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109)
이세계 골드리치-109화(109/256)
<– 환술사, 지크 –>
“먼저, 매칭 결과를 알려줄게.”
지크가 말하자 칸 앞에 양피지가 띄워졌다.
[ 선택의 버튼 – 매칭 결과 ] [ 하르미노(정령족) vs 칸(인간족) ] [ 아스트리드(용족) vs 베르몬트(마족) ] [ 바바라(엘프) vs 달린(엘프족) ] [ 리나(엘프족) vs 바튼즈(드워프족) ] [ 조지크라반(드워프족) vs 레오프리(드워프족) ]“빨간 버튼 보이지?”
책상에 적색 버튼이 생겨났다.
“이제부터 너는 매칭된 상대랑 1대1 승부를 벌일 거야.”
‘1대1이고 자시고…..’
칸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나 크리스탈은 없었다.
환술은 지크의 머릿 속에서 헤엄치는 격, 크리스탈의 존재도 지크의 마음대로였다.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이 죽어. 너를 싫어했던 바로 그 놈이야.”
지크가 손뼉을 쳤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때? 너를 싫어하는 놈을 죽이면서, 동시에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어. 버튼 누르기는 최고의 기회가 아닐까?”
‘기회는 무슨..’
버튼을 안 누르면 지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안 누르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러나 엘프 하나만 버튼을 눌러도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크는 죽은 선별인원의 마나를 흡수해서 환술에 쓴 마나를 보충한다.
그리고는 자기 별로 돌아간다.
그것도 ‘처치’로 인정되서 결계가 열리기는 하지만.
지크를 죽이는건 못하게 된다.
“자.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겠지? 그럼 즐거운 놀이를 시작해보자고.”
지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붉은 손톱이 좌우로 교차되면서, 칸의 눈 앞에 메세지가 떠올랐다.
[ 하르미노(정령족) vs 칸(인간족)을 시작합니다. ] [ 제한시간은 10분. 버튼을 누르지 않을 시 사망합니다. ] [ 남은 시간 00 : 09 : 58 ]“그럼 끝날 때 보자고.”
지크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하…..”
칸은 한숨을 쉬며 버튼을 보았다.
‘하르미노가 버튼을 안 눌러야 되는데….’
그녀는 정신계 디버프를 받았고, 마이너스 호감도로 상처를 받았다.
버튼을 안 누르면 죽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정신이 작살났을 텐데, 버튼을 안 누를 수 있을까.
“..모르겠다.”
칸은 답을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을 감고 하르미노의 선택을 기다릴 뿐이다.
*
하르미노는 멍하니 빨간 버튼을 보았다.
“누르면 칸이 죽고 안 누르면 내가 죽는다니…..”
그녀가 입술을 물었다.
탑을 오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건 너무 가혹했다.
게다가 잔인한 사실 하나가 더 있었다.
[ 칸이 당신에게 품고 있는 호감도는 ‘-33’입니다. ]공중에 떠다니는 호감도 메세지.
이것이 그녀를 고달프게 했다.
“..불편했구나. 칸.”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칸에게 안겨서 울었던 기억이 가시가 되어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하긴. 내가 칸한테 해준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녀는 이제 체념했다.
칸은 그녀에게 에픽 정령석도 주고 만병통치약도 줬다.
그런데 그녀가 칸에게 해준 건 아무것도 없었다.
100골드 써서 축하 메세지를 보낸 것 따위, 해준 일이라 하기도 민망했다.
“이해해. 칸…..”
그녀는 칸을 이해하리라 마음 먹었다.
칸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버튼을 누르는 건 받아들이지 못 했다.
그녀의 입술에서 힘 없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칸이 날 싫어한다고 해도….. 난 칸이 좋은데.”
그녀의 눈에 깊은 슬픔이 담겨 있다.
그 눈으로 빨간 버튼을 보자니, 도저히 누를 수 없었다.
호감도 메세지가 그녀를 압박했지만, 역시 불가능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죽여…..”
