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산서에 이는 풍운(風雲)
‘흥, 저러다가 큰코다치지.’
‘뭐, 부족이 어째? 어디 한 모금이나 제대로 마시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위지백은 술동이에 손을 뻗었다. 대뜸 한 손을 들어 동이의 주둥이를 움켜쥐더니 내처 앉은 자세로 번쩍 들어 올렸다. 술이 가득한 술동이였다. 무게는 못해도 백여 근에 가깝다. 장정 둘이 조심하여서 겨우 들고 온 것을, 위지백은 채 반 푼의 힘도 들이지 않고 가벼운 모습으로 집어 들었다. 들고 온다고 온갖 용을 다 쓴 눈앞의 두 숙수가 그만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질린 낯빛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위지백은 가볍게 동이를 흔들었다. 묵직하게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그는 곧 동이를 봉한 붉은 종이를 찢었다. 오래 묵어서 짙은 술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술 냄새를 먼저 한껏 들이켰다.
“킁킁킁, 캬아! 향 좋고!”
위지백은 감탄사를 흘리고는, 빈 사발에 한 잔을 쪼르륵 따라서 소명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 바로 술동이를 한껏 기울였다. 콸콸 쏟아지는 술 줄기를 위지백은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꿀꺽거리는 소리가 힘차기도 했다. 객잔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위층, 아래층 할 것 없이 객잔 안의 모든 사람이 위지백 한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동석하고 있는 초립인도 무심하던 태도를 잃고 퍼뜩 고개를 들어 위지백을 빤히 바라보았다. 붉은 입술이 멍하니 벌어져 있었다.
사방이 조용하여서, 위지백이 술 들이켜는 소리만 들렸다. 기울인 술동이가 점점 올라가며 꿀꺽거리는 소리도 점점 급해졌다. 폭포수가 쏟아지는지, 콸콸 소리가 요란도 했다. 그럼에도 술은 단 한 방울도 흘리지를 않았다. 이것도 귀신같은 일이다. 객잔 전체가 얼어붙어 있는 가운데, 오직 소명만은 옆에서 별다른 반응 없이 태연했다. 그는 멍청한 얼굴로 굳어 있는 숙수 둘에게 물었다.
“보게, 음식은 아직인가?”
“어이쿠, 예! 손님!”
그들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렇지 않아도 주문이고 일이고, 잔뜩 밀려서 눈코 뜰 새가 없는 판이다. 마냥 넋 놓을 때가 아니다. 그렇지만, 아예 뱃전으로 바로 술을 쏟아붓는 위지백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두 숙수가 주춤주춤 물러서는데, 미처 그들이 이 층의 계단을 다 내려가기도 전에 위지백은 술동이를 바닥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흐으하!”
세상에 없을 시원한 소리가 터졌다. 내려놓은 술동이에서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기어코 한 호흡에 술동이를 죄 비워 버린 것이다.
“좋구먼! 목에 낀 먼지가 그냥 한 번에 씻겨 내려가네. 햐아, 그래, 이 정도는 마셔야 마신다고 하는 게지.”
어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지. 다른 사람이 이 짓을 했다가는 몸에 무리가 와서 내처 죽을 판이다. 사람들 눈에 비친 위지백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람이 아니라 술 귀신, 아니 술 괴물이다. 사람들의 질린 눈초리가 뻔하건만, 그래도 위지백은 마냥 희희낙락이었다.
소명이 심드렁한 얼굴로 위지백을 빤히 바라보았다. 위지백의 입꼬리가 아주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는 툭 물었다.
“그렇게 좋으냐? 아주 숨넘어가겠다.”
“당연하지! 문 어르신께 받은 술이 마지막이었잖으냐. 그게 대체 언제 적이야? 네놈이 길을 재촉하는 통에 이제껏 목마른 채로 풍찬노숙이었는데.”
위지백은 버럭 한 소리를 하고는 부리부리한 눈동자에 불만을 가득 담아서 소명을 노려보았다. 짙은 모래바람을 뚫고, 쉴 틈 없이 오백여 리 먼 길을 몰아쳐 왔다. 힘든 것보다도 마른 목, 주린 술배가 아쉬워서 불만이 그득한 참이었다. 소명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위지백의 도끼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먼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더 입씨름하기 싫다는 태도였다. 위지백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문득 소명 앞으로 밀어놓은 술 사발에 눈길을 주었다. 아직 손을 대지 않아서 한가득 담긴 술이 창가의 햇빛을 받아 빤짝거렸다.
