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무책(無策)이야말로 상책(上策)
그러자 위지백은 머쓱한 기색을 싹 지우고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는 분은 알아주시는군요. 하하하!”
솔직하게 득의한 모습이다.
문심룡과 좌우의 두 장년인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멀고 먼 서장의 일대 고수가 홀연히 등용문에 등장하다니, 그 사연을 짐작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의심하기에는 등용문주의 기세에 태연한 모습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문심룡은 흐린 웃음을 흘렸다.
“하, 이거 문 모가 크게 운이 따른 모양이요. 서장의 인룡(人龍)을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소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두 손을 맞잡았다. 연배를 따지면 큰 차이가 있었지만 서장제일도라는 이름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었다. 그런데 위지백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핫핫핫, 인룡이라니요. 그것은 저를 너무 낮추어 보시는 말씀이십니다.”
대뜸 하는 소리가 그 모양이다.
인룡이라는 말이 아쉽다고 대놓고 하는 말이니. 그야말로 아연실색, 두 장년인들의 얼굴이 딱 그러했다. 소명은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상관전소는 무슨 얼굴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냥 넋을 놓아 버렸다.
‘아니, 뭐 이런.’
서장제일도라니, 상관전소는 눈을 끔뻑였다. 실로 엄청난 이름이 아닌가. 그런데 대담함을 넘어 철면피에 가까운 태도는 또 뭐란 말인가.
잠시 자리가 조용했다. 쏟아지는 눈길이 따가울 법도 하련만 위지백은 그저 싱글벙글 웃는 낯이다. 이내 문심룡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서장제일도가 자랑하는 것 중 하나가 구화공이라 하더니, 과연, 과연이구려. 하하하!”
“으흐흐흐.”
그것도 칭찬이라고, 위지백은 실실 웃었다. 그가 막 뭐라 대꾸하려던 차에 소명이 재차 살벌한 눈짓으로 말했다.
‘적당히 해라.’
“크, 크흠.”
위지백은 머쓱하게 웃었다. 이에 위지백의 진심이 한마디 농으로 흘러갔다.
문심룡은 시원하게 웃었다.
흉사로 인해 맺힌 근심이 깊어서, 지난 사흘 동안 깨어도 깬 것이 아니요, 잠들어도 잠든 것이 아니었다. 시시분분이 힘겨운 차였는데, 이렇게 웃음이 터질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나 웃음 끝에 긴 한숨을 흘렸다. 그는 새삼스런 눈으로 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소림 속가라는 사내는 그저 고요하고, 서장의 제일도 위지백은 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들 뒤에서 상관전소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문심룡은 상관전소의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친부인 백권불파와는 조금도 닮지 않은 모습이다.
“상관 부당주, 수고하였네. 일 보시게.”
“예, 옛!”
상관전소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그는 꾸벅 허리를 접고는 후다닥 심천각을 벗어났다. 실로 신속한 모습이다.
‘원 사람하고는.’
문심룡은 잠시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멀뚱히 서 있는 소명, 위지백을 돌아보았다.
“이 사람이 귀객을 두 분이나 모셔놓고 결례를 범하였으니, 면목이 없구려.”
그리고 단에서 내려오며 손을 흔들었다. 단의 뒤쪽에서 시비 여럿이 나와 자리를 마련했다. 둥근 다탁 일체를 놓고, 위에는 준비한 다과를 내었다.
문심룡은 먼저 앉아 자리를 권했다. 소명과 위지백은 사양하고 말 것도 없이 편히 앉았다. 좋게 말해 당당한 모습이다. 문심룡의 뒤에 시립하듯 자리한 좌우의 장년인들의 눈에는 당돌한 모습으로 비쳤다.
문심룡은 가만히 찻잔을 기울였다. 찻물을 머금고 퍼져가는 차향을 잠시 즐겼다.
“흐음.”
그는 곧 냉정을 찾은 눈으로 마주 앉은 소명과 위지백을 바라보았다. 소명은 찻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차향을 음미하듯 고요히 자리했다. 반면에 위지백은 한숨에 뜨거운 찻물을 비우고는 이리저리 딴청을 부렸다.
문심룡은 나직이 헛기침을 흘렸다.
