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180)
이세계 골드리치-180화(180/256)
<– 동맹 결성 –>
칸과 잉그리드는 아침을 맞았다.
그들은 어젯밤, 튀김을 챱챱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새벽 3시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오후 1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망했다!’
하르미노와 약속한 시간은 12시. 벌써 1시간을 늦고 말았다.
“아빠아……”
잠꼬대를 하며 앵겨붙는 잉그리드를 조심스럽게 밀어내며, 칸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하나의 빛살이 되어 옷을 갈아입었고 현관으로 뛰쳐나가 신발을 신었다.
‘무슨 만화도 아니고!…….’
만화 속 지각 클리셰를 몸소 실천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돈으로 순간이동이 되니 다행이지…….’
그는 100골드를 소모해서 공용 분수대로 단숨에 이동했다.
*
이동하자 보이는 것은 하르미노였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 있었고, 칸을 기다리며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도착한 칸을 본 그녀는,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칸에게 걸어왔다.
“와줬구나.”
“미안. 진짜 미안해.”
칸은 거듭 사과했고 하르미노는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미안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칸은 하르미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일 맛있는 걸로 사줄게.”
*
둘은 하르바바 귀빈석에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하르미노는 서비스로 나온 빵만 먹으면 된다고 거듭 말했지만, 칸은 미안해서 안 된다며 500골드짜리 랍스터를 주문했다.
하르미노는 새하얀 속살을 음미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칸은 미안한 기분을 덜어냈다.
이런저런 잡담이 함께하는 즐거운 식사가 이어지기를 어언 30분, 둘은 고급 게살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고 디저트로 나온 케잌과 허브티를 먹으며 좋은 분위기를 즐겼다.
마치 보증 서달라고 해도 웃고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 칸은 부탁을 꺼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그는 ‘태초의 정령석’을 꺼내서 하르미노에게 건넸다. 그녀는 눈을 부릅떴고 동공은 마구 지진했다.
“이건……!”
“쉿…….”
칸은 목소리를 낮추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태초의 정령석을 그녀의 두 손에 꼭 넣어주며, 부탁을 말했다.
“나와 함께 탑의 끝을 봐줬으면 좋겠어.”
101층부터 시작되는 지옥 같은 여정, 그것을 함께하자는 것이었다.
남들이라면 개죽음당할 일 있냐며 자리를 박찰 일이었고, 차라리 보증을 서달라고 하지 그랬냐며 욕설을 퍼부을 일이었다.
그러나 하르미노는 칸 덕분에 어머니를 구했으며, 평생 보기도 힘들다는 태초의 정령석까지 받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칸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은 아귀가 안 맞는 일이었다.
“그렇게 할게. 칸.”
그녀는 찰나의 고민도 하지 않았고, 진지한 눈빛으로 칸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태초의 정령석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칸의 손을 잡으며 재차 말했다.
“같이 끝을 봐줄게.”
그것은 만병통치약을 받았을 때 말했던, ‘영원한 네 편’의 이행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확고한 태도로서 그것을 온전히 증명했다.
‘역시 정령석 잘 줬다.’
칸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탑의 끝을 함께할 첫 동료가 생긴 순간이었다.
*
‘다음은 아스트리드인가.’
하르미노를 동료로 삼았다. 다음은 아스트리드였다.
‘조금 걱정이 되긴 하는데.’
원조를 아끼지 않은 하르미노와는 다르게, 아스트리드는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했을 뿐, 그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적이 드물었다.
그녀가 칸의 동맹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포기하기도 어려운 것이, 101층부터는 ‘종족 당 한 명’이라는 입장 제한이 있었다.
인간족이야 ‘유저’라는 명목으로 제한이 풀어졌고, 그 덕에 102층까지 공략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다른 종족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101층에 도전하려면 각 종족의 최강자를 모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01층 보스를 생각하면 거인족부터는 무쓸모에 가까웠고, 공격력 한계치가 급상승하는 용족부터 데려갈 가치가 있었다.
칸과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용족이 아스트리드밖에 없었으니, 그녀를 포기하는 건 상당히 뼈아픈 일이었다.
‘절이라도 해야겠는데.’
몇 번이고 언급한 사항이지만, 미개척층 공략은 동반자살과 다를 것이 없다.
아스트리드가 칸을 위해 죽어줄 여인일까?
“모르겠다.”
답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다면,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 혹시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그는 메세지를 보내고 크리스탈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스트리드가 마음이 있다면 곧바로 답장이 올 것이고, 그저 그렇다면 뒤늦게 올 것이다.
칸은 노점 거리를 걸으며 답신을 기다렸다. 답신은, 정확히 7초 만에 도착했다.
[ 그거 좋은 소식이구나. 51층 리바스텐 호텔 1708호로 오도록. 와인과 고급 치즈가 잇으니 근사한 저녕을 만들어 보자꾸나 ]‘…오타 뭐야.’
취한 건가.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다. 그러나 아스트리드가 저녁을 함께하고 싶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용족과 와인이라…….’
아스트리드의 미모와 도도한 태도를 생각하면, 뭇 남자들에게는 심장이 뛰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뛰긴 뛰네. 거절 당할까 봐.’
