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rld Gold Rich RAW novel - Chapter (53)
이세계 골드리치-53화(53/256)
# 53
<– 대비 작업 –>
“파, 팔 서클 마법….. 브, 블리..”
“오해하지마라. 특수 필드를 전개한 것 뿐이니.”
“……특수 필드라고?”
천족이 얼떨떨한 얼굴로 묻는다.
“그래.”
칸은 그 말을 끝으로 주의를 거뒀다.
더 이상의 관심은 무의미했다.
이제 전쟁을 설명해야 한다.
[ ‘아이스 블레이드’를 장비 해제합니다. ] [ 특수필드, ‘절대군주의 빙하시대’가 종료됩니다. ]쿠르르르-
쩌저저적-
“이, 이번엔 또 뭐야!?”
“위 좀 봐! 먹구름이 사라지고 있어!”
“땅도 녹고 있는데!”
“얼음이 사라진다!”
쯔즈즈즈-
하늘을 매웠던 먹구름은 사라졌고, 땅을 얼렸던 냉기도 없어졌다.
사막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매마른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인간. 뭘 어떻게 한 거냐!…..”
천족이 외쳤다.
“대답할 시간 없다.”
칸은 그 말을 끝으로 가볍게 무시했다.
전쟁을 설명하려고 온 것이지, 특수 필드 설명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럼 이제 전쟁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겠다.”
*
‘인간. 힘을 숨기고 있던 것인가?’
아스트리드는 마음으로 놀랐다.
칸이 행한 것은 블리자드였다.
8서클 마법 블리자드를 전개한다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인간이 맞긴 한건가?..’
종족에 대한 의구심까지 들었다.
‘최초의 곡괭이와 위대한 광부의 목장갑, 거기에 블리자드를 발동하는 얼음검까지..’
고룡들이 평생을 갈구했으나 소유하지 못한 보물들.
그것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니.
‘흐음..’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
칸은 전쟁의 골자를 설명했다.
“30일 차 아침에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B팀이 전면전을 걸어올 것이니,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골자는 총 3개였다.
전쟁은 30일 차 아침에 시작된다.
B팀에서 전면전을 걸어올 것이다.
그것을 대비해야 한다.
이제 자연스럽게 의문 하나가 생겨난다.
대비 방법이었다.
“어떻게 대비하라는 건데?”
선별인원 사이에 있던 베르몬트.
그녀가 팔짱을 꼰 채 칸의 생각을 물었다.
사실, 대비책이 궁금해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한 달만에 얼굴 보네.’
그저 말 한 번 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옥의 염화를 다루는 마족.
B팀 선별인원들이 쳐들어오건 말 건, 생명의 위협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좋은 질문이다.”
그러나 칸은 베르몬트의 의중을 몰랐기에 그 질문을 덥썩 물었다.
“우린 방벽을 쌓을 것이다.”
“방벽?”
“그렇다. 내 뒤에 있는 대규모 유적이 보이나?”
선별인원들이 칸의 뒤쪽을 보았다.
그때, 칸이 입을 열었다.
“저 대규모 유적을 거점으로 삼는다. 1킬로미터 반지름을 가진 원형 방벽을 쌓을 것이다.”
“1킬로미터?”
“그렇다.”
선별인원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걸 어떻게 쌓아?”
“불가능해.”
1km는 안된다는 반응이었다.
보통 긴 것이 아니기 때문.
반지름이 1km인 방벽을 쌓게 되면 그 둘레는 6.28km였다.
방벽을 6.28km나 쌓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선별인원은 500명이 안되었고, 시험도 8일밖에 남지 않았다.
“안 되지. 안돼.”
“절대 못해.”
대부분의 선별인원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명만은 달랐다.
“다들 조용. 들어나 보자.”
아스트리드였다.
“이 인간은 힘을 증명하지 않았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거다.”
그녀가 걸어와 칸의 옆에 섰다.
“인간. 안 그런가?”
“그렇다.”
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말대로 칸이 할 이야기는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별인원들에게는 아주 쉬울 것이다.
장벽을 쌓는 방법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럼, 장벽을 쌓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겠다.”
선별인원들의 소란이 잦아 들었다.
무슨 말을 하나, 어디 들어나 보자는 태도였다.