“크흠, 그래. 위지 공께서는 어떤 연유로 본문을 찾으셨소이까?”
“아, 저요. 저는 그냥 친구 쫓아온 겁니다.”
“음?”
위지백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문심룡과 두 장년인의 눈이 새삼 소명에게로 향했다. 손님을 착각한 모양새라 심히 민망한 일었다. 그러나 소명은 다만 흐린 미소로서 당황한 눈길을 마주했다.
서장의 제일도를 친구로 둔 소림 속가라니.
문심룡은 헛기침을 흘리며 당혹감을 가라앉혔다. 그는 말했다.
“크흠, 그래. 듣자하니 본산에서 오셨다 들었네만.”
“예, 문주.”
“허면 삼십육방의 어디까지 거치셨는가?”
“후배는 삼십육방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그, 그래? 거치지 않았다라.”
소림사 삼십육방을 거치지 않고도 본산에서 내려온 속가라 자처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실로 미심쩍은 일이었다. 문심룡은 잠시 눈매를 모았다가, 넌지시 물었다.
“공 자 배의 사형들은 여전하신가?”
“예, 한없이 정정들 하십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 크게 정신이 없으실 겁니다.”
웃으며 답하는데, 친근한 투라. 좌우의 두 장년인들이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소림사의 공 자 배가 어떤 위치인데 일개 속가가 그들 면면을 다 알겠는가, 이토록 허물없는 답이 돌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 더구나 정신이 없을 것이란 말은 또 무슨 뜻인지.
그때, 문심룡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허허. 그래, 다행이군. 다행이야.”
그는 곧 소명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렇군, 자네가 당대의 용문제자로군. 내 방장께 전언을 들은 바 있네.”
“대, 대형!”
“그 무슨 말씀이오!”
두 장년인들은 대경하여 고개를 돌렸다.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눈앞의 문심룡조차 동인방을 돌파한 것이 지천명에 가까워서였다. 한데 이제 이립이나 되었을 법한 젊은이가 어찌 가능하다는 말인가. 심지어 문심룡은 사전오기(四顚五起)의 도전 끝에 나한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당대의 용문제자는 그것에 끝나지 않았다.
소림사에서 널리 알리기를 소림제일인이라는 과한 칭호를 붙인 바. 그 이름이 도무지 눈앞의 웃는 젊은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장년인들은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소명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길 앞에서 소명은 그저 웃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형님, 이 사람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좌측의 장년인이 정색하며 말했다. 그러자 우측의 장년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저런 어린놈이 무슨 용문제자란 말입니까?”
문심룡은 말이 없었다. 그는 소명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어린놈이니 뭐니 하며 악담이 오가는데, 그는 마냥 태연했다.
“형님!”
두 사내는 답이 없는 문심룡의 모습이 답답하였던지 채근하듯 그를 불렀다. 우측의 성질 급한 장년인은 참다못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내린 소맷자락을 단박에 걷어붙였다. 바위 같은 팔뚝이 드러났다.
“내 저놈들을 당장 내쫓아 버리겠소!”
그 순간.
“어허! 두 아우는 정히 이 우형을 경망된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가!”
문심룡의 일성이 쩌렁하고 터졌다. 높은 심천각의 천장이 들썩일 정도였다. 그는 곧 시퍼런 안광을 흘리며 좌우를 노려보았다. 그 눈길에 아우라 불린 두 사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으음.”
등용문주 문심룡의 아우라 하면 하남쌍웅이라 불리는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문심룡과 더불어 강호풍상(江湖風霜)을 이겨내고, 등용문을 반석에 올린 노강호들이었다. 그리고 등용문 제일의 다혈질로 유명하기도 하였으니.
벽력권(霹靂拳) 고상해와 홍원도(紅猿刀) 조일동이 이들이다. 두 사람의 무명은 각자의 무공 탓도 있지만, 그 성품으로 인해 붙여진 바가 더욱 컸다.
문심룡은 움츠린 둘의 모습을 한 번 둘러보고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우형이 아무리 심란하여도 눈까지 먼 것이 아닐세!”
그는 강한 어조로 꾸짖었다. 소명이 용문제자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곧 문심룡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니.
