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211)
이세계 골드리치-211화(211/256)
돌아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유저 살인마로 유명한 정령족, 슬라인이었다. 바람의 상급 정령, 진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왜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칸이 말했다.
“나를 찾았다고?”
“그래.”
슬라인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슬라인은 정령족의 안위를 생각하는…….”
쓸데없는 서론은 한 귀로 듣고 흘린다.
“그래서 본론이 뭐지?”
“본론? 아직도 모르겠나?”
슬라인이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그는 손가락을 튕겨서 바람의 상급 정령, 진을 소환하며 소리쳤다.
“널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
* * *
‘찾았다!’
81층을 날아다니던 베르몬트는 땅에 착지했다.
그녀가 현재 위치한 곳은 고블린 공동이었는데, 고블린의 생김새가 칸의 설명과 일치했다.
“끄룩끄룩.”
바닥에 누워서 배를 긁는 고블린.
칸이 말했던 배불뚝이 고블린과 제대로 닮은 놈이었다.
‘나도 한 건 하네.’
베르몬트가 씩 웃으며 양손에 마나를 모았다. 그리고 배불뚝이를 향해 화염 한 덩이를 투척했다.
후우우웅-
화염은 완만한 곡선으로 날아갔고,
“끄오오오!”
배불뚝이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흐오오오!”
배불뚝이가 얼굴을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베르몬트는 피식 웃으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아프지? 걱정 마. 금방 끝내줄게.”
고통받는 생명체는 단숨에 죽여주는 것이 예의. 베르몬트는 7서클 흑마법, 죽음의 불꽃을 양손에 끌어모았다.
그때였다.
“꾸오오오!”
배불뚝이가 굉음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시뻘건 안광을 빛내며 돌진을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배불뚝이의 주속이 독수리처럼 재빨랐다.
“뭐, 뭐야?…….”
베르몬트가 당황하며 블랭크를 전개했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늦고 말았다.
퍼억!
“끄학!?…….”
배불뚝이의 주먹이 베르몬트의 얼굴을 정면으로 때렸다. 베르몬트는 공격력 1,000배를 이겨내지 못했고, 바닥에 때려박혔다.
콰아아앙!
‘무, 무슨!…….’
고통 이전에 의문이 들었다. 고블린이 이딴 괴력을 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베르몬트는 머리를 회전시켜 칸의 설명을 뒤적거렸다. 그러자 주의사항 하나가 떠올랐다.
‘배불뚝이 고블린은 81층에서 가장 센 녀석이야.’
‘하르미노나 아스트리드가 아니면 상대하기 어려우니까, 베르몬트는 함부로 싸움 걸지마.’
칸이 설명한 81층 고블린 사냥 팁.
고블린을 무시해서 대충대충 흘려들었었다.
그게 지금의 원인일까, 그녀는 멱살 잡힌 채 위로 끌어올려졌다.
후욱!
고블린이 성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본다.
멱살이 잡혀서 숨쉬기가 힘들었고, 슬슬 짜증이 났다. 고블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을 걱정한 칸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약해? 걱정 받을 정도로 약하냐고!’
하르미노와 아스트리드는 괜찮으면서,
자신은 배불뚝이한테 싸움 걸지 말라니. 자존심이 팍 상하는 일이었고, 용납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이딴 고블린이 뭐라고…….’
역정이 확 올라왔다. 관리국 버프를 받고 기고만장한 고블린의 면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부 날 얕보고 있어…….’
베르몬트는 반 년간 누구보다 뛰어난 성장을 이뤄냈다. 세로스의 지원 아래 마력 S등급 800대를 달성했고, 8서클 흑마법까지 마스터했다.
그녀는 반 년 전보다 30배는 강해져 있었다.
‘배불뚝이 고블린 따위…….’
베르몬트가 미간을 찌푸리고 전투를 시작했다.
그녀는 한손에 마나를 응축했고, 지옥의 염화를 레이저 형태로 발사했다.
화아아아!
염화가 배불뚝이의 안면을 직통으로 때렸다.
“끄오오오!”
배불뚝이가 고통에 소리치며 베르몬트를 놓았다.
“하아…….”
베르몬트는 해방된 목을 부여잡고 산소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뒤로 뛰어서 거리를 벌린 뒤 완드를 들었다.
