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203)
이세계 골드리치-203화(203/256)
<후일의 기초를 놓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상단주님께서 금방 답해 주실 겁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칸은 하수인을 따라서 세로스 집무실에 도착했다. 하수인 시절에는 마음대로 와도 괜찮았는데, 다른 상단 소속이 되니 경계선이 그어졌다.
조금 서운했다.
―들어오라고 해라.
“상단주님께서 준비가 되신 모양입니다.”
하수인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릴라데아 상단주에게 갖추는 최소한의 예우였다.
“알겠습니다.”
정작 칸이야 예의 문제는 별 신경을 안 썼지만.
그는 집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책상에 앉아 있는 세로스가 보였다.
“또 무슨 일로 온 거지?”
“8개의 층 이전 때문이다.”
세로스는 귀찮다는 듯 고개도 안 들고 말했다. 그러나 칸은 단도직입적으로 목적을 말했고, 세로스의 눈 앞에 섰다.
“지금 바로 층 이전을 해주지.”
“지금 바로?…….”
세로스가 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크리스탈을 들었다.
“뭐, 나야 빠르게 해줄수록 좋지.”
세로스가 옅게 웃으며 크리스탈을 들었다. 그때였다. 칸은 크리스탈을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뭐하자는 거지?”
웃기지도 않은 장난질. 세로스가 미간을 좁히며 불만을 드러냈다.
칸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층을 이전하기 전에 부탁 하나만 들어줬으면 해서.”
“부탁?”
“그래. 작은 부탁.”
칸이 원하는 것은 소소한 부탁이었다.
그러나 세로스는 책상을 치며 일어났다.
“층 이전은 네가 해야할 의무에 불과하다. 그걸 가지고 협박을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협박이라니, 오해하지 마라. 세로스.”
“지금 네가 하는 꼴이 같잖아서 그렇다. 부탁이라면 정중하게 요청하면 될 일이지, 층 이전을 빌미로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잖나.”
“정말 사소한 도움을 청하려는 것 뿐이다.”
칸의 거듭된 말에 세로스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그가 턱으로 눈치를 주며 물었다.
“부탁할 것이 뭐지?”
“…여체화 물약 하나 줘라.”
칸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세로스 상단에서만 제작하는 여체화 물약, 극비 임무 수행을 위해 세간에 판매하지 않는 그 물약이 필요했다.
“…불쾌한 취미라도 있나보군.”
세로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혀를 차더니, 손가락을 튕겨서 여체화 물약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물약을 책상에 탁 내려놓았다.
“…오해하지 마라. 실험을 위한 것이니.”
칸은 그것을 옷속에 주섬주섬 넣었다. 세로스는 그 불길한 손짓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칸을 보기도 싫다는 듯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층 이전이나 시작하지.”
“…알았다.”
여체화 물약을 받았으니 더 이상의 땡깡을 부릴 수는 없었다. 칸은 크리스탈을 들어서 층 이전을 셋팅했고, 세로스의 크리스탈에 부딪힘으로써 층 이전을 완료했다.
[8개 층의 권리를 세로스에게 이전했습니다.]“이제 나가라.”
세로스가 매몰차게 손을 휘휘 저었다. 칸은 오늘 할 일이 워낙 많았기에 세로스의 뜻대로 따라주었다.
“잘 있어라.”
칸은 집무실을 나갔다.
“용무는 잘 보셨습니까?”
깍듯한 태도의 하수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칸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잘 봤습니다.”
“다행입니다. 이제 그럼 밖으로 안내해드릴까요?”
“아뇨. 그 전에 세로스 대장간에 들렀으면 합니다.”
“대장간이요?”
“예. 지금 바로 들렀으면 하는데요.”
칸은 대장간에 한 번 들러야 했다.
이유는 당연히 아이템 강화.
릴라데아나 세로스 둘다 환상템 강화 시 수수료를 안 받는 것은 같았으니, 기왕 하는 거 익숙한 곳에서 하는 편이 나았다.
“음……. 일단 안내는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대장장이들도 축제를 즐기는 중이라 약간 반발이 있을 수도 있어요.”
“안내만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칸은 하수인을 따라서 대장간에 도착했다.
후텁지근한 용광로의 열기가 아닌, 생맥주처럼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한 잔 더!”
“마-셔라! 마셔라!”
대장간도 축제가 한창이었다.
전설적 대장장이 알카세르를 필두로 마리앙, 드워프A, 드워프B 등이 맥주를 연거푸 들이키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잠시 여기좀 봐주세요!”
하수인이 손뼉을 치며 주의를 끌어모았다. 한창 즐겁던 분위기가 깨지며 서늘한 공기가 대장간을 감쌌다.