하남쌍웅은 더는 말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문심룡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차고는 곧 고개를 돌렸다. 이 소란에도 소명과 위지백은 마냥 태연했다.
“면목이 없네.”
“아닙니다. 두 분께서 등용문과 문주를 크게 걱정하시는 까닭이지요.”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군. 그래, 본문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가? 방장께서 말씀하시기를 용문제자의 일이 무엇이든 돕기를 주저치 말아 달라 하셨으니. 이 문 모, 열과 성을 다해 자네를 돕겠네.”
문심룡은 묵직한 모습으로 말했다. 일문의 주인이 하는 말이다.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소명은 싱긋 웃어 보였다.
“후배는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아니다?”
“예.”
문심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허면, 무슨 일로 등용문을 찾았다는 말인가. 설마하니 후배 된 도리로 인사나 올리고자 먼 길을 왔을 리는 없는 노릇이다.
의중을 몰라, 문심룡은 흘깃 좌우의 의제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소명이 웃으며 말했다.
“후배, 문주의 심중우환(心中憂患)을 찾아 드리고자 합니다.”
“헛? 심중우환이라?”
문심룡은 흠칫하며 자란 수염을 쓸어내렸다. 눈살을 찌푸린 모습에 의문이 솔직히 드러났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등용문주의 심중우환이라니.
문심룡은 침묵한 채 소명의 눈을 마주했다. 그의 고요한 눈빛이 마땅치 않았다. 그 눈은 마치 자신의 어두운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문심룡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무슨 말인가?”
“등용문을 어지럽힌 도적, 제가 잡아 드리겠습니다.”
쾅!
소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심룡의 투박한 손이 다탁을 내리쳤다. 세치에 달하는 두꺼운 자단목이었다. 그러나 문심룡의 일장을 감당치 못했다. 그것은 마치 진흙덩어리인 마냥 손바닥이 움푹 파고들었다.
좌우의 쌍웅이 미처 나설 겨를이 없었다.
문심룡은 부리부리한 눈에 노화를 감추지 않았다. 쌍웅의 성질에 혀를 차던 것이 불과 촌음 전이건만. 문심룡은 그보다 더한 기세를 발하며, 흡사 노호(怒虎)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가.”
“말씀 그대로, 도적을 잡아 등용문의 우환을 제거해 드리지요.”
“자네, 그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아는가?”
“문주께서 더 이상 고민하실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요.”
소명은 그저 담담했다.
문심룡이 살기에 가까운 기세를 일으키는데도 흔들리는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좌우의 쌍웅은 노화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소명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심중우환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등용문을 얕잡아 보는 노릇이 아닌가.
그들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소명을 무릎 꿇릴 작정이었다.
한껏 뜬 눈초리에서 시퍼런 빛이 줄줄 흘렀다. 처음 노기를 드러낼 때의 하얀 눈이 무색했다. 그때, 문심룡이 정색하며 말했다.
“자네의 뜻은 곧 소림의 뜻이라 들었네. 본산에서 속가의 일을 단속하겠다는 뜻인가?”
“설마요. 어디까지나 호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호의? 그럴 만한 능력은 있고?”
문심룡은 비꼬듯이 말했다. 굵은 눈썹 아래로 부리부리한 호목(虎目)은 마치 불을 뿜을 듯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그의 입에서 화통한 웃음이 터졌다.
“하, 하하하하!”
이렇게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다니, 얼마 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문심룡은 내심으로 오늘 참 웃을 일이 많구나 생각했다. 그는 시원하게 웃어 버리고는 소명에게 말했다.
“할 수 있겠는가. 본문의 정예들도 소득 없이 헤매고 있는 처지일세.”
“문주!”
좌우에서 쌍웅이 놀라 외쳤다. 호충인의 일은 문파의 수치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를 외부인에게 맡긴다는 말인가. 그러나 등용문, 일문의 주인으로서 문심룡은 더없이 진중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며 소명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말이 없어도 뜻은 충분하다.
소명과 위지백은 심천각에서 나왔다. 해는 아직 머리 위에 높았다. 위지백이 물었다.
“야, 뭘 어쩌자는 거냐?”
“어쩌기는 이제부터는 당당하게 헤집고 다닐 수 있게 된 거지.”