“저기, 그거 마실 거냐?”
새삼 목이 타는 모양인지 입맛 다시는 소리를 흘렸다. 그러자 소명은 고개를 흔들고는, 대뜸 사발을 들었다. 그는 위지백을 빤히 보며, 보란 듯이 사발을 기울였다. 단번에 술을 비워내는 모습에 위지백은 한껏 얼굴을 구겼다.
“쳇, 치사한 놈.”
치사하기는 누가 치사한 것인지.
위지백이 구시렁거릴 새, 불현듯 맞은편에서 웃음소리가 피식하고 새었다. 초립인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어깨를 들썩였다. 어지간히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는 곧 소명과 위지백의 빤히 쳐다보는 눈길을 알고는 멋쩍은 듯이 두 손을 맞잡아 보였다.
“죄송하오. 그만 결례를 저질렀구려.”
애써 굵게 내는 목소리였다. 위지백은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 아니, 괜찮소이다. 사실 이 사람이 좀 과하기는 하였지. 그래, 이참에 통성명이나 합시다. 서장 땅의 위지 모라 하외다.”
“아, 저는.”
초립인은 위지백의 친근한 태도에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맞잡았다. 그러나 이내 멈칫했다.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손을 거두며 대신 초립 챙을 잡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만 실례, 실례하겠소.”
그는 짐을 챙겨 서둘러서 자리를 피했다. 처음의 묵직한 모습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마치 도망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소명과 위지백은 그가 나가는 뒷모습을 빤히 보고 있다가, 한두 마디씩 주고받았다.
“귀한 집 초출이신 모양인데, 낯을 많이 가리시나?”
“그러게, 손이 참 곱상하니.”
“그래도 영 맹탕은 아닐 것 같고. 제법 할 것 같군.”
“에헤이, 평가가 너무 후하시구먼. 저 정도로 제법은 무슨. 아차 하면 어중이떠중이 손에 훅 가게 생겼구먼.”
“그야 네놈 눈깔이 딱 그 정도이니 그렇지.”
소명은 위지백의 퉁명스러운 평가에 피식 웃었다. 그러는 사이, 남은 주문들이 바쁘게 차려지기 시작했다. 두 말이나 되는 데운 술과 큼직한 안주가 줄줄 나왔다. 위지백은 흥에 겨워서 손바닥을 싹싹 비벼댔다. 데운 술병이 주르륵 놓이고, 큼직한 요리가 나오니 삽시간에 상을 가득 메웠다.
두 사람을 안내하였던 점원 아이가 제 덩치만 한 큰 반자를 들고서는 부지런히 술병을 나르고, 요리를 날랐다. 아이는 곧 빈 반자를 겨우 잡고는 힘겨운 듯 숨을 몰아쉬었다. 제가 날랐지만, 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술병과 요리를 보고 있자니 새삼 질린 모양이었다. 눈을 끔뻑거리고 있는데, 위지백이 아이를 빤히 보았다.
“왜 그러느냐?”
“아이코, 아닙니다요, 손님. 저기 그러니까, 더 시키실 일은 없으신지?”
넌지시 묻는 말에 아이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부랴부랴 멍한 얼굴을 다잡고는 냉큼 일을 묻는다. 어린 녀석치고는 어지간한 수완이었다. 위지백은 피식 웃고는 손을 내저었다. 뜻을 알고, 점원 아이는 냉큼 허리를 숙이고는 후다닥 물러났다.
위지백은 흐뭇한 눈으로 상 위를 가득 메운 술과 음식을 둘러보았다.
“자아, 어디 느긋하게 즐겨보실까.”
“네놈도 참 어지간하다.”
소명은 턱을 괸 채,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위지백은 넉살 좋게 웃었다. 그의 손은 이미 술병을 들고 있었다.
“핫핫, 말하지 않았더냐. 이 몸의 주도가 상승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다니까.”
