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홍천(紅天)의 백마사(白馬寺)
하남의 무림계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큰 다툼 없이 고요했다. 천하무종 소림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일컬어 소림파(少林派)라고 하는 무수한 소림 속가들, 그들 중 오 할 이상이 하남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남 무림이 곧 소림파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하남 일대에 전에 없이 큰일이 거듭해서 일어났다.
하나, 소림사에서 당대에 용문제자가 나왔다.
용문제자라 함은 소림사의 절관, 금강동인방을 당당히 통과하여 나한록에 이름을 올린 속가제자를 말하는데, 등용문주 이후 무려 삼십여 년 만에 나온 용문제자였다. 더구나 소림 방장이 직접 나서서 천하에 알리기를 당대의 용문제자의 뒤에 소림이 있다 하였으니. 이는 곧 소림에서 당대의 용문제자를 소림제일인이라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둘, 고도 낙양에서 큰 흉사가 있었다.
낙양, 아니, 하남 일대의 뭇 자객살수들이 몰살당했다. 열흘 남짓의 기간이었다. 종국에는 낙양 근교의 어느 장원에서 한 명도 남김없이 죽임을 당했다. 그곳의 앞마당이 핏물로 내를 이루고, 사체가 산을 이루었다. 자객들의 사체를 화장하니, 태운 불길은 험한 날씨에도 수삼 일간 쉼 없이 타올랐다. 이를 두고 세상은 무림의 전설, 자객불원(刺客不願)이 재래하였음이라고 떠들었다.
그리고 셋, 무가련 후계자들이 낙양에서 회합을 갖는다.
다른 곳도 아닌 무가련이다. 그 후계자들이 소림파의 터전이나 다름없는 하남, 그것도 낙양에서 회합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가장 큰 주목을 받았어야 할 일이나, 앞의 두 일로 인해 크게 빛이 바래었다.
강호는 그저 용문제자가 누구냐, 안휘남궁의 숨은 고수는 누구냐 하며 떠들 뿐이었다. 고요했던 하남이 불과 며칠 새에 소란한데, 정작 소란의 당사자는 지금 하품을 하고 있었다.
“으하함.”
낙양의 백마사(白馬寺).
중원 최초의 불사(佛舍)로서 그 역사가 장구한 고찰이었다.
백마사의 입구는 붉은 벽돌을 높이 쌓았는데,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했다. 사찰 한쪽에는 백마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송대의 것으로 백마사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백마를 기리기 위함이었다. 천축의 고승, 가섭마등(迦葉摩騰)이 불상과 경전을 싣고 왔다는 백마였다.
그 앞에 한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랜 남색 장포를 걸쳤는데, 불길에 그을린 흔적이 옷자락 여기저기에 뚜렷했다. 문득 하품을 한 차례 흘리고는 그는 고개를 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권야(拳爺), 소명이다.
당대의 소림 용문제자, 그리고 자객불원이라 하는 자객들의 악몽. 그러나 지금 뒷짐 지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한객(閑客)의 모양새였다. 불과 사나흘 전 하남 일대의 자객살수들을 죄 황천길로 보낸 당사자라고는 볼 수 없는 태평한 모습이었다.
흘깃 고개를 들자, 머리카락 사이로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소명은 흐릿한 미소를 머금고 중얼거렸다.
“날 한번 좋다.”
그의 말대로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파랗고 하얀 구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한낮의 햇빛이 고스란하다. 근 며칠 동안 머리 위에서 머물던 비구름은 간데없었다. 낙양 사람들은 드러난 하늘빛에 들떠서 나들이에 한창이었다.
온 성내가 왁자지껄했고, 명승고찰인 백마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뭇 선남선녀들은 저마다 향불을 두 손에 들고 불전 앞에서 복락을 기원한다. 수백, 수천의 향을 태우니, 향연이 뽀얗게 올라가 안개 내린 듯이 경내의 전정(前庭)을 가득 메울 지경이다. 머리 민 승인들은 하나같이 사람 좋은 미소를 한 채 오가는 객들을 맞이했다. 물끄러미 보고 있던 소명은 문득 이맛살을 찌푸렸다.