“이 개자식아! 왜 기어들어와서 난리야!”
알카세르가 시뻘건 얼굴로 호통을 쳤다.
“마실 거 아니면 후딱 나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고 난리야!”
드워프 A,B도 따라서 소리쳤다.
“어후…….”
하수인은 질겁하며 뒷걸음쳤다. 칸은 담담한 얼굴을 한 채 앞으로 걸어갔다.
“…칸? 칸이야?”
술에 취한 마리앙이 칸을 알아보고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나머지 드워프 셋은 너무 취해 있었다.
그들이 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나가라 애송이!”
“나가라! 나가!”
“마실 거 아니면 나가라!”
세로스 상단의 대장장이들인데, 프로의식이 없어도 너무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칸은 이럴 때의 특효약을 알고 있었다.
그는 크리스탈을 가볍게 터치했다.
[대장장이, 알카세르에게 6,000,000골드를 보냈습니다.]“…0이 하나, 둘, 서이… 허억!”
알카세르가 경악하며 제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6백만 골드가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니 정신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나가라 쨔샤!”
“여긴 우리 구역이야!”
“정신 차려 이 멍청한 놈들아!”
정신 못 차린 드워프 A,B가 소리를 질렀으나, 알카세르의 매운 손에 의해 응징되었다.
“감히 손님한테 윽박을 질러?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들을 봤나.”
“죄,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드워프 A,B가 뒤통수를 맞고 무릎을 꿇었다.
칸은 알카세르의 앞으로 가서 [타르타노스의 골든스태프]를 건네주었다.
스태프를 받은 알카세르가 경악하며 말을 더듬었다.
“이, 이 스태프는!…….”
“10강까지 강화해주십시오.”
칸은 그 말을 끝으로 알카세르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는 마리앙 앞에 서서, 정신 차리라고 골드를 넣어주었다.
[대장장이, 마리앙에게 6,000,000 골드를 보냈습니다.]“이건 뭐냐아?…….”
그런데 마리앙이 정신을 못 차렸다. 약간의 충격이 필요한 듯 하다. 칸은 [화마의 군주]들 들어서 마리앙의 이마를 살짝 때려주었다.
“아악!”
마리앙이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칸은 그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마의 군주, 10강까지 강화 맡겨놓을게.”
알카세르 들으라고 목소리를 조금 높여주었다.
‘이쯤이면 됐겠지.’
이것으로 환상템 강화 의뢰는 끝났다. 남은 것은 잉그리드의 너클 뿐이었다.
‘너클은 누구한테 맡겨야 좋으려나.’
알카세르나 마리앙이 좋았지만, 환상템 강화는 체력 소모가 심했고, 하루에 하나 이상의 작업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쟤가 좋겠다.”
칸의 시선이 드워프A에게 꽂혔다. 지나가는 엑스트라인줄 알고 무시했는데, 괜히 세로스 상단 소속이 아닌 듯 대장 스킬 등급이 A나 되었다.
저 정도면 성신 수준도 괜찮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 대장장이님. 제 아이템 좀 강화해주십시오.”
“…아, 넵!”
뒤통수를 후려맞은 드워프A는 행동이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드워프가 칸 앞에서 정자세로 말했다.
“무슨 아이템이십니까?”
“이겁니다.”
칸은 잉그리드의 너클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150만 골드를 보낸 뒤, 드워프A를 지나치며 말했다.
“10강까지 부탁합니다.”
“배, 백오십만!…….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드워프A는 감격한 얼굴로 소리쳤다. 칸은 그것을 보지 못했으나, 목소리는 잘 들었다.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명품 대장장이로 유명한 세로스 상단.
그곳의 대장장이에게 맡겼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실험이나 하러 가자.’
이제 사랑의 묘약 실험을 하러 갈 때였다.
칸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체화 물약을 복용한 뒤 집을 나왔다.
‘…내가 진짜 실험이라 참는다.’
현재 칸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붉은 기가 도는 갈색 머리는 허리까지 자라 있었고, 딱딱한 인상은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칸이 여자가 된 모습이라고 하기보다는, 칸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되었다고 보는 편이 나았다.
‘하……. 빨리 해버리고 끝내야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불쾌한 감정이 솟구쳤다. 아는 이에게 들키면 그대로 흑역사가 만들어질테니, 불쾌함을 넘어서 불안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설마, 누구랑 마주치지는 않겠지…….’
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목적지로 이동했다.
* * *
목적지는 51층 변두리에 위치한 미용실이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미용실이었고, 실제 미용 솜씨도 평범했지만, ‘미용사’가 문제였다.
종족 전쟁 공인, 유일무이한 동성애 npc였던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서 패치로 추가되었다는데, 자세한 정황은 별로 아는 것이 없었고, 아는 것은 npc의 외모 및 성격이었다.
