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181)
이세계 골드리치-181화(181/256)
<– 드높은 서열을 위해 –>
칸은 조심스레 연인의 목걸이를 들었다. 수십 통의 부재중 메세지가 쏟아졌다.
[ 아빠. 언제 와? ]-13시간 전 [ 지금 10시 넘었는데 아직이야? ]-12시간 전 [ 빨리 와! ?∀? ]-11시간 전 [ 아빠? ]-7시간 전…….
[ 나쁜 놈들한테 납치당한 거야? ]…….
[ 지금 거기로 갈게. ]-방금 전.‘망했다.’
칸은 고개를 살짝 들어 잉그리드를 보았다. 그녀는 한숨도 못 잤는지 다크서클이 짙어져 있었고, 후줄근한 나시를 입은 채 머리카락도 엉망이었다.
칸이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하자마자 바로 순간이동한 것이다.
“저 여자가 아빠 납치했어?!…….”
그녀가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며 아스트리드를 노려보았다. 아스트리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애써 목소리 톤을 가다듬고 칸에게 물었다.
“저 환상족 아이는 누구인지?”
“네가 아빠 납치했냐고!”
그러나 대답은 칸이 아닌 잉그리드에게서 돌아왔다.
“빨리 말해!”
잉그리드가 아스트리드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칸이 의심받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아스트리드가 공격당하는 건 좋지 않았다.
“잉그리드. 납치당한거 아니야.”
칸은 잉그리드를 감싸 안았다. 순간 분노의 불길이 칸에게 옮겨붙었다.
“납치가 아니면 이 여자랑 뭐한 건데?”
잉그리드의 시선에 살기나 적의는 없었으나, 실망과 슬픔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집에 가서 다 설명해줄게.”
그러나 칸은 그녀를 달래줄 수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의 보호자였으니까.
“집에 가자.”
그는 잉그리드를 꼭 안은 채 연인의 목걸이를 들었다. 잉그리드는 현 상황에 의문이 가득했으나, 칸의 온기를 내치기는 싫은 듯 입술을 깨물었다.
‘이러니까 내가 나쁜 놈 같잖아.’
비탄에 잠긴 잉그리드, 배신당한 얼굴의 아스트리드. 그 둘의 시선을 계속 받으니 잘못을 한 것이 없는데도 양심이 찔려왔다.
‘아스트리드. 전부 설명해줄게.’
그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그리고 잉그리드와 함께 집으로 이동했다.
*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났다.
칸은 자신의 목표-인간족의 생존에 만족하지 않고, 힘의 탑의 끝을 보는 것-를 열정을 다해 설명했고, 두 여자를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 그자는 너의 딸이었군. 알겠다. 더 이상 채근하지 않겠다. ]-방금 전.납치범으로 몰렸던 아스트리드는 꿍한 기분이 풀어지지는 않았지만, 머리로는 모든 정황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 정도면 됐다.’
칸은 크리스탈을 내려놓고 등을 기댔다. 소파의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고, 가슴께에 누워있는 잉그리드의 머리가 안정감을 주었다.
“아빠 나뻐…….”
그녀는 칸에게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새근새근 내쉬는 숨이 은근히 간질거린다.
칸은 잠깐의 여유를 가졌다. 오늘부로 하르미노와 아스트리드, 두 명의 여인을 동료로 맞이했다. 하르미노는 동료가 될 것이라 확신했기에 큰 감흥이 없었지만, 아스트리드는 예상외의 수확이었다.
‘이제 한 명 남았네.’
남은 후보자는 베르몬트였다. 그녀는 먼저 맞이한 둘에 비해 난이도(?)가 낮았고, 동료로 맞이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베르몬트는 천천히 하자.’
처리하기 쉬운 일일수록 미루게 되는 건 어째서일까. 칸은 베르몬트 영입을 미루기로 했다. 어차피 세로스 상단에 입단한 이상 밥 먹듯 볼 얼굴이었고, 동료가 되어달라 말할 기회는 넘칠 정도로 많았다.
‘지금은 잉그리드한테 신경 써줘야지.’
선물 하나 주면서 기분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던 선물을 꺼냈다.
[ 환상력을 담은 너클 ]이었다.나중에 강화해준답시고 뺏어올 선물이었지만,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는 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일단 레전더리였다.
