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s Witness RAW novel - Chapter (99)
44. 산 넘어 산(2)
노노대가 비질을 열심히 하고 있는 소걸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쓸모 있는 녀석이라니까…’
그날 저녁, 노노대가 계산대에 앉아 손님의 머릿수를 세고 있을 때였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봉두난발을 한 거지가 불쑥 들어왔다. 삽시간에 주루에 악
취가 진동을 했다.
“아 씨발, 뭐야 저거.”
몇몇 술손님들이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했다.
노노대가 황급히 일어나 거지의 앞을 막아섰다.
“이놈아, 구걸을 하려거든 아침나절에나 하고 갈 것이지 영업시간에 왠 주접이
냐!”
어차피 거지든 손님이든 노노대는 이 사내를 받아들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거
지라면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손님이라고 해도 냄새가 너무 심해 장사에 지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문이 덜컥 하고 열리더니 밖에 있던 소걸이 뛰어들어왔다.
소걸이 거지사내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아이 씨! 아저씨 어서 나가요. 장사방해 된단 말예요!”
거지사내가 소걸을 돌아다보았다.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던 아이였다.
사내는 피식 웃더니 가운데의 빈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술을 가져오너라.”
분통이 터진 노노대가 사내 앞으로 뛰어가 말했다.
“이 자식아! 어르신의 말이 안들린단 말이냐!”
노노대가 소리를 치자 근처에 앉았던 젊은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의
뒤로 다가왔다.
그들 중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어이, 자네가 그 자리에 앉으면 덩달아 우리도 거지가 될게 아니겠나? 정 술
이 먹고 싶으면 바닥에 내려가 처먹든지 아니면 나가서 먹는 게 어때?”
그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지사내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끄끄끄끄…”
마치 도저히 웃음을 못 참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소걸은 사내의 모습을 보고 자기가 구걸하던 때를 떠올렸다. 저 남자는 어쩌면
정신이 반쯤 나간 건지도 몰랐다. 거지들 중에는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
들은 자기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 하다가 몸을 망치곤 했다.
소걸은 씁쓰름한 마음으로 걸어나갔다. 자포자기한 거지는 아무도 말릴 수가
없다. 저 사내에게 돌아갈 것은 이제 몽둥이 찜질 뿐인데 한때 같은 업종에 종사
했던 사람으로 차마 지켜보지 못할 일이었다.
소걸이 주루의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한차례 내쉴 동안 모
든 일은 끝이 났다.
땅이 진동을 하고, 주루가 폭삭 무너지고 만 것이다.
무너진 주루의 한가운데 기적처럼 거지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의 어깨는 웃음
을 참느라 여전히 들썩이고 있었다.
“끄끄끄끄…”
소걸은 입을 쩍 벌리고 주루의 잔해와 거지사내를 바라보았다. 지독하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주루가 무너져 모든 사람들이 깔려 죽
었는데, 사내가 앉은 탁자하나만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거지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연히 길가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소걸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종종걸음으로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 *
장염이 향이와 함께 삼도회에 온지 사흘이 지났다.
그 동안 장염은 향이의 어깨를 치료하고, 삼도회의 간부들을 만나 인사를 하느
라고 정신없이 지냈다.
오극렬은 삼도회 내에서 제법 높은 위치에 있었다. 지위는 겨우 당주에 불과했
지만, 그의 무공과 아귀같이 물고 늘어지는 성질에는 대적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장염을 찾아온 간부들이 하는 말은 대체로 비슷했다.
“자네가 오극렬의 동생인가? 어쩌다가 그와 교분을 나누게 되었나? 그의 비위
를 맞추기가 쉽지 않을텐데 고생이 많겠구먼.”
그럴 때마다 오극렬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람들은 제 욕을 들으
니 민망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삼도회의 간부들은 오극렬이라는 상종 못할 사내가 동생으로 삼았다는 남자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무공의 고수라는 말도 있는
데, 직접 보니 역시 소문은 믿지 못할 바였다. 닭 잡을 힘도 없어 보이는 장염이
고수라면 소 잡는 백정은 무림지존이 되야 하는 것이다.
장염은 삼도회에서 삼일간 지내는 동안 놀라운 경험을 했다.
삼도회의 서열과 규칙은 장염이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그것은 한마
디로 신비로운 세계였다. 정해진 서열의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개나 소 다루듯이
했다. 그런데 그 아랫사람들은 별로 반감을 가지지 않은 듯 했다. 가만히 살펴보
니 아랫사람도 자기 밑의 사람에게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장염의 관심은 조직에서 제일 밑에 있는 사람에게 쏠렸다.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갈까? 장염은 그 답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그들은 오가다가 만나
는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그렇구나, 길거리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는 저런 말못할 고충이 있
던 게로구나.’
삼도회에서 생활하던 장염이 뜻밖의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
나서였다.
오극렬이 장염을 찾아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아우, 삼도회가 마교와 한바탕 싸움을 치르게 될 것 같네.”
“네? 삼도회가 왜 마교와 싸운단 말입니까?”
“얼마 전에 마교로부터 사천성의 분타가 되라는 통보를 받았었네. 우리가 누구
밑에 기어 들어가 밥 먹고 살 사람들인가?”
“마교와 싸워서 승산이 있겠습니까?”
장염은 마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간 만나본 마인들을 떠올리면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승산은 없다고 보네. 다만 그들이 난주에 있으니 쉽게 이쪽으로 달려오지 못
할 거라는 사실에 마음이 놓일 뿐.”
그러나 난주에서 사천으로 오기로 마음먹으면 못 올리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
니 자연히 얼굴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동생은 재빨리 이곳에서 도망을 치도록 하게.”
“잘 알겠습니다. 혹시 형님께서도 이곳에서 몸을 피하시게 되면… 청해성의
황하수채로 가서 장소룡 대협을 찾으십시오. 그분께 말씀을 드리면 도움이 되어
드릴 겝니다.”
장염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오극렬이 몸을 피할 정도면 삼도회가 멸문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극렬은 장염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파의 거물들 치고 청해성의 장소룡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황하수채의 총
호법 장소룡은 사파 무림인들 사이에 전설적인 이름이었다. 청해성의 사파는 그
의 신묘한 무공을 전수 받은 사람들에 의해 평정되었다. 그는 병법의 달인이었으
며, 그의 진법은 고금무적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동생이 그분을 어찌 아시는가?”
“동향(同鄕)의 어른이십니다.”
“그렇구먼, 오늘 동생의 말을 들으니 답답하던 숨구멍이 조금 트이는 것 같네.
내 언젠가 그분을 꼭 뵈어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동생이 아는 분이라 하니
이런 인연이 어디 있는가!”
제 목:[연재] 천사지인43.산넘어 산(3) 관련자료:없음 [13166] 보낸이:조진행 (빈들 ) 2001-01-18 00:56 조회:3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