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198)
이세계 골드리치-198화(198/256)
— 나타샤의 층을 위한 준비 —
베르몬트의 기습적인 키스가 있은 직후, 한 바탕 소란이 일었다.
“너와 나 사이에 평화는 없다!”
세로스가 격노하며 칸의 멱살을 잡았고,
“아빠! 그만 좀 해!”
베르몬트는 세로스의 등을 붙잡고 애원했다.
“마족이 인간의 입술을!…….”
“저…… 저저저!”
아스트리드는 황당한 얼굴을 했고, 하르미노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말을 더듬었다.
[ 아주 남사스러운 광경이네요! 히히! ] [ 뭐, 젊은 남녀가 눈 맞으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다 그런 거죠 뭣! ]시험관들은 대놓고 칸을 놀려먹었다.
“전쟁이다!”
“……그. 그만 좀. 켁……”
칸은 세로스에게 멱살이 잡혀서 고개가 짤짤 흔들렸다. 그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고, 걱정스러운 일은 한가득이었다.
‘분명 잉그리드가 봤을 텐데…….’
잉그리드는 51층에서 산다. 안 보는 게 이상하다. 연인의 목걸이가 진동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질 않으니 더 무섭다. 잉그리드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아빠.”
뒤쪽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익숙해서 소름이 돋는다. 목을 뒤로 따다닥 돌리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소녀, 잉그리드가 보였다.
“아빠. 승리 축하해.”
그녀가 방긋 웃으며 축하를 보냈다.
“정말 축하해.”
그리고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동선으로 파악하건대, 그 끝에 있는 것은 베르몬트였다.
“안돼!”
칸은 세로스를 밀쳐내고 잉그리드에게 달려갔다.
베르몬트를 살려야 했다.
*
“…알았어, 아빠. 참아줄게.”
“고마워.”
칸은 잉그리드의 백금발을 쓰다듬었다. 잉그리드는 눈을 감은 채 그 손길을 느꼈다.
‘어떻게든 일단락됐네.’
가면 갈수록 수습력만 늘어가는 느낌이다. 10분 전만 해도 잉그리드와 세로스가 동시에 분노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는데, 베르몬트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 덕에 위기를 모면했다.
‘난 잉그리드를 맡을게. 넌 네 아빠를 맡아!’
‘내가 말려도 아빠가 영 진정을 못하는데!’
‘알아서 해봐! 난 잉그리드 달랠 거니까!’
‘……알았어!’
칸은 잉그리드를 맡았고, 베르몬트는 세로스를 맡았다.
맨투맨 전략이었다.
“잉그리드, 잠깐만 이리 와봐.”
“아빠 나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어.”
“잠깐만.”
“할 일이 있다니……으읍!?”
칸은 잉그리드에게 먼저 뽀뽀하기를 시전했고,
“아빠. 나 좀 봐봐.”
“저놈을 없애버린 뒤 이야기하지.”
“나 좀 보라고!”
“그러니까 나중…… 너……!”
잉그리드는 세로스의 볼에 뽀뽀했다.
[ ……더러워서 못 보겠네요. ]야타가 얼굴을 구기며 불쾌함을 표했지만, 맨투맨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아빠…….”
“……베르몬트.”
잉그리드와 세로스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세로스가 칸 앞으로 걸어와 말했다.
“내가 과했던 걸 인정하지.”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
“그럼……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나?”
“그러지.”
칸과 세로스는 화해의 뜻으로 크리스탈을 들었다. 그리고 상단 간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 [ 종료까지 남은 기간은 899년 364일 23시간 59분 57초입니다! ]“나도 맹약을 지키겠다.”
이제 칸의 차례였다. 세로스에게 8개 층의 권리를 이전하고, 동시 점거 중인 층에서 철수해야 했다.
“철수는 천천히 하겠다. 지금 바로 할 수 없는 일이니까.”
“8개 층은?”
“지금 바로 주지.”
칸은 크리스탈을 조작해서 8개 층 권리를 세로스에게 넘겼다. 이로써 칸은 20층을, 세로스는 60층을 보유하게 되었다.
“맘에 드는군.”
세로스가 웃으며 악수를 내밀었다.
“이제 내 딸과는 영원히 만나지 마라.”
칸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악수를 받았다. 그리고 한마디 말했다.
“가족이 필요해 보이는군.”
“……뭐?”
세로스의 미소가 사라졌다.
“내가 외로워 보이나?”
“삶의 지루함을 달래는 데 새 가족이 도움될 수 있단 얘기다. 맘에 안 들면 무시해라.”
칸은 미소를 유지하며 악수를 놓았다. 그리고 잉그리드의 어깨를 안으며 몸을 돌렸다.
“가자. 잉그리드.”
“응…….”
뒷수습은 시험관들의 몫이니, 구태여 남아있을 필요는 없었다.
*
시간이 흘러서 밤이 되었다.
51층은 원 상태로 복구되었다.
“나 진짜 부활했어!”
“죽으니까 뭐가 보이데?”
주민 모두가 부활한, 평화로운 상업도시의 정경이었다.
“6시인데 해 떴다!”
중간에 태양 수정구가 떠서 소동이 일었지만, 관리국에서 꺼버려서 해결되었다.
[ 성신, 기적의 창조자가 이제 저녁을 먹냐고 묻습니다. ]“네. 먹어야죠.”
이제 집밥을 먹을 시간이었다. 릴라데아의 상단주가 되면서 모두가 알아보는 얼굴이 되었으니, 집에서 먹는 편이 좋았다.
“아빠~ 저녁 다 됐어~”
깨가 쏟아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갈게.”
칸은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갔다. 잉드리드가 손수 차려놓은 푸짐한 저녁상이 보였다.