소림사 또한 숭산의 대찰이라 하지만 이리 화려하고 난삽하지 않았다. 검박한 가운데에 선향이 흐릿하게 남을 따름이다. 그러하나 이곳은 웅장함과 번성함이 가득하고 그저 달고, 고운 향이 들불처럼 일어 있으니 사찰의 면모는 찾을 길이 없었다. 더구나 백마사 승인들의 모습은 소림사 승인들과 달랐다. 무엇보다 오가는 여인들을 보는 눈초리는 출가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순후한 인상 뒤에서 두 눈은 번들거린다. 백마사의 승인은 그저 머리만 깎은 속인에 불과했다.
“쯧.”
소명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사찰의 고즈넉함을 기대했던 소명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짧은 한숨으로 불쾌한 심정을 털어 내자니. 문득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뭘 그렇게 오만상을 쓰고 있냐?”
“아니, 별일 아니다.”
소명은 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등 뒤에 위지백과 당민이 멀끔한 모습으로 있었다. 싱글거리는 낯짝을 하고 있는 위지백은 서장제일도라, 그리고 자객불원의 또 다른 일인이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사천당가의 직계로서, 일찍이 녹면옥수라는 무명을 사천 땅에 널리 떨친 여걸. 그러나 소명에게는 서장제일도도 녹면옥수도 아닌, 그저 친우(親友)였다. 소명은 자리에서 꽤나 기다린 참이라 반갑게 고개를 돌렸지만, 둘의 모양새에 순간 흠칫했다.
“뭐냐, 그 꼴은?”
“하하, 여기 당 아가씨가 아주 그럴듯하게 뽑아 주었지.”
위지백은 뽐내듯이 턱 끝을 치켜들었다. 질 좋은 백금(白錦)의 유삼이었다. 소매와 깃에는 청록의 비단을 덧대었고, 머리에는 검은 평정건을 둘렀다. 그야말로 봄날 나들이 차림이다. 소명은 그의 위아래를 보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옷이 날개라더니, 천산 촌놈이 멀끔해졌네.”
“헹!”
위지백은 놀리는 말에 코웃음만 칠 뿐,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지금 옷차림이 꽤나 마음에 든 것이다. 그는 도리어 소명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한 소리 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왜 혼자서 겨울 꼴이냐?”
“이 장삼 한 벌이면 족하지.”
“그럼 수선이라도 좀 하든가.”
위지백은 장삼의 그을린 흔적들을 가리켰다. 여기저기 거뭇한 남색 장삼의 모습은 확실히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그렇지만 소명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일없다.”
소명은 담담히 말하며 장삼 자락을 툭툭 털었다. 장 부인의 정성이 담긴 옷이다.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위지백도 그 사연을 알기에 더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소명은 당민을 돌아보고는 그만 말을 삼켰다.
“크흠.”
당민은 연녹색의 포삼을 걸치고 검은 비단에 오작비(烏鵲飛)를 수놓은 띠를 허리에 둘렀다. 맵시 있는 모양새로 소매와 깃에 세밀하게 수놓은 녹금의 문양이 햇빛에 반짝였다. 사천당가의 복색이다. 이곳의 어느 여인보다도 멋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옷차림이 문제가 아니었다.
소명은 당민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린 기기괴괴한 녹면이 옷자락의 금실보다 더 반짝거렸다. 누가 어떻게 봐도 수상한 모양새이니, 주변에서 흘깃거리는 시선은 따갑고 수군거리는 소리는 고스란히 들려왔다. 물론, 당사자인 당민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뭐야, 왜?”
“아니, 아니다.”
당민은 소명의 눈길에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소명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머쓱함에 괜스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 사람 참 많네.”