또다시 주도 운운하는 소리에 소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니, 손님이고 점원이고 할 것 없이 죄 질린 눈으로 이쪽을 힐끔거렸다. 어지간히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산서가 아니라, 천하에서 어디 이만한 술꾼이 흔할까. 소명은 그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 창밖의 누런 풍경이나 헤아렸다.
소란도 하였던 마른 모래바람이 잠시 잔잔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여전히 바빴다. 둘러보려니, 한쪽에서 왁자한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하동대하에서 멀지 않은 골목 앞이었다. 그곳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무슨 구경거리가 생긴 모양이었다. 지나는 이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기웃거렸다.
사람들 너머에서 붉고 파란 깃발이 높이 솟구쳤다. 한 무리의 재주꾼들이 판을 벌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깃발을 마구 흔들어대는데, 아래로 한 중년 사내가 성큼 나섰다. 누런 머릿수건을 눌러쓰고 붉은 천을 허리에 묶었다. 밤송이처럼 거친 수염이 코 아래에서 목덜미까지 뒤덮어 우락부락 험상궂은 인상이었지만, 표정만큼은 싱글벙글하여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허리에 맨 붉은 요고(腰鼓)를 한껏 두드리며 오가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잡아끌었다.
“자아, 자아, 여러분. 여러분. 동가잡기단(潼家雜技團)이 왔습니다. 왔어요! 동가잡기단의 동팔이 왔습니다.”
사내는 덩치와 어울리지도 않게 방방 뛰어다니며 이쪽저쪽을 향해서 소리를 높였다. 길가의 사람들이 그의 외침에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자 동팔은 더욱 힘을 다해 소리쳤다.
“진성의 여러분! 동가잡기단이 자랑하는 재주꾼 왕후자입니다!”
그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훌쩍 솟구쳐 올랐다. 왕씨 성의 후자(猴子)라, 결국 원숭이라는 것인데. 아닌 게 아니라, 동팔의 머리를 뛰어넘은 사내는 엉거주춤하여서 딱 잔나비 꼴을 하고 있었다. 하얀 머릿수건을 단단히 묶고, 얼굴에는 울긋불긋 원숭이 모양으로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했다. 그는 이내 원숭이 못지않은 날랜 동작으로 재주를 넘었다. 두드리는 요고의 북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사내의 재주넘기가 북소리를 따라가는 것인지, 재주넘기에 북소리가 따라가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재주꾼 왕후자는 제자리에서 거듭 맴돌다가, 이내 수레바퀴처럼 모여선 사람들 앞으로 한 바퀴를 크게 굴러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다. 훌쩍 재주넘기를 멈추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붉게 칠한 눈꺼풀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숭이 흉내를 내는 익살스러운 모습에 사람들은 피식거리며 실소했다. 그러자 동팔이 서둘러 나서서 요고를 마구 두드렸다.
“자아, 동가잡기단의 귀염둥이들. 대항사남매(大缸四男妹)입니다!”
이번에는 열서넛으로 보이는 사내아이 둘, 여자아이 둘이 우르르 나왔다. 대항사남매라 하더니, 아이들은 제 몸집보다도 훨씬 큰 항아리를 하나씩 맡았다. 항아리로 재간을 부리는데, 흙바닥에 드러누워서 두 발로 항아리를 마구 굴리다가 훌쩍 발로 던져서 서로 주고받았다. 앞뒤로 던지고, 좌우로 던지고, 이내 사선으로 던지고. 위태위태했지만 아이들의 두 다리는 너끈히 항아리를 부렸다.
잡기단의 묘기는 계속되었다. 호리호리한 여인이 엉덩이를 흔들며 나서서는 날이 시퍼런 칼날을 던졌다 받는 묘기를 보였다. 처음에는 한 개, 두 개를 던지다가 점점 수가 늘어나더니, 한 번에 열 자루의 칼날이 쉼 없이 허공에서 놀았다.
화려한 재주넘기나, 항아리 묘기, 칼날 묘기 등등, 잡기단의 재주꾼들이 힘을 쓰고 재간을 보일 때마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울리곤 했지만, 소리나 낼 뿐 실속은 없었다. 해어진 옷을 걸친 새카만 얼굴의 어린아이가 작은 대바구니를 두 손에 들고 구경꾼들 앞을 이리저리 다녔지만, 푼돈이라도 한 푼 던져주는 사람이 없었다.
