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무책(無策)이야말로 상책(上策)
소명과 위지백이 서른의 갑자조원들을 이끌고 향한 곳은 감위당이었다. 두 사람이 머무는 창고 방이 아니라, 정말 구석의 창고 건물 하나를 싹 들어낸 참이었다. 덕분에 창고 앞은 이것저것의 잡동사니가 수북했다. 이것을 한나절 만에 치웠으니 고생도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다.
“용케도 정리했다. 좋은데.”
“핫핫, 이 몸이 누구시더냐.”
위지백은 거들먹거리며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물론 고생한 것은 도기영 혼자일 테지만, 소명은 굳이 꼬집지 않았다. 그는 눈치 살피기에 급급한 도기영의 모습을 흘깃 보고는 쓴웃음을 흘렸다. 그는 곧 고개를 돌렸다.
갑자조원들이 어안이 벙벙한 채 두리번거렸다.
“당분간 이곳에서 머무르시오.”
“……누구십니까? 당신은? 누구시라고 우리를 돕는 겁니까?”
“일단은 호 도적을 잡으려는 사람이오.”
소명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서른 전원의 눈에 붉은 안광이 타올랐다. 그들은 피폐한 몸으로도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지금 무어라 했소.”
힘없던 목소리에 새삼 스산한 기세가 실렸다. 넝마나 다름없는 수의 사이로 긴장한 근육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했다. 소명은 피식 웃었다.
“비웃는 것인가!”
“아니, 아니오. 아충, 그 멍청한 녀석이 그래도 인복(人福)은 있구나 싶어 그렇소.”
“아, 아충?”
호충인을 친근하게 부르는데, 갑자조원들은 순간 당혹해했다. 소명은 그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군말할 것 없소. 몸 상태를 돌보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오.”
“무슨 말이오.”
“당신들도 살고, 당신들 조장도 살고, 모두 살려 보자 하는 것이라오.”
갑자조원들은 멀뚱히 소명을 바라보았다. 모두를 살리고자 한다니. 무슨 말인가. 그러나 달리 설명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새삼스런 눈으로 갑자조원들을 둘러보았다.
두 눈에는 여직 기세가 살아 있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공력을 봉한 몸으로, 금옥에서 고초를 겪은 터라 상태들이 영 아니었다. 등용문 정예 중의 정예로서 하남 일대 일천여 리가 좁다 내달리던 무룡 갑자조의 철혈 무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공력을 봉한 것을 풀어 주고 며칠 정양을 하면 나아지려나, 상황이 그렇게 기다려 주지는 않을 터.
소명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흘렸다.
“역시 안 되겠네.”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천천히 두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손을 써 두는 편이 좋겠다.
소명은 결정을 내리고는 흘깃 고개를 들었다.
심상치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갑자조 중 몇몇이 흠칫 물러섰다. 소명은 묘한 눈빛을 흘리며 느긋이 다가왔다.
“이, 이보시오.”
“당신, 무엇을?”
더듬 묻는데, 소명은 한걸음에 거리를 좁히며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크게 울렸다. 가대방은 어깨를 크게 들썩였다. 주먹이 명치를 깊이도 파고들었다. 그는 어이없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뭘 어찌할 틈이 없었다. 소명은 두 주먹을 교차하며 삽시간에 가대방의 전신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마치 대북을 쉴 새 없이 두드리는 듯,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우뚝 주먹을 멈추자, 그는 망연한 눈으로 소명을 바라보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울컥 내뱉는 핏물이 붉었다.
소명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얼어붙은 갑자조원들을 향해 말했다.
“다음.”
그 한마디에 갑자조원들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당황한 것은 처음으로 충분했다.
“이, 이익!”
“으아아악!”
그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냅다 달려들었다.
소명은 두 주먹을 가볍게 그러쥐더니 주저 없이 서른, 아니, 스물아홉의 갑자조원들의 정면으로 치고 나갔다. 두 주먹과 발이 섬전처럼 뻗어 나갔다.
