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인연(因緣)을 보다
“에이, 빌어 처먹을…….”
장 조장은 씨근덕거리며 움직였다. 지금까지 그들에게 주식이 되어주었던 잡초와 이끼, 그리고 몇몇 약초를 겨우 구해서 토굴을 빠져나오는 참이었다.
거친 욕설을 내뱉었지만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한 새벽에 일어난 소명의 발작을 생각하니 속이 쓰린 탓이다.
같이 지낸 것이 넉 달하고 보름. 그동안에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아직 어린 녀석이 그만한 일을 겪었는데, 맺힌 것이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젠장, 한심하네. 나잇살이나 처먹어서…… 혼자 빌빌 거리고 있었으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언제 폭발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지금까지 묵묵히 고련을 반복해온 것도 그만큼 맺힌 것이 많아서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 조장은 혀를 차며 토굴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찌푸린 얼굴이 더욱 크게 일그러졌다.
“아니, 저 자식이. 쉬라니까 또 무슨 지랄이야?”
당장 한 소리를 하려 입을 벌렸지만, 순간 굳어버렸다.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금강권?”
장 조장은 소명의 동작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딱딱한 얼굴로 소명이 움직이는 모습을 신중히 바라보았다.
소명은 초식과 초식 사이마다 연신 움찔거리면서 금강권의 투로를 이어갔다. 소명이 움찔거릴 때마다 장 조장의 눈길도 따라서 흔들렸다.
마지막까지 정성 들여 행한 소명은 숨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돌렸다가 장 조장의 모습을 보았다.
“엇, 아저씨…….”
언제 왔는지,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 있는 모습에 흠칫 놀랐다. 아니, 그보다 전에 없이 굳은 얼굴에 더욱 움츠러들었다.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였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아니요, 그러니까, 잠깐 몸 좀 풀려고.”
“금강권을 익혔더냐?”
“예, 예…… 잘 못하지만서도요. 배운 지 일 년이 훌쩍 넘어가는데, 아직도 이 모양이에요. 헤헤. 재능이 없어서.”
“하, 그게 재능이 없는 거면, 누가 재능이 있을까.”
“예?”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에 소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장 조장은 물끄러미 소명의 끔뻑거리는 눈을 마주 보았다. 그는 대뜸 한 소리를 던졌다.
“에이, 썩을 놈.”
소명과 장 조장은 마주보고 앉았지만, 말은 없었다. 소명은 장 조장이 마련한 먹을거리를 열심히 우물거리면서 계속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장 조장은 소명의 눈길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먹는 것에만 열중했다. 그런 그의 미간에는 깊은 골이 패여 있었다.
소명으로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왜 저러지? 무슨 말을 할라고 저러시나?’
“눈치 좀 그만 봐라.”
“흡, 눈치는, 제가 무슨 눈치를 봐요.”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지만, 장 조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전부 먹어치웠다. 그는 구석으로 가서는 털썩 주저앉았다. 조용히 벽만 바라보는 모습에 소명은 되레 불안했다.
소명은 앉아서 드는 햇살만 바라보았다. 날이 점점 기울어 가는지, 노을의 붉은 빛이 스며들었다. 그때, 장 조장은 뭔가를 결정했는지 고개를 들고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햐…… 이거 정말…….”
그리고 고개를 돌려 소명을 불렀다.
“야, 이리 와 봐라.”
“예?”
그렇잖아도 마음이 불편하던 소명이었다.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슬그머니 장 조장에게 다가갔다.
그는 앞에 앉은 소명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히야, 정말인지, 기가 막히네.”
뜬금없는 소리였다.
“금강권은 누구한테 배운 거냐?”
“저희 동네, 무관 관주님께 배웠는데요.”
“무관 관주? 음, 상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인가 보구나. 권식이 바르고 정확한 것을 보니.”
“헤헤, 호 관주님은 정말 유명하신 분이래요.”
“호 관주? 호 씨면, 설마 호경한, 그 사람인가?”
“어, 우리 관주님 아세요?”
