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떠나는 이, 찾아오는 이
골방에 내린 어둠이 무겁다. 변변한 세간이라고 달리 없는데, 가운데 놓인 의자 하나에 백운당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본래라면 날이 저물기 전에 진성을 떠나야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푹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가 앉아 있는 곳은 진성의 안가 중 한 곳이었다. 겉보기로는 언제라도 무너질 듯한 폐가의 모습이었지만, 내부의 별실은 견고했다. 다만 먼지가 그득할 뿐이었다. 밤새 태웠던 등잔은 이제 힘을 다하여서 고개 숙인 심지 끝에서 하얀 연기만 피워 올렸다. 날이 밝아오려는 모양인지 벽 높은 곳에 난 작은 창으로 온통 검푸른 하늘이 보였다. 백운당은 지친 눈으로 그런 하늘빛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안에 고이는 어둠이, 백운당의 시름 젖은 어깨를 짓눌렀다.
“잘한 일일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거듭 되뇌고 또 되뇐 물음이었다.
소명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흑선당의 내로라하는 요원들을 모두 눈에 두었던 소명이었다. 백운당은 적어도 소명의 능력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일체의 은잠술이니 잠행술이니 하는 것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하나, 소명은 흑선당의 사람은 아니었다. 외인(外人)이라 할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못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백운당은 감싸 쥔 두 손에 불끈 힘을 주며, 악문 잇새를 비틀었다. ‘뿌득’ 소리와 함께, 그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내가 지금 무엇을 가릴 처지이던가.”
수족과도 같은 수하들은 물론이거니와 직접 일구어낸 비선들을 모두 잃은 판이었다. 지금 백운당에게 다른 방편은 없었다. 소당주라는 직위가 있다고 하지만, 그를 견제하는 세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백운당은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어냈다. 그리고 한계에 가까웠을 무렵에 하북정주의 무명노선, 소명의 소식을 받았으니 백운당에게는 그야말로 천운(天運)이었다.
백운당은 두 무릎을 덥석 움켜쥐고, 힘주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심의 깊은 늪에서 떨쳐 나오듯 격렬한 동작이었다. 초췌한 얼굴에서 평소의 웃는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입매를 딱딱하게 굳힌 채 나갈 채비를 갖추었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책상머리에서의 고민은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그는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다. 서서히 그를 휘감는 암운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모습을 감추고 암행할 이유가 없다. 백운당은 진성에 들어설 때에 가장하였던 취서생(醉書生)의 모습이 아니라, 흑선당 소당주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옷매무새를 다잡고, 마지막으로 말끔하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자칭하기를 옥면신풍이라. 지금은 옥면이라 하기에는 야윈 모습이었지만, 치뜬 눈초리는 전에 없이 정광이 번뜩였다. 백운당은 막 자리를 나서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는 눈매를 모은 채 안가의 별실을 둘러보았다. 방안의 빈 의자가 그의 눈길을 붙잡았다.
백운당은 악문 잇새로 힘주어 속삭였다.
“어떻게 되든 이겨낼 테다. 이겨내서 너를 기다릴 거다.”
마치 빈 의자에 누가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집중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도 같았다. 백운당은 한차례 숨을 몰아쉬고는 퍼뜩 문을 박차고 나섰다.
“종칠!”
“예, 소당주!”
백운당의 기운찬 외침에 종칠이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어디엔가 몸을 숨긴 채 안가를 호위하던 차였다. 불쑥 나타난 그는 하루 전의 종칠이 아니었다. 허름한 채 건들거리던 꼴은 벗어버리고, 단단히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외양뿐만이 아니라 눈빛과 기도도 남달라서 흑선당 일급 요원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가자. 진성 분점에서 소명 공을 기다려야겠다.”
