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여공(呂公)의 유록(遺錄)
소명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용했다.
그리고 참 원망스러웠다. 저렇게 고련을 시키는 장우상보다도 다음 날이면 또 제꺽 일어나는 이 몸뚱이가 더 원망스러웠다.
‘으휴휴휴…… 빌어먹을…….’
한탄할 기력도 없어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아으윽! 아으윽!”
한 발 움직일 때마다 ‘쿵!’, ‘쿵!’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밤이 오고서야 소명은 비로소 마음 편히 드러누울 수 있었다. 피곤에 지친 몸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쉬는 것 또한 중요한 수련 중 하나였다.
장우상은 소명의 회복까지 염두에 두고 몰아붙였다. 그는 어디까지 시켜야 버틸 수 있는지, 그 아슬아슬한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잠든 소명과 달리 장우상은 눈을 붙일 수 없었다. 날이 밝으면 행할 수련을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마땅한 바위를 찾아야 했고, 먹을 것을 준비해야 했으며, 또한 다음 단계를 위해서도 스스로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는 사이 날은 다시 밝고, 수레바퀴가 돌듯이 소명의 고련은 다시 반복되었다.
계절은 겨울이라 혹독한 추위가 몰아쳐왔지만, 소명은 그 추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고련으로 딱 죽기 직전까지 힘들었다. 혼자서 들이파던 곤음수, 철비각의 수련보다 배는 힘들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답답한 심정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헤, 헤헤…….”
바닥에 널브러진 채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에 힘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밝았다.
장우상은 쯧쯧 혀를 찼다.
‘그날 발광을 할 때부터 알아보기는 했지만 참…… 독하다, 독해…….’
애써 내색을 않고 있었지만 악착같은 소명의 모습과 그 진도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지금의 단련은 상승의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다.
공(功)과 기(技)는 결국 신(身)으로 이루는 것. 아무리 천하를 아우르는 신공절학이라 해도, 단련되지 않은 육신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혹독하기는 해도 그 공효는 확실하다.
지금 수련방법은 소림의 연골연신 과정인 십전고련법(十全苦練法)에 장우상이 강호를 돌며 나름 깨우친 바를 더한 것이다. 본래 수련법보다 더 가혹하고, 또 빈곤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돌과 흙밖에 없는 이곳에서 단련시키기 위해 장우상은 머리를 무진 쥐어짰고, 지금도 쥐어짜는 중이었다.
그러나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이만큼 해낼 줄은 몰랐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을 지경에까지 갔으면서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히 일어나, 전날보다 더 한 단계를 해내고 마는 것이다. 당초 백일을 계획했건만, 예상보다 세 배는 빠르다.
그러나 장우상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빠르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연골연신의 단련은 무엇보다 꾸준한 것이 중요하다. 무턱대고 서두르다가는 몸만 망칠 뿐이니.
이제 방법을 바꿀 때가 되었다.
“그만.”
“으에엑!”
장우상의 말에 소명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위를 내던지며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그렇지만 숨을 몰아쉬는 것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놈! 숨은 길고, 차분하게, 깊이 숨을 다스려!”
“흐으읍! 히이이!”
눈앞은 빙글빙글 돌고,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달려 나갈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팔다리는 이미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또 살 만해진다.
소명은 그것을 잘 알았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르자 몸을 태울 듯이 들끓던 열기가 점차 가라앉았다.
“후우…….”
곧 호흡을 되찾는 모습에 장우상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저 지독한 놈.’
그러나 생각뿐, 그는 소명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무슨 엄살이냐? 얼른 안 일어나?”
‘어, 엄살이라니…… 엄살이라니…….’
장우상의 핀잔에 소명은 퀭한 눈을 들었다. 아무리 회복이 빠르다고 해도 정도라는 것이 있건만.
눈길에 불만이 가득했다. 그것을 보면서도 장우상은 ‘큭’ 한 번 웃어 보였을 뿐이다.
소명은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풀린 눈동자가 장우상을 향했다.
웃음을 지운 장우상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내공을 가르쳐주마.”
장우상은 소명에게 내공을 가르치기까지 많이 고민했다.