새삼스러운 말이기는 하나, 백마사에는 정말로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그런데, 옆에서 위지백의 낯이 참으로 볼 만했다. 짙은 눈썹을 실쭉하게 치켜들고는 실실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가는 눈동자가 참으로 바쁘다.
“으히히. 봄이구나, 봄이야.”
백마사를 찾는 뭇 향화객들 중에는 특히나 젊은 여인들이 많았다. 위지백은 다른 곳을 보는 척하면서도 귀신같이 여인들의 맵시를 훑어갔다. 그는 머리 위의 햇살보다 여인들의 하늘하늘한 옷차림에서 봄을 느꼈다.
“호오, 호오.”
바람 불어 색색의 옷자락 펄럭거리니 인중이 한없이 길어지고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당민은 보다 못해 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위지 대가, 그만 좀 해요. 여기까지 와서 얼굴이 대체 그게 뭐예요.”
“핫핫핫, 당 아가씨. 사내의 눈길이란 자고로 벌과 같은 것입니다. 화려한 꽃잎이 보이면 벌이 날아드는 것이야 말로 자연의 이치이니, 여인의 화려함에 이렇게 눈이 돌아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지요.”
위지백은 넉살 좋게 웃었다. 꽃이 어떻고, 벌이 어떻고, 또 자연의 이치가 어떻고. 여인네에게 한눈파는데 핑계 한번 거창하다. 당민은 결국 고개를 절래 내저었다. 골치 아프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소명은 그 모습에서 저간의 상황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포목점에서 이곳까지, 낙양의 큰 거리를 오가는 여인네가 어디 한둘이었을까. 위지백이 무슨 추파를 어찌 던져 댔을지. 눈앞에 빤하다. 지금만하여도 위지백은 실실 웃으며 눈동자 굴리기에 바빴다.
“오홋!”
불현듯 놀란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부는 바람에 어느 여인의 치맛자락이 올라가기라도 한 모양이다. 당민은 가면이 들썩일 정도로 한숨을 폭 하고 내뱉었다. 소명은 위지백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적당히 해라.”
“으헉!”
방심한 참이라 위지백은 뭘 어찌할 겨를도 없어 돌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울리는 소리가 요란도 해서, 오가던 사람들이 그만 발길을 멈추고 이쪽을 빤히 바라볼 정도였다. 당민조차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엎어진 위지백을 내려다보았다.
소명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과 위지백, 두 사람은 당가의 호위라는 명목으로 백마사를 찾았다. 엄정한 모습은 아니라도, 추태는 피해야지 않겠는가. 소명은 손을 털며 당민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남궁 공자가 늦네?”
“어? 아, 아아.”
안휘남궁의 차남인 관중검 남궁유를 말하는 것이다. 태연한 모습이라, 당민은 순간 머뭇거렸다. 그녀는 엎어진 위지백을 곁눈질로 살피며 더듬 말했다.
“가, 가문의 수행인들과 함께 온다니까. 곧 도착하겠지. 뭐, 꽤 시달리지 않겠어? 소문이 파다하니까.”
그녀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소명은 소문이 파다하다는 말에 헛기침을 흘렸다. 하남을 크게 들썩이고 있는 소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설, 자객불원이 재래하여 하남 일대의 자객살수들을 처단하였다던가. 고작 사나흘에 불과한데, 낙양은 진즉에 넘어서 하남 일대에 이를 떠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당사자 되는 사람으로서 멋쩍은 일이다.
소명은 흘깃 눈을 돌렸다. 위지백이 흙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오만상을 쓴 채 소명을 노려보았다.
“괜찮아?”
“됐어, 걱정해 주는 척은.”
위지백은 입술이 닷 발이나 튀어나와서는 마뜩찮은 기색을 있는 대로 드러냈다. 입씨름하며 툭탁거리는 모습이 마치 댓 살배기 아이들 같다.
당민은 어이없는 눈으로 보다가 곧 고개를 내저었다. 가면 아래에 쓴웃음이 걸려 있었다. 저리 경망된 모습을 보여도 눈앞의 둘이 어떤 이들이던가.