하르미노는 버튼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더 이상 버튼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
“이것 참…..”
아스트리드는 팔짱을 끼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선별인원 중 가장 상태가 좋았는데, 디버프의 침공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견뎌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에게는 겸손이 없었다.
천 년 동안 겸손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애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다.
“모두가 날 싫어한다는 건 불가능하잖아.”
그녀는 가늘게 뜬 눈으로 호감도 메세지를 보았다.
[ 하르미노가 당신에게 품고 있는 호감도는 ‘-3’입니다. ] [ 베르몬트가 당신에게 품고 있는 호감도는 ‘-9’입니다. ] [ 조지크라반이 당신에게 품고 있는 호감도는 ‘-14’입니다. ] [ 칸이 당신에게 품고 있는 호감도는 ‘-38’입니다. ]“이건 불가능해.”
그녀는 메세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칸에게 미움 받을 짓을 한 적이 없었다.
3주가 넘게 팀을 맺는 동안 그를 보호해줬고, 돌침대를 줬다.
자신의 체취가 듬뿍 담긴 하얀 침대에서 자는 것을 허락했다.
만 골드를 선물해줬고 용의 물약까지 먹여줬다.
게다가 자신은 아름다웠다.
꼬맹이와 정령보다는 수 백배 완숙한 아름다움이었다.
칸이 자신을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이거 조작인가?”
아스트리드는 도도하게 머리를 넘기며 빨간 버튼을 응시했다.
*
“왜…..”
실쭉샐쭉 입술을 떨고 있는 베르몬트.
그녀는 흐리멍텅한 눈으로 메세지를 보았다.
“대체 왜…..”
그녀는 칸의 호감도를 확인한 순간, 이성이 날아갔다.
사리를 분별할 능력을 상실했다.
칸과 함께 했던 모든 기억.
아스트리드를 공략한 기억.
콜로세움에서 1대1로 맞선 기억.
밥을 먹은 기억.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난 기억.
그 모든 기억 속에서 칸이 자신을 싫어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그녀의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꽉 물고 있던 입술이 열렸다.
“그냥 몰랐으면…..”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참담한 심정을 담은 눈이 빨간 버튼을 보았고, 호감도 메세지를 보았다.
[ 칸이 당신에게 품고 있는 호감도는 ‘-41’입니다. ]저 호감도 메세지가 너무나도 싫었다.
찢어버리고, 태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러웠다.
결국, 그녀는 의자를 박차고 메세지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은 메세지를 관통했고, 베르몬트는 책상에 엎어졌다.
“다. 다 싫어…..”
배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얼굴은 덤덤했다.
그녀의 체념한 얼굴, 흐리멍텅한 눈.
그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나왔다.
*
모든 것이 새하얀 방.
10개의 스크린과 붉은 머리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스크린 하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거 너무 재밌는데?..”
스크린 속에는 마족 여인이 책상에 엎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 상태로 눈물을 흘렸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짝사랑했는데, 그 남자는 알고보니 자신을 증오하더라….. 이거 정말 완벽한 비극이잖아?”
붉은 머리의 소년은 손을 비비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의 기대감 가득한 눈이 마족 여인을 응시했다.
“자. 이제 어쩔래? 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버튼을 누를래? 아니면 슬픔에 잠겨서 생을 마감할래? 으흐흐. 어느 쪽이든 너무 재밌겠다.”
마족 여인이 어떤 선택을 하던, 붉은 머리의 소년에게는 매력적이었다.
그는 손톱을 깨물며 상황을 관전했다.
“오! 이건 또 뭐야. 여기도 재밌잖아!”
그러나 그의 눈은 금방 옮겨갔다.
마족 여인은 책상에 엎어져서 울기만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살인이 벌어지고 있었다.
“엘프랑 드워프….. 역시 종족도 다르고 친분도 없으니까 망설이지를 않는구나!”
