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216)
이세계 골드리치-216화(216/256)
“……뭐?”
소녀의 앳된 음성이 흐려졌고, 푸른빛은 사그라들었다.
소녀, 아니, 월계수의 정령 라우라가 말했다.
“넌 누구이기에 내 이름을 아는 거지?”
“잡지식이 많은 인간에 불과합니다.”
“잡지식?…… 나의 이름이 잡지식이라 말하는 것이냐?”
“말실수에 사과드립니다.”
칸은 저자세로 나갔다.
라우라의 겉모습이 10살 소녀라 한들 그녀는 4속성 정령왕과 동급의 존재였고, 층 하나를 뒤엎을 힘을 가진 존재였다.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상인 npc라 골드 많이 주면 별 상관 없긴 한데…….’
들리는 얘기로 천 만 골드를 주면 웃어주기도 한다는데, 10살 애기 웃는 거 보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니 상관은 없었다.
칸이 말했다.
“라우라님의 주문서와 보석을 원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라우라는 고개를 돌렸다. 호감도 10을 넘겨야 대화가 통하는 설정이 문제였다.
‘묘약을 먹일까.’
이럴 때 쓰라고 묘약이 있나 싶었지만,
‘아니다. 아껴두자.’
후일을 위해 아껴두기로 했다.
칸은 언제나 그래왔듯, 게임의 경험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인간의 정보가 나에게 무슨 쓸모가 있지?”
“물의 정령왕, 엘라임님이 좋아하는 여성에 관한 정보입니다.”
“뭣!…….”
라우라의 양볼이 붉어졌다. 그녀가 입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무, 무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물의 정령왕 따위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좋아하시잖습니까.”
“뭐라!”
라우라가 맨발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칸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말했다.
“네놈 따위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그녀가 말하자 풀내음이 화악 풍겨왔다.
칸은 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잡다한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엘라임님의 취향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걸 말할 의향이 있다는 겁니다.”
“네놈 따위가 말하는 엘라임의 취향을 어떻게 믿지!”
“라우라님의 취향도 맞췄는데, 같은 남자의 취향 따위는 껌 아니겠습니까.”
“그런!…….”
라우라가 눈을 부릅뜨며 뒤로 물러났다.
칸은 슬슬 시간이 아까웠기에,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엘라임님이 좋아하는 여성상을 말하겠으니, 라우라님의 보물을 제게 팔아주십시오.”
“……다.”
“예?”
“많이 비싸다. 넌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그래도 괜찮나?”
칸은 피식 웃었다. 세계 최고의 대부호 앞에서 ‘비싸’다니, 유머도 적절히 웃겨야 했다.
칸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괜찮습니다.”
* * *
그렇게 거래가 시작되었다.
“엘라임님은 커다란 흉부를 좋아하십니다.”
“……안타까운 사실이구나.”
칸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상을 말했다. 정령왕의 취향 따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모든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취향만을 말했다. 순진한 라우라만 불쌍한 꼴이었다.
“흉부 말곤, 더 없느냐?”
“음……. 고운 피붓결을 좋아하십니다.”
“고운…… 피붓결…….”
라우라가 나뭇잎에 끄적끄적 메모했다. 그리고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네.’
머리카락이 나뭇잎인데 귀여울 수가 있다니, 칸은 오늘도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이제 배움은 그만하고 목적을 이뤄야 했다.
“이제 없느냐?”
“예. 없습니다.”
“……아쉽구나.”
“그래도 라우라님이라면 잘 되실 겁니다. 귀여우시니까요.”
“아부는 되었다.”
라우라는 한결 부드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녀가 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의 보물들을 보여주지.”
그러자 칸의 눈 앞에서 상점이 떠올랐다.
그토록 바라던 라우라의 상점이었다.
[ 라우라의 상점 ] [ 월계수 지팡이 ] [ 남은 수량 : 1 ] [ 100,000 G ] [ 월계수 완드 ] [ 남은 수량 : 2 ] [ 80,000 G ]쓸데 없는 유니크템들은 대충 보고 넘긴다.
원하는 건 주문서와 보석이었다.
‘찾았다.’
삼정 스크롤을 내린 끝에, 원하던 아이템들을 발견했다.
[ 월계수의 축복이 깃든 주문서 ] [ 남은 수량 : 21 ] [ 1,000,000 G ] [ 라우라의 보석 ] [ 남은 수량 : 1 ] [ 3,000,000 G ]월계수 주문서와 라우라의 보석이었다.
“지금 보듯이, 나의 주문서와 보석은 엄청난 금액을 자랑한다.”
라우라가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그녀의 얼굴엔 나름의 자부심까지 섞여 있었다.
“내 아이템들은 제조 후 수백 년이 지나야 결실을 맺기 때문이지. 라우라의 보석 같은 경우, 자연의 기운을 3백 년 동안 모아야 탄생할 수 있다. 이 세상 것들의 경제력을 감안해서 3백만 골드에 팔고 있지만, 3천만 골드에 팔아도 문제가 없는 진귀한 보석인 것이지.”