위지백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없이 한쪽으로 물러났다.
감위당의 뒷마당이 괴성과 구타 소리로 요란했다.
서른이 작정하고 달려든다고 해도, 몸의 안팎으로 정상이 아니었다. 소명에게 무슨 위험이 될까, 그저 발악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소명이 사정을 봐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한층 혹독하게 손을 썼다.
“헤에, 아주 작정을 했네. 작정을 했어.”
위지백은 문득 눈길을 돌렸다가,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한구석에서 도기영이 더없이 사색이 되어서는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흐윽, 정상인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저 무광만 한껏 끌어안았다. 귀신 들린 칼이라 주저하던 기색은 간데없었다.
귀신 들린 무광이나, 위지백보다 눈앞의 소명이 더 무서웠다. 앞뒤 없이 주먹을 내지르더니, 서른이나 되는 갑자조를 무참하게 두들겨 패는 모습에는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으니.
“으, 으으으.”
도기영은 속절없이 신음소리만 흘렸다. 그동안에도 소명은 열심히 주먹을 휘둘렀다.
갑자조원은 소명에게 한 사람당, 못해도 오십여 번 이상의 주먹질을 받았다. 종국에는 달려드는 괴성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가죽 북을 쉴 새 없이 두들기는 듯한 소리만 크게 울렸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
그리고 마지막이었다.
“끄으윽, 그, 그만…….”
마지막 조원은 축 늘어진 채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대로 쓰러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소명의 한 손이 그의 멱살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이미 인사불성이나 다름없는 상태이건만, 소명은 그럼에도 주먹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냅다 주먹을 내리꽂았다. 명치 아래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는 입을 쩍 하고 벌렸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진저리치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후우.”
소명은 짧은 숨을 흘리며 멱을 놓아주었다. 흙바닥에 철퍼덕 엎어지는 것으로 한바탕의 소란이 끝났다. 그는 웅크린 채 꺽꺽거렸다.
소명은 흘깃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른의 갑자조원들이 여기에 처박히고 저기에 엎어져 있다. 하나같이 입가에 울혈을 토하고는 끙끙거리며 앓았다. 정신을 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죄도 없이 금옥에 갇혀 모진 고초를 당한 것도 억울한 일이건만, 이렇게 굴욕적으로 두들겨 맞기까지 하다니.
이만저만한 충격이 아니었다.
“으으, 으윽!”
갑자조원들은 몸 가누지도 못하는 처지에 이를 악물었다. 벌게진 눈매가 바르르 떨렸다. 소명은 그런 험한 눈길에 대해 담담했다.
“그렇게 엎어져 있지만 말고 운공이라도 좀 하시구려. 퍼뜩 몸을 추스르셔야지, 뭐라도 해 볼 것 아니요.”
“우, 운공?”
“아니, 이보시오!”
운공이라니, 지금 죽으라 하는 것인가. 공력을 봉한 상태라 손가락 하나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판국에 무슨 놈의 운공이란 말인가. 당장 욕지거리가 터지려는데, 불현듯 놀란 소리가 터졌다.
“억!”
가대방이었다. 가장 처음 두들겨 맞았던 만큼 정신을 차리는 것도 빨랐다. 소명의 말에 발끈해서 공력을 일으켰다가 깨달은 것이다.
“어헉!”
가대방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하나둘 놀란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소명이 냅다 주먹질을 했을 때보다 더 놀란 얼굴이었다.
딱딱한 차돌인 양 굳어 있던 단전이 흔들리고는 그립던 공력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랴부랴 자세를 고쳐 앉아 숨을 가다듬었다.
운공이 가능했다. 오지게도 두들겨 맞은 사지육신으로 막힘없이 공력이 흘렀다. 냅다 후려갈기고 패대기친 것이 상승의 타혈법이었던 것이다.
놀라거나 뭐라 물을 겨를이 없었다.