동가잡기단 재주꾼들의 재주는 한 식경 가까이 이어졌다. 그들은 지닌 재간을 모두 펼쳐 보이고는 모여든 구경꾼들 앞에서 한껏 예의를 차렸다. 동팔은 크게 웃으며 허리의 요고를 한껏 두드렸다. 그러나 주머니를 여는 사람은 없었다.
재주꾼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사람들 앞이라 애써 참고는 있는데, 항아리를 용케도 굴리던 아이들은 이미 울상이었다. 달리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보일 수 있는 것은 다 보였다.
동가잡기단을 이끄는 동팔도 이를 악문 채 억지웃음만 그릴 뿐이었다. 요고를 더 두드리지도 못했다. 그들 앞에서 사람들은 웅성거리거나, 피식거리며 비웃었다. 대바구니를 들고 돌아다니던 새카만 아이도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불현듯 누군가 외쳐 물었다. 내내 팔짱을 낀 채 빈정거리는 기색으로 지켜보던 중년 사내였다.
“거기 꼬마는 할 줄 아는 것 없나?”
“그래, 언제까지 재주넘기나 하고, 항아리나 돌려댈 거야. 그것도 어디 하루 이틀이지.”
사내의 한마디에 다른 구경꾼들도 한 마디, 두 마디씩 툭툭 던졌다. 그러자 동팔은 냉큼 소리를 높였다.
“합니다, 해요! 이 아이도 재주가 있습지요!”
그리고 서둘러 아이를 자리 한가운데로 끌고 왔다. 시커멓게 때가 탄 얼굴이 잔뜩 얼어붙었다. 크게 뜬 눈동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뭘 멀뚱히 있는 거냐, 뭐라도 해! 어서!’
동팔은 아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채근했다. 입은 웃는 모양새였지만, 부라리는 눈매는 험악했다. 아이는 바구니를 꼭 끌어안은 채 주저했다. 무턱대고 재촉하지만 무엇을 하면 좋단 말인가. 먼지투성이의 산발한 머리카락 아래에서 아이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흥미로운 눈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동팔은 주변 사람들에게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다른 손으로 계속해서 아이를 툭툭 쳤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아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 이 녀석! 주먹맛 좀 볼 테야! 뭐라도 하란 말이다!’
아이는 동팔의 겁박에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섰으나, 고개는 푹 떨어뜨리고는 계속해서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 아이의 불안한 모습에 주변에서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그만 아이가 하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눈들이었다.
아이에게 사람들의 조소하는 눈빛은 가혹했다. 그런 눈길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마는, 아이는 사람들보다 뒤에서 재촉하는 사내가 더욱 두려웠다. 아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래 한 곡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겨우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애처로울 정도로 부들부들 떨렸다.
구경꾼들은 히죽거리다가, 이내 멈칫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가 무엇인지, 어디의 노래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너무도 낯선 음률이었다. 아니, 애초에 중원의 말이 아니었다. 아이를 채근한 동팔이나 다른 재주꾼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 녀석이!’
뭐든 하라고 재촉했지만, 이런 이상한 노래를 부르다니.
동팔은 입매를 한껏 일그러뜨리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그는 아이의 우물거리는 노랫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억센 손마디가 꿈틀거렸다. 아이의 고개 숙인 가녀린 뒷목을 당장에라도 잡아챌 듯했다. 그런데 아이의 노랫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음률의 힘일까, 아이가 부르는 이국의 노래는 구경꾼들의 귀를 잡아끌었다. 조소하던 소리가 잦아들고,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문 채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모여든 구경꾼들만이 아니었다. 거리, 골목의 지나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손을 멈췄다. 진성의 복잡한 번화가에서 다른 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아이의 노랫소리가 담담하게 울렸다. 지저분한 모습과 달리 아이의 목소리는 맑고 청아하였으며, 전혀 다른 무게를 품은 채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길 건너, 가까운 하동대하에도 아이의 노랫소리가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창가에 앉은 이들이나 관심을 두었는데, 이내 다른 이들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다가 하나둘씩 노래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천장에 닿을 듯하던 소란함이 가라앉았다.
이를 지켜보던 소명은 잠시 눈매를 모았다. 이국의 음률이라지만, 그에게는 낯선 노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