“잉그리드. 잠깐만 일어나봐.”
칸은 잉그리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잉그리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다크서클이 없어졌네.’
10분 동안 잔 것뿐인데 피부가 보송보송해졌고 머리칼에는 윤기가 흘렀다. 환상력은 모든 곳에 만능이었다.
“아빠…… 왜 깨웠어?…….”
잉그리드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칸은 그녀의 손에 너클을 쥐여주었다.
너클의 감촉을 느낀 잉그리드가 눈을 깜빡거렸고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이게 뭐야!?…….”
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선물.”
“……선물?”
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클을 끼워보라고 말했다.
“아빠가 준 선물…….”
잉그리드는 감동한 얼굴을 한 채 너클을 손에 끼웠다. 그러나 너클은 튕겨져나갔다.
[ 레벨이 부족합니다. ]잉그리드의 레벨은 34. 너클의 레벨은 100이었다.
“뭐. 뭐야!…….”
잉그리드가 당황해서 너클을 째려본다. 칸이 준 선물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원통한 듯했다.
칸은 웃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레벨 좀 올려야겠네?”
“……맞아.”
잉그리드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레벨 올릴 거야.”
그녀가 진지한 눈빛으로 선언했다. 칸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냥터 알려줄게.”
그는 잉그리드를 데리고 51층 평원으로 이동했다. 그는 그곳에서 몇 가지 주의사항-과한 힘을 쓰지 마라. 다른 사람의 사냥감을 뺏지 마라.-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나 레벨 100 찍고 올게!”
잉그리드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 후, 평원의 성래족을 학살하러 떠나갔다. 칸은 그것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할 일을 정리했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해야 할 일은 간단하네.’
종족 서열을 올리고, 세로스 상단에서 공고한 위치에 올라야 했다. 뒷일은 그 두 가지를 끝낸 다음에 생각해도 충분했다.
‘해 보자.’
첫째는 종족 서열 격상이었다. 그는 크리스탈을 들고 탑 1층, 관리국으로 이동했다.
*
칸은 관리국에 들어섰다.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일었다.
“저거 인간족 대표 아니야?”
“또 격상 전투를 선포하러 온 건가?”
첫째와 둘째 방문 때는 칸을 거들떠도 안 보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격상 전투를 두 번이나 승리한 그는 인간족을 서열 11위에 올렸고, 해인족과 괴이족을 밑으로 추락시켰다.
무시카에게 승리를 거둔 시점에서 칸은 유명인사가 되었고,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분위기를 지니게 되었다.
관리국의 존재 대부분이 그를 의식했다.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이번에도 격상 전투의 선포인가?…….’
안내 데스크 직원들은 전원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탑의 주민들은 그가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칸은 그 광경을 목도하며 안내 데스크로 직진했다.
“머. 먼저 일 보십쇼…….”
고블린 하나가 자리를 비켜주었고 수인족 안내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칸은 그것을 보며 선언했다.
“종족 서열 7위, 엘프족에게 서열 격상 전투를 신청합니다.”
*
엘프족.
‘종족 전쟁’이 오픈된 후 1년이 넘어서 격파되었으며, 종족 대표의 압도적 무력으로 명성이 자자한 종족이었다.
온라인 시절, 유저들이 서열 3위까지 격파한 것을 생각하면 쉽사리 도전할 상대가 아니었다. 400년간 7위의 자리를 단단히 지켰으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 칸은, 그런 엘프족 대표에게 격상 전투를 신청했다. 이것은 오만하게 보였으며, 불쾌하게 여겨질 도전이었다.
*
엘프족 대표, 아도니스.
여신, 아프로디테가 사랑한 미소년이라는 라틴어 이름의 뜻에서 유래했듯, 세계관 최고의 미소년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꺅! 아도니스님!”
“제발 한 번만 바라봐 주세요!”
그는 엘프 왕국의 왕이자 대표로서, 기만자의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니들같은 여자는 널리고 널렸다. 필요 없으니 돌아가도록.”
그는 무뚝뚝한 얼굴로 엘프 여인들을 물러나게 했다. 여인들은 그것조차 멋지다며 얼굴을 붉혔지만, 아도니스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 서열 11위, 인간족 대표가 서열 격상 전투를 신청했습니다. ] [ 힘의 탑 1층, 협상의 장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하찮은 인간이 나에게 도전했다.’
