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244)
이세계 골드리치-244화(244/256)
[시험 21일 차, 호수3]새가 지저귀는 따스한 아침, 아니 습한 아침.
부스스한 머리의 남자가 오두막에서 비척비척 걸어나왔다.
“…….오늘이 벌써 3주차네.”
그는 호수로 걸어가서 세수부터 했다.
어푸어푸. 맑은 물로 씻으니 금세 정신이 든다. 그는 동물 가죽을 수건 삼아 얼굴을 닦고 일어났다.
“흐음…….”
그때 오두막에서 아스트리드가 걸어나왔다. 그녀는 어젯밤 매운탕을 끓여 먹은 탓인지 얼굴이 팅팅 부어 있었다.
“…잉간. 벌써 일어났나?”
혀까지 부었다.
“…말이 헛나왔군. 잊어라.”
칸의 시선을 피하며 아스트리드는 호숫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은근한 결벽 증세가 있으니, 아침 일찍 씻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겠지.
“천천히 씻고 와. 오늘은 다른 호수로 출발해야 하니까.”
칸은 아스트리드를 지나쳐서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인벤토리를 점검… 하려는 건 아니었고, 활동복으로 갈아입기 위함이었다.
그는 편안한 차림을 한 채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아스트리드도 다 씻은 듯 머리를 찰랑거리며 오두막으로 걸어왔다.
“옷 갈아 입을 거지?”
“그렇다.”
아스트리드는 오두막으로 들어갔고, 칸은 통나무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러, 활동복을 입은 아스트리드가 오두막에서 나왔다.
칸은 아스트리드의 앞으로 가서 말했다.
“일주일 동안 고생 많았어.”
“…인간도 고생 많았다.”
아스트리드는 옅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칸은 가벼이 그 악수를 받아주며 방긋 웃었다.
이후, 둘은 각자의 호수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칸은 늪지대를 첨벙첨벙 밟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이번엔 호수1인가…….’
목적지는 [호수1].
일주일간 함께할 여인은 이브였다.
“하아…….”
칸은 벌써부터 앞날이 그려졌다.
분명 이브는 칸을 보자마자 ‘주인님! 때려 줘!’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인내심을 시험할 것이고, 칸은 남성의 욕구를 참아내느라 생고생을 할 것이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갔으면 좋겠는데…….”
마조히스트 소녀와의 일주일. 부디 곤혹스런 일이 없길 바라며, 칸은 다리를 움직였다.
* * *
[시험 28일차. 오전 07시, 호수1]이브와의 지옥같은 일주일이 끝난 날.
“주인님이랑 헤어지기 싫어요……! 평생 따라다닐 거에요……!”
칸은 오늘도 이브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었다. 채찍이 문제였다. 그는 숙면을 취하려면 매일 밤 30분씩 채찍을 들 수 밖에 없었고, 이브를 크게 만족시키고 말았다.
그 결과, 이브는 일주일 내내 칸에게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미개척층 공략에 도움도 안 되는 여자가―환상족은 잉그리드가 이미 있으므로.―이렇게 달라붙으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아마 채찍질을 하며 이브의 교태로운 소리를 들었다는 걸 들키기만 해도, 잉그리드는 삐져버리지 않을까.
베르몬트한테는 바람둥이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르겠다.
“…그만 좀 해라.”
“아잉~ 시러잉~”
“하…….”
칸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고통을 감내했다. 힘들었지만 참아야 했다.
오늘은 그토록 바라온 ‘호수 교환’의 날이니까.
“…이브.”
“왜에~ 주인님~?”
방긋 웃는 이브를 보며, 칸은 말했다.
“각자의 호수로 떠나자.”
“…….”
순간 이브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녀는 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소녀였고―이브의 칸에 대한 호감도는 무려 100이다.―, 더 많이 맞고 싶었다.
회초리, 빗자루, 수갑, 촛x 등 아직 당하지 못한 플레이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데 헤어져야 한다니, 너무 잔인했다.
그러나 칸은 단호했다.
“먼저 간다.”
이브의 양팔을 뿌리친 칸은 뒤도 안 돌아보고 호수를 떠났다.
너무 강한 이브보다는, 순수한 맛(?)의 하르미노와 함께 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뭐… 하르미노도 여자라서 힘들 것 같지만.’
하르미노가 있는 [호수2]를 향해, 칸은 출발했다.
* * *
그렇게 모든 선별인원은 각자의 호수를 향해 이동했다. 날씨의 습도도 적당했기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특히 하르미노는 물 만난 물고기였다.
습지대 한정, 물의 정령족이 환상족과 대등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다 왔네.”
오후 3시. 하르미노는 누구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신이 지었던 호수2 앞 목조 저택이었다.
“칸이 올 때까지 저녁이라도 해놓을까… 흠흠…….”
하르미노는 괜히 혼자 목을 가다듬더니,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무려 4주간 기다린 칸과의 합숙. 첫 단추는 제대로 꿰야만 했다.
“칸도 생선을 싫어하지는 않겠지?”
하르미노는 저택에서 만든 돌칼과 도마, 기타 주방 용품을 꺼내서 밖으로 나왔고, 운디네의 도움으로 민물고기 20마리를 잡아서 식재료를 조달했다.
