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코 꿰인 자는 누구인가?
“그것이, 그러니까.”
제일 먼저 불만을 터뜨렸던 사내가 주저하며 입술을 떼었다가, 다시 말아 물었다. 사내의 얼굴은 유달리 붉었다. 가까이 밝힌 불빛 때문이 아니었다. 사내는 달리 할 말이 없어 입매를 우물거리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한쪽 어깨를 흔들었다. 맞은 자리가 새삼 욱신거렸다. 다섯으로 흩어져 은신한 자신들을 거리에 무관하게 단숨에 제압했다. 그 정도라면 어디 단순한 탄지공이라 할 수 있을까.
천하에 이름을 알린 절기가 분명하련만, 문제는 무엇인지 뾰족하게 짚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하하, 홍귀자(紅鬼子). 자네 또 아는 척하려다가 말문이 막혔구먼.”
“크흠, 노대(老大).”
자리한 이들 중에서 제일 연장자인 사내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웃음이 머무르니 새치가 드문드문한 잿빛의 눈썹이 한껏 휘어졌다. 얼굴이 붉어 홍귀자라 불린 사내는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다른 사내들이 말을 거들었다.
“노대, 그러지 말고 말씀해보세요.”
“이 사람들도 참. 탄지공으로 소문난 곳이 어디 몇이나 있겠어?”
“그야, 우선은 소림파가 있지요. 법화문의 연화지나, 관음사의 육식탄경이 일절이라지만, 결국에는 소림파에 속하니.”
“저기 사천 땅에 위명 자자한 당가에서 전하는 이엽상비라는 수법도 있고.”
“탄주문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소림파의 두 곳과 사천당문은 물론 탄주문의 오지결인은 분명 위력적인 탄지공법이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중 어느 곳도 아니었다. 소림파의 공력이라기에는 신속했고, 사천당문의 공력이라기에는 위력이 상당했다. 탄주문의 오지결인이라면 얼추 비슷하지만, 산서에서 정반대인 남해의 바닷가에 면해 있는 문파였다. 이후로 이곳저곳의 이름이 나왔지만 어느 곳 하나 마땅한 문파나 무공이 없었다. 손가락을 퉁겨내는 탄지의 수법으로 거리를 무시하고 거듭 다섯 번 이상을 떨쳐낼 수 있는 공력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설마.”
“왜 그러나?”
불현듯 누군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다섯의 암객 중 막내로 조가라 하는 자였다. 어느 한 곳이 떠오른 모양인데,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그 모양새에 모여 앉은 다른 이들이 조급해했다.
“이봐, 그렇게 있지 말고 말을 해. 설마 뭐란 말이야?”
“무가련, 무가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가련? 아니, 무가련 중 어디에 그런 절기가 있겠나?”
놀라고 심각한 조가가 무색하게, 사내들은 심드렁한 기색이었다.
무가련의 주축을 이루는 오가의 면면을 보자면, 섬서백가와 안휘남궁은 검공으로 누대를 이어왔고, 하북팽가는 철혈의 도가, 호남황보, 광동육가는 한 쌍의 육장, 철각으로 이름이 높았다.
당연히 지법의 공부 정도는 있겠지만, 절기라 칭할 정도의 탄지공은 달리 없었다.
“허음, 그러고 보니.”
이때에 노대가 놀란 소리를 흘렸다. 무가련이라는 이름에서 달리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크게 뜬 눈초리에 불안한 기색이 일었다. 그 모습에 다른 세 사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니, 노대까지 어찌 그러시오?”
“그렇지, 조가의 말이 영 터무니없는 것도 아닐세.”
“노대마저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무가련에 오가만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근 십 년간 강호 활동이 전혀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가련의 머리는 바뀐 적이 없었네.”
노대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새삼 정적이 앉았다. 그들도 이제야 말하는 바를 깨달은 것이다. 서로 한참 입 다물고 있다가, 누군가 눈치를 보며 떠오른 이름 석 자를 내뱉었다.
“설마 천룡, 천룡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천룡가의 오대절기 중 하나가 무엇이었는가.”
“벽파지.”
“바로 그렇지.”
‘천하일지’라고 하는 벽파지라면 능히 가능한 일이다.
벽파지는 지공으로 검기를 발현하는 지검경(指劍境)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무공이 아니었던가. 그러자 암객들은 새삼 심각해졌다. 아무리 잠자듯 웅크리고 있다 하여도 천룡가의 이름은 언제나 무게가 있었다. 더구나 얼마 전, 하남 땅에서 무가련의 회합에 소천룡이 모습을 드러낸 일이 있었으니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한편, 소명은 멀지 않은 곳에서 다섯 암객이 떠드는 소리를 듣다가, 치미는 헛웃음을 꾹 물어 삼켰다. 무가련의 이름은 어이해 나오고, 천룡가 운운은 또 무슨 소리인지. 그는 비튼 입매에 쓴웃음을 그린 채 고개를 내저었다. 그저 탄지공에 지나지 않는 것을 너무 어렵게도 생각한다. 괜한 설레발에 실소가 나올 따름이었다.