서열 11위의 벌레만도 못한 종족, 인간족. 그 종족의 대표가 격상 전투를 신청한 것이다.
‘가증스러운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화살 한 발이면 꽥하고 죽을 인간이 도전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불쾌하고 열불이 났다.
‘고고한 엘프족을 얼마나 얕본 것인지 어이가 없군.’
그는 이를 갈며 협상의 장으로 이동했다.
*
서열을 두 번이나 올리다 보니, 옆에 붙는 중재자도 이름값이 달라졌다.
“한번에 4단계를 오르려고 하다니, 자신감이 넘치는군요.”
칸의 옆에 있는 것은 환상족 여인. 정기 회의에 참석하는 고위 관리직 중 한 명이었다.
“뭐, 알아서 잘하시겠지요.”
그녀는 제멋대로 말하고서는, 횃불에 불을 붙였다.
“이제 엘프족 대표님이 오실 겁니다.”
칸과 마주 보는 자리에 녹색 빛살이 일렁이며 형체가 드러났다. 미의 여신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미소년, 아도니스였다.
“나에게 도전한 같잖은 놈은 누구인가!”
그가 호통을 치며 칸에게 걸어왔다. 칸은 가만히 있었고, 환상족 중재자가 아도니스를 멈춰 세웠다.
“멈추십시오. 이곳은 협상의 장입니다.”
아도니스는 이를 갈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칸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한테 도전한 게 너냐?”
칸은 아도니스의 불쾌한 시선을 오롯이 받았다. 그리고 협상을 위한 첫 번째 도발을 말했다.
“쫄리면 가시던가.”
“뭐. 뭐라고?…….”
아도니스는 한 방 맞은 얼굴이 되었고, 칸을 바라보며 고성을 질렀다.
“지금 당장 묵사발을 내주마!”
도발이 먹혔다.
안 그랬으면 인간족의 전부를 걸고 ‘격상 전투’를 신청해야 했을 텐데, 잘된 일이었다.
“두 대표님이 격상 전투에 동의하신바, 본 협상을 시작하겠습니다.”
중재자의 발언에 따라 협상이 시작되었다.
“엘프족 대표님, 발언하십시오.”
언제나 그렇듯, 갑의 위치인 아도니스가 발언권을 얻었다. 그는 오만한 얼굴로 팔짱을 꼈고, 자기 원하는 바를 말했다.
“인간족 영토의 80%와 노동력을 가진 인간족 100만을 원한다.”
인간족을 작살내겠다는 소리. 정상적인 생각이 있다면 누구라도 거절할 제안이었다.
“거절한다.”
칸은 올바른 협상안을 말했다.
“영토는 절반을 주지. 인간은 한 명도 줄 수 없다.”
“양심이 없는 협상안이군.”
“아직 안 끝났다.”
양심이 없건 말건, 칸이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인간족 승리 시, 엘프족과의 백년 동맹을 원한다.”
백년 동맹.
100년간 유효한 동맹으로, 한 국가가 전쟁에 휘말렸을 때, 같이 참전해야 하는 특성이 있었다.
영토 80%를 받아도 애매한 조건이었고, 실제로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내가 승리하면 고작 영토 절반을 얻는데, 네가 승리하면 백년 동맹을 가져가겠다? 이런 제안이 어딨나!”
“거절하기 쉬운 제안은 아닐 텐데.”
그러나 칸은 웃었다.
엘프족은 영토가 부족하다. 그들은 넓은 숲이 필요했고, 괴이족이 다스렸던 광활한 숲은 탐욕스런 보금자리였다.
게다가, 인간족은 쉬운 상대. 굳이 밀고 당길 필요가 없었다.
‘영토 절반… 확실히 탐이 나긴 해.’
이건 기회였다. 칸이 괴물이라고 알려졌긴 하나, 결국 11위에 불과할 종족. 나타샤의 층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아도니스는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영토의 절반은 숲이어야 한다.”
아도니스는 단호한 얼굴로 최종 협상안을 말했다. 칸은 그것에 고개를 끄덕였고 중재자에게 눈치를 줬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바탕으로 ‘대표간 계약’이 작성되었습니다.”
중재자는 무사태평하게 끝난 협상에 만족했고,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
“앞으로 3일 후, 격상 전투를 진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