일심기공, 일심공이라 하는 이것은 본래 소림 문하의 어린 제자들이나 익히는 기초 심법이다. 내기관조(內氣觀照)의 요령을 익히기 위함으로 내공의 입문으로는 바람직하나 그뿐이었다. 말 그대로 기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장우상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채약당 제자였던 그에게 다른 심법은 허락되지 않았다. 강호를 떠돌며 잡다한 무학을 잊혔지만 내공심법만은 구할 수가 없었다.
없는 것을 두고 오래 고민해 봤자 답은 없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소명에게 집중했다.
소명은 눈을 반개한 채 내뱉는 호와 들이쉬는 흡에 집중했다.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으며 고련의 후유증이 잦아드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일심기공의 법문을 쫓았다. 그러자 몸의 곳곳에서 문이 열리는 듯했다.
“어떠냐? 느껴지느냐?”
고요히 호흡에 집중하는 소명에게 장우상은 넌지시 물었다. 큰 기대는 없었다.
운기토납을 부지런히 해왔으니 기를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운공은 전혀 다른 과정이었다. 아무리 기맥이 남다르다고 하여도.
소명은 눈을 감은 채 대꾸했다.
“뭔가 따뜻하고, 시원한 게 몸속에서 흐르는데요.”
“음, 그래. 음양이기를 일시에…… 뭐?”
고개를 끄덕이던 장우상은 곧 당황해 눈을 크게 떴다.
“정수리에서는 시원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오르고, 따뜻한 기운이 아랫배로 내려가요. 온몸으로 기운이 퍼져가는 것 같아요.”
“허허헉!”
장우상은 숫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이, 이놈이 무슨 백팔경락이 모두 다 열렸기라도 한 거야, 뭐야?’
지금 말을 들어보자면 외기를 받아들여 내연기가 이루어졌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은 첫 호흡에 이루어질 만한 일이 아니다.
불가에 벌모세수라는 공력이 있어서 몸속의 탁기를 씻어주고 경락을 열어준다고 하지만, 그런 벌모세수로도 이와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소명은 일심기공의 법문을 따라서 호흡을 단정히 했다. 아랫배에 전에 없는 열기가 맴도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낯설지 않은 느낌, 소명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아아, 이게 ‘내공’이라는 거구나…….”
어쩐지 친숙하다 싶었다.
여공이 남긴 ‘마음 다스리는 법’을 부단히 따라하다 보면 새삼 뿌듯해지던 기운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호흡을 정히 하며 마무리 짓고 눈을 떴다. 그리고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한 장우상의 모습에 슬그머니 눈살을 찌푸렸다.
“응? 아저씨, 왜 그러고 계세요?”
“아, 아니. 아니다.”
그는 소명의 목소리에 허겁지겁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써 진정한 그는 조심히 물었다.
“어, 어떠냐? 뭐가…… 좀 달라진 것 같으냐?”
“아랫배에 따뜻한 열기가 뭉쳐 있는 것 같아요. 이게 내공이라는 거지요?”
소명은 좀 전과 달리 생기 있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말에 장우상의 얼굴이 더욱 시커멓게 물들었다.
‘뭐, 뭐야, 바로 진기(眞氣)를 이뤘다고? 그게 말이 돼?’
믿을 수가 없다. 욱한 장우상은 급한 마음에 소명의 맥문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경악한 표정만 지었다.
‘뜨억!’
이제 불을 지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대정경, 백팔경락에 흐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진기다. 그것도 일이 년 연공한 운기토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수준이다.
장우상은 버럭 다그치려다가 의아해하는 소명의 얼굴을 보고 애써 마음을 달랬다. 지금이 욱할 때는 아니었다.
“어, 엇흠.”
헛기침을 흘리고 말문을 이었다.
“그,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을 이제 주천을 이뤘다고 하는 것이다. 운공이란 것이…….”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수습했다. 놀라 앉아 있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마음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으악! 아저씨이!”
“이것도 다 수련이야.”
기공수련의 방편으로 한담의 차가운 물속에 소명을 처박았다. 여름 한철 다 지나고 서늘한 때임에도.
소명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장우상은 단호했다. 성취가 미약한 일심기공을 보완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체의 사심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장우상이 오래 고민한 끝에 생각해낸 방편이었다.
