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195)
이세계 골드리치-195화(195/256)
— 모든 것이 걸린 전쟁 —
“뭐라고?…….”
세로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잘못 듣지는 않았을 텐데. 다시 말해줘야 하나?”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세로스가 일어나서 검을 빼들었다.
“네놈이 나를 배신할 줄이야.”
“……배신이라니.”
칸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으라며 소파를 두드렸다.
“배신이 아니다. 거래를 하자는 거지.”
달래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세로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가 칸의 눈앞에 검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거래라. 배신자들이 애용하는 단어를 말하다니, 아주 끝까지 가는군 그래.”
“진정해라. 세로스.”
“진정? 지금 진정이라고 했나?”
세로스의 칼끝이 칸의 콧등에 닿았다. 피 한 방울이 송골 맺혔다.
세로스는 계속 분노했다.
“네놈은 릴라데아의 첩자인가? 아니면 내가 죽인 남자의 아들?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오다니, 그건 칭찬할 만 하군.”
“세로스. 그런 게 아니다.”
“헛소리 마라. 협상이란 단어가 나온 시점에서 네놈의 흉계는 뻔히 보인다. 아마 내 상단의 지분을 요구하겠지. 그도 아니면 상단 수익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요구하던가. 자, 네가 원하는 게 뭐지?”
세로스가 야수의 눈으로 칸을 노려본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칸은 덤덤한 얼굴로 하나의 단어를 말했다.
“릴라데아.”
“……뭐?”
“나는 릴라데아를 원한다.”
순간 세로스의 검이 흔들렸다. 칸은 그 검을 스윽 밀어내며 소파를 두드렸다.
“진정하고 앉아라. 세로스 상단에서는 실오라기 하나 가져갈 생각 없으니.”
세로스는 그제야 소파에 앉았다. 검은 그대로 쥐고 있었지만.
칸은 세로스를 바라보며 협상을 시작했다.
“넌 릴라데아를 이길 수 없다.”
누가 갑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다음 문장은, 이번 협상의 모든 것을 가르는 열쇠였다.
“그러나 나는 아스고르를 이길 수 있지.”
아스고르를 이길 수 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은 세로스에게 모든 것을 깨닫게 했다.
‘저 자식은 잃을 게 없다. 패배해도 도망치면 그만이지……. 그러나 나는 상단과 목숨, 딸과 친우를 전부 잃는다.’
칸이 패배하면 세로스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승리하면 모든 것을 얻는다.
하지만 칸이 얻는 것은 별로 없다.
패해해도 마찬가지다.
칸이 손해 보는 것은 세로스 상단 하수인들의 증오, 그리고 명성의 자그마한 실추였다. 그는 단 1골드도 잃지 않았다. 인간족이 피해를 당하는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현재, 모든 것을 쥐고 있는 것은 ‘아스고르를 이기는’ 칸이었다.
그가 말하는 협상은, 오히려 그가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에 속했다. 세로스에게 모든 것을 안겨주는 대신 자그마한 선물을 보장받는 것이다.
‘나라도 그랬겠군. 더럽게 똑똑한 새끼…….’
5달 동안 쌔빠지게 굴렀는데, 중요한 순간 뒤통수 한번 때리고 싶은 건 당연한 심리였다.
“……그래서 릴라데아를 원한다 이건가?”
세로스가 검을 집어넣고 말했다.
“이제야 이야기할 마음이 생겼나 보군.”
칸은 얕게 웃으며 진짜 협상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말할 것은 현실적 제안이었다.
“나는 릴라데아를 원한다. 그러나 세로스에 손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 이건 알고 가줬으면 좋겠군.”
칸이 첫째 협상안을 말했다.
“릴라데아 상단을 나에게 넘겨라. 그리고 서로의 상단을 공격할 수 없다는 100년짜리 조약을 체결해라.”
“거절한다.”
당연히 거절이 나왔다.
현재 협상안은 칸에게만 좋았다.
세로스 구역 사이사이에 똬리를 튼 릴라데아놈들을 100년이나 공격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첫째 제안은 말이 안 되기 마련이었다.
이제 쓸만한 조건을 내밀 시간이다.
“그럼 두 번째 제안을 하지, 세로스 상단 곳곳에 자리 잡은 릴라데아 상단을 전부 철수하겠다.”
“……그건 꽤 그럴싸하군.”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상단은 같은 층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릴라데아 측에서 고분고분하게 철수를 진행한다면 세로스의 이익이 뻥튀기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칸의 제안은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또한 릴라데아 상단이 독점하고 있는 28개의 층에서 8개를 양도하겠다. 1층당 평화조약을 100년씩 늘리는 조건으로.”
릴라데아에서 쟁취해낸 28개의 층. 거기서 8개를 넘겨주겠다는 소리였다.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군.”
세로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릴라데아가 동시구역에서 철수하고, 8개의 층을 양도한다면.
릴라데아는 20개의 층을 차지하고, 세로스는 60개의 층을 차지하는 모양새가 된다.
세로스 상단이 탑의 1강이 되는 것이다.
뭐, 칸이야 20층을 차지해도 2,000층과 같은 수익을 내겠지만, 겉으로 보기엔 좋게좋게 보였다.
‘내 상단의 이익은 2배, 아니 3배로 늘어나겠군. 릴라데아는 영원히 2인자 상단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고.’