종칠은 퍼뜩 놀란 눈으로 백운당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달라진 것만큼이나, 백운당 또한 하루 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불안과 초조로 쫓기던 모습을 벗어버리고 이전의 소당주의 모습을, 아니, 그보다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채 먼 하늘을 보고 있었다. 새벽어둠이 한밤의 어느 때보다 짙었다. 이제 곧 날이 밝아올 모양이다.
검푸른 하늘 아래에서 검은 천이 물결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운데에 불쑥 솟은 형체가 느릿느릿 괴이하게 움직였다. 암운의 암객 다섯을 일시에 제압한 괴인이었다. 그는 수십, 수백에 달하는 천 자락이 한데 뭉쳐서 형체를 이루고 있었다.
암객들은 묻는 말에 순순히 정보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괴인은 몇 번이고 거듭 확인하며 그들을 심문했다. 혹시라도 말이 달라지지 않을까, 탁한 목소리는 용의주도하게 몰아붙였다. 한 명씩 따로 묻기도 했고, 한데 모아서 같은 것을 묻기도 했다. 이미 질린 암객들이었지만 거듭된 심문에 그들은 더욱 지쳐갔다. 그리고 새벽이 가까울 때에야 다그침이 끝났다. 괴인은 축축 늘어진 암객들을 놓아두고 꿈틀거리는 기이한 꼴로 주변을 맴돌았다. 생각을 정리라도 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괴인은 눈코입은커녕 제대로 얼굴이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웠지만, 적어도 검은 천으로 휘감은 윤곽이 꿈틀거리는 것으로 속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었다. 무언가 마땅치가 않은 것이다. 암객들이 거짓 없이 답하였음을 확인하였지만 정작 구하고자 하는 것이 빠져 있었다
괴인이 듣고자 하는 정보, 즉 흑선당의 금고(金庫)에 대해서는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흑선당의 금고, 그것은 단순히 돈과 재물을 보관하는 곳을 뜻하지 않았다. 그 이름은 곧 흑선당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금고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산서에 산재한 흑선당의 모든 눈과 귀를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괴인의 불편한 심기가 겉으로 드러날 새, 다섯의 암객은 너무 지쳐서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불안과 두려움도 기력이 있어야 요동을 칠 터였다.
암담한 어둠은 이제 기세를 다하여서 동녘 어름부터 검푸른 새벽빛으로 물들어갔다. 산서 땅의 거친 바람이 한층 기승을 부리는지, 멀리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가까이에서는 흙먼지가 오락가락 흩어지고는 했다.
다섯 암객들은 두 손이 등 뒤로 결박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지친 눈은 모를 곳을 헤아렸고 벌어진 입가로 흐린 숨결이 들락거렸다. 힘없이 목을 늘어뜨린 그들의 모습은 흡사 참수(斬首)의 칼날을 기다리는 사형수와도 같았다.
고민하듯 서성거리던 괴인이 문득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결국,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그는 입으로는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순순히 보낼 생각도 없었다. 그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미끄러지는 듯한 걸음으로 암객들에게 다가갔다. 바짝 다가선 그림자에 암객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그대로였다. 거기에 어떤 절망이나 공포 따위는 없었다. 그저 지쳤을 뿐이다.
불현듯 낮은 목소리가 괴인에게 물었다.
“볼일은 다 보셨소?”
“아니, 아직 뒤처리가…….”
적의 없이 친근한 목소리였다. 괴인은 저도 모르게 답하려다가 말았다. 뒤집어쓴 천 자락이 격하게 요동쳤다. 목소리는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사방 십여 리를 모두 눈 아래에 두고 있었거늘, 어느 틈에 외인이 침범했단 말인가. 앞과 뒤를 분간 못 할 괴이한 모습이었지만, 천 자락이 휘감기며 몸이 돌아갔다. 그리고 뒤집어쓴 천 아래로 한 쌍의 흐린 불빛이 언뜻 타올랐다. 그 자리에는 검푸른 하늘 아래, 낡은 죽립을 눌러쓴 사내가 팔짱을 낀 채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괴인의 기이한 외견과 더불어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새카만 천 자락이 물결처럼 일렁거리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누구냐.”
