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218)
이세계 골드리치-218화(218/256)
환상족의 주의를 끄는 일.
죽는 시간을 늦추는 일.
잉그리드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
모두 이루어냈다.
그러나 마지막 퍼즐에 문제가 생겼다.
‘카메라가 오지를 않는다…….’
칼에 찔리는 와중에도, 칸의 관심사는 오직 카메라였다. 저 카메라가 와줘야만 항복이 가능했다.
‘돌겠네…….’
여기서 항복이라고 외칠 수도 없었다. 카메라가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낼지도 의문이었고, 항복을 외치는 순간 환상족의 심기를 건드려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답이 없다…….’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
게임 내 지식을 모두 끌어와 생각해도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궁지에 몰렸을 때는 세례자조차 무용지물이었다.
‘기적이라도 바라야하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실소가 지어졌다.
모든 것이 힘으로 결정되는 세계에서 기적이라니, 꿈을 꿔도 정도가 있었다.
‘나도 웃기는구나…….’
엔도르핀이 죽을 때 가장 많이 나온다는데, 그 말이 딱이었다.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잉그리드만 없었다면, 웃는 얼굴로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잉그리드한테 너무 미안하네…….’
푹!
검잡이의 검이 하복부를 찔러왔다. 목을 타고 올라오는 피를, 칸은 참지 않고 토해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살살 해주길 바랬는데, 별 소용이 없군.”
“내가 한 두대 맞은 게 아니라서.”
그러나 검잡이는 칸의 말을 무시했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남아 있는 듯, 검을 휘저으며 빼냈다.
푸확!
붉은 피가 풀을 적셨다. 노란 꽃 한송이가 붉게 물들었다. 칸은 그 꽃을 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생명력이 4% 남았습니다!] [조치를 취하지 않을 시, 사망(상태)에 이릅니다!]검잡이의 검이 한 번만 더 찔러온다면, 여지 없는 사망이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데…….’
스쳐지나간 인연들이 떠올랐다. 재수 없는 얼굴도 있었고, 맘에 드는 얼굴도 있었다.
그리고 헤어지기 싫은 얼굴도, 몇몇 있었다.
‘…죽기 싫다.’
죽음이란 곁에 있는 것, 언제나 맞이할 수 있는 손님이라 여겼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죽음을 미루고 싶었다.
‘살고 싶다.’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었다.
‘살자.’
칸은 만신창이가 된 몸에서 미약한 힘을 느꼈다. 아직 발버둥은 칠 수 있었다.
‘해보자.’
심장으로 날아오는 피칠갑이 된 검을 바라보며, 칸은 이를 악물었다.
검이 피부에 닿은 순간 유령이 터지며 공격을 무마시켰고, 검잡이와 창잡이, 잉그리드를 날려버렸다.
지금이었다.
칸은 남은 힘 전부를 목청에 털어넣었다. 입안에서 한 마디 외침이 퍼져나갔다.
“항복!…….”
그 외침을 끝으로 칸은 모든 힘을 소진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저 멀리 있는 카메라.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끝났다.’
카메라는 오지 않았다. 검잡이는 분노해서 걸어왔고, 잉그리드는 울면서 검잡이의 발목을 붙잡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
기적은 없었다.
[성신, 기적의 창조자가 이제 됐다고 말합니다.]“…어?”
그러나 그 순간.
파다다다-
카메라가 프로펠러를 돌리며 고속으로 날아왔다. 눈을 깜박이는 찰나가 지나자 카메라가 눈 앞에 당도해 있었다.
[항복하시겠습니까?]갑작스럽게 찾아온 천운.
칸은 뭐라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뭐야…….…….”
“카메라?…….”
뒤의 검잡이와 창잡이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가 왔다는 것은 항복이 가능하다는 소리였고, 칸을 죽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 잠깐. 그래도 저 새끼는 죽여야…”
“그 정도 했으면 됐잖아. 굳이 힘 빼지 마.”
검잡이가 칸을 죽이려 걸어왔으나, 창잡이가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칸은 상황을 파악했다.
[성신, 기적의 창조자가 빨리 항복하라고 말합니다.] [지금 네 상태는 아주 위험하다고 말합니다.]기적의 창조자가 자신의 목숨을 구원해 주었다.
‘창조자님…….’
칸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
“항복.”
그러자 심장에서 빛살이 피어났다.
“아빠!………”
옆으로 달려온 잉그리드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은 빛살의 온기을 느끼며, 83층 치유의 샘물로 이동했다.
* * *
[치유의 샘물에 도착했습니다.]시야가 일변하자마자 느낀 것은, 몸이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퐁당!
“억!”
등으로 다이빙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니 그게 맞았다.
칸은 등으로 다이빙했고, 샘물로 꾸르륵 들어가고 있었다.
-아빠!
뒤늦게 달려온 잉그리드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칸은 그녀의 조심스러운 부축을 받으며, 샘물 바위에 등을 기댔다.
“흐어…….”
베이고 찔리고 터진 등거죽이 바위와 닿았다. 참기 힘든 고통이 밀려왔다.
