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산서에 이는 풍운(風雲)
소명은 꽤 여유로운 모습으로 시정 바닥을 쏘다녔다. 뒷짐 진 채 느긋하게 걷는 모습이 그야말로 한가로이 산책이라도 나온 한객의 모습이다. 무엇을 찾으러 나왔다지만, 서두르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소명은 문득 어느 길목에 멈춰 섰다. 그리 넓지 않은 길목이었지만 좌우로 노점이 빼곡하게 늘어섰고, 많은 사람이 오갔다.
중년의 여인이 양고기를 꼬치에 꽂아 팔고 있었다. 하얗게 타들어 가는 숯불을 받아서 꼬치에 가득한 고깃점이 자글거리며 익어갔다. 먹음직스러운 모습이나, 소명은 달리 식욕이 동하지 않았다. 그는 물끄러미 타들어 가는 꼬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좌우로 가득한 것은 무수한 인파였다. 산서 땅은 옛적부터 상업이 활발한 땅이었다. 땅이 척박하니, 상업에 종사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산서인들을 달리 회상이라 하며 부모자식 빼고는 팔지 못할 것이 없다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명에게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멀리 사막길의 복판에 있는 녹주에도 이와 같은 작지만 성대한 시정이 종종 열리곤 했다. 수많은 유목민을 비롯한 여러 무리의대상이 있어 오만 것을 거래하고는 했다. 각지의 진귀한 물품이나, 사막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낙타, 말 등이다. 종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래하는 모습은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언성을 높이는 수염 덥수룩한 서장인, 다른 말없이 고개를 흔드는 상인. 그리고 그중에서 소명은 또한 익숙한 모습을 잡아낼 수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양, 노점을 기웃거리고 있는 사내였다. 소명은 죽립 끝을 살짝 들치고 묘한 눈으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치렁한 앞머리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눈길은 확연했다. 소명은 그에게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를 그대로 전달했다. 모를 수가 없는 눈길이련만, 사내는 계속해서 노점이 늘어놓은 물건에만 눈을 주고 있었다. 무리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표정이나 시선 처리는 훌륭하지만, 관자놀이에 맺힌 굵은 땀방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소명은 이내 피식 웃어버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눈으로 경고를 주었으니, 어떻게 나올지는 온전히 저들의 몫이다. 소명이 다른 행동 없이 걸음을 다시 옮기니, 이번에 당황한 것은 사내였다. 그는 흠칫 어깨를 들썩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소명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이런!”
사내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새삼 찌푸린 얼굴로 주변을 살피고는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들킨 데다가, 목표까지 놓쳤으니 전에 없는 망신이다. 그는 뒷머리를 벅벅 긁적거리며 툴툴거렸다.
“에이, 크게 혼날 텐데.”
그렇다고 거짓을 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내, 종칠은 어슬렁거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빙글빙글 돌아서 외진 골목의 허름한 주점에 들어섰다. 기껏해야 여남은 명이 겨우 앉을 만한 비좁은 공간이었다. 그래도 장사는 되는 모양인지 대여섯의 사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국수든, 만두든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들어선 종칠에게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종칠은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주방 쪽에 가까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좌우의 가림막 사이로 푹 늙은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응? 아니, 네놈이 왜 여기 있어?”
기름때가 가득한 앞치마를 걸친 노파였다. 명주실인 양 볼품없이 하얗게 센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잿빛의 닳아빠진 배자 차림이었다.
“들켰수, 놓쳤고.”
“뭐야? 이런 미련한 놈.”
“어쩔 수 없잖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흠. 그 말인즉, 하북의 그자가 맞는다는 말이렷다.”
“그렇수.”
종칠은 불퉁하니 대꾸했다.
“정주에서 모습을 감춘 그자가 대체 무슨 연유로 산서에 나타난 게지?”
노파는 주름진 눈가를 한층 찌푸렸다. 닭발처럼 앙상한 손가락으로 입술가를 긁적거렸다. 참으로 모를 일이다. 정주에서 이미 갑종에 이른 대상자였다. 그리고 갑종의 결정을 내린 것은 지금 한창 문제인 소당주였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노파는 이내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소당주가 그리 멍청한 사람도 아니고. 에이잉. 일단 소식이나 알려야 쓰겠네. 종칠! 이 멍청한 놈아, 그만 앉아 있고 날래 움직여!”
“앉아도 방금 앉았구만. 거 너무도 하시구려.”
“뭬야!”
노파가 빽 하고 소리치니, 종칠은 오만상을 쓸지언정 다른 소리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잇새로 구시렁거리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런데 차마 일어날 수는 없었다. 어느 틈엔가 다가왔는지, 등 뒤에서 손 하나가 그의 어깨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그것은 차마 거스를 수 없는 손길이었다. 종칠은 놀란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오랜만이오.”
