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혼탁한 창룡장(蒼龍莊)
“멈춰랏! 웬 놈들이냐!”
그들은 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버럭 소리쳤다. 무턱대고 다그치는데, 서슬이 워낙에 흉흉했다. 그러나 소명이나 위지백의 눈에 두려움에 악을 쓰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대뜸 들이미는 칼부리에 두 사람은 적의 없음을 뜻하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위지백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하하, 진정들 하시오. 우린 수상한 사람이 아니오.”
“뭐, 뭣!”
“그것 참.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니까. 그저.”
바짝 긴장한 위사들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위지백은 연신 웃으며 다가섰다. 손을 흔드는 모습에 위사들은 버럭 소리를 높였다.
“카, 칼이다! 칼을 들었다!”
“응? 아니, 이건.”
위사들은 발작하듯 울부짖었다. 그들은 눈을 하얗게 뒤집은 채 대뜸 창칼을 들이밀었다. 천하의 위지백이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이 통하는 상황이 아니다. 창칼이 성큼 다가왔다. 소명은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너는 하여튼.”
“야! 내가 뭘 어쨌다고!”
위지백으로서는 억울해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러는 사이 위사들의 창칼이 눈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꼼짝 마라! 저, 저항하면 벤다!”
위지백을 젖혀두고 소명이 앞으로 나섰다.
“진정들 하시오. 수상한 사람이 아니외다. 소림에서 왔소.”
“소, 소림?”
“속가제자 소명이라 하오.”
소명은 합장하며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묵직한 모습에 위사들은 멈칫했다. 그들은 창칼을 겨누고서는 서로를 돌아보며 웅성거렸다. 속가제자라는 사람은 많고 많았지만, 소림에서 왔다는 것은 또한 다른 의미가 있었다. 명색이 소림 속가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등용문으로서는 이를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위사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한 사내가 나섰다.
한쪽 팔에 조장의 두건을 묶고 있었다. 그는 소명과 위지백의 위아래를 훑었다. 눈길이 제법 날카롭다. 앞뒤 사정을 모를 일이라, 소명은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기다리시오. 위에 알리겠소.”
위사조장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는 굳게 닫힌 정문 한구석의 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소명은 후우, 숨을 뱉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여, 마음이 불편했다. 앞에서 위지백은 불만스레 구시렁거렸다.
“원, 인심하고는.”
다른 위사들은 여전히 날 선 눈초리로 두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앞뒤로 창이고, 좌우로 칼이다. 위지백의 찡그린 낯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다.
창칼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꽤나 짜증스러운 일이다.
위지백은 혀를 차고는 소명에게 넌지시 물었다.
“야,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거냐?”
“아니면, 그냥 가리?”
“아, 아니다.”
소명이 퉁명스레 되물었다. 더 불평하다가 무슨 소리 들을까 싶어, 위지백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 짧은 동작에도 긴장한 위사들은 칼끝을 크게 흔들었다. 한 위사가 고압적으로 외치며 칼끝을 들이밀었다.
“우, 움직이지 마!”
“하, 하하.”
위지백은 위사의 다그침에 헛웃음을 흘렸다. 난감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턱 아래에 바짝 다가선 칼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잔뜩 긴장해서는 칼끝이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그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인데, 위지백은 흘깃 눈을 들어 칼을 겨눈 위사를 바라보았다.
젊다 못해, 어린 얼굴이다. 위압을 부린답시고 두 눈을 한껏 치뜨기는 하였는데, 눈동자는 칼끝처럼 아주 요동을 치고 있었다.
위지백은 히죽 웃으며 위사를 빤히 보았다. 달리 기세를 드러낸 것도 아니건만, 그의 눈길에 위사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급기야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칼끝은 당장이라도 떨어뜨릴 듯이 위아래로 요동쳤다. 안쓰러울 정도의 모습이다.
아무리 실실 웃으며 경박하게 굴어도 눈앞의 사내는 서장의 제일도, 위지백이다. 그가 이제껏 쌓아 온 살기는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여도 가벼울 리가 없었다.
‘오호, 이놈 봐라.’
위지백은 새삼 흥미로운 눈으로 위사를 보았다. 온몸을 벌벌 떨면서도 용케 칼은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꽤나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 안으로 들어갔던 위사조장이 돌아왔다. 그는 굳은 얼굴을 한 채, 확인하듯이 다시 물었다.
“소림에서 오신 속가라 하셨소?”
“그렇습니다.”
“크흠, 들어오시오.”
위사조장의 말에 위사들은 포위를 풀고 물러섰다. 잠깐 사이에 불과하건만,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명과 위지백은 쓴웃음을 흘리며 문가로 향했다. 그런데 위사조장이 퍼뜩 손을 펼쳐 위지백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
“왜 그러시오?”
그는 위지백의 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기는 소지하실 수 없소.”