탁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나 상대는 답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죽립 아래로 언뜻 드러난 입매가 비틀리며 짧은 조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팔짱 낀 손을 천천히 풀었다. 한없이 느긋한 모습인데, 괴인은 다급히 반응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눈앞의 사내는 위험하다.
검은 천이 바로 요동쳤다. 천은 알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즉각적이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검은 천은 그물처럼 펼쳐지며 낯선 죽립인을 덮쳤다. 어디에도 물러설 곳은 없다. 그러나 사내 또한 애초에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는 우두커니 자리를 지킨 채, 다만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
검은 천 자락이 사납게 사내를 덮칠 새, 죽립이 높이 솟구쳤다. 일시에 휘감아서 그대로 쥐어짜 버릴 듯했다. 천 근의 바위도 한 번에 가루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거력이 검은 천에 실려 있었다. 그러나 채 힘을 발휘하기도 전에 벼락 치는 소리가 무섭게 울렸다. 마른 땅이 들썩이고 검은 천이 폭발하듯 갈가리 찢겨나갔다. 찢긴 천 조각이 후드득 떨어지고, 남은 천 자락은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그 자리에 소명이 서 있었다.
소명은 흩어지는 검은 천 조각 사이에서 고요한 신색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무슨 큰 힘을 발휘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한 손은 뒷짐을 지고, 가볍게 한 주먹을 뻗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심하게 요동치는 괴인의 형태를 잠시 지켜보고는 곧 고개를 돌려 다섯의 암객을 살폈다. 그들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였으나, 다만 멍한 눈으로 소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소?”
넌지시 물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얼이 빠져도 단단히 빠져 있었다. 소명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무리도 아니지. 이런 종자들과 마주하여 제정신을 유지한다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이야.”
그는 흘깃 서너 걸음 앞에서 요동치는 괴인을 보았다. 괴인은 당황한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몇 줄기나 되는 검은 천 자락이 계속해서 요동쳤다. 그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거듭 벌어지고 있었다. 소명은 그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다가서며 손을 썼다. 유려하게 펼치는 손끝이 깃털처럼 가볍다. 그러나 손짓에 일어나는 경력은 막대하여서 천 근의 무게를 드러냈다.
금강권, 미완으로 남았음에도 소림무공의 바탕을 이루는 권법이 한껏 그 위력을 드러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지만, 소명의 일권이 가까워지자 괴인은 놀란 것처럼 몸을 급하게 흔들었다. 그러자 남은 천 자락이 남김없이 솟구치며 전면을 막아섰다. 일종의 방벽(防壁)을 세운 셈이었다.
내지른 소명의 권면과 늘어선 검은 천이 맞닿았다. 천과 주먹이 닿았을 뿐인데, ‘꽈르릉’ 하며 마른벼락 치는 소리가 무섭게 울렸다. 고요한 물결 위에 일만 근의 바위를 던진 것처럼 둥근 물결이 사방으로 급하게 퍼져갔다. 이어 괴인은 벼락 맞은 것처럼 무섭게 요동쳤다. 입으로 보이는 부분을 한껏 벌리며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감당할 수 없다.
괴인은 깨닫기가 무섭게 도주를 택했다. 그는 여울물이 흐르듯이 사방에 펼친 검은 천을 남김없이 거두며 빠르게 물러섰다. 화드득 소리가 급하게 울렸다. 암객들을 결박하고 있던 것도 남김없이 거두었다. 무슨 수작을 부릴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암객들은 등 떠밀린 것처럼 맥없이 흙바닥을 뒹굴었다. 물론, 소명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그는 대뜸 발을 구르며 일시에 물러난 거리를 파고들었다. 파고드는 여세 그대로 좌우 양 권을 일시에 내질렀다. 나한소사의 일 초. 앞으로 검은 천이 재차 솟구쳤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막아내지도 못했다. 폭음과 함께 검은 벽이 터져 나갔다. 조각이 후드득 떨어지는데 빈자리로 검은 천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물러설 수도 막아낼 수도 없다면, 다른 수가 없다.