그는 운공할 때뿐만이 아니라, 잘 때나 쉴 때나 한담 속에 있도록 했다. 일심기공으로 이룬 공력을 한결같이 유지시키기 위함이었다.
내공심법이라는 것은 흡기가 열이라 하면, 축기는 고작해야 하나에서 둘이다. 이 때문에 이른 나이에 내공수련을 시작하는 것이요, 상승의 내공심법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소명의 기혈이 모두 뚫려 있다고 해도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이상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한담 속에서 지내게 하는 것이다.
지음한담의 무서운 한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소명은 정말 말 그대로 일심을 다해서 연공을 했다.
처음에는 채 운공에 들기도 전에 새파랗게 얼어버릴 정도였지만 사나흘이 지나자 겨우 운공삼매에 들어갈 정도가 되었고, 보름째가 되자 본격적인 운공을 할 수 있었다. 이에 장우상의 얼굴이 더 구겨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 대해서 더욱 심각하게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빌어먹을. 적어도 서너 달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소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장우상, 자신의 문제였다.
다친 다리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아직 내상의 회복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소명을 수련시킬 수가 없다.
“젠장.”
거칠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문득 소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명이 캄캄한 곳에서 달빛에 의지해 뭔가를 읽고 있었다.
“그건 뭐냐? 뭔데 그렇게 열심히 읽어대는 거야?”
“예? 아…… 하하.”
소명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내민 것은 언제 적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목편이었다. 그 모습에 장우상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
장우상은 거뭇한 목편을 가만히 살폈다. 뭐가 적혀 있는 것인지 읽는 것도 큰일이었다. 달빛도 어두웠다.
문득 찌푸리고 있던 얼굴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돌변하는 그의 얼굴에 소명은 의아했다.
‘그저 옛 말들이 적혀 있을 뿐인 목편인데. 왜 저렇게 심각한 얼굴이지?’
소명이 멀뚱히 있는데 장우상이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이건 대체 어디서 난 물건이냐?”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소명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집에 있던 목편 중에 하나인데요.”
소명의 말에 장우상은 눈을 까뒤집었다.
“지, 집에 있던 목편? 이, 이게?”
소명은 장우상이 흥분하는 것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건 그냥 옛이야기일 뿐인데요.”
소명은 멍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속이 뒤집어지는 것은 장우상이다.
“이, 이게 옛이야기라고?”
“아니면요?”
“이건 상승의 신공비급이란 말이다!”
장우상은 안타까움을 담아 외쳤다. 그러나 소명에게 와 닿는 말은 아니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며 그저 멀뚱히 쳐다 볼 뿐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더 설명할 정신은 없었다. 목편을 보는 그의 눈동자에 뜨거운 열기가 맺혀갔다.
“이거라면…….”
그날부터 목편은 장우상의 차지가 되었다. 그는 미친 듯이 목편의 글자 속으로 파고들었다. 먹는 것도 마다했고, 자는 것도 마다했다.
옛적의 목편은 장우상의 가슴을 크게 들뜨게 만들었다. 온 정신을 수십여 조각에 달하는 목편에 집중했다.
비록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의 무혼까지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직 무인이다. 높은 경지에 대한 열망은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소명에게 일심기공 따위보다 더 높은 경지를 보여 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그를 불타게 했다.
그는 급히 마음을 다스리고 목편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진정하자, 진정해……. 후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것을 옛이야기라고 치부한 소명의 말도 가히 틀리지는 않았다. 이 목편을 적은 사람은 자신의 과거사와 더불어 무공구결을 적었기 때문이다. 무공에 대해 모르는 소명의 눈에는 그저 한 사람이 살다간 이야기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목편 속의 가르침에는 이름조차 없었다. 그저 심법이라 칭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내공을 연마하는 상승의 비결임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소명의 수련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장우상은 우선 금강권을 다시 익히게 했다. 그러나 한없이 느리게 할 것을 강조했다. 한 동작을 마무리하는 데 못해도 반 각의 시각이 흘렀다.
금강권 십팔식을 전부 펼치는 데에 이각 남짓의 시간이 걸리는데, 반 각에 일초식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명은 이전과는 다른 수련에 땀을 뻘뻘 흘렸다.
몸이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금강권의 느린 수련과 더불어 곤음수와 철비각, 십전고련의 연골연신도 멈추지 않았다.