칸은 피식 웃으며 리바스텐 호텔로 이동했다. 51층에서 한 손에 꼽히는 고급 호텔이라 바로 눈에 띄었고, 찾아가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1708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왔는가!
쿠당탕.
문 안쪽에서 들려온 두 가지의 소리. 그것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암시했다.
‘취했구나. 그것도 꽤 심하게.’
아스트리드는 취했다. 무슨 일로 괴로웠던 건지, 아니면 단순한 치기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녀는 와인이 땡겨서 과음을 했고 만취하고 말았다.
쾅
“왔으면 대답을 해야 될 것 아닌가……!”
문이 열리며 아스트리드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는 붉은 머리를 잔뜩 헝클어트린 채 실실 웃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알싸한 술 냄새는 덤이었다.
“아스트리드. 조금 많이 취한 거 아니…”
“됐으니까 들어와라!”
그녀가 칸의 등을 퍽퍽 치며 안으로 들였다. 칸은 청양고추보다 매운 손맛에 굴복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
그들은 하나의 소파에 앉았다. 앞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고 와인과 구운 치즈가 있었다.
칸의 손에는 와인잔이 들려있었고, 아스트리드가 와인병을 들고 쪼르륵 따라주고 있었다.
“쭈~욱 들이켜라!”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되돌아가기에는 한참 늦었다.
‘에라 모르겠다.’
떄로는 일탈도 필요한 법. 칸은 아스트리드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고 와인을 들이켰다.
“켁…… 이거 너무 센 거 아냐?”
그런데 와인이 예상외로 강했다. 아스트리드가 취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은 죽어보는 거다.”
그녀가 히죽 웃으며 칸을 응시한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동맹 제안하려고 왔는데, 정작 하는 건 술고래가 되는 일이다.
“이걸 봐라!”
어느새 마법냉동고로 블링크한 아스트리드가, 냉동고를 활짝 열어서 고급 와인 30병의 자태를 드러냈다.
‘아스트리드가 술을 좋아한다는 설정이 있었던가?…….’
종족 전쟁에서 비중이 높은 npc는 아니라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오늘 밤은 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거다!”
아스트리드가 와인 두 병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칸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오늘 밤은 그저 즐기는 거다.”
그녀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칸을 바라보았다. 술기운 덕에 흐리멍덩해진 눈이 보석처럼 매혹적이다.
“그래…… 마시자.”
그녀의 무방비한 매력에 홀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런 일탈이 나쁘지 않았을 뿐이다.
짠?
그는 아스트리드와 와인잔을 부딪히며 술잔치의 시작을 알렸다.
*
‘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호기롭게 와인잔을 부딪힌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로는 모든 기억이 소실되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체력S 덕분에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고 구역질도 나지 않았지만, 지금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여긴 침대잖아.’
그가 누워있는 곳은 침대였고, 그를 덮고 있는 것은 하얀색 이불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누워있는 것은 붉은 머리의 여인, 아스트리드였다.
‘미친…….’
그녀는 칸 옆에 누워있었다. 완전히 미칠 지경. 전날 밤의 기억이 없으니 돌아버릴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칸은 심각한 얼굴로 이불을 슬쩍 들어 올렸다. 전날 밤의 단서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인간.”
어느새 눈을 뜬 아스트리드가 몸을 일으켰다. 칸은 미간을 좁히며 재차 물었다.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
그녀가 칸을 노려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렇다! 인간은 고자인지, 내가 술에 취해서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되었음에도 아무런 짓거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다행…”
“뭐가 다행인가. 내 여성성이 한심스러울 정도로 적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인가?
아스트리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칸은 자신의 신사도에 감탄하며 그녀를 달랬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다행이지.”
위로당해주기엔 참으로 적적하고 부족한 말들뿐이었지만, 아스트리드는 고자한테 뭘 바라겠어, 하는 심정으로 그를 이해해 주었다.
“됐으니까 일어나겠다.”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이불을 개기 시작했다. 칸도 침대에서 빠져나와 그녀를 도왔다.
그리고 은근슬쩍 동맹 제의를 꺼냈다.
“아스트리드. 내가 하나 부탁할 게 있는데……”
“어제 하나 들어줬건만, 또 뭔가?”
그러나 아스트리드가 칸의 말을 끊어냈다. 부탁은 이미 들어줬으니 충분하지 않냐는 눈치다. 전날 밤의 기억이 없는 칸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고, 그녀에게 물었다.
“부탁이라니?…….”
아스트리드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탑의 끝을 함께 봐달라, 인간은 그리 부탁했다.”
칸의 얼굴에 경악이 들어찼다.
“술기운에 승낙하기는 했다만, 용족은 한번 내뱉은 말을 취소하지 않으니 이것 참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가장 가능성이 없다고 여겼던 여인, 아스트리드. 그녀가 칸의 동료가 되어준 것이다. 이보다 놀라운 일이 또 있을까, 칸은 방긋 웃으며 감사를 전했다.
“고마워.”
“술기운에 그런 것이니 오해하지 말아라…….”
아스트리드는 고개를 돌렸다.
1,000살 답지 않은 귀여운 반응에, 자연스레 아빠미소가 지어졌다.
파아-
“아빠?…….”
등 뒤에서 잉그리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