「npc3751-마담 엘리자베스.
아름다운 외모의 미용실 마담이다.
어린 여성을 보는 즉시 사랑에 빠지며, 그 여성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는 정열적인 사랑을 품고 있다.」
마담 이름이 엘리자베스건 뭐건 알 필요는 없었다.
알아야 하는 것은 그녀가 여성을 사랑하는 동성애 npc라는 것 뿐이었다.
‘여체화 물약은 외모 보정 효과가 있으니까, 아마 먹히겠지.’
칸은 자신이 있었다. 베르몬트가 얼굴 귀엽게 생겼다고 인정해준 흑역사가 있었으니, 마담 뭐시기 낚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칸은 얇은 목소리를 내며 미용실로 들어갔다.
“어머나! 예쁜 아가씨가 다 왔네!”
예상대로 마담 엘리자베스가 눈에 하트를 그리며 달려왔다. 그녀는 칸의 어깨를 주무르며 의자에 앉게 만들었다.
“예쁜 아가씨, 무슨 머리로 잘라줄까요?”
마담이 콧김을 뿜으며 어깨를 조물딱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주먹 한 번 날리고 싶었다. 그러나 실험을 위해 참아냈다.
“그냥 조금만 다듬어주세요.”
칸은 그리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거울이 보였고, 받아들이기 싫은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눈을 감은 채 마담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어쩜 이렇게 머릿결이 고와요?”
마담의 성희롱이 시작되었다.
“아가씨 미안해요! 머리카락이 앞으로 떨어져버렸네!”
칸의 머리카락을 앞쪽으로 떨어트리고는, 팔뚝으로 민감한 부위를 툭툭 쳐댔다.
“으아아!”
그리곤 아예 발을 헛디뎌서 칸의 다리에 얼굴을 박았다. 그 상태에서 일어날 노력 조차 하지 않았다.
‘…뭐 이런 미친년이 다 있냐.’
마담의 외모가 아름다워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이런 성희롱을 마음대로 해대는 마담의 담력이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기분 나빴죠? 미안해요…….”
마담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지금이다.’
칸은 사람이기를 포기한 채,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 말했다.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네? 그게 무슨…….”
마담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일렁였다. 그걸 보자니 속이 안 좋아졌다. 칸은 억지로 웃으며 평생 하지 않을 말을 했다.
“첫눈에 반했어요.”
“에?…….”
마담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떴다. 좋다. 더 이상의 연기는 불가능했다. 칸은 사랑의 묘약을 꺼내서 마담에게 건넸다.
“드셔주세요. 제 마음이에요.”
칸은 끝까지 미소를 유지하며 마담을 바라보았다.
“세, 세상에… 저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군요…….”
마담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애정이 흘러넘치는 눈동자로 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묘약의 뚜껑을 따서 향기로운 내음을 음미했다.
“하아… 정말 좋은 향기에요.”
마담은 눈물이 그렁거리는 얼굴이 되었다. 본인이 꿈꾸던 상황이 온 것을 진심으로 즐기는 듯 했다.
“아가씨가 준 친절의 표현, 지금 다 마셔버릴게요.”
마담이 눈물을 닦으며 방긋 웃었다. 그리고 묘약을 들어서 쭈욱 들이켰다.
‘됐다.’
마담은 여성을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지는 npc. 첫 호감도가 75를 넘기는 npc였다.
사랑의 묘약으로 호감도가 1만 올라도, 묘약의 복제 효과가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자… 어떻게 될 거냐.’
칸은 진지한 눈빛으로 마담을 주시했다. 마담은 꿀떡 하며 묘약의 마지막 모금을 목으로 넘겼다.
순간 변화가 시작되었다.
[마담, 엘리자베스가 묘약을 흡수했습니다!] [호감도가 50 증가합니다!] [마담, 엘리자베스의 현재 호감도 : 100(+25)] [특수효과, ‘축복’ 발동!] [사랑의 묘약 1개를 획득합니다!]‘됐다!’
칸의 손 안에 묘약이 들어왔다.
사랑의 묘약을 무한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실험해보길 잘했네.’
이제 언제든지 묘약을 활용할 수 있었다.
칸은 뿌듯함 마음으로 묘약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순간 양 어깨에서 우악스런 힘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마담의 입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성희롱은 이쯤 당해줬으면 됐잖아.’
더 이상의 자비는 없었다. 칸은 가볍게 팔을 들어서 마담의 이마를 때렸다.
“끄학!”
마담은 정신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수 차례의 악질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내 다시는 이딴 거 하나 봐라.’
칸은 여체화 버프를 해제하고 미용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