“넌 진짜 죽은 줄 알아라.”
그녀는 완드를 움직이며 마법을 준비했다. 발사하려다 실패했던 7서클 마법, 죽음의 불꽃이었다.
“끄오오?”
배불뚝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지만, 오래 전에 늦었다. 베르몬트의 마법 전개는 빛처럼 빨랐다.
파아-
붉은 마법진. 그 속에서 쏘아진 죽음의 불꽃이 배불뚝이에게 날아갔다.
콰아아아!
“끄오오오!”
배불뚝이는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뒤로 넘어갔다.
방어력 1,000배 상승 덕에 죽이려면 한참 남았지만, 기절할 만한 충격은 준 것이었다.
“후… 좀 오래 때려야 죽는다고 그랬지?”
베르몬트는 오른손에 마나를 모았다. 그리고 지옥의 염화를 레이저처럼 발사했다.
“끄어어어!”
그렇게 1분이 지났고, 배불뚝이는 노릇노릇 구워져서 사망했다.
“별 것도 아닌게 까불어.”
베르몬트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녀가 죽인 배불뚝이가 현상수배 고블린이 아니란 것만 빼면, 정말 완벽한 승리였다.
“…왜 증거물이 안 뜨지?”
베르몬트가 사냥한 고블린은, 배가 좀 많이 나온 비만 고블린에 불과했다.
* * *
“날 죽이겠다고?”
칸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슬라인은 사납게 웃으며 칸의 죽음을 알렸다.
결국 잉그리드는 분노를 사고 말았다.
“네가 내 아빠를 죽인다고?…….”
잉그리드가 환상력을 흘리며 슬라인을 응시했다. 무시할 수 없는 살기가 흘러나왔다.
“환상족까지 종으로 삼은 거야? 진짜 대박이네.”
슬라인은 놀랍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경탄이 아닌 비웃음이었다.
칸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날 죽이려 들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니까.”
“…네가 날 죽인다고?”
칸은 말 대신 행동으로 답했다.
[‘볼테르의 프란베르크’를 장비합니다.]프란베르크가 백색 가루를 흘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계약자여. 피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바람의 정령, 진은 꺼림찍함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슬라인은 아니었다.
“쓸만한 검이랑 환상족 노예 한 명 있다고 나대는 꼴이라니, 인간 따위가 아주 같잖군.”
슬라인이 입술을 비틀며 칸을 노려본다. 그가 바람의 기운을 사방으로 흘리며 소리쳤다.
“네놈을 놔두면 언젠가 정령족의 서열까지 위협하겠지! 그딴 꼴은 두고 볼 수 없다!”
―계약자. 정말 하겠는가?
진이 말렸으나 소용없었다.
“진! 저 인간을 쳐죽여라!”
슬라인이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어쩔 수 없군.”
칸은 별 수 없이 전투 태세를 취했다. 그는 잉그리드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공격루트 A다.’
‘알았어.’
공격루트 A.
개싸움을 뜻하는 루트였다.
“나 먼저 갈게!”
잉그리드가 슬라인을 향해 달려나갔다.
“알았어!”
칸도 프란베르크를 들고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 단거리를 주파하며 슬라인을 주시했다.
슬라인은 웃고 있었다.
‘왜 웃지?’
그때였다.
“으흐, 으하하하!”
슬라인이 폭소를 터트리더니, 다짜고짜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혼자 온 줄 아느냐!”
순간 공동과 이어진 4개의 통로에서 처음보는 얼굴들이 등장했다. 칸에 의해 서열이 격하된 종족. 4명의 거인족이었다.
“저 인간이 칼리파님을 쓰러뜨렸다.”
“우리를 서열 6위로 떨어뜨렸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반드시 죽인다.”
거인들이 서슬 퍼런 안광을 빛내며 칸을 애워싸기 시작했다. 그들의 분위기로 보건데,
칸이 죽던가, 그들이 죽어야 끝날 싸움이었다.
‘잿빛을 지금 써야 한다니…….’
칸은 이번 전투가 오늘의 마지막 위협이기를 바라며 프란베르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잿빛 하늘의 지배자 +14’를 장비합니다.] [잿빛]을 전개했다.* * *
하르미노는 칸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들었고, 그 효과를 보았다.