“으, 음. 그 사람이라면 고수라고 할만은 하지.”
장 조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경한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다. 실제 마주한 적은 없었지만 하남일대의 권사 중에서 항상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 호경한이다.
등용문의 호랑이, 양천호격(陽穿虎擊) 호경한.
그가 낙향했다는 말은 풍문으로 들었지만 설마하니 상화촌에서 무관을 열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입가에 쓴웃음이 머물렀다.
“너는 금강권이 어떤 권법인 줄 아느냐?”
“예? 전 그냥 몸이 강건해진다고 해서…….”
“그래, 금강권은 연골연신의 공효가 있어, 오래 연공하면 능히 강건해질 수 있기도 하지. 그러나 그것뿐. 그 이상은 될 수가 없다.”
“딱히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는데요.”
조심스런 소명의 말에 장 조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 무공을 익히는 처지에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 쉽게 나온단 말이냐?”
“에이, 강건한 게 최고죠.”
소명은 환히 웃었다. 그러나 곧 힘없이 눈을 내리깔고는 맥없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뭐, 재능도 없는걸요.”
그런 소명을 장 조장은 어이없는 눈으로 보았다. 그는 얼굴 한쪽을 찌푸리며 구시렁거렸다.
“젠장, 그게 재능이 없는 거면 세상에 재능 있는 놈이 어디 있다는 거야?”
“예?”
구시렁거림에 소명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 조장은 대답대신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새삼 얼굴을 굳혔다.
“너에게 금강권을 가르친 호 관주도 대단한 권사이기는 하지만 금강권의 진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지.”
실전의 공수보다는 권법의 기초를 다지고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권법. 그것이 세간에 알려진 금강권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명의 금강권은 반쪽에 불과했다. 형은 정확했지만, 호흡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명의 잘못이 아니었다.
금강권은 본래 미완의 권법인 까닭이었다.
장 조장은 그런 금강권의 내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내 사연에 대해서 말하자면 말이다…….”
그의 얼굴이 새삼 회한으로 물들어갔다. 잠깐 말을 잇지 못하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소명은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나는 본래 하북사람으로, 장우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본래…… 소림의 제자였던 사람이다.”
한참 후에야 감정을 추스른 장 조장은 그렇게 첫마디를 떼었다.
소림 제자였다는 말에 소명은 눈을 크게 떴다. 그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 조장, 아니, 장우상은 말을 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여, 흡사 남의 일을 말하는 듯했다.
장우상은 나이 여덟에 소림의 산문을 넘었다.
많은 사미들 중 한 명으로서 소림의 무승을 꿈꾸었지만, 장 조장은 소림의 무를 익히는 백의전이 아닌, 의약을 담당하는 약왕전 아래 채약당의 제자가 되었다. 무공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채약당의 제자가 됨으로써 그가 소림에서 배운 무공은 단 세 가지였다. 소명에게 지금껏 가르친 곤음수, 철비각, 그리고 금강권이다.
금강권은 신체강건을 위한 방편으로 소림의 모든 승인(僧人)들이 익혔다. 그러나 곤음수와 철비각은 그렇지 않았다. 소림의 절예에 속함에도 채약당 제자 외에는 아무도 익히지 않는 공부였다. 고련에 비해 상승에 오르는 문이 좁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채약당에서는 일의 효율을 위해 두 공부를 익히게 했다. 비교적 입문이 쉬우며, 어느 정도만 익혀도 채약의 일을 하는 데에 충분한 까닭이었다. 곤음수는 약초 채집을 위해, 철비각은 깊은 산을 오르기 위해 익히게 했다.
장우상은 무공에 대한 큰 열망으로 실망하지 않고 밤낮없이 연공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한계를 절감했을 뿐이었다.
백날을 해도 금강권은 금강권에 불과했다. 곤음수는 오성의 성취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나마 철비각이 십성의 경지에 달하여 채약당에서 그가 가장 날래었다. 그러나 백의전 무승들에게 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장우상은 소림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 후로 강호를 오래 떠돌았다. 그것이 십수 년.