아주 쉬운 과정이었지만, 이후는 더 쉬웠다.
하르미노는 운디네에게 부탁해서 생선 10마리는 매운탕 전용, 나머지 10마리는 회 전용으로 손질해서 각각의 바구니에 담았다.
이제 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었다.
“칸은 조금 늦게 오려나~”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칸이 있었던 호수와의 거리를 감안하면, 대략 도착까지 1~2시간 남은 상황이었다.
“뭐, 칸이라면 금방 오겠지~”
그러나 하르미노는 가벼운 마음으로 통나무에 앉았다. 2시간 따위, 운디네 불러서 놀다보면 순식간에 흘러가는 법이었다.
―계약자님은~ 인간을~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언니 계속 놀릴 거야?”
운디네들이 꺄르르 웃으며 하르미노를 놀려먹었지만, 하르미노는 언니답게 자비로이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운디네들은 즐거워 하고, 하르미노는 흐뭇해 하는 시간이 흘러가기를 잠시.
―계약자님! 멀리서 인간족이 오고 있어요!
―꺄하! 계약자님 좋겠다!
운디네들이 칸의 도착을 알렸다.
하르미노는 즉시 돌판에 불을 피워 구이용 물고기를 올려두었고, 호숫물을 정화하여 시원한 냉수를 준비했다.
‘무려 4주만에 보는 구나…’
치이이익. 물고기에서 구수한 냄새가 솔솔 흘러나왔다. 칸도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남자들이 요리 잘하는 여자를 좋아한다는데…….’
현모양처 컨셉으로 가볼까.
하르미노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물고기를 뒤집었다.
바스락.
그때였다. 고요한 들판을 울리는 이질적인 소리가 나더니, 운디네들이 왔어요! 왔어! 외치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하르미노는 곧장 통나무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왔구나.”
눈동자가 반가움으로 일렁였다. 그녀의 눈에는 4주나 기다렸던 남자의 모습이 맺혀 있었다.
그런데.
남자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옷가지는 이리저리 찢겨져 있었고, 어두운 얼굴에는 기진한 기색이 역력했다.
“칸이 왜 저런…….”
하르미노는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칸을 향해 달려나갔다.
* * *
‘…저녁까지 차려 놓다니. 미안해지네.’
칸은 괜시리 볼을 긁적였다.
하르미노는 생애로 따지면 19살도 안 된 소녀였건만, 자신을 위해 물고기 구이를 해 놓았고, 맑은 물까지 준비해 놓았다.
결혼한다면 필시 참한 현모양처가 될…….
‘내가 뭔소리래.’
칸은 머리를 저어서 상념을 털어냈다.
현재 탈진 직전이라 머리가 이상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잠념은 털어내는 건 결국 본인의 몫이었다.
그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대신, 위태로운 발걸음에 정신을 집중했다.
‘…죽겠네 정말.’
한 순간 정신을 팔면 그대로 쓰러질 것 같은 상황. 늪지대를 통과하는 도중 15m짜리 엘리게이터를 만난 게 문제였다. 쓰러뜨리면서 부상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처치하면서 어그로가 끌려버렸기 때문이다.
그 까다롭다는 봉인의 뱀, 식인식물, 초대형 타란튤라까지…….
봉인의 뱀 때문에 텔레포트도 못 쓰고, 그 깊고 역겨운 늪지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칸은 죽을 힘을 다해야 했다.
그 결과가 현재의 꼴이었다.
심각한 전투로 상빈신의 옷은 찢겨져 나가다 싶이 했고, 몸에서는 썩은 물 냄새가 풀풀 풍겼다. 그 상냥한 하르미노 조차 뒷걸음칠 수준이었다.
“…왔구나.”
때마침 하르미노가 칸의 기척을 느낀듯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고기 굽던 것도 내팽겨지고 칸의 형색을 살피기에 바빴는데, 만신창이인 칸의 모습을 보고는 눈동자가 점점 불안으로 떨렸다.
“칸이 왜 저런……!”
그녀가 칸에게로 달려왔다.
칸은 자신의 꼴을 알았기에 오지 말라 두 손을 저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칸! 무슨 일을 겪은 거야……?”
칸에게서 냄새가 나건 말건, 하르미노는 칸의 손을 잡고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에서 전해져 오는 심려는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심이었다.
“응? 대체 습지대에서 무슨 일을 겪었길래…….”
눈망울이 그렁그렁하다. 계속 우울한 표정을 보이면 울 것 같았다.
칸은 하는 수 없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중간에 동물이랑 식물을 많이 만나서… 걱정할 건 없어.”
“…진짜? 그거 정말 다행… 아니, 이럴 게 아니라……!”
하르미노는 웃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칸의 손을 잡고 치유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93층의 제약 때문에 스킬은 발동하지 않았다.
“아…….”
하르미노는 자신의 실수에 입술을 깨물더니, 무력감이 분통한 듯 눈가가 그렁그렁해졌다.
정말 귀여운 반응이었다.
몸은 탈진 직전이지만, 마음은 따듯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칸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하르미노.”
하르미노와의 일주일은, 꽤나 따듯할 것 같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