그 한마디에 위지백은 얼굴을 굳혔다. 내내 입가에 머물러 있던 미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소림사에서도 제지하지 않았던 칼이다.
대뜸 표정이 사라지니 주변 위사들이 크게 당황했다. 순간 위지백이 손을 썼다.
꽝!
내처 팔을 휘두르니 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거죽이 크게 들썩였다. 자리한 모든 이들이 똑똑히 느꼈다. 여력이 남아 창룡장의 높은 정문이 웅웅 떨리고, 기왓장이 달그락거렸다.
위사들은 너무 놀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한껏 솟구친 흙먼지가 흐린 바람에 흩어졌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한 자루 도가 도갑 채로 단단한 돌바닥을 뚫고 서 있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위지백이 스산한 눈으로 위사조장을 직시했다.
“이제 만족하시나?”
“…….”
위사조장은 감히 대꾸할 수 없었다. 이제야 눈앞의 사내가 그들로서는 감당 못 할 고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소명은 흘깃 주변을 둘러보고는 설래 고개를 흔들었다. 두려움을 넘어선 얼굴들. 그것은 경외, 그리고 공포였다.
‘하기야, 성질머리 치고는 꽤나 참았지.’
그는 곧 실소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위사조장은 창백한 얼굴로 앞장섰다. 걷는 걸음은 부목이라도 댄 듯이 뻣뻣하다. 일순 드러낸 위지백의 기세가 과했던 모양이다. 너무도 질려서는 작은 헛기침 소리에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다른 무엇을 묻기가 미안할 정도라, 소명은 위지백에게 속삭였다.
“적당히 하지 그랬냐.”
“적당히 한 거야.”
위지백은 여직 분이 안 풀렸는지 냉랭하게 대꾸했다.
“그래, 어련하시겠어.”
“흥!”
소명이 구시렁거리니, 위지백은 한껏 턱 끝을 치켜들며 싸늘하게 코웃음 쳤다. 그 소리에 앞에 가는 위사조장은 바짝 어깨를 움츠렸다.
위지백은 빈손이었다. 그의 무광도는 정문 앞에 마치 비석처럼 우뚝 서 있다. 누구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을 터였다.
살벌한 모습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소명은 새삼스레 주변을 살폈다. 창룡장의 내부의 모습은 정문 위사들의 상태와 다를 것이 없었다.
사방이 고요한데,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식솔들이 굉장히 분주하게 오갔다. 지나는 소명과 위지백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전 창룡장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뭔 일이 생기긴 생겼구나.’
그때, 위사조장이 어느 전각 앞에서 멈췄다.
“이, 이곳입니다.”
그는 아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느 틈엔가 말투가 경어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이 책임자가 있는 곳이오?”
“그, 그렇습니다.”
“흐음.”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다. 전각에는 감위당(監位堂)라고 적혀 있었다. 위사조장은 안에 기별을 전하고는 도망가다시피 자리를 피했다.
소명과 위지백은 헐레벌떡 뛰어가는 위사조장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이내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감위당 소속인 한 무사가 그들을 내실로 안내했다.
내실은 어둑했다. 한낮임에도 날이 궂어 햇살 한 점 없으니. 문가 맞은편에 자리한 서가에서 유등 하나가 타오를 뿐이었다. 유등 아래에는 한 사내가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들어서는 기척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러자 소명과 위지백은 문 앞에 선 채 말없이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딱히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문득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주먹코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이제 막 서른이나 되었을까. 그는 보고 있던 책자를 덮으며 턱 끝을 들었다. 마치 소명과 위지백을 눈 아래로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 둘의 위아래를 훑더니 위세 부리듯이 거만하게 말했다.
“그래, 소림에서 오신 속가시라?”
“예, 소명이라 합니다.”
“크흠, 감위당 부당주 상관 모라 하오. 무슨 일로 본문을 찾으셨소, 그래?”
“사람을 찾아 왔습니다.”
“사람?”
상관 씨의 부당주는 대뜸 눈살 먼저 찌푸렸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소명은 예의를 갖추어 차분히 말했다.
“무룡단 갑자조장을 맡고 있는 호충인, 호 조장을 찾아왔습니다.”
“호…… 조장?”
그 말에 부당주는 와락 얼굴을 구겼다. 그것은 귀찮다는 기색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눈빛은 적의가 분명했다.
‘뭐야?’
의아해하기가 무섭게 부당주는 버럭 소리쳤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예!”
쩌렁한 일갈에 당장 문을 박차며 여럿의 무인들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의 기세는 정문을 지키는 위사들과 전혀 달랐다.
소명은 당황한 눈으로, 그리고 위지백은 짜증스런 얼굴로 뛰어든 여러 무사들을 보았다.
“이자들을 당장 포박하라! 호 도적놈과 한패가 분명하다!”
“도적이라니? 그게 대체?”
