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245)
이세계 골드리치-245화(245/256)
하르미노와의 일주일은 따뜻하겠다. 는 예측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하르미노. 이쪽으로 와 봐.”
“…무슨 일인데?”
하르미노는 ‘수줍음’을 타는 여인. 칸이 능력치를 올려주려 불러도 조신한 반응을 보여주기 일쑤였다.
그 덕에, 칸은 십대 시절 느꼈던 풋풋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일주일은 금세,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중간중간 발생했던 ‘매혹하는 사슴무리의 기습’을 버티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도, 시간이 빨리 지나간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하르미노와의 일주일은 막을 내렸다.
* * *
[시험 35일차. 오전 07시, 호수2]“칸. 일주일 동안 즐거웠어~”
“그래, 다음에 보자.”
하르미노와 작별한 칸은 [호수2]를 떠나갔다. 행선지는 베르몬트가 있을 [호수1]이었다.
‘시험 6주차니까…….’
오늘은 베르몬트를 다시 만나는 날. 하여 발걸음이 가벼웠다. 잉그리드 제외, 베르몬트는 가장 대하기 편한 여인이었다.
그는 긴 시간을 걸은 끝에 [호수1]에 도착했다. 호수 앞에 지어진 오두막으로 걸어갔다.
“베르몬트는 아직인가?”
오두막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희안하네.”
베르몬트의 체력과 마력을 고려하면, 자신보다 빨리 도착한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정작 기척이 없으니…….
“없으면 찾으러 가야 겠는데…….”
칸은 그리 생각하며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빠밤!”
이상한 포즈를 잡은 베르몬트가 신박한 효과음을 내며 인사했다.
“…너 뭐하냐?”
“…엉?”
갸우뚱한 자세로 어색하게 웃는다. 보아하니, 한 달만의 재회를 재밌게 꾸미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 안 웃겨?”
…웃어 줘야 되는 거였구나.
칸은 괜히 배를 잡고 허허 웃었다. 그럴수록 베르몬트의 표정은 어두워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베르몬트와의 재회는 이 정도 분위기면 적당했다.
* * *
이후 베르몬트와의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은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까. 특별한 위험 없이 물처럼 흘러갔다. 아나콘다의 기습도 없고, 매혹사슴 무리의 습격도 없는, 평화롭고 견디기 쉬운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베르몬트와의 3일차.
좋은 나날만이 가득했지만, 칸은 수심이 가득했다.
‘시험 6주차인데… 나가가 안 나온다…….’
이번 시험의 메인 보스, 나가는 3~4주 차 내에 등장하는 보스. 아무리 늦어도 5주 차에는 얼굴을 드러내는 보스였다.
…그런데 지금은 6주 차였다.
‘내동선이 좀 꼬였긴 한데…….’
다섯 여인을 번갈아 만나느라 중간중간 중복 호수가 발생하긴 했다. 그러나 그걸 탓하기에 6주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현재 이 상황은, 마치 뭘 잘못해서 나가가 안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칸은 고심했다.
그러나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 들려온 것은 번쩍 하는 효과음이 아니라, 베르몬트의 목소리 뿐이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이거나 먹으면서 쉬어.”
배시시 웃는 베르몬트가 닭다리 구이를 내밀었다. 현재 예민한 칸은 그 호의를 거절하고 싶었지만, 닭다리의 향이 너무 좋았다.
그는 고맙다 말하며 닭다리를 받아 들었다. 한입 베어 물면서 다시 생각했다.
자신이 무언가 놓친 것이 있는지, 만약 놓친 것이 있다면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지…….
그러자 답이 나왔다.
“그거다.”
칸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베르몬트에게 다가갔다. 베르몬트는 돌판 위에서 닭다리를 굽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그는 베르몬트의 등을 탁 치며 말했다.
“해야 할 일이 생겼어.”
“…흐에?”
베르몬트는 놀라서 닭다리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괜찮았다.
“늪으로 가자.”
지금은 닭다리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었다.
* * *
그 중요한 일이란 간단했다.
rpg게임에서 흔히 보이는 보스몬스터 리젠율 상승이었다.
“베르몬트. 시작해.”
“…응.”
베르몬트는 짐짓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지옥의 화마를 일으켰다.
그녀의 손에서 발화한 열기는 금세 커져서 반경 20m의 늪을 집어삼켰다.
아주 만족스러운 광경이었다.
“잘했어 베르몬트.”
“…끄하아.”
정작 베르몬트는 대량의 마나를 소모하여 죽을 상이 되었지만…….
이 정도 규모의 화재라면, 성래족 어그로는 제대로 꼬이게 된다.
―우우! 우우!
때마침 정글원숭이 무리가 수목을 타고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시작이었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성래족은 그 수가 많았고, 얼마 안가 수백 마리 이상 모여들 것이었다.
작전은 그때 시작이었다.
칸은 이 작전을 ‘나가야 집에서 나가자’로 명명했는데, 작명자를 때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아무튼 작전의 목표는 나가의 등장 확률을 높이는 것이었다.