손의 주인이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살의 한쪽이 부서진 죽립을 쓰고 있었다. 소명이었다. 종칠은 바짝 얼어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대체 언제, 어떻게 이곳에 들어선 것인지. 주변에 깔린 이들이 무수하건만, 그를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굳어 있을 새, 소명은 빙글빙글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길이 굳어 있는 노파에게로 향했다. 노파는 턱을 뚝 떨어뜨린 채 아주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쳐! 쳐라!”
“어이쿠?”
소명은 노파의 괴성에 그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장 사방에서 사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우당탕, 앉았던 의자가 요란스럽게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앞뒤의 문에서 덩치 좋은 사내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비좁은 곳이라지만 대충 헤아려도 열은 훌쩍 넘는 장정들이었다. 그들의 기세가 등등하시니, 소명은 난처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어허, 이런.”
딱히 손을 쓸 마음은 없었건만, 이렇듯 먼저 달려든다면 소명으로서도 다른 도리가 없다. 그는 흉흉한 사내들 앞에서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종칠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달려들어도 노선(老仙)께…….’
무명노선, 그 이름은 하북 정주에서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대화재에서 호동의 빈한 자들을 구하고, 악인을 징벌한 일대 기인을 기리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종칠 자신이 만들어 퍼뜨린 이름이기도 했다. 바로 눈앞의 사내를 위해서.
종칠은 그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만 살살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흑선당의 진성 거점인 흑산주가(黑山酒家), 고작 손바닥만 한 주점으로 열서넛이나 들어가면 자리가 미어터질 듯한 비좁은 곳이었다. 소명은 그곳의 한자리에 앉으며 가볍게 손을 털었다. 딱히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그는 죽립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건너에 앉은 사내, 종칠에게 편히 말을 건넸다.
“그동안 잘 지내셨소?”
“예, 예, 뭐. 그렇지요.”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가득했고, 입가에는 흐린 미소마저 머물러 있어서 마치 담소라도 나누고자 찾아온 듯했다. 그러나 소명을 마주한 종칠은 그렇게 편한 얼굴이 아니었다. 엉겁결에 대꾸는 했지만,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붙었다. 눈앞에 식은 찻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으나, 손 뻗을 엄두조차 나지 않으니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명색이 흑선당의 일급 요원인데 뒤를 밟다가 발각된 것도 모자라서 도리어 자신이 뒤를 밟혔다. 무슨 정신머리로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잔뜩 기가 죽어 있으려니, 그런 종칠을 소명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가에 웃음이 한층 짙었다. 그는 정말로 종칠이 반가웠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겠는데.’
산서의 무림이 혼란하다고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곳은 흑선당이 모두 다잡고 있었다. 흑선당은 산서에 뿌리를 두고 천하에 눈과 귀를 둔 곳이었다. 그런즉, 산서 땅에서 무엇을 찾을 때에 그만한 곳도 없을 터였다. 소명은 정주에서도 가볍지 않은 신세를 진 마당이었지만, 한 번 진 신세를 어디 두 번은 못 지겠는가. 그래도 설마 외딴 진성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종칠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얼굴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소명은 종칠을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정주에서 소명을 감시하던 요원 중 하나였다. 일꾼으로 분했다가, 요령을 피우는 통에 한 소리를 크게 들었으니. 사람 일이란 과연 모르는 것이다. 소명은 그때 생각에 피식 짧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곧 말문을 열었다.
“설마, 진성에서 아는 얼굴을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정말 나타나 주어서 고맙구려.”
“그, 그렇습니까? 하하, 그렇군요.”
소명은 적의(敵意) 없이 마냥 친근한 태도였으나, 종칠은 그 앞에서 도통 낯빛을 달랠 수가 없었다. 웃는 것도 아니요, 우는 것도 아닌 기괴한 꼴이다. 좌우 입꼬리를 힘주어 끌어올려서 간신히 억지웃음을 그리기는 했지만, 눈초리는 아래로 축 늘어져서 계속 곁눈질이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도리가 없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자리는 입구에서 먼, 비좁은 식당의 한쪽 구석이었다. 작은 창으로 드는 햇빛이 식당 안을 비추었다. 내부는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다. 탁자나 의자나 가구는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다만, 멀쩡한 꼴로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뿐이었다.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비좁은 주점의 바닥에는 서른여 명에 달하는 장정들이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어디에 그렇게들 숨어 있었는지, 그들은 일시에 모습을 드러내어 소명을 덮쳤지만 지금의 꼴이다. 결국 이 자리에서 멀쩡한 것은 꼼짝 않고 있던 종칠 하나였다. 그에게 지금 자리는 좌불안석(坐不安席)이 따로 없었다. 그는 새삼스레 소명의 눈치를 살폈다. 이 상황을 만들어놓고도, 소명은 숨결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역시 무명노선이시다. 사람의 경지가 아니야.’
종칠은 마른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무엇을 어찌하였는지, 그는 바로 코앞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바람 소리가 몰아치는가 싶었더니 상황은 전부 끝났다.