소명은 외치는 상관 부당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들이닥친 무사들은 말보다 먼저 칼을 뽑아 들었다. 차차창! 울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 모습에 위지백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야, 어떻게 하냐?”
“으음.”
소명은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 일이 고약하다. 그는 에워싼 무사들의 면면을 살폈다. ‘호 도적’ 이라는 말 때문인지 크게 흥분한 기색들이었다.
칼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유등의 흐릿한 빛을 받은 칼날은 탁한 붉은 빛이 흘렀다.
답이 없자, 위지백은 소명을 채근했다.
“에잇, 그냥 잡히자는 거야?”
소명은 피식 웃었다. 그는 다가선 칼날 앞에서 태연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위지백에게 짧게 말했다.
“어디 그럴 수야 있나. 일단 눕혀.”
“간만에 좋은 말!”
소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지백은 호탕하게 외쳤다. 두 사람은 빠르게 앞뒤로 치고 나갔다.
“으헉!”
“커억!”
일류에 가까운 무인 열다섯이었다. 그러나 제압은 순식간이었다. 소명은 물론, 맨손의 위지백 또한 어려움 없이 그들을 제압했다. 번갈아 앞뒤로 움직이며 상대하는데, 채 몇 호흡이 되기도 전에 포위망이 무너졌고, 진열이 무너진 그들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칼 한 번 제대로 떨쳐 보기도 전에 하나같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쿵!
묵직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소명은 손을 탁탁 털었다. 위지백은 제압한 자들은 한쪽에 쌓아 놓고는 그 위에 떡하니 걸터앉았다.
한바탕 푸닥거리에 속이 좀 풀렸는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싱글거리는 얼굴이었다. 그는 손을 터는 소명에게 장난치듯 말을 건넸다.
“손이 좀 무뎌진 거 아니냐? 예전만 못한 것 같은데? 흐흐흐.”
크게 상한 이들이 없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명은 피식 웃고는 곧 고개를 돌렸다. 내실 구석에 상관 부당주가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는 얼빠진 얼굴로 바닥에 처박혀 있는 감위당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이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시간이 뭐 얼마나 흘렀다고 감위당의 일급 무사들이 이렇게 뻗어 있단 말인가.
상관 부당주는 소명의 눈길에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네, 네놈들…….”
뿌득 이를 갈아붙이며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소명에게 달려들 듯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무거웠다. 그도 눈이 있어 알았다.
혼자로는 택도 없는 상대였다. 어차피 자신이 무공으로 부당주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무사들을 부르자니, 감위당 무사들은 여기 뻗은 자들이 전부였다. 외부의 무사들을 부를 수도, 부를 방법도 없다.
속절없이 몸만 떨어 대는데, 소명이 차분히 물어왔다.
“자, 상관 부당주. 이제 대화를 해봅시다. 호충인이 도적이라니 무슨 뜻이오?”
“모른단 말이…… 요?”
“모르니 묻는 일 아니겠소?”
더듬거리며 되묻는데, 말끝에 절로 존대가 붙었다. 뒤에 앉아 있던 위지백이 빙글 웃으며 대꾸했다. 소명이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사람 역시 소림의 속가요. 등용문을 적대할 생각은 결코 없소이다. 호충인, 호 조장의 옛 친구로 얼굴이나 보고자 찾아왔을 뿐.”
“…….”
부당주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담담한 소명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쉽게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내실에 뻗어 있는 수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끙끙 앓는 소리를 흘려가며 정신 차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니 속이 쓰려 왔다. 적어도 눈앞의 두 사내가 손속에 사정을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빌어먹게도. 둘은 그만한 고수인 것이다. 상관 부당주는 굳은 얼굴로 더듬거리며 물었다.
“미, 믿어도 좋겠소?”
“허, 그것 참.”
등용문의 일당을 맡은 부당주라는 직위의 마지막 자존심인가. 소명은 머뭇머뭇하면서도 턱을 치켜드는 상관 부당주의 모습에 혀를 찼다. 믿어도 좋으냐라 물으면 뭐라 답해야 한단 말인가. 소명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위지백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흡!”
상관 부당주는 한순간 거리를 좁혀온 위지백의 모습에 움찔 당황했다. 잔뜩 움츠러든 그에게 위지백은 실실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안 믿으면?”
“뭐, 뭐요?”
“안 믿으면 뭘 어쩌시려오?”
시정의 잡배인 양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다. 상관 부당주의 얼굴이 검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어디서 이런!’
그러나 발끈할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문 턱에 힘이 풀렸다.
웃으며 쏘아보는 위지백의 눈길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어깨를 마구 짓누르는 듯했다. 고개가 한없이 무거워지더니 결국 푹 떨구고 말았다.
생각하면 사내의 말이 맞았다. 안 믿는다고 해서 뭘 어쩔 수 있을까. 지금 전력이라는 수하들이 죄 바닥에 뻗은 판국인데.
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조, 좋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