그녀의 말을 풀어보자면,
내 아이템들은 너무 귀하고 비싸서, 너 같은 인간은 살 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내가 이해해야지.’
수천 년간 동굴 속에서 살아온 정령 따위, 칸의 재력을 가늠하는 것 조차 불가능했다.
“이제 알겠느냐? 네놈에게 많은 지식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것이 많은 골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못한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그러니 나의 주문서와 보석을 탐낼 생각은 그만 하고, 여기서 나가도록 하거라.”
라우라가 손을 휘휘 저으며 구멍을 가리켰다. 참으로 오만한 몸짓이었다.
칸은 한숨을 쉬며 크리스탈을 터치했다.
[ 정령, 라우라에게 18,000,000 골드를 보냈습니다. ]“……허?”
라우라가 나불대던 입을 멈추고 멍한 얼굴을 지었다. 칸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월계수 주문서 15장, 그리고 라우라의 보석 하나 주십시오.”
“……이, 인간?”
“예.”
“어떻게 처, 천 팔백만 골드를 갖고 있는 것이냐?…….”
라우라가 눈을 부릅 뜨고 물었다.
칸은 지극히 당연한 대답을 해주었다.
“전 부자거든요.”
그것이 라우라의 호감도를 올렸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 * *
이후 칸은 라우라의 거처에서 나왔고, 골짜기를 올라 등성이에 도착했다.
“후.”
땀이 조금 맺혔지만 한숨으로 털어버린다. 칸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잉그리드를 숨겨놓은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 몇 개를 지나니 잉그리드가 보였다.
“킁…….”
그녀는 월계수 가지를 덮은 채 잘 자고 있었다. 그 편안한 모습을 보니, 칸도 졸음이 몰려왔다.
‘나도 좀 잘까.’
선별인원 위치 공개는 3시간 후. 그때까지는 자도 있어도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칸은 잉그리드의 옆에 누워서 월계수 가지를 덮었다.
“우웅…….”
그리고 잉그리드를 안아주며 눈을 감았다.
긴장감이 부족한 모습이었지만, 83층은 넓은 지역이었고, 3시간 정도의 휴식은 문제 없었다.
‘2시간만 자자.’
칸은 그리 생각하며 단잠에 들어갔다.
그리고 풀 꺾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바스락.
바스락.
간발의 차로 흩어지는 두 개의 소리.
소리의 크기로 파악하건데,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서 발생한 소리였다.
‘다른 팀이군…….’
선별인원 위치 공개도 안 된 시점에서 다른 팀과 마주치다니, 특수 상황이었다.
‘돌겠네…….’
칸은 기척을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자 발견할 수 있었다.
불과 5m 앞에 있는 월계수, 그 옆에서 두 명의 환상족이 걷고 있었다.
‘이런 미친…….’
갑작스레 찾아온 위기 상황.
환상족 둘은, 현 시점의 칸과 잉그리드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지나가라…….’
칸은 잉그리드의 입을 막은 채, 환상족들이 그냥 물러가기를 기다렸다.
그것이 터무니없는 기대라는 걸 알면서.
―저기서 기척이 느껴지는데.
―동물인가 싶어서 지나쳤는데, 선별인원인가?
―그런 것 같군.
환상족들이 몸을 돌려서 이쪽을 보았다.
그리고 누워있는 잉그리드와 칸을 발견했다.
“환상족 하나, 그리고 인간족?…….”
“우리 합격하라고 하늘이 돕는군.”
“야, 저기 환상족 어린애 있는데 싸울 거야?”
“상관 없어. 죽여서라도 다음 층으로 간다.”
환상족 하나가 진하게 웃으며 검을 들었고, 다른 환상족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창을 들었다.
칸과 잉그리드는 월계수 가지를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잉그리드.”
“응.”
잉그리드가 너클을 장비하며 대답했다.
“항복하자.”
칸은 찬물을 끼얹었다.
“……항복이라니?”
“현재의 우리는, 저 팀을 이길 수 없어.”
저기 있는 환상족들은 나타샤의 층까지 올라온, 자신의 힘과 판단력을 증명한 강자들이었다.
텔레포트를 쓴다 한들, 잉그리드와 함께 이동하면 대기시간이 길어질 것이고, 그러면 도중에 공격받아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한 힘이었다.
칸은 양손을 들며 말했다.
“항복한다.”
그러나 그 순간,
환상력 한줄기가 그의 안면으로 날아왔다.
“……아빠!”
잉그리드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녀의 손에서 피어난 환상력이 칸의 얼굴에 방어막을 형성했다.
콰아아앙!-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폭음.
“젠장!”
칸은 욕지거리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상대방 환상족들은 항복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나는 약자의 항복 따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불확실한 항복 대신, 칸과 잉그리드의 죽음으로 얻어지는 확실한 합격을 원했다.
“죽어라! 인간족!”
검을 든 환상족이 자리를 박차고 날아왔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