갑자조원들은 부랴부랴 자리를 잡고는 운공에 들었다. 마치 이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듯, 절박한 모습이었다. 소명은 그런 갑자조원들을 묵묵히 둘러보다가 곧 고개를 돌렸다.
벽가에 기대어 있던 위지백은 스쳐 지나치는 소명에게 물었다.
“이제 어쩔 거야?”
소명은 잠시 멈칫했다. 하늘을 보니, 햇발이 살짝 기울어 가고 있었다. 갑자조를 공들여 두들겨 주느라 시간을 꽤 지체했다.
소명은 입매를 비틀었다.
“어쩌기는 그놈 찾아야지.”
“어디 있는지는 알고?”
“글쎄다. 어디에든 있겠지.”
소명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너무 태연한 모습이라 위지백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대책 없기는 정말 여전하네.”
“어허, ‘무책이야 말로 상책’이라는 말도 모르냐.”
소명은 웃으며 말했다. 정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얼굴이다. 위지백은 찰나 말문이 막혀서 눈을 끔뻑이다가, 빽 하고 소리쳤다.
“무책이 상책? 에라이,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진심이 가득했다.
소명이 무책을 말할 때마다 목숨 줄이 간당간당하였던 까닭이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구화공은 애교 수준이다. 그러나 소명은 그저 껄껄 웃었다.
* * *
내기가 요동을 친다.
이를 다잡고자 하지만 기혈 곳곳이 탁기로 막혀서 기식을 유지하는 것도 벅찼다. 달리는 호흡을 붙잡아 가며 운공요상에 매달리나 내상은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더구나 침습한 음험한 공력이 끊임없이 기맥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처처고난(處處苦難)이다.
목 아래에서 역한 피비린내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는 운공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크헉!”
피 섞인 숨이 터지며 가부좌를 취하고 있던 몸이 앞으로 무너졌다. 그는 곰팡내가 지독한 축축한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헐떡였다.
“크, 크큭! 크흐흐흐!”
헐떡임 끝에 쓴웃음이 터졌다.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호충인은 떨리는 손으로 젖은 턱을 훔쳤다. 그의 모습은 참담했다.
납빛으로 물든 얼굴, 비틀린 입가에는 토혈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젖은 벽에 등을 기댔다. 마치 천 근의 추라도 매단 모양인지 두 어깨가 축 늘어졌다. 철완강격(鐵腕强擊)으로 하남 일대에 이름을 떨친 맹격호완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호충인은 이내 웃음을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에서는 맺힌 물방울이 똑, 똑, 똑, 소리를 내며 규칙적으로 떨어졌다. 사방천지가 어둑했다. 이곳에서는 바깥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곳은 그저 웅크리고 있는 것이 고작일 뿐인 밀폐된 공간이었다. 은신처로서 마땅한 곳은 아니었다. 그저 권련(拳鍊)을 위해 마련했을 뿐이었다. 설마 이곳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나마 수련을 한답시고 약간의 물과 곡식 가루를 준비해 놓았으니 망정이다.
“후우. 빌어먹을.”
호충인은 긴 숨을 토해 냈다.
‘아무리 복귀 직후라지만, 그딴 샌님한테.’
솟구치는 심화를 달랠 길이 없어서 이를 악물었다. 문기정, 그 간적(奸敵)에게 당했다는 것보다 마음을 풀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치솟았다. 그러나 지금에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호충인은 짧게 중얼거렸다.
“젠장, 관두자.”
지난 일에 연연하여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련한 짓이다. 호충인은 손을 뻗어 축축한 동굴 벽을 더듬었다. 그저 일어나려하는 것뿐이나, 몸 상태를 보자면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는 한참이나 끙끙거린 끝에 벽을 붙잡고 일어섰다.
“크으…….”
그만으로도 땀이 송골송골하다. 내외상으로 인해 몸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호충인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로 심지가 흔들려서야 어디 무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설사 몸이 무너지더라도 무인의 웅지(雄志)란 결코 스러지지 않는 것이다.
벽을 붙잡고 숨을 고를 새, 문득 어둠 저편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 오라버니, 괜찮으신가요?”
