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179)
이세계 골드리치-179화(179/256)
<– 세로스 상단에 입단하다 –>
“내 상단에?”
세로스는 살기를 갈무리하고 칸을 보았다. 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80층을 등반한 선별인원의 가치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영입할 가치는 충분하고도 넘치지 않나?”
세로스가 오만한 인재상을 좋아한다는 것만 아니었다면, 그도 이렇게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칸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서열 4위 이하 종족이 80층을 넘었다는 건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은 괴물이라는 것을 뜻했고, 강자라는 걸 증명하는 보증 수표였다.
당장 해인족 대표 무시카를 보면, 그는 80층을 오르지 못했지만 해인족의 영웅 대접을 받으며 왕처럼 군림했다.
80층을 오른 선별인원은 만인에게 존경받았으며 드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그런데 세로스에게는 아닌 모양. 그가 좋아하는 오만한 성격을 연기했음에도, 그의 미간은 풀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전부 베르몬트 때문이었다.
“뭐야? 왜 갑자기 날 째려보는데?”
칸은 베르몬트에게서 주의를 거두고, 세로스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난 세로스 상단의 이름값이 필요하다. 내 힘을 빌려줄 테니, 그걸 받았으면 좋겠군.”
“이름값이 필요하면 릴라데아로 가라. 난 내 딸에 붙어먹는 제비 따위는 필요 없다.”
세로스는 칸이 베르몬트를 홀렸다고 믿었고-그게 부분적으로 사실이긴 했지만- 칸의 도전을 거부했다.
역시 베르몬트 때문이었다.
“아니 왜 날 째려보냐고!”
칸은 세로스를 바라보며 설득을 시작했다.
“난 제비도 아니고 베르몬트에게 붙어먹는 좀벌레도 아니다. 나는 세로스의 이름값이 필요할 뿐이다.”
“그럼 내 딸은 왜 데리고 온 거지?”
“나 혼자 왔으면, 네가 날 죽이려 했을 텐데.”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니군.”
그러나 설득은 커녕 불꽃만 튀겼다.
결국 베르몬트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둘 다 그만해!”
그녀가 소리치자 칸과 세로스 사이에서 튀기던 불꽃이 꺼졌다.
베르몬트 그 틈을 놓치지 않았고 세로스를 야단치기 시작했다.
“아빠! 칸을 영입하면 상단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면서 왜 그러는 건데!”
베르몬트의 나무람이 이어지자 세로스는 신기하게도 누그러졌고, 그의 분노는 진정되었다.
“알았다. 내가 경솔했다.”
세로스가 베르몬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과를 전했다. 베르몬트는 양볼에 넣었던 바람을 빼며 물러났다.
‘저 둘을 보니까 배울 점이 많네.’
딸에게 지고서 칸을 노려보는 세로스처럼은 되지 말아야겠다. 가 배울점 중 하나였다.
세로스가 칸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놈이 상단에 들어오고 싶다면 나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네가 원하는 직책에 따라 시험은 어려워지고,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지.”
‘죽을 수도’라고 말할 때 왜 힘을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칸은 시험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그러려고 왔으니까.
“시험을 치르겠다.”
칸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1급 하수인 입단 시험을 치르겠다.”
1급 하수인.
부마스터 바로 아래 직위로서, 상단 상위 0.1% 계층을 뜻하는 직위였다.
“1급 하수인?…….”
세로스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1급 하수인 입단 시험은 최고난도 시험이었고, 합격률도 극악했다.
‘이거 잘만하면 아예 없애버릴 수도 있겠군.’
세로스는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리며 칸의 입단 시험을 허락했다.
시험 시작은, 바로 지금이었다.
*
칸은 세로스를 따라서 지하 1층 연무장에 도착했다.
“시험을 설명해주지.”
시험은 간단했다.
세로스 상단의 부마스터 중 한 명이자 수인족 대표, 하미르와 대전을 치러서 무승부 이상의 결과를 거두면 합격이었다.
“네가 입단하면 전투 임무를 맡게 될 텐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세로스는 씩 웃으며 칸을 연무장 한가운데로 보냈고, 칸은 그가 시키는 대로 걸어갔다.
‘이겨라!’
베르몬트는 칸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나마 응원했다.
그리고 지상층 계단에서 들려오는 뚜벅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칸의 대진 상대, 하미르가 보였다.