칸이 선별인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장벽 건축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성좌들의 존함을 부르겠다. 존함이 불려진 성좌와 계약을 맺은 ‘드워프’들은 앞으로 나와 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칸이 계획한 방법이었다.
“‘성벽을 쌓는 일꾼’, ‘불가사의의 건축자’, ‘대사원의 설계자’, ‘돌을 나르는 짐꾼’, ‘모래성의 달인’, ‘위대한 건축자’, ‘금속 주조의 달인’, ‘작업장의 따듯한 아저씨’.”
건축형 성좌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뭐?…..”
“성벽을 쌓는 뭐?”
선별인원들은 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난생 처음 듣는 성좌들만 나열되니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이다.
‘설마, 건축에 강점을 둔 성좌들을 이용해 먹으려는 건가?’
그러나 아스트리드는 역시 달랐다.
괜히 천 년을 산 것이 아니었다.
‘건축형 성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어서 나와 줬으면 좋겠으니 다시 한 번 호명하겠다. 성벽을 쌓는 일꾼, 불가사의의 건축..”
칸은 그 이름들을 다시 불렀다.
그러자 변화가 시작되었다.
“내가 성벽을 쌓는 일꾼을 배후성으로 모시고 있다.”
“나는 대사원의 설계자님을 받들고 있지.”
“나는 작업장의 따듯한 아저씨다.”
“늦게 나온 점 사과하지. 나는 돌을 나르는 짐꾼님을 섬기고 있다.”
총 4명의 드워프가 칸의 앞으로 나온 것이다.
“뭐야 쟤들?”
“저딴 성좌를 고른 놈들이 진짜 있단 말이야?”
“대박.”
선별인원들이 웅성거렸다.
듣보잡 성좌와 계약한 자들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뭐, 그들은 드워프의 장인 정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와 줘서 고맙다.”
칸은 그들에게 미소지었다.
B팀 드워프 32명.
그 중 건축형 성좌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4명이나 있을 줄이야.
일이 수월하게 풀릴 징조였다.
“그럼, 내 부름에 답해준 드워프들이 모두 모여줬으니, 나머지 선별인원들에게 행동 지침을 설명하겠다.”
칸은 4명의 드워프들을 뒤로 하고 입을 열었다.
“방벽 건설은 나와 이 4명의 드워프들이 맡을 것이다.”
지침 설명이 시작되었다.
“나머지 선별인원들은 힘을 비축하라. 30일 차 아침이 될 때까지 전투를 자제하라. 대규모 유적을 기준으로 1km이상 벗어나지 말라. 방벽은 언제 건설될지 모른다.”
선별인원들이 지켜야 할 것은 두 개였다.
힘을 아끼고, 멀리 가지 말 것.
이 두 개만 지키면 시험 합격이었다.
“그럼 이것으로 끝이다. 모두 해산해도 좋다.”
칸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해산 명령이었다.
“우리한테 뭘 시키진 않네.”
“뭐, 알아서 한다니까.”
“잘들 하겠지 뭐.”
선별인원들은 수다를 떨며 멀어져 갔다.
‘다 끝났군.’
이것으로 선별인원 소집의 목적을 달성했다.
장벽의 건설을 알렸으며, 거리 제한을 주의시켰다.
건축형 성좌와 계약한 드워프들도 모두 모았다.
이제 모두 끝났다.
드워프들과 함께 방벽만 지으면 전쟁 대비는 끝이었다.
칸은 드워프들을 보았다.
그들과 방벽을 짓기 위함이었다.
‘음?’
그런데 드워프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베르몬트였다.
묻어있던 석탄가루는 언제 닦아 냈는지, 얼굴이 뽀얗다.
그녀가 새초롬한 얼굴로 칸을 보고 있다.
“베르몬트. 이제 돌아가도 괜찮은데.”
칸이 말했다.
그러자 베르몬트는 입술을 삐죽였다.
“좀 있다가 갈게. 한 달 가까이 안봤잖아.”
나름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나저나, 너 머리 스타일 바뀌었다?”
“..어쩌다가.”
“드디어 검은 머리가 칙칙하다는 걸 알아차렸구나.”
“그건 아니고.”
