주님은 가히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초월하신 분이시오.”
검귀는 속으로 ‘미친 증세까지도 그러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때까지도 말이 없던 음산비마가 단천혈마를 향해 말했다.
“오늘 우리 음산삼로가 가야할 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단천혈마가 귀령신마와 음산비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천산파와 정면
으로 승부하면 결국 음산파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물론 천산파도 적지 않은 손
해를 입을 것이지만 그동안 세가 많이 약화된 음산파만큼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음산삼로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단지 오늘 찾아온 천산파
의 고수들만 해도 음산파가 감당하기에 벅찼다. 새삼스럽게 십 년 전의 마교대전
이후 음산파를 떠나간 수많은 고수들이 그리워 졌다. 그들이 한자리에 있었다면
오늘처럼 막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는 호각지세(互角之勢)라는 말
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단천혈마의 귓속으로 귀령신마의 전음이 들려왔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 제천혈마라도 오는 날이면 우리는 목숨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외다.-
그 뒤를 이어 음산비마의 전음성이 들려왔다.
-일단 우리의 뜻은 잠시 묻어두고 당분간 천산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어떻겠
소?-
단천혈마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언제부터인지 음산파가 제천혈마라는 이름 앞에 몸을 사리고 있었다. 비단 그
들뿐이 아니었다. 천산파의 마인들을 보니 교주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두려워하
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어떤 자 길래 쟁쟁한 마인들에게 저토록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을까?
단천혈마는 결국 제천혈마가 사라질 때까지 천산파의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
다는 것을 인정했다.
“교주님께 음산파가 다시 마교의 광영된 이름아래 놓이기를 원한다고 전해 주
시오.”
검귀가 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단천혈마의 두 손을 붙들었다.
“잘 생각하시었소. 전대 교주님들께서도 기쁘게 생각하실 것이오.”
검귀 일행은 즉시 음산파를 떠나 난주로 돌아갔다.
제 목:[연재] 천사지인42.이십년만의무림첩(3) 관련자료:없음 [13151] 보낸이:조진행 (finitum ) 2001-01-17 00:45 조회:3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