“1급 하수인에 도전한 간 큰 녀석은 누구야?”
하미르는 수인족 대표였으며, 온몸에 잔근육이 들어찬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수인족 대표라…….’
연무장 중앙에 선 칸은 하미르를 보며,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당도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기 있구나!”
콰앙!-
하미르가 연무장 바닥을 발로 차더니, 눈 깜짝할 새에 칸 앞에 도착했다.
“안녕?”
그녀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칸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세로스를 보았다.
‘네놈이 하미르를 이길리가 없지.’
세로스는 씩 웃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베르몬트의 어깨를 쓸어주며 걱정하지 말라고까지 했는데, 베르몬트는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질색하며 거리를 벌렸다.
‘시작이나 했으면 좋겠네.’
칸은 하미르를 압도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너무 긴장하지 마. 살살 해줄게.”
정작 하미르는 자만감에 젖어 있었지만, 뭐 그건 그것대로 괜찮았다.
칸은 잿빛 활을 들고 전투의 시작을 기다렸다.
“빨리 싸우고 싶나 보군.”
세로스는 칸을 비웃으며 시험을 진행했다.
“양측, 열 보 뒤로 물러나라!”
칸은 덤덤한 얼굴로, 하미르는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물러났다.
그들의 걸음은 열보를 채웠고.
“싸워라!”
세로스의 외침과 함께 시험을 시작했다.
“신체 강화 4단계!”
콰아아아!-
하미르의 육체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붉은 기운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무서워도 오줌 지리면 안 된다!”
그녀는 이를 드러내며 방긋 웃더니, 땅을 박차고 칸에게 돌진했다.
그 순간, 칸은 [잿빛]을 발동했다.
콰아아아!-
“……윽!?”
갑작스럽게 폭발한 잿빛 구름.
하미르가 뒤로 밀려나며 안면을 감쌌다.
칸은 잿빛 속에 숨어서 그녀를 [표식]으로 지정했고, 특수능력 [제왕]을 발동했다.
콰아아아!-
연무장을 울리는 굉음이 터졌고, 제왕의 화살이 하미르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돌거북의 수호!”
콰아아아앙!-
하미르는 뒤늦게 방어막을 전개했고, 눈곱만 한 시간차로 제왕의 화살을 방어했다.
그런데, 막은 게 막은 것이 아니었다.
“크학!…….”
어찌나 강력한 데미지가 들어갔는지, 하미르는 자리에 주저앉아 붉은 피를 토했다.
“빌어먹을 인간 따위가!”
콰아아아!-
그녀를 중심으로 충격파가 발생했고, 연무장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본때를 보여주마!”
그녀가 악을 지르며 칸에게 쏘아졌다. 칸은 그것을 피하지 않고 [유령]의 발동을 기다렸다.
“죽어!…….”
하미르의 주먹이 칸의 지척에 다가온 그 순간.
-우워어어!
퍼어어어엉!
[유령]이 발동되어 하미르를 날려버렸고, 그녀는 연무장 벽에 처박혔다.“크하아악!”
그녀는 고통에 신음하며 피를 토했다. 그때, 칸이 제왕의 화살을 그녀의 심장으로 발사했다.
콰아아아아!
“마… 말도 안!…….”
제왕의 화살은 피하기에는 너무 빨랐고, 막기에는 지나치게 날카로웠다. 그것은 그녀의 죽음만을 뜻했으며, 다른 의미를 갖지 않았다.
“시험 종료다.”
파지지지지!-
전격의 방패를 든 세로스가 아니었다면, 하미르는 명백하게 죽은 목숨이었다.
콰아아아-
화살의 경로가 미세하게 틀어져서 옆벽에 부딪혔다. 강한 격폭음이 터지며 백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세로스는 눈살을 찌푸리고 하미르를 꾸짖었다.
“이번에 네가 보인 자만심은 철저히 교육하겠다.”
“그, 그것이 아닙!…”
“닥쳐라! 네가 처음부터 방심하지 않았다면 인간에게 패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하미르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떨궜다.
‘예상보다는 싱거웠네.’
칸은 하미르를 보며 평온한 얼굴을 했다.
하미르가 처음부터 진지하게 나왔다면, 이런 압도적 승리는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칸을 배려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인간족이라 방심한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결과는 좋게 나왔다.