붉은 머리의 소년은 살인극으로 눈을 돌렸다.
*
[ 리나(엘프족) vs 바튼즈(드워프족) ]리나는 엘프고 바튼즈는 드워프다.
이 둘은 종족도 다르고 친분도 없다.
그래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엘프를 죽이고 탑을 오른다!’
‘드워프 따위, 방해되면 죽일 뿐이다.’
[ 남은 시간 00 : 09 : 58 ]그들은 놀이 시작 2초만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참혹한 결과를 맞이했다.
“…..허억!”
“…..커헉!”
엘프와 드워프는 버튼을 누르자마자 격통을 느꼈다.
누른 순간 고통이 엄습했기에, 그들은 이 놀이의 진실을 깨닫았다.
‘누르면 죽는 거였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들은 성래족을 저주하며 목숨을 잃었다.
“으하하하!”
지크는 폭소를 터트렸다.
그들이 죽으며 마나가 회복되었다.
혹시 모를 일이 생겨도, 그는 자기 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 뭐야? 여기도 재밌네.”
그때, 엘프 vs 엘프 대결에서 즐거운 광경이 벌어졌다.
*
[ 바바라(엘프) vs 달린(엘프족) ]바바라와 달린.
그녀들은 수 백년을 알고 지낸 절친이다.
두 여인은 서로를 참된 친구라고 생각했다.
어제까지는.
‘달린이 날 싫어한다 이거지..’
‘바바라. 항상 웃어주더니 속은 아니었어..’
그녀들은 호감도 확인으로 관계가 박살났다.
둘은 서로에 대한 나쁜 기억을 곱씹었다.
‘달린 그 년. 지 남친이 날 좋아한건데 왜 욕해? 그냥 내가 이쁜 거잖아.’
‘바바라 그 년은 내가 좋아하는 남자는 다 뺐어갔어.’
‘달린 그거 생각할수록 짜증나네. 속으로는 날 싫어했단 말이야?’
‘바바라 그 여우년 이제보니까 완전 나쁜 년이네. 날 욕해댔다 이거지?’
그녀들은 차게 식은 눈으로 빨간 버튼을 보았다.
‘달린. 네 잘못이야. 네가 날 싫어했다고.’
‘바바라. 난 널 몇 번이나 용서해줬는데. 이젠 안 되겠다.’
감정 디버프는 그녀들의 마음에 병균을 풀었다.
병균은 순식간에 증식해서 마음을 집어삼켰다.
‘달린. 어쩔 수 없어. 난 살고 싶다고.’
‘바바라. 그 동안 나름 즐거웠어. 이제 죽어.’
그녀들이 빨간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아. 아파!…..”
“뭐. 뭐야 이거!……”
숨이 헐떡거리는 고통이 엄습했다.
그녀들은 심장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야비하고 잔인한 일이 시작됐다.
[ 달린이 당신에게 품고 있는 순수 호감도는 ’89’입니다. ] [ 바바라가 당신에게 품고 있는 순수 호감도는 ’78’입니다. ]마이너스 필터링이 적용되지 않은 ‘순수 호감도’였다.
그녀들의 잔인한 복수심이 차갑게 식었다.
‘달린…..’
‘바라라…..’
그녀들은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회한에 젖었다.
숫자 따위에 흔들린 정신력을 한탄하고.
친구의 마음을 의심한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미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두 여인은 서로에게 사죄하며 명을 다했다.
“으하하하!”
지크는 무릎을 치며 웃었다.
그는 쾌락에 찌든 눈으로 스크린을 탐색했다.
“더 재밌는 곳이.. 분명 있을 텐데!…..”
그것은 흡사, 먹잇감을 탐색하는 광견병이었다.
“오.. 이건 또 흥미롭군.”
그의 눈이 멈춘 곳은 드워프였다.
수 백년간 우정을 다져온 드워프들.
이들이 어떻게 망가져 갈지 상상하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으흐흐..”
지크는 입맛을 다시며 스크린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