“하, 하하. 그래도 전설의 자객불원, 두 사람이 호위라니. 이거 정말 영광이기는 하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소명은 당민의 공치사에 헛웃음을 흘렸다. 위지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찡그리듯 웃으며 옷을 털었다. 흙먼지가 흩어졌다. 그리 있을 새, 한 승인이 쿵쿵거리며 다가왔다. 큰 덩치의 승인이었다. 그는 짐짓 낯을 굳힌 채 넌지시 물었다.
“아미타불, 세 분 시주께서는 어인 용무로 본사를 방문하셨는지요?”
공손한 모습이나, 합장한 손 너머로 번뜩이는 눈초리에는 불쾌와 경계심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었다. 장삼의 사내는 초라하고, 칼 든 사내는 수상하며, 녹면의 여인은 기괴하다. 셋 중 누구든 고찰 백마사에 찾아올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세 사람은 승인의 날 선 눈초리에 멈칫했다.
승인은 큼직한 제 덩치를 믿는 것인지 위압적으로 눈을 부라렸다. 그 모습이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지라, 셋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그에 답을 한 것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어헛, 이보게. 손님들께 무슨 무례인가.”
“예에? 아니, 그것이.”
다른 승인이 서둘러 달려왔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대신 나서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 하하. 시주님들 죄송합니다.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하하, 아미타불.”
그리고는 덩치의 승인을 끌다시피 자리를 피했다. 끌려가던 승인은 어이없어 물었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딱 봐도 수상한 자들 아닙니까.”
“어허, 소리 낮추게. 저분들은 무가련의 손님들이란 말이야.”
“헉, 무, 무가련이요?”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다. 덩치의 승인은 퉁방울만 하게 눈을 크게 떴다. 멀찍이 떨어져서 속삭인다고 속삭인 말이었지만 셋 중에 듣지 못하는 이는 없다.
다들 입가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무가련이라는 이름에 덩치의 승인은 바짝 몸을 움츠리더니 슬쩍 이쪽의 눈치를 살폈다. 셋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잰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후다닥 서두르는 모습에 위지백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당민 또한 피식 웃었다. 그녀는 곧 어깨를 들썩이며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영광이라고 한 말 취소. 참 대단한 호위들이야. 회합하는 곳은 구경도 못하고 내쫓길 뻔했잖아.”
“아니, 그게 어디 우리 때문이냐?”
“아니면?”
당민은 두 손을 허리에 척 걸치고는 턱을 탁 치켜들었다.
소명은 어이없는 눈으로 당민을 바라보았다. 소명과 위지백이 수상하다고 해도, 어디 당민의 녹면만 할까. 그러나 당민은 당당했다.
“말을 말아야지.”
결국 소명이 먼저 고개를 흔들며 물러섰다. 눈을 돌려 사람 가득한 백마사 경내를 보고 있으려니, 문득 서늘한 기운이 뒷덜미를 스쳤다. 소명과 위지백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백마사의 정문으로 한 무리의 사내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의 등장과 때를 같이하여 경내의 뭇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숨을 멈췄다. 경내에는 내리는 햇살이 무색할 정도로 서늘한 고요가 가득했다.
무리는 모두 스물로, 청의금삼(靑衣錦衫)에 청건을 두르고 손에는 삼 척의 장검들을 들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기세가 상당했다. 위지백은 그들 면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이내 묘한 탄성을 흘렸다.
“호오.”
그는 피식 웃으며 옆에 선 소명을 어깨로 툭 쳤다. 얼굴에 장난스런 기색이 가득했다.
“제법들인데.”
“안휘남궁이야 옛적부터 명가로 이름 높았지.”
소명은 나직이 말했다. 그리고 청의금삼의 가슴에 새겨진 구름 문양을 바라보았다. 일컬어 창천뇌운(蒼天雷雲), 안휘남궁의 상징이다.
유심히 바라보니, 그들 사이에서 남궁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