“합격이다 인간.”
칸은 세로스 상단의 1급 하수인이 되었다.
*
“칸. 또 연락해. 알았지?”
“알았어.”
칸은 베르몬트와 작별인사를 나눈 후 상단을 빠져나왔다.
세로스 상단 소속을 증명하는 마패를 받았고, 1급 하수인 임명증도 받았으니 계속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인간! 나중에 다시 한 번 붙어!”
“기회 되면.”
칸은 하미르를 뿌리치고 탑 51층으로 이동했다.
*
[ 힘의 탑 51층, 공용 분수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스폰지역 느낌이 나는 공용 분수대.
칸은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시계탑을 보았다.
‘벌써 6시네.’
하늘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벤치에 앉은 연인들의 사랑도 무르익고 있었다.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으읍!”
‘잘도 저런다.’
칸은 연인에게서 눈을 거두고 분수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약간 쓸쓸한 자신의 처지를 위안했다.
‘내 어깨엔 300만 인류가 있으니까.’
연애를 할 수 없었고, 결혼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누굴 만날 입장이 아니야.’
인류를 등에 업은 남자.
이것이 칸의 타이틀이었고, 이 세계로 떨어진 그의 숙명이었다.
과거 인류를 구했다고 알려진 성인도 평생 애인 없이 살다 돌아갔으니, 어찌 보면 상황이 비슷했다.
‘내가 성인은 못 되지만.’
생각해보니 그 성인도 여성을 이성으로 좋아하지는 않아도 친밀한 친구로는 받아들였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 갈수록 비슷했다.
‘난 인간족을 구원하고 나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생각이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때가 되면 칸도 인생을 실컷 즐길 생각이었다.
‘지금은 내 할 일이나 하자.’
칸은 크리스탈을 들었다.
기적의 창조자와 맺은 약속을 계속 이행해야 했다.
[ 성신, 기적의 창조자가 요즘 기분이 이상해서 힘들다고 말합니다. ]칸은 호칭에 붙어있는 특수능력 [사랑]을 OFF하고 크리스탈을 조작했다.
[ 메세지가 전송되었습니다. ]그는 하르미노에게 내일 점심을 사주겠다는 메세지를 보냈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밖에선 자제 좀 하지.’
옆 벤치에서 착 달라붙은 마족 연인.
칸은 그들을 보며 혀를 차고는, 집으로 걸어갔다.
*
하르미노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 오늘 저녁은 내가 할 테니까 소파에서 쉬어.”
“고마워~”
그녀는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시작했다. 오늘 메뉴는 야타의 층에서 칸이 해줬던 마등어 꼬치구이였다.
‘칸은 진짜 맛있게 구워줬었는데…….’
그녀는 칸을 생각하며 은은하게 웃었고, 꼬치구이를 구우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때, 크리스탈이 울렸다.
“음?”
하르미노는 고개를 갸웃하며 발신인을 확인했다.
‘칸이 보냈네?…….’
그녀가 미소 지으며 입을 가렸다.
요즘 칸 얘기만 나오면 어머니가 놀려대니,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그녀는 꼬치구이를 뒤집으며 메세지 내용을 확인했다.
[ 하르미노.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면 점심 같이 먹을래? 하르바바에서 맛있는 거 사줄게. ] -방금 전.하르미노의 광대가 슬쩍 올라갔다. 그녀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고 크리스탈을 두드렸다.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우리 딸, 지금 몇 살 됐다고 연애하는 거야?”
“어. 엄마! 이건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응?”
어머니가 하르미노의 어깨를 주물렀다. 하르미노는 양볼이 달아올랐고, 그만하라고 다그쳤다.
“엄마! 그만 좀 놀려!”
“알았어. 우리 딸 연애사에 신경 안 쓸게~”
어머니는 부드럽게 웃으며 거실로 물러났다.
“엄마 진짜 왜 그래!”
하르미노는 약간 크게 소리치고는, 다시 크리스탈을 들어서 메세지를 전송했다.
“……조금 기대되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방긋 웃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아빠! 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
칸은 튀김 두 봉지를 사서 집에 들어갔고, 잉그리드에게 덮쳐지고 나서야 그녀를 달랠 수 있었다.
“아빠 사랑해!”
“잉그리드! 이제 그마으으읍!…….”
…사실, 조금 더 덮쳐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