‘이럴 땐 세로스 심정이 이해가 가네.’
이름도 모르는 잡놈이 나타나 잉그리드를 달라고 말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말이 나가기는 힘들었다.
욕 몇 번은 해야 직성이 풀리겠지.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현재의 잉그리드는 아빠바라기였다. 호시탐탐 껴안을 기회를 노렸고, 틈만 나면 뽀뽀를 해댔다.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두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아빠!”
마침 왔다. 앞치마를 벗은 잉그리드가 칸의 옆으로 걸어왔다.
“오랜만에 아빠 좀 안아 보자!”
그녀가 칸의 옆자리에 앉았다. 칸은 픽 웃으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
저녁을 먹은 후, 금세 누울 시간이 되었다. 칸은 침대에서 창문 너머의 별바다를 보았다.
‘나타샤의 층 진입도 얼마 안 남았네.’
누워서 밤하늘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걱정들이 떠올랐다. 나타샤의 층은 그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내일부터는 더 바쁘겠지.’
릴라데아 상단만 생각했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내일부터는 해야 할 일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었다.
당장 떠올려봐도 할 일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는데.
잉그리드의 너클을 강화해 줘야 했고, 베르몬트와도 동맹을 맺어야 했다. 그리고 릴라데아 상단 뒷수습 건도 처리해야 했다.
‘……내일부터는 죽어라 뛰자.’
나타샤의 층에 들어서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려면, 발에 불이 나도록 움직여야 했다.
[ 릴라데아 상단의 모든 하수인은 내일 오후 3시까지, 릴라데아 본점 지하 4층으로 집결하십시오. ]칸은 크리스탈로 공지를 올리고 눈을 감았다.
*
“아빠도 차암. 늦잠자기는~”
가슴 언저리에서 꼼지락거리는 촉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눈을 떴다. 은은한 미소를 지은 잉그리드가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잘 잤어?”
“응!”
“지금 몇 시야?”
“2시 반!”
‘……조금 오래 잤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잤지만, 괜찮았다.
릴라데아 상단 하수인 집결은 오후 3시니까.
“아빠는 잠깐 나갔다 올게.”
“그럼 난 사냥 다녀올게!”
잉그리드는 다섯 달 만에 레벨 148을 찍었다. 목표레벨인 200까지는 52를 더 올려야 했다.
“200까지 금방 올릴 거지?”
“응! 아빠가 원하는 거니까!”
잉그리드가 빵끗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칸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밤에 보자.”
그리고 릴라데아 상단으로 이동했다.
*
릴라데아 상단 지하 4층.
그곳에는 폐쇄된 ‘대형 물류창고’가 있었다.
본래는 식자재 저장고였는데, 세로스의 식자재 독식 정책 탓에 폐쇄된 것이다.
별안간 이 물류창고는 현재, 칸의 하수인 집결에 쓰였고, 수만의 하수인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이제 인간이 우리 주인이래!”
“세상에! 환상족을 모실 때도 힘들었는데.”
“인간을 모시라고? 짜증 나 죽겠네.”
그들은 칸을 달갑게 보지 않았다.
한 편에서는 격정적인 반응도 터져 나왔다.
“오기만 하면 찢어버릴 거야!”
“당연하지! 인간 따위가 우리를 다스려?!”
세로스가 칸에게 상단을 넘겨줄 때, 아스고르나 옵타툽같은 위험인물들은 추방한 뒤 넘겨줬지만.
그럼에도 칸을 아니꼽게 여기는 자들은 존재했다. 인간족이 서열 4위가 되어도 무시할 용족이나 거인족들이었다.
“보이기만 해봐 진짜!”
“밟아서 죽여버리자!”
그들은 칸이 도착하기도 전에 반항을 작정했다.
‘분위기가 너무 살벌한데.’
입구 뒤에 도착한 칸은 한숨을 쉬었다.
‘나가면 맞아 죽는 거 아냐?’
인간이 환상족을 이겨도 반항할 놈들이니, 칸에게 패악질을 부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조금 걱정되네. 안 들어갈 건 아니지만.’
칸은 적당한 긴장을 느끼며 물류창고로 들어갔다. 지하 수정구의 불빛이 보였고, 수만에 달하는 하수인들이 보였다.
“으아악! 내 눈!”
“인간족이 걸어오는 꼴 좀 봐!”
“토 나온다! 토 나와!”
거인족, 수인족 등. 하수인들이 눈 버렸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자기들 주제를 모르네.’
하수인들이 나대는 꼴을 보니 기분이 안 좋았다. 잿빛 활 한 번 들면 해결되는데, 그냥 해버릴까 고민이 되었다.
“인간족 더럽게 못생겼다!”
“그것도 얼굴이냐!”
[ ‘잿빛 하늘의 지배자 +14강’을 장비합니다. ]칸은 하수인들이 없는 빈 벽을 겨냥해 [제왕]을 발동했다.
콰가가가가가!
벽에서 폭발이 발생하며 돌무더기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벽에 운디네의 비호가 깃들어 있단 걸 생각하면, 입이 절로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벼. 벼벼벽이 무너졌다!”
“거인족도 못 부수는 벽인데!”
하수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칸은 그들을 보며 활시위를 당겼다.
[제왕]을 발사했던 잿빛 활이 하수인들을 노리며 부르르 떨었다.“으아아악!”
“쏘려는 건 아니겠지!”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몇몇 용족들은 전투태세를 취했지만, 수인족과 해인족들은 벌벌 떨며 몸을 숨겼다.
‘이쯤이면 됐다.’
칸은 잿빛 활을 집어넣고 손뼉을 쳤다.
그리고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협상을 시작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