칸의 제안은 꿀처럼 달콤했고,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영원한 가시밭길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알겠다. 너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동시 점거 중인 층에서 전부 철수해라, 그리고 평화조약의 기간을 800년 늘려주는 대신 8개의 층을 받겠다.”
세로스가 악수를 내밀었다. 칸은 옅게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이제 피의 맹약을 맺도록 하지.”
***
릴라데아는 절망한 얼굴로 스크린을 보았다.
[ 세로스 상단의 놀라운 첫 승리! 아슬란님이 압도적인 힘으로 옵타툽님을 찍어눌렀습니다! ] [ 아슬란! 아슬란! 아슬란! ]아슬란을 칭찬하는 말들이 이어졌고, 그를 연호하는 목소리들이 허공을 메웠다.
‘옵타툽이 지다니……’
릴라데아는 죽을 맛이었다. 가벼운 2연승으로 세로스를 먹을 거라 확신했는데, 막상 열어보니 세로스가 선승을 가져갔다.
이제 2연승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옵타툽! 릴라데아님에게 패배를 가져오다니!”
스크린을 보며 분노하는 아스고르가 무조건 승리해야 했고, 릴라데아도 이겨야만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난한 도전이었고, 실제로도 2연승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릴라데아는 이상하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발달한 본능적 감각이었다.
‘아스고르가 지면 전부 끝장인데…….’
맹독견, 아스고르.
물의 정령과 극독을 조합한 최악의 정령족. 대규모 전투력은 환상족을 압도하며, 소리없이 침투하는 암살 스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1대1이 강하지는 않았다.
인간족에게 질거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반대로 승리할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옵타툽의 허망한 패배를 보며, 그 불길한 직감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릴라데아님! 이제 우리가 해결해야 합니다!”
아스고르 대신 오른팔이 와줬다면 이렇게 불길하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만큼은 아스고르가 미운 놈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의 사기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가 승리하도록 응원해 주어야 했다.
“나의 심복, 아스고르.”
릴라데아가 아스고르에게 걸어가 그를 끌어안았다. 등을 매만지며 온기를 넣어주었다.
난생 처음 해주는 진한 포옹이었다.
“리. 릴라데아님!…….”
아스고르가 당황했지만, 릴라데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나에게 승리를 가져와 줘.”
“무. 물론입니다!”
아스고르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좋아. 그럼 부탁할게.”
릴라데아는 아스고르를 밀어내며 미소 지었다. 그러자 아스고르가 소리쳤다.
“릴라데아님께 승리를 바치겠습니다!”
***
세로스와 칸의 심장을 잇는 붉은 실이 보였다.
“너와 나 사이에 피의 맹약이 맺어졌다.”
그 실은 맹약이 이뤄졌다는 증거였으며, 서로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시 목숨을 잃는다는 경고였다.
[ ‘피의 맹약’이 완성되었습니다. ]칸과 세로스 사이에서 양피지가 떠올랐다.
[ 피의 맹약 ] [칸 측]1.세로스에게 승리를 선물한다.
2.세로스에게 릴라데아 상단을 양도받았을 시, 900년의 평화조약을 맺고 8개의 층 권리를 이전한다.
3.동시 점거 중인 층에서 철수한다.
4.위 조건을 불이행 시, 목숨을 잃는다.
[세로스 측]1.칸에게 릴라데아 상단을 양도한다.
2.900년의 평화조약을 맺는다.
3.릴라데아가 소유한 20개의 층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4.위 조건을 불이행 시, 목숨을 잃는다.
서로의 약속이 들어간 양피지였다.
칸이 패배 시, 목숨을 잃는다는 조건도 들어가 있었다.
세로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놈이 지면 죽는다. 긴장은 안 되나?”
“긴장할 이유가 없지.”
칸은 덤덤한 얼굴을 했다.
“내가 질 리가 없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군.”
세로스는 인간이 배짱 넘친다는 사실이 영 괴리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해하기를 그만두었다.
“뭐, 네놈 알아서 잘하겠지.”
세로스는 그 말을 끝으로 스크린을 보았다. 다음 대진을 진행하는 야타가 보였다.
[ 다음 대진의 전사들을 소개합니다! ] [ 먼저 릴라데아 측의 전사! ] [ 맹독견이라 불리는 물의 정령족, 아스고르입니다! ]시계탑이 무너지며 폐허가 된 광장. 그곳에서 빛살이 번쩍이며 아스고르가 등장했다.
[ 인간! 널 찢어주겠다! ]아스고르가 카메라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칸은 조용히 침묵하며 자신의 소환을 기다렸다.
[ 아스고르를 상대할 세로스의 전사를 소개합니다! ] [ 인간족 대표, 칸입니다! ]칸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양볼에서 빛의 열기가 느껴졌을 때 눈을 떴다.
“칸이다!”
“인간족 대표다!”
“우어어어어어!”
셀수 없는 인파가 칸을 보며 대함을 질렀다. 온몸이 짜르르 전율했고 심장이 끓어올랐다.
‘몸 달아오르니 좋다.’
칸은 옅게 웃으며 앞을 보았다. 정령족 치고 더럽게 못생긴 아스고르가 보였다.
그가 흉물스레 웃으며 말했다.
“흐흐… 널 씹어먹어 주지.”
칸도 그를 보며 한마디 했다.
“니가 먹힐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