소명은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의 손에는 붉은 술이 달린 작은 옥패가 하나 들려있었다. 등용의 글자와 함께 하늘 향하는 용문이 새겨진 옥패였다. 이것은 문주의 명을 대리한다는 의미의 등용소패(騰龍小牌)였다.
이것 하나면 등용문을 한껏 들쑤셔도 탈 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옥패를 보는 소명의 눈길이 어째 단순하지가 않았다.
‘그저 명을 내리는 것으로 족할 것을, 굳이 중한 의미의 옥패까지 내주었다라.’
소명은 물끄러미 옥패를 보다가 이내 가벼운 실소를 흘렸다. 등용문주의 의중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한 까닭이었다. 그 또한 내막이 있음을 의심하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대에 부응해 드리지.’
소명은 내심 중얼거리며 소패를 품에 챙겼다. 위지백은 문득 멈칫한 소명의 모습이 의아해 돌아보았다.
“뭐야, 왜 그래?”
“아무것도, 가자!”
소명은 힘차게 앞으로 걸었다.
“어디로? 어어? 야!”
위지백이 재차 묻는데, 소명은 답이 없었다. 그는 저만치 앞장서 갔다. 빽하고 소리쳐도 돌아보지 않는다. 위지백은 오만상을 쓴 채 연신 툴툴거렸다.
“아니, 말 한마디 하고 가면 어디가 부러지나? 갈 데가 없어지나. 왜 매사가 저 모양인데?”
그러면서도 위지백은 소명의 뒤를 쫓았다. 짜증이 가득한 외침이 심천각 앞에서 쩌렁하고 울렸다.
“거, 같이 좀 가자!”
그렇게 소명이 먼저 향한 곳은 감위당이었다.
상관전소는 서류 더미에 있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소명과 위지백의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얼굴이 굳어졌다. 둘이 찾아올 때마다 심장 떨리는 일만 생기는 까닭이었다.
“그런 얼굴 하실 것 까지는 없지 않소.”
“하, 하하. 무, 무슨 일이십니까?”
억지웃음을 짓고 겨우 묻는 상관전소에게 소명은 등용소패를 내밀었다.
“으익!”
당장 질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등용소패는 문주의 직령을 받은 이만이 지니는 신패, 이를 들이밀었다는 것은 곧 싫든 좋든 소명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하려 해도 절로 울상 짓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관전소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무슨 명을 내리시렵니까?”
“명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몇 가지 여쭈고자 할 뿐입니다.”
소명이 듣고자 하는 것은 일이 벌어진 다음이었다. 감위당이 허창 일대를 봉쇄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곳 또한 각자의 움직임을 보였을 터. 그것을 듣고자 함이다.
소명은 설명하며 싱긋 웃어 보였다. 딴에는 진정하라는 의도였지만, 상관전소는 그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흐익!’
웃는 모습이 윽박지르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상관전소는 울상이 아니라, 아예 사색이 되어서는 묻는 말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답했다.
소명은 가만히 듣다가 문득 물었다.
“그럼,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어디입니까?”
“그것이…… 예, 분명 팔법당이 제일 먼저 움직였더랬지요. 아무래도 문내를 단속하는 것이 그들 일인지라.”
“팔법당.”
소명은 팔법당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팔법당은 상관전소의 말대로 등용문 무사들을 시찰하고, 감독했다. 등용문 무사들 사이에서는 별칭으로 염왕당이라 불렸다. 한번 끌려 들어가면 온전한 몸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염왕당이었다.
그런데, 소명은 슬쩍 눈매를 찌푸린 채 위지백을 돌아보았다. 위지백도 그의 눈길을 마주하며 묘한 소리를 흘렸다.
“오호.”
팔법당이라 하면 왕걸이 속해 있던 곳이 아닌가. 전날 왕걸은 보고를 마치고 나오다가 그만 위지백이라는 인재(人災)를 마주하였으니.
소명은 흘깃 위지백이 웃는 모습을 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저놈 또 무슨 생각을 할지 뻔하군.’
짧은 한숨을 흘렸다. 위지백의 구화공이 또 공력을 발휘할 모양이라. 소명은 가만히 눈매를 모았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