“끼에에엑!”
괴인의 입에서 실로 기이한 기성이 솟구쳤다. 한데 끌어모은 천 자락은 두서없이 솟구치며 소명을 노렸다.
“오호라.”
소명은 탄성처럼 낮은 소리를 흘렸다. 정신없이 검은 천이 날아드는 그 순간 소명은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전신에서 힘을 풀고 온몸을 흐느적거렸다. 일체의 대응도 하지 않는, 무방비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검은 빗줄기인 양 쏟아지는 검은 천이 이제 코앞이었다. 그때, 소명은 한쪽 입꼬리를 치켜들며 내처 온몸을 쓰기 시작했다.
양권쌍각(兩拳雙脚)뿐만 아니라 전신으로, 소명은 덮치는 모든 공세를 쳐냈다. 바로 스승 공천, 곧 장우상에게 사사한 무형결이었다. 무형결은 실로 공방일체(攻防一體)의 무법. 상대가 얼마나 되었던, 수법이 얼마나 기괴하든 개의치 않는다.
굵은 우박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것처럼 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천은 튕겨 나가고, 붙잡혀 찢기고, 꼬이고 뒤엉키며 점차 엉망이 되어갔다. 그리고 소명은 괴인의 멱을 덥석 틀어쥐었다.
“잡았다.”
소명은 요동치는 괴인을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며 말했다. 괴인의 저항은 격렬했지만, 소명의 곤음수는 완성경을 돌파하여서 그의 두 손은 이미 금강지경을 뛰어넘었다. 억센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소명은 다른 손을 뻗어서 괴인이 뒤집어쓴 천 자락을 덥석 움켜쥐었다.
“어디 네놈 낯짝이나 한번 보자.”
“끄르륵!”
숨넘어가는 듯한 괴상한 소리가 울렸다. 괴인은 마구 몸부림쳤지만, 소명의 곤음수를 떨쳐낼 수는 없었다. 소명은 괴인의 저항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 천을 냅다 찢어버렸다. 그러자 밋밋한 나무 인형의 얼굴이 덩그러니 드러났다. 인형은 마치 괴로운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뒤틀어대더니, 이내 모든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소명은 새삼 신중한 눈으로 축 늘어진 인형의 얼굴을 살폈다. 어지간히 애지중지한 모양인지 인형은 손때가 그득했다. 인형의 입으로 말을 하고, 인형의 눈으로 상대를 살폈다.
“하, 역시나. 멀리까지도 오셨군.”
비튼 입매 사이로 헛웃음이 흘렀다. 흔들리는 앞머리 사이로 흐린 안광이 잠시 새었다. 소명은 고개를 내저으며 잡은 손을 놓아버렸다. 인형은 실 끊어진 연처럼 바닥에 툭 떨어졌다. 괴인의 진체(眞體)는 이곳에 있지 않았다.
격렬한 소란이 끝난 듯 고보는 새삼 고요했다. 그저 스산한 바람이 몰아칠 뿐이었다. 새벽이 가까워서인지 바람 소리가 윙윙 울렸다. 소명은 조금 전까지 맹위를 드러낸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차분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켰다. 발치에 나무 인형이 널브러져 있고, 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다섯의 사내들이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직은 몸을 가눌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소명은 마냥 넋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신중한 눈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바람 소리가 제법 뒤채었지만, 그는 바람을 읽어내는 천마풍의 재간을 지니고 있었다. 일순, 소명은 번쩍 눈을 치떴다. 쩌렁쩌렁한 일성이 터졌다.
“거기로구나!”
세찬 발 구름과 함께 진즉 준비하였던 일권이 내처 바람을 꿰뚫었다. 신권이라 일컫는 소림사의 백보권이 이때에 위력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