‘저 고블린들이 확실해.’
공동 안에 잠들어 있는 4마리의 고블린. 코가 빨대처럼 길쭉한 것이, 거짓말쟁이 고블린의 생김새와 일치했다.
‘쟤들을 전부 잡으면 증거물을 얻을 수 있다.’
하르미노는 칸의 말을 되뇌이며 공동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4마리의 시큐엘을 소환하며 말했다.
“시큐엘들아. 고블린들을 처리해 줘.”
―어려울 것 없는 일이군.
―단번에 끝내주지.
시큐엘들은 피식 웃으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하르미노가 제공하는 마나를 받아서 고블린을 짓밟았고, 팔과 다리를 물어뜯었다.
고블린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아무리 높다한들, 물의 상급 정령 시큐엘에게는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
푸확!
―이 놈이 끝인 것 같군.
시큐엘이 네 번째 고블린 코를 물어뜯은 순간, 모든 고블린이 사망하며 사냥이 완료되었다.
퀘스트 증거물인 긴 코가 바닥에 떨어졌다.
“수고했어, 시큐엘들아.”
하르미노는 옅게 웃으며 긴 코를 주워들었다.
[A팀의 증거물이 1개 추가됩니다!] [현재 A팀이 획득한 증거물은 총 8개!] [B팀이 획득한 증거물은 총 6개입니다!]팀 승리에 한 몫 거든 순간이었다.
“하나 더 찾아야지.”
하르미노는 옅게 웃으며 공동을 빠져나갔다.
* * *
콰아아아앙!
공동 벽에 백발의 정령족이 내다 꽂혔다.
“커헉!”
정령족은 피를 토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 앞에서 환상족 소녀가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퍼억!
“크허억!”
소녀의 주먹이 정령족의 안면에 꽂혔다. 이빨이 우수수 날았고, 핏물이 공중을 휘날았다.
소녀가 정령족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아빠 계속 건들 거야, 아니면 조용히 도망칠 거야?”
“히, 히이이익!”
정령족은 질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녀는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듯, 멱살을 강하게 틀어쥐며 소리쳤다.
“건들거냐고!”
“흐아악! 안 건드려요! 안 건듭니다!”
정령족은 빠릿하게 대답하며 벌벌 떨었다.
소녀는 대답이 마음에 든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진짜야?”
“지, 진짭니다!”
“…한 번 믿어주겠어.”
소녀는 정령족을 놓아주었다. 정령족은 중력에 따라서 땅에 처박혔다.
“이걸로 끝.”
소녀는 손을 탁탁 털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 아빠를 찾기 위해 잿빛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 * *
칸은 잿빛 활을 넣고 안개를 거두었다.
공동 벽에 처박힌 네 마리의 거인족이 보였고, 슬금슬금 기어서 도망가는 슬라인이 보였다.
‘…등장한 것치곤 너무 싱겁게 끝났네.’
싱거운 전투였다.
칸은 능력치와 아이템에 기반한 압도적 전투력을 선보였고, 잉그리드는 환상족답게 화려한 전투 센스를 펼쳤다.
결국, 거인족 무리는 칸을 잡으려다 찍소리도 못한 채 숨을 거두었고, 슬라인은 잉그리드에게 농락당하며 두들겨 맞았다.
“아빠!”
슬라인을 떡처럼 두들겨 팬 잉그리드. 그녀가 방긋 웃으며 칸에게 날아왔다.
“아빠 다친 데 없어?”
그리고는 칸의 몸을 조목조목 살피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칸은 괜찮다며 그녀를 밀어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집요하게 칸의 상태를 살폈다.
‘…이럴 시간 없는데.’
인간족을 견제하는 정령족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다시 동굴을 탐색하며 현상수배 고블린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A팀이 증거물 1개를 획득했습니다!] [현재 A팀이 획득한 증거물은 총 9개!] [B팀이 획득한 증거물은 총 7개입니다!]A팀의 증거물이 9개 모였다는 메세지가 떠올랐다. 이제 하나만 더 모으면 시험 클리어였다.
“잉그리드.”
“응?”
“이제 가자.”
“응!”
칸은 잉그리드의 손을 잡고 텔레포트를 발동했다.
사거리는 최대로, 목적지는 선별인원들이 탐색하지 않았을 81층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