“아니면 뭔데? 누가 염색 마법이라도 써준 거야?”
베르몬트가 배시시 웃으며 칸의 머리를 만진다.
고사리같은 손이 머리를 이리저리 쓰다듬는다.
옆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거지.’
칸은 그녀를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베르몬트가 호감도 잘 쌓이고, 관계 진전 빠르고, 성격 좋은 npc인 것은 맞다.
그러나 머리 쓰다듬을 당할 정도로 친해졌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베르몬트를 공략해 봤어야 알지..’
칸은 그녀의 행동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공략을 안해 본 탓이었다.
‘여캐 공략도 좀 해 볼 걸……’
칸은 괜히 후회가 되었다.
남들 다 즐기는 npc 연애도 해봤어야 했는데.
구독자들 신경 쓰느라 보스 공략만 죽어라 했다.
npc 연애가 그렇게 재밌다는데.
아쉬운 일이었다.
“머리도 꼬불꼬불. 칸 너 곱슬이었어?”
베르몬트가 아직도 머리를 만진다.
뭔진 몰라도 재밌는 듯 하다.
베르몬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
그 모습이 은근히 귀여워서, 칸은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꺼져라. 꼬마야.”
그런데 그때.
옆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아스트리드였다.
그녀가 베르몬트의 손을 쳐내며 입을 열었다.
“이 인간은 내 동맹이란다. 꼬맹이는 좀 가줬으면 좋겠구나.”
“뭐, 뭐야?”
베르몬트가 당황한다.
한 달만에 반가운 얼굴을 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이건 그대로 두면 안되겠네.’
칸은 분위기를 빠르게 읽었다.
두 여인은 자존심이 강하다.
이대로 두면 분노한 베르몬트가 한소리 할 것이고, 참지 못한 아스트리드에 의해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칸은 베르몬트의 앞을 막아 섰다.
이제 보니 베르몬트의 눈가가 벌겠다.
인기투표 최상위권 npc답게 감정적으로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감안해도, 불쌍하긴 불쌍했다.
그녀의 동료였던 마족A,C는 시험에 불참했고.
칸에게 동료 제의도 거절당했다.
A팀에 다른 마족들이 있긴 하나 그들은 베르몬트와는 반대 위치의 파벌,
그녀는 혼자였다.
계속 혼자서 곡괭이와 목장갑을 찾고, 광물과 유물을 캐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곡괭이와 목장갑을 강화하고, 다시 광물과 유물을 캐서 돈을 벌고.
3주가 넘는 시간을 외톨이로 보낸 것이다.
외로움을 잘 타는 그녀는 힘들었을 것이다.
남 몰래 울었을지도 모른다.
세로스 상단에서의 탄탄한 삶을 버리고 나온 만큼, 그 서러움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칸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먼저 다가왔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칸의 머리를 칭찬했다.
마음 한 곳에서 위안을 얻으려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꺼지라는 말을 들었다.
눈이 벌게질 만 했다.
말만 안 할 뿐이지, 이미 감정적으로 폭발 직전일 것이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왜 다 나를 싫어 하는 거야. 내가 뭘 잘못 했는데.’
그녀의 부들거리는 입술이 증거였다.
앞니로 깨물고 있는 것 같은데, 서러움이 많이 쌓인 듯 하다.
그녀라면 아스트리드에게 그간 쌓인 감정을 터트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싸움이 벌어져서 한 쪽이 죽기라도 하면 둘 다 죽는 거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중재가 필요했다.
칸은 베르몬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베르몬트.”
“…..왜.”
그녀가 맹맹하게 말한다.
감정을 억누르려 하는 게 더 안쓰럽다.
‘이건 어쩔 수 없네.’
베르몬트의 마음을 조금 달래줘야겠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감 회복 정도는 시켜줄 수 있었다.
“베르몬트. 지금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뭘 생각했는데.”
“내 계획에는 네가 필요할 것 같아. 이번 방벽 건설에 손 좀 보태줄래?”
“..손을 보태 달라고?”
베르몬트가 코를 킁 들이마셨다.
“어. 짧으면 하루. 길면 이틀에서 삼일.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칸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베르몬트가 벌게진 눈으로 칸을 본다.
그러기를 잠시,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안될 건 없지.”
달래주기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