“자아, 어디까지 나오려나?”
소명은 외압 없이 그들의 대화 속에서 암운이라는 이름을 들어보고자, 차분히 기다렸다. 그들은 천룡가의 이름에 잠시 조용했지만 이내 하나둘씩 맥없는 웃음을 흘렸다.
“흐, 흐흐. 그럴 리가 있나.”
“그도 그렇소.”
암객들은 괜한 소리를 했다며 히죽거렸다. 먼저 무가련의 이름을 꺼낸 조가도 마찬가지였다. 머쓱하여 뒷머리를 벅벅 긁적거렸다.
천룡가와 흑선당이라니.
아무리 세상일이 모르는 것이라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하늘과 땅의 차이도 이 정도는 아닐 터였다. 그들은 피식거리며 웃었다. 암객들이 다시 불가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새에, 언뜻 흐린 그림자가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바람에 흔들리는 검은 깃발처럼 불길하게 펄럭였다. 그러나 암객들은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아니 그런데, 이 작자는 왜 여직 소식이 없는 건가?”
한참 수군거리다가, 노대가 문득 잿빛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차롱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암운에서는 암객들 뒤에 벽운(碧雲)이라 칭하는 특별한 실력자를 고용했다. 이들은 암객이 감당 못 하는 상대를 추적하거나 임무를 보조했다. 한 명, 한 명이 범상치 않은 솜씨의 실력자들로, 이들의 벽운인 차롱은 탄지공의 고수를 쫓아 내력을 파악하기로 하였는데 평소와 다르게 감감무소식이다. 대단한 고수의 뒤를 밟는 일이니 혹시 험한 꼴이라도 당한 것인가 싶었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였다. 노대를 비롯한 암객 모두가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 모두가 차롱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암운의 벽운 중에서도 첫째로 손꼽히는 실력자가 바로 차롱이었다. 몇 안 되는 벽운 중에서도 그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자객 일에 뛰어들어도 당장 천하에 이름을 날릴 것이 분명했다. 종적이나 쫓는 일 정도로 화를 당할 리가 없다.
홍귀자가 넌지시 물었다.
“혹시, 다른 데로 새거나 한 것은?”
“어디 그럴 리가 있나. 차롱, 그 사람은 실로 일류야. 아마도 상대가 녹록지 않다는 것이겠지.”
노대가 홍귀자의 의구심을 달랬다. 차분한 목소리에 홍귀자와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다른 사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쳇, 어차피 소당주가 진성을 뜬 것도 아니니 여기서 한참은 기다려야 할 텐데, 무얼.”
벽운인 차롱은 물론이고, 진성에서 다른 소식이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다. 그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흑선당의 소당주, 백운당이었다. 목표 대상을 쫓아서 움직이는 처지에 이렇다 할 기약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막내인 조가가 모닥불을 뒤적거려 불길을 더욱 키웠다. 불티가 솟아오르고 밝아진 불빛이 좌우로 한껏 요동쳤다. 잠시나마 기세를 더한 불빛은 주변을 한층 밝혔다. 낯선 그림자가 불빛에 어른거렸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위험을 깨닫기에는 충분했다.
“누구냐!”
노대의 입에서 급한 소리가 터졌다. 외침과 동시에 암객들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홍귀자가 이어 외쳤다.
“불!”
조가가 급한 중에도 모닥불을 냅다 걷어찼다. 흙모래와 불씨가 사방으로 솟구치고, 어둠이 급하게 몰려왔다. 그들은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던 듯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불빛이 흩어지는 것과 동시에 다섯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주가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그러나 들이닥친 불명의 손님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었다. 어느 틈엔가 덫을 놓고 있었다. 그것도 암객들로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덫이었다. 흐트러진 모닥불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어둠 너머에서 놀란 외침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으억!”
“흐아악!”
그들은 검은 무언가에 온몸이 결박당하여서 본래의 자리로 다시 끌려왔다. 눈 깜박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암객이라고 하지만, 예상 밖의 상황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사람의 짓이 아닌 듯 기괴한 덫이었다. 발 디딘 자리에서 어둠이 불쑥 솟구쳐 하나하나를 휘감았다. 냉정이 무너지고, 두려움이 덮치니 그만 소리가 터지고 말았다.
흩어낸 모닥불의 불씨는 힘을 다하여서 사그라졌다. 높이 붉은 달빛이 새삼스럽게 고보를 비추었다. 다섯 암객은 처음의 자리에 다시 모여서 흙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그들을 휘감았던 그림자는 결박을 풀었지만, 아주 물러나지 않았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대망(大蟒)처럼 꿈틀거리며 그들의 주변을 서서히 맴돌았다. 인세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흐윽, 흐윽.”