스스로 말하기를 삼류무사라고 하지만 정작 강호상에서 장 조장을 삼류 취급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강호 낭인들 중에서도 일가를 이루어낸 자였다.
무수한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무학을 창안해냈으니, 그것이 바로 철비각을 실전에 맞게 고친 철각연환격(鐵脚連環激). 파랑이 연이어 몰아친다 하여 격(激)이다.
이를 통해 장우상은 일류를 넘보는 경지까지 이루어냈고, 종종 절정의 고수들과 손속을 겨루기도 했다. 하여 강호에서는 철각(鐵脚)라고 불렸다.
“오오, 철각. 명호가 멋있는데요.”
“컷흠! 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예, 예…….”
멋쩍은 듯 헛기침을 흘리고는 다시 화제에 집중했다.
“어흠, 듣거라. 금강권은 본래…….”
말하기로, 금강권은 권법의 이치를 알고 신체를 강건하게 하는 기본무공이라 하지만, 실상은 그와 달랐다.
금강권은 본래 수미금강권(須彌金剛拳)이라는 이름의 절정의 운기권.
대성하면 금강법신(金剛法身)을 이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주요한 요결이 소실되며 운기권으로서의 공능을 잃고 말았다. 남은 것은 그저 가지에 불과한 몇몇의 형뿐.
그나마 약간의 공능이 남아 신체를 강건하게 하는 공효를 볼 수 있기에 소림에서는 이를 금강권이라 칭하며 기본무공으로 삼은 것이다.
“하여, 지금의 금강권은 그저 가지를 이어붙인 셈이다. 겉으로는 알 수 없으나, 금강권의 투로 중에는 미완의 허(虛)가 존재한다.”
“미완의…… 허?”
“그래, 다른 이들은 그런 것을 느끼지도 못한다. 그런데 네놈은 몸이 알고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이다. 투로 사이사이의 빈자리를 몸이 알고 있는 것이지. 그러니 머리로는 알아도 손과 발이 따르지를 않는 것이다.”
“그게, 뭐가 좋은 건가요?”
소명은 멍한 눈으로 물었다.
“잘못된 길로 들지 않고, 바른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뜻이다. 어긋난 것은 네놈이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웃음소리가 썼다.
“자,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장 조장, 장우상은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때, 무공 한번 제대로 배워볼 테냐?”
이 말을 하려고 반나절 동안 그렇게 고민을 한 것이다.
그날부터 장우상은 소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반쯤 소일거리 하듯 가르치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는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 * *
장우상은 소명에게 무공을 가르치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사승의 연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부, 스승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자신은 그저 가르칠 뿐이다.
그리고 당장 어떤 절학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바탕이 중요한 법. 이제까지 소명의 바탕이라면 금강권과 운기토납법이 전부였으니.
장우상은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칠 작정이었다.
“으이이익! 으에에엑!”
소명은 벌게진 얼굴로 온 힘을 다해 괴성을 쥐어짰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제 몸뚱이만 한 바위를 끌어안은 채, 마보로 묘실의 외곽을 둥글게 걷고 있었다.
팔다리에는 철비각을 연습할 때의 돌 주머니도 찬 채였다. 묘실이 떠나가라 악을 바락바락 써가면서 겨우겨우 움직였다. 온몸이 짓눌려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괴로움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이 짓거리만 벌써 한 달째였다.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무게가 더해지더니, 급기야 여기까지 왔다.
아득바득 용을 쓰며 곁눈질로 흘깃거리니 묘실 한가운데에서 장우상이 편히 앉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는 시큰둥한 얼굴로 한마디씩 툭툭 던졌다.
“어딜 보냐? 그럴 정신이 있어?”
다시 정신 차리고 움직일라치면 또 한마디.
“자세가 높다. 엉덩이 낮춰라.”
말대로 하면 또다시 한마디.
“팔이 떨리고 있지 않으냐. 제대로 힘을 줘야지.”
잔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으이이이…… 이이이…….”
“어허, 이는 악물지 말고.”
“네에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