핵심은 간단했다.
팀원의 신변에 위험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습지대의 성래족을 최대한 많이 처치할 것. 그렇게 하면 성래족들은 나가의 리젠율을 높여줄 것이고, 나가는 머지 않아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결국 가정일 뿐이지만.’
가정이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종족 전쟁은 기본적으로 rpg게임이니까. 보스 소환같은 큰 틀에서도 몬스터 리젠율을 따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제야 생각난 게 아쉽네…….’
온라인 시절, 나가는 왠만해서 3~4주 안짝으로 등장했고,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게 문제였다.
온라인과 지금은 다른 점이 많았다. 그때 유저들은 골드 획득, 스킬 숙련도 상승 등을 목적으로 성래족을 학살하고 다녔다. 그 덕인지 나가의 등장도 금방이었고.
칸은 나가 소환에 조건이 있을 줄은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별안간 이제, 작전의 때가 왔다.
―우루루! 우루루!
―구어어어!
정글에서 서식하던 성래족들이 지척에 당도했다.
정글곰, 정글뱀, 정글원숭이, 초대형타란튤라까지…….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온 그들이,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적의의 의사는 명백했고, 전투가 벌어지는 것은 자명했다. 누가 먼저 공격을 시작하는가,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러나 칸은 귀찮은 신경전을 펼칠 생각이 없었다.
“우리가 먼저 간다.”
그는 프란베르크를 들고 제자리를 박찼다.
* * *
…베르몬트와의 5일 차, 저녁 6시.
여느 때처럼 성래족 사냥을 끝낸 칸은, 수고를 끝내고 호수로 돌아가고 있었다.
“진짜 지친당…….”
베르몬트가 피곤한 듯 머리를 기대오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그저 조금, 아주 조금 부담 될 뿐이었다.
은근한 눈빛으로 ‘고백에 대한 대답은 언제―?’ 같은 물음만 잘 회피하면 만사 무탈이었다.
“다 왔네.”
칸은 어느새 호수에 도착했다.
“…조금 더 멀리 나갈 걸.”
이상한 소리를 하는 베르몬트는 제쳐 두고, 칸은 호수로 걸어가며 말했다.
“나 먼저 씻을게. 오두막에서 쉬다가 부르면 나와.”
“…어? 어, 응. 알겠어.”
베르몬트는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껏 매일 해온 일과인데도 저런다.
‘…뭐, 이브보다는 나으니까.’
칸은 베르몬트를 남겨두고 호숫가로 걸어갔다. 지금은 하루 종일 묵은 피로를 씻어낼 때였다.
그는 윗옷을 홀라당 벗어버리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수면의 차가운 온도는 언제 느껴도 아찔했다.
“어으, 차다. 차.”
날씨는 쪄죽는데 물은 왜 이렇게 차.
분에 넘치는 투덜거림을 뱉으며 칸은 몸을 씻어냈다. 하루종일 정글에서 구르며 쌓인 땟구정물이 솔솔 흘러나왔다.
“…정글은 진짜 정이 안 든다.”
찐한 땟국물을 외면하며, 칸은 하늘을 보았다. 둥둥 떠나니는 구름이 보였다.
자연스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는 베르몬트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베르몬트의 행동이 문제였다.
그녀는 최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자주했다.
‘히익! 지네 있어! 어떡해!’
평소라면 가볍게 태워 죽이는 지네를 보고 놀란다던가.
‘아~ 날씨 완전 덥다. 진짜 더워~’
괜히 덥다면서 윗옷을 슬쩍 벗는다던가.
오늘은 그 정도가 심해서 큰일날 뻔 했다. 윗옷을 스윽 내리는데 왠 연분홍색 나시가 보여서…….
범죄를 저지른다는 죄책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진짜 왜 그러나 몰라.’
어푸어푸. 칸은 강한 세수를 하며 역정을 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는데 무시하는 내가 문제지만.’
그러나 곧, 자신이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르몬트는 이미 고백이라는 수를 던졌다. 그녀의 행동들은 전부 고백의 답을 얻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그에 답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몫, 자신의 책임이었다.
“하…….”
칸은 짙은 한숨을 쉬며 물 속으로 들어갔다.
보글보글. 보르르르.
…나는 이렇게 심란한데, 기포는 편안하게도 사는구나.
칸은 물방울을 부러워하며 잉여스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때, 이질적인 느낌이 수면을 타고 흘러들었다.
칸은 미간을 좁히고 물 위로 떠올랐다.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내 호수에 손님이 왔었구나~”
풀을 밟으며 걸어오는 소녀가 보였다.
외모는 귀여우나 분위기는 음산한 소녀였다. 그 음산함은 한 손에 들린 보라색 사과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저 소녀는…….
‘…독사과 마녀.’
93층에서 나가 다음으로 강한 ‘마녀’였다.
‘드디어 왔구나.’
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독사과 마녀가 등장했다는 것은 나가의 등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드디어 왔어~’
칸은 싱글벙글 웃으며 뭍으로 나갔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