다섯 암객은 어렵게 숨을 토했다. 잔뜩 질려 버릴 수밖에 없었다. 연륜이나 경험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 지금 그들은 기괴요이(奇怪妖異)에 붙들려 있었다. 사람의 눈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다른 세상의 힘이다. 그러나 암객이라는 이름에는 치욕이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고, 더구나 도주에도 실패했으니. 암객에게는 발각되어 임무에 실패하는 것보다 더한 수치였다.
두려움과 더불어서 짙은 자괴감이 암객의 어깨를 마구 짓눌렀다. 그러다가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들 앞으로 그림자가 하나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두웠다. 그림자가 진 것이 아니었다. 암객을 얽어맨 검은 천 자락이 그에게 이어져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휘감고 있었다. 과연 사람이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말 그대로 괴인이라 할 터였다. 그는 미끄러지듯 소리 없이 다가와서 흙바닥 위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암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니, 눈은 없었다. 눈길을 느꼈을 뿐이었다. 다섯의 암객은 입을 꾹 다문 채 괴인의 눈길에 몸을 떨었다. 괴인의 침묵이 점차 무게를 더했다. 그들의 숨통을 조여드는 것은 평범한 기세가 아니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암객 중 성미 급한 홍귀자가 새되게 악을 쓰며 외쳤다.
“뭐요! 대체 뭘 바라는 거요!”
사방이 고요하니, 그의 목소리는 우렁우렁 멀리도 퍼졌다. 직후에 홍귀자는 헐떡이며 더욱 두려운 눈으로 괴인을 바라보았다. 불현듯 쇠붙이를 긁어대는 듯한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만, 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다. 못해도 사방 십여 리에 인적이라고는 없으니.”
“흐윽!”
기괴한 외양만큼이나 기괴한 목소리였다. 붉은 달빛 아래에 우두커니 서 있는 괴인의 모습은 아무리 담 좋은 사람이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묻는 말에만 답한다면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괴인의 말을 순순히 믿을 수야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입을 꾹 다문 채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데 괴인이 물었다.
“흑선당의 소당주는 왜 진성에 온 거지?”
암객들은 당황하여 서로 눈치를 보았다. 흑선당 소당주의 행적은 분명 중요하다면 중요한 일이다. 섣불리 누설할 수 없는 일이라 괴인이 그것을 물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주저하는 모습 때문일까, 괴인은 고개라고 짐작되는 부분을 흔들었다.
“답하지 않겠는가?”
“어, 으어억!”
휘감은 검은 천이 급작스럽게 조여들었다. 짓누르는 힘은 거대하여서, 그대로 뼈가 박살 날 듯했다. 검은 대망이 휘감아 조여드는 것 같았다. 고개를 흔들고, 어깨를 비틀어도 검은 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급기야 우두둑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노대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고수! 어떤 고수가 찾아왔다고 하오! 그래서, 그래서 진성으로 서둘러 온 것이오!”
“고수라?”
괴인이 되뇌는 것과 동시에 조여들던 힘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렇다고 결박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암객들은 차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뒤로 고꾸라졌다. 흙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지쳐 헐떡거렸다.
“고수는 누구인가?”
“그, 그것은.”
그에 대해서는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없었다. 괴인은 바로 손을 쓰지 않았다. 다만 그들을 묶은 천 자락을 한차례 흔들었을 뿐이다. 그러자 엎어져 있던 암객들이 강제로 일으켜 세워졌다. 그들 몸은 이제 그들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흡사 실에 매달린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꼴이었다. 괴인은 재차 음산히 물었다.
“이번에도 답을 안 할 셈인가?”
“그것이 아니오! 그것이 아니라!”
“그를 맡은 자는 따로 있소이다! 우리가 아니라 다른 자란 말이오!”
암객들이 다급하게 소리를 높였다. 괴인도 이것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우두커니 말이 없다. 어디 얼굴이 보이는 것도 아니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암객들은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괴인은 더 다그치지 않았다. 두려움에 질려서 숨도 못 쉬는 모습보다 명백한 증거는 달리 없을 터였다.
온통 검은 천을 뒤집어쓴 그는 얼굴이 어디인지 구분할 수 없었고, 눈이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괴인의 눈길이 그들 한 명, 한 명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절로 진저리가 일었다. 한기가 몸속을 깊이 헤집었다. 암객들이 바르르 떨고 있을 새, 괴인은 다시 탁한 목소리로 묻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암객과 암운에 대해서 차근히 물었다. 답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나, 암객들에게 항거할 담력이라고는 조금도 남지 않았다. 단지 죄어오는 육신의 고통이나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스며드는 기세가 있어서, 어느 틈엔가 다섯 암객은 심지마저 제압당해 괴인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일급 요원이라도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결국, 구구절절하니 온갖 말이 쏟아졌다.
덕분이랄까, 소명도 어부지리 격으로 떠드는 소리를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얌전히 앉아 있었는데, 영 멋쩍은 얼굴이었다.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듣고자 하는 바를 순순히 듣게 될 줄은 그 또한 생각지도 못했다.
‘이것 참.’
소명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혀를 찼다. 그런데 귀를 기울일수록 소명의 얼굴빛이 묘하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