흑산주가가 비록 흑선당의 거점 중에서도 변두리에 지나지 않는다지만, 거미줄과 같은 감시망에 더하여서 나름 단단한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체가 무력했다. 진성의 흑선당 요원들은 소명이 들어서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했고, 제압은커녕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소명의 이름 중 하나를 알고 있는 종칠이었다. 이런 결과를 어찌 몰랐을까마는, 아무리 그래도 눈 깜빡할 새에 모두 끝장이 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종칠은 어울리지 않게 잔뜩 기가 죽어서는, 앓는 소리가 목구멍 아래에서 계속 맴돌았다. 소명은 종칠의 굳은 웃음과 한껏 웅크린 어깨를 보고는 어째 난처한 표정을 그렸다. 종칠의 속을 어찌 모를까. 그 또한 주변에 널브러진 흑선당 요원의 모습을 둘러보고는 어색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괜스레 쫓아온 것도 아니고, 큰 부탁을 할 참인데 이렇게 일을 벌였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민망한 일이라 소명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하하, 이것 참. 본시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오.”
“그게, 그게, 그렇습니까.”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손을 써놓고는 그런 소리가 나올까 싶었지만, 종칠은 감히 평소의 성질머리를 드러낼 수 없었다. 그는 얌전히 대꾸할 뿐이었다. 잔뜩 기가 죽어 있으려니 소명은 넌지시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청할 일이 있어 이렇게 왔소만.”
“어이쿠, 아무렴요.”
종칠은 오히려 반색하여서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니, 무슨 일이 되었든 차라리 속 편한 노릇이었다.
“찾는 곳이 있소이다.”
“그러십니까? 사람이든, 물건이든, 장소든. 찾는 일이라면야 저희 놈들이 아주 전문입지요.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종칠은 냉큼 말을 받았다. 공손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납작 엎드렸다. 원래 의뢰를 받는 등의 일은 점주인 노파가 나서야 할 일이나, 노파 또한 놀라서 정신을 놓은 판국이다. 지금 자리에 멀쩡한 흑선당 사람이야 종칠 하나였으니 다른 도리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고 봐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소명의 입에서 나온 말에 종칠은 순간 움찔거렸다. 그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조심스레 되물었다.
“지금 어디라 하셨습니까?”
“듣자니, 그곳은 시체가 되어야 갈 수 있다고 하더이다.”
소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종칠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게, 그렇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요.”
시체가 되어야 갈 수 있는 곳이라니, 저승 땅 말고 그런 곳이 인세에 있을까마는, 산서에는 한 곳이 있었다. 종칠은 물론 그곳을 알았다. 그의 표정이 복잡해지자, 소명이 넌지시 물었다.
“어렵겠소?”
“아니, 그것이 그냥 어렵다고 하기보다는, 그러니까.”
더듬거리는데, 종칠의 얼굴에는 난처한 심경이 고스란했다. 아무리 일급 요원이 어쩌고 해도 종칠의 선에서 어떻게 답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명은 종칠의 속내를 짐작하고는 짧은 한숨을 흘렸다.
“역시 어려운 일인가.”
“헤, 헤헤.”
종칠은 면목이 없어 마른 웃음만 흘렸다. 큰소리 탕탕 쳐놓은 것이 낯부끄럽다. 소명은 한숨을 거두어 두고, 고개 떨군 종칠을 다시 보았다. 우물거리는 모습이 달리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어물쩍거리던 종칠이 곧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들었다.
“일개 요원에 불과한 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위에 보고하면 방편이 있을 겁니다.”
“보고? 이 사람에 대해서 말인가.”
아래에 속한 자가 위에 보고하는 것이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헌데, 그것을 눈치 보면서 허락을 구하다니. 소명은 눈매를 찌푸리며 쓴웃음을 흘렸다. 어지간히 놀라게 한 모양이다. 소명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행적을 감추며 신비인 흉내를 낸 적도 없었다. 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야, 뜻대로 하시구려.”
“헛, 감사합니다.”
종칠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실상 흑선당에서 제일 볼 것 없는 동네가 이곳이었다. 물류가 많이도 들락거리기는 하는데, 강호 사정을 비롯한 여러 일에서는 이렇다 할 건수가 드물어서 흑선당의 거점 중에서도 변두리로 통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때에 소명과 같은 고수의 등장은 분명 대단한 건수였다.
소명이 불가(不可)라 한다면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몰래 일을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종칠로서는 소명의 후환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혹시라도 일이 틀어져서 찾아오면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뭐라 하여도 혼자의 몸으로 일문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 눈앞의 사내였다. 그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중소 무파 따위가 아니었다. 하북 정주의 백마보. 바로 그곳이다. 정주의 신흥 세력으로, 당시 토착 무가인 정주담가를 위협할 정도로 위세를 떨치던 백마보를 단 하룻밤 사이에 폐했다. 그날에 종칠 또한 자리에 있었으니, 무표정한 얼굴로 백마보의 폐보를 외치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