문혜선이었다. 그녀는 호충인의 안위를 조심스레 물어 오는데, 두려움으로 인해 목소리 끝이 흔들렸다. 호충인은 그녀가 자리한 곳을 바라보았다.
내상의 탓으로 어둠의 너머를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문혜선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는 곧 애써 강한 척,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하, 하하. 이 정도야 거뜬합니다. 저 하남의 맹호, 호충인입니다. 문 소저.”
“…….”
문혜선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녀 역시 호충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가 어떻게 무리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눈가가 한없이 뜨거워졌다.
호충인이 자신으로 인하여 얼마나 큰 무리를 하였는지. 문혜선은 잘 알았다. 그녀 또한 무가의 여식이며, 상승의 무학을 익힌 무인이었다.
자신이 없었다면, 혹은 제 몫을 반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호충인이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터였다.
“흐읍.”
그녀는 돌연 가슴을 쥐어뜯었다. 호흡이 흐트러지며 뜨거운 핏물이 왈칵 올라왔다.
“아가씨!”
호충인은 흠칫 어깨를 들썩였다. 넘어질 듯하면서도 당장 그녀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다. 그러자 문혜선이 급히 말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잠깐 기혈이 흔들렸을 뿐이에요.”
문혜선은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둠이라 보이지 않았지만 파리한 안색에 입술은 한없이 붉었다. 그녀는 서둘러 숨을 골랐다. 그녀 역시 몸이 성치 않은 상태였다. 그 일로 인해 두 사람 모두 생사가 오갈 정도의 극심한 내상을 입은 터였다.
비록 기원원의 희생과 호충인의 기지로 인해 몸을 피하였으나 몸 상태는 호전은커녕 악화 일로로 치달아 가고 있었다.
문혜선의 경우에는 그래도 나았다. 불시의 기습이었지만, 장신구처럼 품에 지니고 있던 호심경 덕분에 치명상을 피할 수 있었다. 모친의 유품이었다.
강호의 여인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며 남겼던 유품이 설마 친오라비의 암습을 막아 줄 줄이야. 그녀는 불현듯 찾아오는 비애를 이기지 못하고 푹 고개를 숙였다. 깍지 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가씨?”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호 오라버니.”
“이, 이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 때문에, 저 때문에.”
호충인은 어둠 너머로 자책에 몸을 떠는 문혜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 볼 수 있었다. 그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손을 들어 입가를 적신 토혈의 흔적을 닦아 냈다. 그리고 어찌 담담한 체했다.
“어찌 문 아가씨의 탓입니까? 제 불찰이고, 문…… 대공자의 야심이 일을 이렇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아가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위로가 되었는지 어떠하였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적어도 문혜선의 입에서 더 이상 자책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 숙인 채 숨죽인 채 흐느꼈다.
호충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입가에 맺힌 쓴웃음이 한층 짙었다. 그는 문득 어금니를 부러져라 악물었다.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건만.
그는 어두운 눈으로 사방이 캄캄한 토굴을 둘러보았다.
문기정의 암수에 몸을 피한 것은 좋았지만 몸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몸을 회복하여 기원원을 구해 낼 작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원원…….’
호충인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기원원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절망에 고꾸라지려는 심중을 애써 다잡았다. 기원원, 그녀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약해질 수 없었다.
‘정신 차려라! 못난 놈!’
그는 자신을 다그쳤다.
새삼스럽게도 호충인은 자신의 몸 상태를 다시 살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꽤나 긴 시간이 흘렀음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운공요상으로는 내상을 어찌할 수 없었다. 상태는 지지부진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그 또한 악화일로였다.
침습한 문기정의 공력이 끊임없이 내부를 흔들고 있었다.
호충인은 어두운 얼굴로 고민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은 절감하고 있었다. 그는 문득 입술을 질끈 물었다.
“어쩔 수 없지.”
어둠 속에서 탁한 눈동자가 흐린 빛을 발했다. 뭔가를 각오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