“아빠아… 괜찮아?…….”
눈물 범벅인 잉그리드가 어쩔 줄 몰라했다.
칸은 샘물에서 쉬면 낫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를 달래주기로 했다.
“괜찮아.”
그리 말하며 잉그리드의 뺨을 쓰다듬었다. 피가 묻었지만, 잉그리드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진짜 괜찮은 거야?”
그녀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칸은 거듭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의 감정을 진정시켰다.
“다행이야 정말로…….”
그러자 잉그리드는 안심한 듯,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아냈다.
* * *
이후 칸은 샘물에서 몸을 치유하며, 스크린으로 시험을 시청했다.
[환상족 비엔또, 세리파님은 합격!] [합격자 대기실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역시 합격이군!] [밤중에 행운을 맞이한 덕이지.]검잡이, 비엔또와 창잡이, 세리파.
그 둘은 웃으며 ‘합겨자 대기실’로 이동했다.
‘이름이 비엔또였군. 기억했다…….’
칸은 이름을 되뇌이며 화를 삭혔다.
시험은 탈락했지만, 후일 만나면 복수할 것이었다.
“아빠. 이제 좀 괜찮아?…….”
“응. 많이 나아졌어.”
그는 조심스레 다가오는 잉그리드를 안아주며, 샘물 위 스크린을 계속 시청했다.
그렇게 5시간이 지났고, 선별인원들의 위치가 공개되었다.
[이제 남아 있는 팀은 고작 넷!] [시험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네요!]이제 산림에는 네 팀만이 남았다.
[하르미노,바시움]팀은 몇 시간 전에 진즉 통과했고, [베르몬트,아스트리드]팀은 아직 숲을 해맸다. [야, 용가리. 여기 지도 보니까 조금만 더 걸어가면 적팀이 있다는데?] [그럼 찾아가면 될 일이지, 왜 그걸 나에게 말하나?] [아니 팀워크 모르냐? 우리 지금 팀이야 팀. 협력해서 적팀을 찾아야 된다고.] [후……. 꼬맹이 따위랑 팀이라니…….] [뭐? 너 지금 나보고 꼬맹이라 그랬냐!?]그녀들은 투닥거리기 바빴다.
[정말 재밌는 말다툼이네요~] [거인족팀의 기습이 직전이라는 걸 알면,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요?]‘잠깐만.’
칸은 문득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베르몬트는 지도를 볼 줄 모르고, 아스트리드는 귀찮은 일을 싫어한다.
저 둘은 다른 팀의 기습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설마, 기습을 그냥 당해준다고?’
절반 가량 치유된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순간 거인들의 기습이 시작되었다.
[쿵쿵쿵쿵쿵! 쾅!ㅡ] [라쿤가! 내가 마족을 맡는다!] [그럼 난 용족을 맡지!]우거진 숲에서 거인족 두 명이 튀어 나오더니, 베르몬트와 아스트리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저걸 그냥 맞아준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녀들의 말다툼을 보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들은 몽둥이가 날아와도 걷기만 할 뿐, 기습을 눈치채지도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베르몬트와 아스트리드가 동시에 뒤돌아 지팡이와 완드를 꺼내들었다.
“죽음의 불꽃!”
“인페르노!”
콰아아아아아!-
두 개의 불꽃이 양옆으로 쏘아졌다. 날아오던 거인족들은 눈을 부릅떴으나, 관성의 법칙 탓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끄아아아아!”
“크어어어어!”
거인족들은 전신이 불타며 여인들 쪽으로 쓰러졌다.
“블랭크!”
“블랭크!”
여인들은 블랭크를 발동해 몸을 피신했다.
쿠우우웅!ㅡ
거인의 육체가 땅에 닿으며 천지가 흔들렸다. 월계수들은 나무젓가락처럼 으스러졌고, 땅은 찰흑마냥 꺼져들어갔다.
[우와아아! 말도 안 되는 명장면이에요!]거인족들은 재를 토하며 소리쳤다.
[하, 항복!…….] [항복한다!…….] [넵! 항복 받았습니다!]베르몬트와 아스트리드의 합격이었고, 거인족들이 치유의 바다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아, 아빠! 거인족들이 이리로 오는 거야?”
“아니. 거인족들은 너무 커서 바다로 가.”
“…그렇구나.”
잉그리드는 새로운 지식에 고개를 끄덕였다.
칸은 여인들의 전투를 보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탈락하는 줄 알았네…….’
자신이 탈락해버린 이 순간, 여인들이 탈락해서는 안 되었다.
[마족, 베르몬트. 용족, 아스트리드님은 합격!] [합격자 대기실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아자! 용가리 잘했다!] [거인족 하나 이기고 좋아하는 꼴이라니, 역시 꼬맹이답군.] [뭐?… 또 꼬맹이? 이 도마뱀 따위가!]두 여인은 끝까지 티격거리며 합격자 대기실로 이동했다. 보기에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여러모로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만 탈락했네.”
“응…….”
나타샤의 두 번째 시험.
탈락자는 칸과 잉그리드 뿐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